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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장려
12시 50분
자양47 방면 교령 이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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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임을 누차 말하였으나 깨닫지 못함은 신도와 인위적(人爲的)인 사도(邪道)를 구별하지 못한 까닭이다.
(『대순지침』 p.39)
수도를 시작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이자, 지금도 가장 어려운 화두가 바로 신도(神道)다. 인간인 우리에게 신명이 늘 함께하시고 우리의 임명이 신명계의 직급이라고 들었다. 수도인 곁에는 보호와 수찰을 담당하는 신명이 항상 계신다. 매 순간 이를 인지하려 애썼는데 일상이라는 굴레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입도 후 상당 기간 신도라는 부분은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았다. 매일 밤 1시 기도를 모시기 위해 심고(心告)를 드리는 12시 50분은 신명계가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저 머리에서만 맴돌다 흩어지던 미완의 시간이었다.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다’를 수없이 되뇌며 스스로 세뇌했다. 하지만 머리와 달리 마음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특별한 만남이 찾아왔다. 신명은 늘 우리와 함께하며, 누구나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음을 일깨워 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이 만남은 막연했던 신명계라는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까지 나의 수도 생활을 지탱해 주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주고 있다.
2002년. 입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조상님의 공력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될 만큼 포덕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정은 운명처럼 한 내수와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 주인공이 바로 최 내수였다. 그녀를 통해 나는 신명계와 척신이란 존재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조상님이라는 존재와 내가 알고 있는 세계 너머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해 여름은 정말 무더웠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여느 때처럼 축시 기도 모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어, 이 시간에 누구지?’ 뭔가 이상한 마음에 전화기를 확인하니 최 내수였다. ‘무슨 일 있나? 분명 아까 집에 잘 들어갔는데.’ 그 당시 최 내수는 입도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난 걱정되는 마음에 집이 멀었던 그녀를 일이 끝나면 집 근처까지 항상 데려다주었다. ‘무슨 일이지?’ 전화를 받았다. “혹시 통화 가능하세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최 내수의 목소리는 잔뜩 경직되어 있었고, 어딘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네, 괜찮아요.” 처음에는 별 내용 없이 그냥 좀 마음이 그렇다, 잠이 안 온다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난 그때 최 내수가 단순히 잠이 안 오고 싱숭생숭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가볍게 통화를 이어 나갔다. “아 그래요? 최 내수도 잠이 안 올 때가 종종 있나 봐요. 그런데 있잖아요.” “크하하핫!” 갑자기 최 내수가 너무나 큰소리로 웃었다. 갑작스러운 웃음에 난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네? 아, 저기…” 이 말만 몇 번 되풀이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말투와 목소리 톤 등 모든 게 바뀌어 있는, 전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었다. “너 말 재밌게 한다. 근데 듣다 보니까 재미없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나 생경했다. 익숙했던 최 내수의 말투는 온데간데없었고 중년 아저씨의 낯설고 투박한 목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아, 저, 저기…” 난생처음 겪는 척신과의 대화에 난 어떠한 대응도 못 한 채 앵무새 같은 말만 계속 되풀이했다. 지금이었다면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했을 것 같지만 그때의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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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그런 존재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장장 다섯 시간 동안 나는 넷이나 되는 다른 존재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처음에는 어떤 중년 아저씨, 다음은 동자, 다음은 어떤 할아버지,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으나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사실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놀란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이야기하느라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대화 중에 가장 압권은 마지막에 등장한 할아버지 신과의 대화였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거기 계세요? 어차피 최 내수 뒤에 많은 조상님이 계시고 그분들이 다 알아서 잘 챙겨주시고 이끌어 주실 텐데요.” 그러자 할아버지 신이 버럭 화를 냈다. “걔네가 잘 못하니까 내가 있는 거지!” 그는 고함을 지르며 자신이 왜 있어야 하는지 한참을 설명했다. 마치 랩을 하듯 쏟아내니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그 순간 상제님 말씀과 선각이 해준 신명계에 관한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비로소 ‘아, 신명계는 진짜구나’라는 마음속 울림과 함께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의구심이 떨어져 나가는 걸 느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그 할아버지 신의 서슬 퍼런 기운을 떠올리면 여전히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렇게 난 이 존재들과 새벽 6시까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사실 이야기가 더 이어질 수 있었지만, 중간에 갑작스럽게 끊겼다. 