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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장려
띠앗, 상제님의 사랑을 닮다
신암9 방면 교정 박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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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정호 붕어섬 (2018년 10월 28일 아침)
우리들의 학술답사는 도장에서 진행한 ‘답사지 사전 강의’, 그리고 이후에 성적지 현지답사가 하나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진리의 이해와 현장 체험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강의 속에서 얻은 교리에 대한 이해는 현장에서의 실제 답사와 진리 토론을 통해 한층 더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진행한 ‘상생 활동’ 프로그램은 대순진리 실천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해주었다. 특히 이번 학술답사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상제님의 진리와 상생 활동의 ‘띠앗 활동’이 서로 닮아있다는 부분이다.
답사지 사전 강의에서 배운, 남을 잘 되게 하는 길
“우왓~!” 소복이 쌓여 있던 쪽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 조심스레 펼쳤다. 그 안에는 ‘김00’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번 활동 동안 내가 은밀하게 보살펴야 할 띠앗이었다. 평소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인연을 맺었던 선사여서,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이 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삶 속에서 늘 내 역할에만 집중했던 터라, 갑작스레 주어진 ‘상대에게 집중하라’는 새로운 임무는 나를 잠시 당황스럽게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띠앗’은 형제나 자매 사이의 우정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 의미는 겨레와 일가, 나아가 서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까지 거두어 품는다. 본 활동을 시작하기 전, 진행자도 누차 강조했다. 띠앗 활동은 지속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상대를 세심히 관찰하며, 필요할 때는 눈치채지 못하게 기꺼이 내 여력을 더해주는 과정이라고. 일종의 ‘마니또 게임’과 비슷하지만, 그 깊이는 달랐다. 나의 띠앗에게 한 걸음 다가가 그분의 시간을 살피고 표정에 담긴 뜻을 읽어내며 부담되지 않게 조용한 배려로 작은 도움을 건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활동의 핵심이었다. 적확한 표현은 돕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따뜻함을 심는 일이었다. 그 따스한 손길이야말로 조용하지만, 깊은 정(情)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들었던 생각. ‘그러면 누가 나의 띠앗이 되었을까?’ 나 역시 기다려지는 마음이 있었다. 누구든 나를 생각하며 마음을 내어줄 거라는 기대가 은근히 자라고 있었다. 드디어 점심시간, 바로 띠앗 활동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다. ‘나의 띠앗은 어디 계시지?’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나의 시선 끝에서 드디어 찾았다. 복잡한 식당 한쪽에 같이 온 조원들끼리 앉아 식사하고 계셨다. ‘음, 냅킨이 없네! 챙겨 드려야겠다.’ 냅킨을 여러 장 챙겨서 식판을 들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밝은 미소는 기본, 친절한 목소리는 ‘솔’ 음정으로 톡톡 튀어야 했다. 그리고 냅킨을 쓰윽~. 함께 한 모든 이에게도 건넸다. “어머, 감사해요.” 짧은 대화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함께 나누는 식사 시간은 더욱 따뜻해졌다. 순간 작은 관심과 대화가 서로의 시간을 얼마든지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채지 못하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행동의 포인트. 그러면서도 모두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마음속의 따뜻함이 자연스레 밖으로 스며 나와야 한다.’ 신기하게도 나 자신에게 약속한 그 행동을 계속하다 보니, 내 마음부터 더 유연해지고 긍정적으로 되어갔다. 하루 활동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왔다. 이 기회가 또 띠앗 활동 절호의 타이밍. 씻고 편한 옷차림으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은근히 띠앗에게 마음이 향했다.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잠시 머리를 굴리다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유산균 드셨나요?” “아뇨.” 바로 이때다 싶었다. “그럼 드셔 보실래요?” 뜻밖의 제안에 반기는 기색이 보여 부담스럽지 않도록 숙소 방에 계시는 열 분께 미리 챙겨 온 유산균을 하나씩 건넸다. 마치 작은 임무를 무사히 마친 듯한 뿌듯함이 마음에 번져왔다. 드러나지 않는 마음 씀이 소중한 것은 물론이지만, 눈에 보이는 배려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띠앗으로 뽑으신 분은 누구일까?’ 이번 활동 내내 나에게 띠앗 활동을 실천해 주신 분이 누군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때, 나의 이부자리 맞은편에서 《대순회보》를 읽고 있던 선사가 눈에 띄었다. “선사예, 이번 달 회보 좀 봐도 될까요? 저는 챙겨 오질 못했습니다.” “네, 가지고 가서 보세요.” 옆에 있는 회보를 건네주었다. “어머, 진짜요? 그래도 될까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며 선뜻 응하는 선사가 너무 다정하여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뭔가 든든하게 지지받는 느낌에 이 작은 행동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다음 날, 띠앗 활동 발표 시간이 찾아왔다. 