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53년(2023) 10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종단 역사 대순캠프 대순광장 지방 회관 소개 생각이 있는 풍경 세상을 구한 발자국 내가 읽은 책 나누고 싶은 이야기 대원종 알립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 : 관심과 하심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관심과 하심



잠실31 방면 선사 양성미




  “선생님 사는 게 너무 지옥이에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이제 겨우 9살 지영이는 작은 입으로 지옥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왜 지옥이야? 무슨 일 있었어?”
  “저는 커서 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은데, 엄마랑 할머니는 의사가 되라고 하세요. 나중에 엄마랑 할머니랑 아프면 딸인 제가 병을 고쳐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키워주신 은혜는 갚아야겠고, 제가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하기 힘들고, 선택을 못 하겠어요.”
  요즘 초등학생은 벌써 이런 고민을 하나? 놀라우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영아 학교 선생님도 의사 선생님도 다 괜찮아. 앞으로 시간이 있으니까 네가 좀 더 커서 선택해도 늦지 않아. 중요한 건 어떤 마음가짐의 선생님이 되느냐 이게 훨씬 더 중요해. 왜냐하면 나에게 오는 사람을 진심으로 잘되게 해주려는 것과 돈을 많이 벌어서 내가 유명해지는 게 목적인 건 다르거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좀 더 올바른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해~!”
  지영이는 가만히 듣더니.
  “선생님은 미술 선생님인데 왜 도덕 선생님 같은 말을 해요?”
  ‘도덕이 본업이고 미술은 부업이야’라고 대답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저는 빙긋 웃으면서 얘기했습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도덕이 기본이잖아. 기본을 실천하기 어려워서 그래. 선생님도 서툴러. 기본이 튼튼할 수 있게 노력하는 거지.”
  맞벌이 부모님 밑에 자라온 터라 늘 관심을 조금 더 받고 싶어 하는 지영이. 제가 하는 말이라면 신중하고 진지하게 들으면서 눈을 마주치고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흡수하듯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는 게 느껴졌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과 말, 역할까지 모든 것이 중요하다는 게 다시 인지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이제 조금 지옥에서 벗어난 표정을 짓고 저를 향해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방긋 웃어 보이며
  “이젠 괜찮아요. 그림이나 마저 그릴게요.” 아무 일 없던 듯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미술 선생님은 코로나를 계기로 도전해본 새로운 직업이었습니다. 전공이 미술이었기에 그림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고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이 마음이 썩 나서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사로써 후각들을 이끌어주고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수도하면서 부족하고 성숙하지 못한 나 자신이 사회에 나와서 누군가에게 선생님의 역할로 내세워지니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학생 중에는 90대 할머니도 계셨는데 영화 <국제시장>을 얘기하시면서
  “국제시장에 나온 꽃분이 얘기 알지? 그게 바로 나야…. 100% 똑같은 건 아닌데 거의 비슷해. 6·25전쟁 때 북한에서 오빠들보다 먼저 배 타고 남한에 내려가 있으라고 부모님께서 나를 먼저 보내셨는데 내가 그때가 18살이었어. 혈혈단신으로 내려와서 지금 90이 넘었다는 게 나도 신기해.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겠지. 내 고향 함경도에 가서 진달래꽃도 보고 싶었는데…. 진달래꽃 그림이라도 그려보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네. 고마워 양선생,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내가 여기에 내려와서 열심히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고 손자들까지 보면서 잘살고 있으니 여한이 없어. 양선생 만난 거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어.”
  아흔이 넘으셔도 곱게 화장하고 여전히 소녀 같은 감수성과 모든 것에 감사하는 욕심 없는 초연한 마음가짐에 오히려 제가 숙연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수도해온 지난날 저를 돌아보며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께서 가족과 같은 나라에 있고 연락해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이라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가족들을 볼 수 없으니 저에게 말씀해주시는 소중함이 마음 절절하게 와닿았습니다. 그림 수업이 끝나고 나서 부모님께 안부 전화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 그림을 그리시다가 전쟁 얘기와 북한 고향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이산가족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온 제가 “세상에 어떻게…. 정말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지나친 몰입으로 얘기를 듣다가 눈물도 흘리고…. 수도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원망하는 마음이 당연하다고 했던 저의 뿌리 깊은 자기합리화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전쟁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었지만 스스로 양심에 걸리지 않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할머니. 오히려 그림 수업을 하고 나면 나도 나 자신에게 좀 더 떳떳한 수도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또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아기 때 제주도에 병을 고치러 갔다가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받으려고 이사 온 학생이었습니다. 처음엔 병명에 관해서 얘기하는 게 조심스럽다고 알려주진 않았습니다. 학생은 나이에 비해 실력이 뛰어나서 화가로 진로를 정하고 좀 더 전문적인 수업을 원했습니다. 제가 좀 더 실력에 맞게 수업 준비를 하는데 학생을 돌봐주시는 할머니가 저한테 전화해서 다급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생님 죄송한데 이제 미술 수업을 못 할 것 같아요. 사실 지금 병원에 있는데 병명이 간질이에요. 아직 의식이 안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가 부부싸움을 하면 서로 가진 거 많고 빠지는 거 없으니 한번 싸우면 둘 다 절대 져주지 않아요. 성질은 얼마나 불같은지 애가 옆에서 엄마 아빠 싸우는 걸 보고 쓰러졌어요. 정신 차리고 일어나면 엄마, 아빠 성격 똑 닮아서…. 자기 마음대로 전부 다 하려고 해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저도 너무 지치네요.”
  체념하는 할머니 목소리에 저는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선각분께서 “항상 마음을 낮춰야 한다, 나를 낮추는 것이 큰 공부다” 늘 강조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머리로는 이 말씀이 맞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깊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낮추는 공부를 한다는 것이 알곡처럼 속이 영글어야 진정 낮출 수 있겠구나…. 업을 푼다는 것이 나의 성격과 부족함을 알고 진심으로 마음을 낮추면 지금 이렇게 수도를 하는 것이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면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도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배우게 되니 제가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도에서도 선각분들께서 저를 가르치기 위해 관심과 보이지 않게 노력을 많이 해주셨다는 것이 새삼 다시 느껴져서 감사한 마음이 아득히 깊은 마음속에서부터 차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이전페이지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