새벽 6시가 되었을 즈음 최 내수 어머니가 “무슨 일이니!” 하며 문을 박차고 들어오셔서 통화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때 문을 박차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수화기 너머로도 그 파장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난 통화가 끝난 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참을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선각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느라 그날 아예 한숨도 못 잤던 기억이 난다. 잠이 올 리 만무했다. 선각과의 대화는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새벽의, 난데없는 ‘신들의 습격’은 며칠 동안 나의 식욕마저 앗아갔다. 그렇게 날이 밝았고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일정을 이어 나갔다. 아침이 되면 포덕소에선 기도를 모시고 청소하는 시간이 있었다. 난 바깥 청소를 맡아 태을주를 열심히 외우며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내 어깨를 치면서 부르는 것이었다. “이 교무, 빨리 포덕소로 올라가 봐. 어제 그 내수 왔던데.” “네? 최 내수가요?” 난 놀란 마음에 하던 청소를 멈추고 뛰어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선각이 다가와 물었다. “최 내수 왔던데 저쪽 방으로 가봐. 근데 이 교무, 그 내수 머리 염색했어? 머리 색깔이 빨간색이던데, 원래 검은색 아니었어? 내가 잘못 봤나?”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경황이 없어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이윽고 문을 열었고 방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명 어젯밤까지 검은색 긴 생머리였던 최 내수. 하지만 핏빛처럼 진한 빨간색 머리카락의 이 여자는 누구지? 정녕 내가 알고 있는 최 내수란 말인가? 난 두 눈을 의심했다. 최 내수는 선각과 앞뒤로 앉아 있었다. “아, 와… 왔어요?” 놀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먹이던 최 내수는 뒤를 돌아보며 “안녕하세요?”라고 겨우 입을 뗐다. 울먹이고는 있지만 그 너머로 느껴지는 한 맺힌 기운과 살기등등한 눈빛은 어리둥절해 있던 나를 더욱 얼어붙게 했다. 전날 일을 기억하고 있던 최 내수는 아침에 회사에 가지 않고 바로 포덕소로 온 것이었다. 울고 있는 그녀를 겨우겨우 달래고 진정시키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었을 때, 방면 임원께서 최 내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마침 우리 포덕소 건물 1층에 미용실이 있었다. 최 내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얼마나 자르면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최대한 짧은 머리로 자르기로 하고 미용실로 향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채 2분도 걸리지 않아 짧게 잘려 나갔다. 신기하게도, 머리를 자른 최 내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걱정되었지만, 마치 아이처럼 먹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이후 최 내수는 본격적으로 수도를 시작했다. 기운에 예민해서 그런지 치성이나 참배 그 밖의 큰 기운을 모시는 자리에 가면 식은땀을 흘리면서 너무나 힘들어했다. 참배 때도 옆에서 부축해야 할 정도였고, 치성 때는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신기한 건 치성을 모시고 나서나 참배가 끝나고 방면에 와서는 제일 쌩쌩하고 밝았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장난치는 거 같은 기분도 들고 이상하기도 해서 살짝 약이 오르기도 했다. 다행히 최 내수는 수도를 할수록 점점 괜찮아졌다. 자신의 예민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남들보다 정말 열심이었다. 몸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악착같이 기도를 모셨고, 음덕을 쌓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일 앞장서서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러한 기운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 어느새 최 내수는 치성도 혼자 잘 모시게 되었고 참배하러 가서도 다른 동료나 후각을 챙길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최 내수는 상제님의 덕화와 해원상생이란 큰 진리 안에서 어느새 늠름한 수도인이 되었다. 최 내수와의 여러 가지 일은 도에 대한 나의 추상적인 생각들과 의문들을 보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 준 큰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겁액이 두꺼워 머리로만 짐작할 뿐 마음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이제는 가슴으로 깨닫고 이치로 수도하라고 이런 인연을 보내 주신 게 아닐지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수도가 힘들거나 의문이 들 때면 그때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앞으로 수도의 과정에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때론 당황하고 때론 좌절하겠지만 그때마다 강렬했던 그 여름밤을 되새기려 한다. 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과 의문이 아닌, 필요와 확신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은 신명의 일이고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다’라는 도전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새긴다. 머릿속을 맴돌다 허무하게 흩어지던 신명계가 비로소 내 마음이라는 토양에 굳건히 뿌리 내리고 있다. 이 벅찬 마음을 안고 12시 50분, 심고(心告)와 함께 기도를 모시려 한다. 상제님과의 삼생(三生)의 인연과 수많은 조상님 공덕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운수 마당에서 더 나아진 나와 마주하기를 고대하며 이제 태을주(太乙呪)를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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