진행자의 재치 있는 진행 속에 각자의 띠앗을 밝혀가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의 띠앗은 처음부터 눈치를 채셨는지 단번에 나를 지목하였다. 반면, 나는 내 띠앗이 누구인지를 여전히 몰랐다. 발표가 무르익을수록 조바심이 일었다. “누가 박교정의 띠앗인가요?” “접니다.” 그제야 나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선사는 박교정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 주셨나요?” “전혀 해준 게 없습니다. 마음만 주었습니다.” “아~ 오로지 박교정을 위해서 심고를 드리고 마음만 주셨군요.” 순간 장내는 폭소로 가득 찼다. 대수롭지 않게 던진 그 말이 오히려 유쾌한 감동이 되어 즐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어젯밤 회보를 건네며 보여준 따스한 미소, 그 순간이 바로 띠앗 활동의 은은한 울림이었다는 것을. 편안함으로 감추어진 배려는 절대 작지 않았다. 그 온기가 이렇게나 사람의 가슴을 열게 할 줄이야. 이 모두가 상생 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허락된 배려의 장이었음을 생각하니, 다시금 이 대장정이 큰 감사로 다가왔다. 도인 상호 간에 ‘사랑’이라는 무형의 결속력을 지니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한 번 띠앗은 영원한 띠앗’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 1박 2일의 답사지 사전 강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지방의 사업장, 회관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이선사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오, 나의 띠앗~!”이라며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두 팔 벌리며 큰 몸짓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따뜻한 손길로 대추 한 알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단숨에 전해진 온기에 순간 내 마음의 온도도 따뜻해졌다. 그저 대추 한 알이었지만, 그 안에는 이틀 동안 묵묵히 전해졌을 선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진심이 닿는 순간이었다. ‘아, 이게 바로 띠앗이구나.’ 그제야 실감이 났다. 작은 나눔이 큰 감동이 되는 순간, 우리의 띠앗 활동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서로의 가슴에 상생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성적지에서 깨달은 상제님의 사랑
2025년 11월 18일, 우리는 상제님의 용지불갈 공사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옛 전북 칠읍 고을, 그 중심부로 향했다. 직접 마주한 옥정호의 늦가을 정경은 더욱 특별했다. 숙소 앞에 길게 펼쳐 보이는 짙푸른 옥정호에 스산한 가을바람이 파문을 일으키고, 여름의 싱그러웠던 초록 잎이 갈잎이나 예쁜 단풍색으로 단장한 풍경의 변화는 시간의 변화이자 신명의 끊임없고 조밀한 수고로움의 결과임을 이젠 알았고, 그래서 바라보는 시간마저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지던 옥정호의 모습은 한 편의 시보다 깊은 기도로 밀려왔다. ‘저에게 주어진 감사의 이 시간을 잊지 말고 보답할 줄 알며 최선으로 임할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살펴 주시옵소서.’ 1965년 섬진강댐이 완공되면서 옥정호가 태어났다. 한때 사람들이 오가며 밥 짓는 연기와 아이들의 웃음이 머물던 자리는 이제 맑은 물결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넓은 호수로 변했다. 오래된 집터와 골목길, 그리고 손길이 머물렀던 논밭은 물속 깊이 잠들었지만, 그 위를 흐르는 고운 물빛은 옛 주민들의 삶과 정성을 품은 채 계절마다 다른 빛을 띠고 있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풍요의 시작이 되어, 운암면 잿말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희생과 시간이 고요한 물결 속에서 상생의 숨결로 되살아나고 있다. 희생은 수많은 사람을 살리며 값진 포문을 연 것이다. 그 시절, 물 수위를 결정하는 푯말이 박히면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1만 5천여 명의 사람들. 부안의 계화간척지, 시화의 새로운 들녘 또는 전주 시내의 한켠으로 터전을 옮기며 정들었던 품을 떠나야만 했던, 강제 이주의 낯섦이 왜 없었을까. 그 속속들이 이야기는 작가 김여화의 소설 『운암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댐이 완공된 곳 어디에나 으레 망향탑이 세워져 있다. 임실군 운암면 요산공원 주변을 예쁘게 단장하여 당시의 힘듦과 아쉬움 그리고 그리움을 희석하고 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선 고통이 따르는 법.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운명적인 이들이 있었기에 옥정호는 지금도 큰 충만으로 출렁이고 있다. 나는 이 풍경을 바라보며 감사를 담아 숨겨진 서사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세상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더 깊은 이유를 전하려고 말이다. 이 호수의 사연은 공사 1장 28절, 상제님의 용지불갈ㆍ대한불갈 공사와 깊이 맞닿아 있다. 때는 1907년 12월 23일, 혹독한 겨울, 전북 고부 운산리 신경수 종도의 집.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에게 물으셨다. “일곱 고을의 곡식이면 양식이 넉넉하겠느냐?” “쓰기에 달렸나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곡간이 찼다 비었다 하면 안 될 것이니, 용지불갈하여야 하리라.”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는 종도들에게 상제님께서는 직접 저수지와 물도랑의 도면을 백지에 그리시고, 그 종이를 불사르셨다. “운암강 물은 김제 만경 들판으로 돌려도 하류에서는 원망이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는 대한불갈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상제님의 이 공사가 훗날 인간계의 역사 속에서 옥정호-도수터널-칠보발전소-낙양취입수문-정읍ㆍ김제 간선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물길로 실현되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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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보수력발전소 (2018년 10월 28일)
