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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길 : 심우도(尋牛圖)
심우도(尋牛圖)
글 김광신
Ⅰ. 머리말 여주본부도장 봉강전 뒤편 벽면에는 수도인이 입도(入道)를 하고 험난한 수도과정을 거쳐 도통(道通)에 이르는 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낸 ‘심우도(尋牛圖)’가 있다. 이곳은 도장 참배 시 대부분의 도인들이 한 번씩 거쳐 가는 장소이자 가장 활발한 교화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한데, 그것은 아마도 심우도가 수도과정을 설명하는 가장 쉽고도 간결한 교재(敎材)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래 이 심우도라는 형식[수도의 과정을 동자가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형식]의 그림은 도교(道敎)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불교(佛敎)의 선종(禪宗)에서 이를 채용함으로써 십우도(十牛圖)라는 명칭으로 일반에 널리 소개되었고 명칭과 형식에도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따라서 심우도의 성립 배경과 변화된 모습을 훑어보는 일은 현재 우리의 심우도(尋牛圖)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심우도 형식의 그림에는 동자(童子)와 소[牛]라는 두 가지 중요한 구성요소가 있다. 동자를 수도인에 비유한다면 소는 수도인이 추구해야할 그 무엇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소는 지역에 따라 다른 동물로 대체되기도 하여 시상도[十象圖], 시마도[十馬圖]와 같은 변종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소만이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중요한 구성요소의 하나인 소에 대해 알아보는 것 또한 심우도(尋牛圖)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것이다. 끝으로 우리 심우도(尋牛圖)의 내용에 대한 서술인데, 가급적 그 상징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림의 제목과 장면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정도만 나열하고자 한다.
Ⅱ. 심우도의 성립배경 심우도는 도교(道敎)의 팔우도(八牛圖)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는데01, 일부에서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티벳의 십상도(十象圖) 등이 그 원류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02 하지만 현재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불교의 십우도(十牛圖)또는 목우도(牧牛圖)03가 12세기 무렵 중국의 곽암선사(廓庵禪師)04가 도교(道敎)의 팔우도(八牛圖)에 두 장의 그림을 추가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11세기에 청거선사(淸居禪師)가 처음 그렸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 현실적으로 팔우도(八牛圖) 설(說)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곽암선사의 십우도가 출현한 시기는 중국에서 선종(禪宗)이 전성기를 맞이하던 때였다. 선종(禪宗)은 교학(敎學)을 중시하는 교종[敎宗: 화엄종(華嚴宗)·법상종(法相宗) 등]과 달리 직관적 종교체험인 선(禪)을 중시하는 불교 종파이다. 석가가 영산(靈山)에서 설법할 때 말없이 꽃을 들자 제자인 가섭(迦葉)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은 일에서 연유하였으며, 이심전심(以心傳心)·불립문자(不立文字)를 종지(宗旨)로 하고 있다.05 이러한 선종의 특성 때문에 그림으로 표현된 십우도(十牛圖)는 포교(布敎)의 목적으로 많이 이용되었으며 그 결과 10여 종이 넘는 십우도06가 나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송나라 때 제작된 곽암본(廓庵本)과 보명본(普明本)이 전래되어 조선시대까지 그려졌으나 근래에는 주로 곽암의 십우도가 사용되고 있다. 현재 심우도는 도교의 팔우도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할 뿐 정확하게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여기에 특정 종교의 색깔을 입히기보다는 오히려 ‘오래 전부터 수도(修道)를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시도로 제작·보급되어 온 그림’ 이라는 정도의 정의가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심우도가 현재 불교화(佛敎畵)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불교 사찰에 광범위하게 그려져 왔기 때문이지 그것이 불교의 전유물이라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닌 것이다.
