대순문예 : 산문 최우수
피노키오 연필 한 자루
금릉5-8 방면 평도인 김동현
2022년 6월 2일 새벽 3시경, 아버지께서 뇌경색 징조를 보이셨다. 건강을 자부하시던 분이셨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당시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 2시쯤이 되었는데, 늦게 들어온다고 잔소리가 듣기 싫어 자취방으로 갈지 본가로 갈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한 느낌이 들어 결국 잔소리 듣기를 각오하고 본가로 갔던 나는 아버지가 새벽까지 승진 시험 공부하시느라 주무시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잔소리를 듣기 싫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갔으나 잠잘 시간을 놓친 나머지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몸이 이상하다며 어머니를 불렀는데 어머니께서는 다급하게 내 방문을 여시면서 “너희 아버지가 이상하니 상태를 좀 봐라”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소파에 누워계신 아버지께 가서 몸 상태가 어떠냐고 여쭤보니 “쥐가 난 듯 몸 반쪽이 저리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종아리를 주물러 보니 쥐가 나신 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리가 하얘져서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신명께서 도와주신다는 느낌을 받았고 마치 과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유를 일러주시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혈관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급히 응급실로 가서 골든아워를 지켜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이 있는 지역이 대학병원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119에 전화해서 구급차를 부르는 것보다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운전해서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가는 게 빠르다고 판단하고 거의 15분 만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막 도착하니 아버지 이외에는 응급환자가 한 명도 없었고 아버지는 속히 진료를 무사히 받으실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응급실에 들어가시고 10분 뒤에 구급차가 3대 넘게 줄줄이 와서 응급실이 마비되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잘 인식이 되지 않았으나 지금에서야 이 모든 상황이 덕화로 흘러간다고 느꼈고 감사함이 밀려왔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골든아워를 잘 지켰다고 했다. 담당의 선생님께서 아버지께서 막힌 부위 외에는 뇌혈관이 깨끗하셔서 정말 상위 0.1%의 회복력을 지니고 있어 예후가 좋고, 천운을 타고났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일상생활과 직장생활을 다 할 수 있다는 소견서를 받고 직장에 복직하셨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회복하신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 정도만 겪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심고를 드렸다. 다행히 집안 걱정 없이 수도할 수 있게 연원께서 덕화를 내려주심이 확실한 것 같았다.
경황이 없어 바쁘게 지내던 와중에 조금 숨을 돌리고 있을 무렵, 아버지께서 발병하신 딱 두 달 뒤인 8월 2일에 내가 계단에서 넘어졌다. 발목의 뼈가 골절되어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긴급수술을 받았다. 정말 집안 업보가 드러나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에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라는 생각에 정말 어두워져 있었고, 이런 상황을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 집에 있는 어머니께서도 남편과 아들이 다른 병원에서 동시에 입원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라며 나에게 와서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하시니 입원해있는 나로서는 더욱 힘들었다. 그런 입원 과정에 방면 선각 분들이 오셨고 “감당이 가능하게 겪을 만큼 주신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정말 마음에 많이 와닿았고 대화 속에 어두운 기운이 많이 해소되었다. 기운이 맑아지자 아버지와 내가 집안 업보를 심하게 겪는 중이고 정말 업보라는 게 드러나면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수도를 해서 부지런히 업보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힘든 곤욕을 치르고 나서야 겨우 인식하고 수도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힘든 2022년이 지나 2023년이 왔을 때, 방면 선감께서 아버지를 입도하게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더욱 포덕을 부담스러워하고 어려워하며 도의 이야기를 못 꺼냈다. 하물며 아버지께 도 이야기를 하고 치성을 모셔보라고 하는 것은 나에겐 제일 큰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각이 다 도와주고 힘쓸 것이니 너는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선각의 교화를 듣게 하게끔 하면 된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이후 선각분과 계획을 잡고 아버지 직장에 가서 교화 자리를 마련했다. 아버지께서는 무척이나 피하시며 집에 가자고 얘기하셨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그날 유독 자리에서 대기 중이던 선각분을 안 뵙고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만나보시라고 권유했다. 아버지께서도 나의 그 끈질김에 어쩔 수 없이 응하셨다. 선각분의 교화를 듣고 아버지께서도 마음의 문을 안 여시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시며, “어릴 적에 교회 앞에서 교회에 오면 피노키오 연필을 준다는 말을 들었지만 거절했던 기억이 있다. 교회에 가고 싶진 않았으나 피노키오 연필이 갖고 싶었고, 그게 지금까지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치성금을 모셨다. 너무 가난했던 시절을 보낸 아버지의 인생을 짐작해봤을 때, 연필 한 자루 사기 어려워 몽당연필로 공부하던 어렸을 적 아버지는 어린 마음에 그저 새 피노키오 연필 한 자루를 갖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가지지 못했던 그 한 자루는 마음의 응어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한테 쓴소리 한번 못하시고 묵묵히 일만 하시고 사셨던 아버지의 일생을 비춰봤을 때, 그 피노키오 연필 한 자루는 인생을 이상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하나의 마스터키일 것 같았다.
교화가 끝나갈 때쯤 아버지께서 “그런데 피노키오 연필을 여기서 찾을 수 있으려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 순간 해원상생, 보은상생 양대 원리로 수도하며 업보를 부지런히 풀어나간다면 이 연필 한 자루의 존재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업보를 부지런히 풀어 후천이라는 세상에 간다면, 그 피노키오 연필을 손에 쥘 기회를 마련해 드릴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내가 수도를 열심히 해서 아버지의 마음속 한구석에 있는 피노키오 연필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마음을 굳게 먹게 되었다. 그런 이후 아버지는 포덕소에서 입도치성을 모셨고 한층 더 아버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학생이기에 경제적으로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있고, 부지런히 집안 업보를 풀어 평화로운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겠다고 느꼈고, 척을 조금이라도 덜 겪게 덕화를 내려주시는 연원께 항상 감사하며 보은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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