옥정호의 평균 수심은 약 30~60m로 지형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해발고도는 150m로 높은 지형이다. 그리고 섬진강댐(옥정호)의 취수 설비, 칠보취수구는 가뭄과 홍수 등 다양한 수위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수심별 취수구를 갖춘 다단(多段) 취수 구조다. 시기별로 가장 적합한 수위의 물을 끌어 올려 안정적인 유량을 확보하는 장치다. 수위가 낮을 때는 하부 취수구에서, 만수에 가까울 때는 상부 취수구에서 취수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방류되는 수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확보된 물은 댐체와 연결되는 가장 효율적인 도수터널, 산을 약 6.2km 관통하여 150m의 낙차로 칠보수력발전소의 수차를 돌린 뒤, 동진강으로 흘러 정읍ㆍ김제 일대에 공급되어 광활한 호남평야를 적시는 농업용수가 된다. 이는 임실군 운암면의 옥정호 물을 정읍시 칠보면 쪽으로 넘기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유역변경식 수리 사업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런 물길 전환의 기반은 이미 일제강점기에 마련되었다. 1925년에 운암제 공사가 시작되어 1927년 1차 물길 전환이 이루어졌고, 확보된 수량을 활용하기 위해 1931년 운암발전소도 건설, 운행되었다. 그러나 1938년부터 약 1년간 계속된 대가뭄 이후 더 큰 수량 확보가 요구되면서, 1940~1945년 사이 현재의 섬진강댐(수몰된 옥정호 속 운암댐 포함)이 추가로 축조되었다. 광복 이후 기술 보강과 국가적 개발계획이 이어지며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섬진강댐ㆍ칠보수력발전소(구 섬진강수력발전소) 체계가 1965년에 최종 완성되었다. 이 구조적 특성 때문에 현재 옥정호의 수질 관리는 임실군에서, 칠보발전소의 운영 관리는 정읍시에서 담당하는 이중 관리 체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설의 기저에는 한편으로는 일제의 식민 야욕이, 또 한편으로는 전북 칠읍의 흉년을 없애려는 상제님의 공사가 서로 맞물려 있다. 상제님께서는 대한불갈 공사를 위해, 당시 일본이 가진 기술력과 더불어 예시 74절에 있는 삼한당의 원이 풀리도록 하신 것은 아닐까? 아마도 물리적인 기술의 도입보다는 선천의 원한을 풀고 후천의 새 질서를 여는 공사의 한 과정으로서 이러한 조건들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 또한 조선이 처해 있던 국제적 상황 속에서 민족이 안전하게 존속하고 앞으로의 길을 열기 위한 섭리, 곧 상제님께서 정해 놓으신 이치와 계획에 따라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신 깊은 안배가 있었음(공사 2장 4절 참조)을 알 수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일본에 일시 천하 통일지기와 일월 대명지기를 붙여 역사케 하시되, 인(仁)의 기운은 붙여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는 일본이 역사적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그 본질적 주도권은 조선에 있음을 밝히신 것이며, 조선은 장차 상등국으로 나아갈 바탕을 마련하게 됨을 의미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상제님의 지상천국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로 한반도가 중추적 역할을 함에 있어서 거침없이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만 했던 운명, 그리고 상등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던 용지불갈 공사는 결국 이 옥정호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조건, 역사적ㆍ섭리적 조건들이 맞물리며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20세기 초, 일본은 식량 수탈을 위한 ‘산미증식’ 정책 아래 전국적으로 대규모 수리시설을 구축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으로 그들은 떠나야만 했다. “일본은 일만 하고 떠나리라” 하신 상제님 말씀이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상제님의 대한불갈과 용지불갈 공사의 현실적 발판이 되었다. 눈으로 보이는 역사적 현실 이면에는 천지 대권을 주재하시는 천지 주인의 공사가 정교하게 교차하고 있음을 이번 답사를 통해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과 흐름은 인간사의 굴곡으로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상제님의 세밀하면서도 거대한 설계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며 깊은 경외심이 일었다. 중추적 역할을 맡은 한반도의 인간사만 놓고 보면, 억울하고 힘겨운 시련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서로 얽힌 해원의 수레바퀴가 쉼 없이 굴러가고 있던 것이다. 그 흐름 속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극복의 과정에서 마치 하나의 밀알이 충실한 곡식으로 여물기까지는 반드시 음양의 기운이 함께해야 하듯, 역사 또한 그러하다는 사실을. 차가운 밤 기온은 생명을 단단하게 하고, 뜨거운 낮 햇볕은 성장을 재촉해 곡식 속 깊이 채우는 자연의 진리. 고통과 감사가 함께 작동하며 때를 기다린다는 진리 앞에서 이 모든 과정은 우리나라를 위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길이었다. 가뭄과 흉년이라는 자연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수몰된 옛 운암제, 옥정호의 수량을 조절하는 정밀한 설계, 산을 관통한 도수로, 그리고 너른 김제평야로 흘러가는 맑은 물길, 이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향하고 있었다.
