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회보 146호 〉 일각문

큰 돌과 작은 돌


큰 돌과 작은 돌

 

 

연구원 박영수

 

  시간관리의 전문가로 잘 알려진 하버드 노교수의 일화다. 강의가 시작되자 노교수는 책상 위에 커다란 유리단지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책상 밑으로 손을 뻗어 주먹만 한 큰 돌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를 올려놓았다. 이윽고 그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러분, 이 단지에 돌이 몇 개나 들어갈 것 같나요?”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가 생각한 숫자를 말했고 교수는 단지가 가득 찰 때까지 돌을 단지에 집어넣은 후 다시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제 단지가 가득 찼나요?”
  교수가 마지막 돌을 단지에 힘겹게 끼워 넣는 것을 보며 학생들은 당연히 단지가 가득 찼다고 대답했다. 학생들의 한결같은 대답을 듣고 난 교수는 가벼운 미소를 짓더니 다시 책상 밑에서 자갈이 가득 든 상자를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고 그 자갈을 단지에 쏟아 부어 큰 돌 사이의 공간을 메웠다. 그는 다시 물었다.
  “이제 어때요? 단지가 다 찼나요?”
  나름대로 지성인임을 자부하는 하버드 대학생들은 조금 전 노교수의 재치 있는 반격에 한 방 먹은 것을 떠올리며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고 그들의 예상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교수는 단지를 흔들어 큰 돌과 작은 돌들이 서로 섞여 자리를 잡게 한 후 모래로 공간을 다시 메웠다.

 

 


  “이제 단지는 다 찼습니까?”
  교수의 질문에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예!”라고 대답하였다. 노 교수는 아직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가볍게 저으면서 물이 가득 든 주전자를 들더니 단지에 물을 가득 부었다. 노교수는 이 간단한 실험을 끝내고 다시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여러분, 이 실험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한 학생이 과감하게 손을 들고 대답했다.
  “스케줄이 아무리 꽉 찬 것처럼 보여도 새로운 스케줄을 끼워 넣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노교수는 어린 학생의 자신만만한 대답을 듣고 즐거운 듯이 미소를 지었으나 부드러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내가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큰 돌을 가장 먼저 넣지 않았다면 나머지 돌들도 영원히 집어넣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에요. 작은 돌을 먼저 채운 후에는 큰 돌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큰 돌과 작은 돌의 예를 통해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계획을 실행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리단지는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나타냅니다. 큰 돌은 소중한 것과 관련된 큰 일이나 큰 활동입니다. 작은 돌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소하고 작은 일입니다. 모래는 깨어 있는 시간을 나타내고 물은 잠자는 시간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다루어야 할 일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아 혼란스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순위가 잘못 정해진다면 참으로 중요한 일을 영원히 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제대로 된 우선순위에 속하는 것인지 자신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전경』에 “물질에는 본질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그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알면 도에 가깝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卽近道矣).”01는 성구(聖句)가 있습니다. 우리는 처사에서 말단에 치우치는 과오를 범하지 말고 본질적인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망각하면 자칫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 처리는 앞의 성구를 규준으로 삼으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일에는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이 있지만 급하지는 않아도 인생의 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견지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왜 사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근본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자기 정체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도를 닦고 있는 수도인입니다. 수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도를 닦고 있다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돌인지 작은 돌인지의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삶을 온통 작은 돌과 모래 물로 가득 채워놓고 ‘지금은 형편이 안 좋아서 이렇지만 언젠가는 큰 돌을 넣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우리 자신이 수도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자각하고 난 이후에는 언제나 우리의 삶의 중심에 확고하게 큰 돌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도에 대한 믿음이 언제나 우리의 심중에 확고하게 뿌리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도의 결실을 맺고 도성덕립(道成德立)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오늘 작은 돌과 모래, 물로 가득 찬 마음이 그것을 비우고 새로 담지 않는 한, 큰 돌을 간직 한 마음으로 될 수는 없습니다.
  도전님께서 “수도의 목적은 도통이니 수도를 바르게 하지 못했을 때는 도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02라고 말씀하셨듯이 수도의 목적은 도통입니다. 이것이 우리 도인들의 자기 정체성이자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오늘 내 마음에는 큰 돌이 있습니까?

 

 

참고문헌
·하이럼 스미스 저/ 김경섭 역,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김영사, 2002.

 

 

 


01  『교법 2장 51절 참조
02  『대순지침』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