Ⅲ. 소[牛]에 대한 고찰07 심우도(尋牛圖)는 글자 그대로 소를 찾는 그림이다. 그리고 그림 속의 소는 대개 깨달음 또는 불성(佛性)에 비유되어 왔는데, 지역에 따라 티베트와 같은 곳에서는 소 대신 코끼리가 사용되기도 하였고[十象圖], 중국에서는 말이 사용되기도[十馬圖] 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동물은 찾아볼 수 없고 모든 심우도류의 그림에 소가 사용되어 왔다. 소는 우리나라의 농경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넘어 한 식구처럼 생각되어 온 동물이다. 생물학적인 특성부터 보자면 짝수의 발굽을 가지고 있으며, 먹은 사료를 다시 씹는 반추(反芻)동물[되새김동물]이다. 다른 가축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인 이 되새김질 때문에 일반 가축에게는 줄 수 없는 풀 사료를 소에게는 먹일 수 있다. 또 소[丑]는 십이지(十二支)의 하나로서 방향으로는 북북동(北北東), 시간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丑月]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굽이 2개로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것08과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씨앗이 땅 속에서 싹 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는 이 외에도 ‘근면함’, ‘우직함’,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는 덕목도 지니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소가 주인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짐승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의(義)를 주요 덕목으로 여겼던 유교에 의해 구체화되었는데, 세종 때의 도덕서인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는 호랑이와 싸운 후 주인을 구하고 죽은 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으며,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는 인조 7년(1630)에 세워진 의우총(義牛塚)09이라는 소의 무덤이 있어 그 의로움을 기리고 있다. 불교에서 소는 사람의 ‘마음’ 또는 ‘진면목[佛性]’을 의미하고 있다. 『유교경(遺敎經)』10에서 석가는 비구(比丘)들에게 오욕(五慾)11에 들지 않도록 하는 공부를 소와 소 치는 사람의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즉 계(戒)를 지키는 행위를 소 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쥐고서 소가 남의 밭을 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묘사하여 소를 마음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12의 「방우품(放牛品)」에서는 석가가 열한 가지 소 치는 방법13을 들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수행자에게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도교의 소는 유유자적(悠悠自適)과 은일(隱逸)을 의미한다. 말(馬)과 달리 소(牛)는 성질이 급하지 않아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으며, 걸음이 느려 길가의 풍경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다. 이러한 소의 특성과 더불어 도교의 시조(始祖)인 노자(老子)가 청우(靑牛)를 타고 함곡관(函谷關)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후대 지식인들로 하여금 기우행(騎牛行)을 즐기고 이런 분위기를 시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유행을 만들게 하였다. 그들은 이런 도가적 정취를 즐김으로써 세사(世事)나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정신세계의 단면을 드러내곤 하였다.
Ⅳ. 심우도(尋牛圖)의 내용 심우도는 일정한 의미를 전달하는 문자가 아닌 그림이라는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깨달음과 심정에 따라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심우도의 내용을 문자로 옮기는 것 자체가 이미 본래의 의미를 일부분으로 축소시키는 우(愚)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에 이 절에서는 심우도가 가지는 상징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 그림에 붙어 있는 제목과 장면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개념 정도만 간략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그리고 불교의 십우도와 우리의 심우도 사이에 보이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에 대해서도 미리 언급하고자 한다. 십우도(十牛圖)의 소는 앞서 보았듯이 인간의 ‘마음’ 또는 ‘진면목[佛性]’을 상징하고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검은 소는 삼독[三毒: 탐(貪),진(瞋),치(癡)]14에 물든 수도자의 마음을 보여주며, 이후 수도자가 마음을 닦아감에 따라 소는 점차 흰 색으로 바뀌고, 결국 본성을 찾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소는 사라지게 된다. 한편 우리의 심우도(尋牛圖)에 나타나는 소는 불교의 경우처럼 수도자의 마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상제님께서 펼쳐 놓으신 후천의 완전한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의 심우도는 검은 소가 흰 소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흰 소가 출현하고 있다. 