“칠읍의 흉년을 살피신 상제님의 깊은 사랑!”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화평을 지키기 위한 공사!”
정리하면 1907년 상제님께서 백지 위에 그리신 선들은 ‘우리나라의 곳간을 채움’으로 시작해 나아가 인류의 곳간을 채우기 위한 상제님의 대형 프로젝트인 것같다. 이 용지불갈 공사가 상징하는 ‘풍요로운 곳간’은 먹거리만이 아니라 음식에서부터 현대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수많은 산물에 이르기까지 그 공사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상징성이 있으리라. 이번 학술답사를 마치면서 나는 상제님의 공사를 이전보다 더 깊고 구체적이며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상천국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 그 아래, 인류를 살리고 세상을 화평하게 하시려는, 자비를 넘어선 치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한 시대와 한 민족에 머무르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원한과 고통에서 벗어나 풍요롭고 조화로운 삶을 누리도록 먼 앞날까지 내다보시며 공사를 펼치셨다. 또한 그 과정은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천지 질서 속에서 정밀하게 짜인 도수임을 깨닫게 될 때 인간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원망이 아니라 수용으로 바뀐다는 것도 실감했다. 그것이 인존시대의 도수, ‘상생의 도’였다. 억울함과 고통이 해원의 시대에 마침내 풀리도록, 마지막 문제까지 남김없이 해결되도록 하신 상제님의 세밀하심은 생각할수록 감탄을 자아냈다. 고난은 결국 상생의 결실로 되돌아오기 위한 과정임을 믿게 되었다.
상제님의 사랑을 닮은 띠앗 활동, 그 안에서 찾은 포덕의 의미
기도와 사색이 만난 아침, 답사 활동을 마친 나는 자연스레 띠앗 활동을 떠올렸다. ‘남이 나의 덕을 모름을 괘의치 말 것’이라는 수칙 구절이 기도 중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답사지 사전 강의에서 발표자에게 던졌던 질문, “상제님의 용지불갈 공사가 실현되었을 때 우리들의 포덕 자세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의 해답 또한 이 순간 분명해졌다. 포덕이란 지금 내 곁의 인연에게 조용히 따뜻함을 건네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상제님의 진리를 씨앗처럼 한 사람의 마음에 심고, 상대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부담되지 않게 도움을 채우며 성실히 다가가는 일, 바로 그것이 띠앗 활동의 본질이며 포덕 활동이다. 결국 나와 가까이 인연을 맺은 사람들, 가족, 친구, 선ㆍ후각, 모두 소중한 나의 띠앗임을 또 알게 되었다. 평소 그러하리라는 앎은 있었지만, 오늘처럼 명료하게 가슴에서 올라오는 답은 없었다. 정성스러운 나의 띠앗 활동이 일상에서 체득될 때 신명의 도우심으로 나의 인연이 진리의 길로 들어오게 되리라는 믿음이 나의 내면에서 깊은 울림으로 일어났다. 상생 활동 내내 그렇게 강조했던 진행자의 말이 이제야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기도 속에서 떠오른 여러 깨달음, 우리의 수도가 신명의 인도 아래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이 이날처럼 생생하게 다가온 적은 또 없었다. ‘신명과 연결된 나~!’ 이 든든함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고 보면 오늘의 깨달음 또한 우연이 아니었다. 상제님의 공사가 물길을 열어 그 시대를 살렸듯, 내가 느꼈던 사랑과 감사 그리고 상생의 따뜻한 마음은 이미 신명(神明)의 큰 계획 속에서 길러지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므로 띠앗 활동은 교무부의 섬세한 안배 속에서 신명의 뜻으로 이어진 하나의 거룩한 여정이었다고 해도 될까. 이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상제님의 길로 이끄는 신도의 실현으로 보아도 될 거라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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