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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박증 환자입니다
금릉1-13 방면 정리 한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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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랜 세월 강박증에 시달려 왔습니다. 강박증은 일반인이 느끼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임에도, 당사자는 끊임없이 황당한 상상을 하면서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증상입니다. 저는 전기선이 합선되거나,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 감옥에 가게 되거나, 큰 액수의 벌금을 내거나, 집에 강도가 들거나, 신분증을 잃어버리거나, 인터넷에 글을 잘못 써 문제가 일어나는 등의 황당한 상상을 계속 했습니다. 이런 불안감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정상적인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기까지는 아무 일도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을 하더라도 거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불안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더라도 동시에 또 다른 불안한 생각이 연이어서 떠오르게 됩니다. 이 고통을 20년 넘게 겪었습니다. 불안감이 느껴질 때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고 숨쉬기도 힘들고 말수도 현저히 줄어듭니다. 주변 사람의 얘기도 잘 들리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너 왜 그래? 무슨 생각해?” 같은 질문을 합니다. 자학도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십 번이나 이 증상이 나타났고, 그중 가장 괴로울 때는 교화하는 시간입니다. 교화 중에 증상이 나타나면 생각은 딴 데 가 있는데 교화는 해야 하고, 제 말과 행동이 따로 놀다 보니 상대방이 이상하게 느껴 대화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강박증에 관해 깊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을까? 이 병에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등 저 자신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연구하던 중 나름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완벽한 안정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작은 불안감도 느끼기 싫고, 모든 면에서 아주 안정된 삶을 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도 잘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가족과 집도 항상 안전하고 다칠 위험이 없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삶을 원했던 것입니다. 또한 제가 가진 것에 집착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의 대부분은 제가 가진 것을 잃게 될까 봐 불안했던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을 잃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있겠지만, 도통을 목적으로 수도하는 제가 이렇게 물질에 대한 집착이 많다는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전경』에 ‘망하려는 세간살이를 아낌없이 버리라’는 구절과, 『대순지침』에 ‘마음이 무욕청정이 되었을 때 도통진경에 이른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 말씀과 비교했을 때 저는 무욕청정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집착을 비우자.’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집착을 비우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불안감과 집착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때 이순신의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는 명언이 떠올랐고 ‘그냥 죽자’라고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래,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자. 집에 불이 나도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감옥에 가도 운명이라 받아들이자.’ 이것이 이번 생에서 제가 겪어야 할 운명이라면 다 받아들이자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서서히 비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설령 제가 도통이 나기 전에 죽는다 하더라도 다 운명으로 받아들이자고 마음먹고부터는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가 강박증이 생긴 이유는 안정에 대한 집착과 제 것을 잃고 싶지 않은 욕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도는 욕심을 버리는 것인데, 저는 오히려 조금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이기적인 욕심이 너무 강해서 강박증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욕심과 집착을 버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강박증이 저의 수도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강박증 때문에 수도를 하게 되었고,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조차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욕심과 집착이 다시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고 비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포덕에 욕심도 많아서 도장에 수호 가는 것을 많이 거부해 왔습니다. 수호를 서면 마음은 편하지만, 포덕할 사람을 만날 시간이 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수호를 선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생각했습니다. 저 자신이 포덕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 창생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인지, 제 앞에 수반을 많이 두고 싶은 욕심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수도는 욕심을 버리는 것인데 저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강박증에 대한 증상으로 성격이 아주 예민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의 상황이나 환경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살짝 스쳤는데 ‘감염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거나, 스스로 계획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조금만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가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것 역시 수도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경』에 “천지 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 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한다”라고 하셨는데 주변 상황에 정신없이 휘청거리는 저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부분도 계속 정신을 차려 나가면서 훈련을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이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임상제지임의(任上帝之任意)를 떠올리면서 모든 것을 상제님께 맡겨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 이유가 있겠지’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그냥 상제님께 다 맡기고 열심히 도의 일을 하면 상제님께서 나머지 신경 쓰이는 일은 다 무위이화로 잘 되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심안신으로 가는 수행의 여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강박증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극복해 내지 못할 겁액은 없다는 선각분의 교화가 떠오르면서 이 강박증은 반드시 제가 이겨낼 수 있고, 강박증을 극복한다면 저의 정신력은 몇십 배 이상 강해질 것 같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순지침』에 겁액을 극복하는데 성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반드시 운수 마당에 가기 전까지 이 겁액을 극복해서 꼭 성공하겠다고 상제님께 다짐했습니다. 아직도 강박증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방법을 모를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지금은 최소한 극복하는 길은 알게 되어서 차근차근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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