이를 두고 대순진리회의 수도인은 이미 전생에 유불선을 많이 닦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해석이 있을 수가 있다. 물론 이 견해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지만 우리 수도인 역시 입도하여 도통을 하는 순간까지 계속 닦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좀 약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흰 소는 ‘상제님의 완전한 진리’를 상징한다고 보는 편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의 심우도(尋牛圖)나 불교의 십우도(十牛圖)를 막론하고 그림의 후반으로 가서는 소가 그림에서 사라지고 있다. 불교의 경우는 소가 인간의 마음을 상징하므로 마음을 닦다가 끝에는 그 마음마저 잊어버린다는 공(空)을 표현한 것이나, 우리의 경우는 궁극적인 지향점이 그런 개인적 차원의 목표가 아니라 바로 도(道)의 목적인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과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그림인 도지통명(道之通明)은 ‘상제님의 진리를 상징하는 흰 소’가 후천선경이라는 배경으로 대체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필자는 그림 속의 ‘흰 소’를 인간의 마음보다는 ‘상제님의 완전한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앞으로의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소나무 밑에서 턱을 괴고 고민하는 동자가 있다. 구도자(求道者)라면 누구나 거치는 단계로서 ‘인생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등의 질문에 스스로 골몰하는 모습이 보인다. 먹고 사는 일에만 마음을 빼앗겨 한 평생을 덧없이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갖는 고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민인 것이다. 가깝게 우리나라를 예로 들더라도 전에는 보릿고개라 하여 정말 글자 그대로 ‘먹고 사는 일’이 인생의 큰 과제였었다. 하지만 점차 기본적인 의식주는 풍족해져 왔고 이제는 과거의 기준으로만 보자면 모두 행복해야만 하는 것인데도 세상 사람들은 더욱 못살게 되었다고 아우성들이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도리(道理)는 뒷전이고 인생의 대부분을 보다 맛있는 음식, 보다 좋은 옷, 보다 편안한 잠자리를 얻는 데 허비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들의 그런 상태가 ‘오직 재리(財利)에만 눈이 어두워져 있는’ 것인지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한 세상을 형적(形迹) 없는 속에 골몰하여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다.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 (교법 1장 1절)
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 (행록 5장 38절 중)
동자가 산길에 나 있는 소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깊은 명상에 빠져 보기도 하고, 아니면 성현(聖賢)의 말씀을 뒤져보기도 하고, 또는 선천(先天)의 종교(宗敎)를 찾아 그 답을 구해 보기도 하다가 드디어 삼생(三生)의 인연에 의해 상제님의 도(道)를 만나는 단계이다. 입도를 하지만 아직 상제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고 단지 희미한 자취만을 더듬게 되며, ‘사두용미(蛇頭龍尾)’라는 말씀처럼 도(道)가 얼마나 큰 것인지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동자의 손가락이 한 곳을 가리키듯 이제 그간의 방황을 접고 가야 할 방향(方向)이 정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 의해 개울에 놓여진 징검다리는 조상 선령신(先靈神)의 공덕(功德)이기도 하고 선각(先覺)의 정성어린 보살핌이기도 할 것이다. 어린 아이가 부모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조금씩 커가는 것처럼 동자는 이러한 은혜를 아직 자각(自覺)하지는 못하지만 차츰차츰 진리(眞理)의 길을 찾아들어 간다.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으리라. (교법 1장 4절)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육십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그렇게 공을 드려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 같이 공을 드려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 하셨도다.(교법 2장 36절)
이제 각 선령신들이 해원 시대를 맞이하여 그 선자 선손을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덜미를 쳐 내세우나니 힘써 닦을지어다. (교법 2장 14절)
상제께서 경석에게 가르치시기를 “모든 일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다 인공에 있느니라.” (교법 2장 34절)
발자국을 쫓던 동자가 드디어 소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며, 더욱이 소는 깊은 절벽 건너편에 있어 동자는 소를 찾아 좁고 위태로운 길을 지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의 경우처럼 다리가 놓여 있지 않으며,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끊어진 절벽만이 동자를 기다리고 있다. 동자는 말로만 듣던 도의 법방(法方)을 하나하나 몸으로 실행하기 시작하면서 상제님의 진리를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다. 바로 쫓아가면 잡을 것 같지만 소는 너무 먼 곳에 있다. 또한 동시에 그때부터 수도를 방해(妨害)하는 본격적인 어려움도 겪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는 마냥 조상 선령신과 선각에게만 의지할 순 없으며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몫이 생겼다.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 던져진 느낌이지만 이미 소의 뒷모습을 본 동자는 앞으로 가야할 길이 험난한 길인지 알면서도 그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해마를 위주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고 타이르셨도다. (교법 2장 15절)
일에 뜻을 둔 자는 넘어오는 간닢을 잘 삭혀 넘겨야 하리라.(교법 1장 3절)
상제님께서 어느 날 종도들에게 맹자(孟子) 한 절을 일러주시면서 그 책에 더 볼 것이 없노라고 말씀하셨도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行 拂亂其所爲 是故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15 (행록 3장 50절)
“함지사지이후(陷之死地而後)에 생(生)하고 치지망지이후(致之亡地而後)에 존(存)한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있음과 같이 복(福)은 곧 복마(伏魔)로 풀이함은 화복(禍福)이란 말과 대등할 것이다.(『대순지침』 p.94)
동자가 드디어 소를 잡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씨는 맑게 개어 있고, 다리가 없는 천길 절벽도 무사히 건너 왔다. 그러나 동자가 모든 고비를 넘긴 것은 아니다. 소와 친해져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상제님의 진리가 어떤 것인지 만져보고, 파악하게 되었지만 선천(先天) 상극세상(相克世上)에서 살아오던 동자가 구태(舊態)를 벗어 던지고 상제님의 진리를 몸과 마음에 완전히 체득(體得)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遙遠)하기만 하다. 수도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의 하나는 ‘이제는 되었다’라고 하는 자만심일 것이다. 항상 스스로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반성해 나가는 것이 수도인데, 한 때의 성과로 거만해 지는 것은 수도인의 본분을 망각하는 것이다.16 그러기에 동자는 상제님의 진리를 항상 마음에 새겨 언행과 처사가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세립미진(細入微塵)되고, 마음이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정성(精誠)을 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보라 선술을 얻고자 십년동안 머슴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그의 성의로 하늘에 올림을 받은 머슴을. 그는 선술을 배우고자 스승을 찾았으되 그 스승은 선술을 가르치기 전에 너의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하니라. 그 머슴이 십년동안의 진심갈력(盡心竭力)을 다한 농사 끝에야 스승은 머슴을 연못가에 데리고 가서 “물위에 뻗은 버드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물위에 뛰어내리라. 그러면 선술에 통하리라”고 일러 주었도다. 머슴은 믿고 나뭇가지에 올라 뛰어내리니 뜻밖에도 오색 구름이 모이고 선악이 울리면서 찬란한 보연이 머슴을 태우고 천상으로 올라가니라. (예시 83절)
성(誠) 자체는 하늘의 도요, 성(誠)하고자 함은 사람의 도이니 지극한 성으로 바르게 도닦기를 힘써야 한다. 성은 남의 간여도 증감도 견제할 수 없고 오직 스스로의 심정(心定)한 바에 따라 이루어진다. 성은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이 한결같이 상제님을 받드는 일이다.(『대순지침』 p.41)
일체의 자부자찬(自負自讚)의 마음을 버리고 수도의 완성을 기하여야 한다.(『대순지침』 p.50)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가고 있는 동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온하게 보인다. 동자가 소를 탔다는 것은 곧 소와 일체를 이룬 것이다. 즉, 이것은 도(道=소)와 하나가 된 단계로 ‘내가 곧 도(道)요, 도(道)가 곧 나[道卽我我卽道]’인 경지라 할 수 있다. 이제 동자는 선천 세상의 때를 모두 벗고 비로소 상제님의 진리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안심(安心)·안신(安身)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오직 우리 대순진리회(大巡澾理會)는 성(誠)·경(敬)·신(信)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修道)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안신(安身) 이율령(二律令)으로 수행(修行)의 훈전(訓典)을 삼아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근본(根本)으로 평화(平和)로운 가정(家庭)을 이루고 국법(國法)을 준수(遵守)하여 사회도덕(社會道德)을 준행(遵行)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根本)으로 하여 인간(人間) 본래(本來)의 청정(淸淨)한 본질(木質)로 환원(還元)토록 수심연성(修心煉性)하고 세기연질(洗氣煉質)하여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大巡眞理)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境地)를 정각正(覺)하고 일단(一旦) 활연(豁然) 관통(貫通)하면 삼계(三界)를 투명(透明)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나니 이것이 영통(靈通)이며 도통(道通)인 것이다. (취지문 중에서 발췌)
소를 찾고 소와 일체가 된 동자는 이제 신선이 되어 있다. 소가 있던 공간은 선녀들이 음악을 들려주고, 불로초가 있고 학들이 노니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경치로 바뀌었다. 도지통명(道之通明)은 정신계와 물질계를 비롯한 천·지·인 삼계가 모두 도통을 하여 인간은 지상신선(地上神仙)이 되고, 천지는 선경세상(仙境世上)으로 화(化)한 단계를 의미한다. 불교의 십우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마지막 그림에 담겨 있다. 불교를 포함한 선천(先天)의 종교(宗敎)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수도의 차원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들은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에 가득 찬 원()을 해소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후천이라는 지상천국건설도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진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제님께서 펼치신 도(道)로 인해 후천의 지상신선(地上神仙) 실현과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은 가능하게 되었고, 그 사실이 이렇게 심우도(尋牛圖)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에서는 불을 때지 않고서도 밥을 지을 것이고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서도 농사를 지을 것이며 도인의 집집마다 등대 한 개씩 세워지리니 온 동리가 햇빛과 같이 밝아지리라. 전등은 그 표본에 지나지 않도다. 문고리나 옷걸이도 황금으로 만들어질 것이고 금 당혜를 신으리라.” 하셨도다. (공사 1장 31절)
“후천에서는 사람마다 불로불사하여 장생을 얻으며 궤합을 열면 옷과 밥이 나오며 만국이 화평하여 시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지리라.” (예시 80절)
“후천에는 또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라.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하며 빈부의 차별이 없고 마음대로 왕래하고 하늘이 낮아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뜻대로 되며 지혜가 밝아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시방 세계에 통달하고 세상에 수·화·풍(水火風)의 삼재가 없어져서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으로 화하리라.” (예시 81절)
Ⅳ. 맺음말 지금까지 여주 본부도장의 심우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우선 심우도는 특정 종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심우도의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태이며, 단지 12세기에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이를 채용한 후 포교(布敎)의 목적으로 널리 보급시켰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불교화(佛敎畵)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각 종교에서 소는 ‘의(義)’·‘불성(佛性)’·‘유유자적(悠悠自適)’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으나 심우도의 소는 ‘상제님의 도(道)’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해 보았다. 끝으로 심우도는 심심유오-봉득신교-면이수지-성지우성-도통진경-도지통명의 6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자가 도통을 한 이후의 마지막 단계인 ‘도지통명’은 곧 우리 종단(宗團)의 목적(目的)인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과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이 이루어진 상태를 표현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01 EnCyber 두산세계대백과, 2002. 05 EnCyber 두산세계대백과, 2002. 07 천진기, 『한국동물민속론』, 민속원, 2003, pp.101~133 /유윤빈, 심우도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2001, pp.4~8의 내용을 참조하였음. 08 홀수는 양을 나타내고 짝수는 음을 나타낸다. 11 눈·귀 ·코·혀·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 즉 오근(五根)이 각각 색(色)·성(聲)·향(香) ·미(味)·촉(觸)의 다섯 14 불교에서 중생의 선한 마음을 해치는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를 독에 비유한 것. 삼불선근(三不善根)·삼구(三垢) ·삼화(三火)라고도 한다. 탐욕·진에(瞋: 분노·노여움)·우치(愚癡)로서 흔히‘탐·진·치’라 한다. 15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일을 내릴 때,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근육과 뼈를 고통스럽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몸을 빈궁하게 하고 하는 일마다 어긋나게 한다. 이는 바로 그 마음을 움직여 성질을 참아 하지 못하는 일도 할 수 있게 더해 주고자 함이다. 16 정대진,『 대순논총4』「도통진경의 이해」, 대진대학교, 2001,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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