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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0년(2010)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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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 : 베이징 국제학술회의에 다녀와서…

베이징 국제학술회의에 다녀와서…

 

 

연구위원 한수진

 

  2010년 11월 7일. 우리 일행(교무부장 외 연구위원 18명, 대순종학과 교수 2명)은 베이징대학에서 열릴 동아시아 도문화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하기 위하여 베이징[北京]으로 출발했다. 하늘을 가로질러 언제까지고 날아갈 것만 같던 비행기가 고작 두어 시간 만에 다시 땅으로 내려앉았다.

  각자의 짐을 찾아서 버스에 승차하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며 창밖을 구경했다. 베이징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맑은 하늘 아래로 용의 형상으로 지어진 베이징공항이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조금 더 가다보니 한국의 주상복합 고층아파트보다 훨씬 더 큰 초대형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건물들이 모두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내저어졌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달린 끝에 우리가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배정 받은 방에 들어와서 대충 짐을 풀고, 내일 아침부터 시작될 대회 일정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그러다보니 또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잠드는데 애를 먹었다.

 

 

  다음날인 11월 8일. 이른 아침의 쌀쌀한 공기를 느끼며 십여 분 정도 걸어가자 이틀 동안 행사가 치러질 베이징대학 백주년기념강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2호 회의실에 도착해보니 입구 정면 벽에 ‘동아시아 도문화 국제학술회의[東亞道文化國際學術硏討會]’라고 쓰인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회의실 중간에는 토론자들의 명패가 놓인 책상이 사각형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토론석 좌우로 참관자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한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이었는데 통역을 하는 학생이나 참관하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최소 2개 국어에 능통했다. 그래서 회의실에 3개 국어가 난무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9시가 되자 김훈 교수(베이징대학 종교문화연구원 부원장)가 개막식을 선언하였는데, 삼국이 모여 도문화(道文化)에 관해 토론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런 뜻 깊은 자리에 참관하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기대되었다. 김훈 교수의 짧은 설명이 끝난 후에 중국의 로우위리에 교수(베이징대학 종교문화연구원 명예원장)와 한국의 류성민 교수(한국종교학회 회장), 일본의 오가와하라 마사미치 교수(게이오대학)의 축사가 진행되었다. 개막식이 끝나고 학술대회 참가자 전원이 베이징대학 백주년기념강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잠시 여유를 가졌다.

  오전 10시. 본격적인 학술대회가 시작되었다. 세 개의 주제 강연이 발표되었는데, 각각 발표시간은 통역을 포함하여 30분 동안 진행되었다. 가령 중국의 발표자가 몇 줄을 읽으면 통역자가 한국어로 그 내용을 다시 읽어주는 식이었다. 일본의 발표자는 세 명이었기 때문에 굳이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또 다른 통역자가 직접 발표자들의 뒤나 옆에 앉아서 동시통역을 해주었다. 나는 아무래도 일본어를 공부하다 보니 통역자들에게도 종종 시선이 갔다. 통역은 모두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진행하였다. 미리 토론자와 의논을 하여 발표내용을 숙지한다거나 발표자들이 말을 하는 동안 재빨리 주요내용을 적어두는 등, 바짝 긴장한 그들의 모습에 내가 더 긴장되기도 했다.

  나의 시선이 발표자, 통역자, 논문집을 오가는 동안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재빨리 회의장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 동안 발표될 것이 주제 강연 3편, 논문 7편이기 때문에 느긋하게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학술대회는 논문을 세 편 발표하고 나면 10분 정도 휴식하고 나서 다시 세 편을 발표하는 식으로 꽤나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오후 5시 쯤, 이경원ㆍ고남식 교수(대진대 대순종학과)가 ‘대순진리회 『전경』에 관한 고찰-각 편별 개요와 종통을 중심으로-’를 발표하였다. 아무래도 외국 학자들은 우리의 교리 자체가 낯설기 때문에 그들에게 『전경』의 개요와 맥락을 짚어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 발표를 끝으로 오늘 예정된 일정이 모두 끝났다. 하루 종일 논문집을 내려다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더니 목 뒤와 어깨가 뻣뻣하였다. 짐을 챙겨들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일행들과 함께 Lake View Hotel로 향했다. 그곳에서 ‘『전경』 중문판(中文版) 출판기념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어둠이 내린 베이징대학 캠퍼스를 가로질러 한참을 걷고 나서야 출판기념회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착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행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안내가 들렸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출판기념회는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었다. 중문판 출판의 시작부터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소개되었고, 윤은도 원장(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을 비롯한 각국의 교수와 인사들이 『전경』 중문판 출판을 축하하며 앞으로 중국학자들이 대순진리회의 교리를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축사를 했다. 준비된 식순이 끝난 후에 모두들 만찬회를 즐기는 것으로 행사가 마무리 되었다. 숙소에 돌아오자 피곤이 몰려왔다. 낮에 표시해뒀던 사항들을 대충 정리해놓고 잠이 들었다.

  11월 9일. 오늘도 일명 ‘마라톤 발표’가 진행될 예정이라서 나는 미리 스트레칭을 좀 하고 착석했다. 오전 8시 30분이 되자 어제와 같은 형태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오늘 우리 측에서는 두 명이 발표했다. 차선근 선감(대순종교문화연구소)이 ‘대순진리회의 지상신선 사상의 특징-전통 신선사상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를 발표하였다.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과 대순진리회에서 말하는 ‘신선’의 차이점에 대한 분석이 주된 내용이었다. 특히 그 차이로 인해 신선에 내포 되어 있는 음양관(陰陽觀) 또한 다르다는 점 때문에 외부 학자들은 우리의 신인조화 사상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

  마지막 발표는 박마리아 선감(대순종교문화연구소)의 ‘대순진리회와 도교의 신앙체계에 관한 비교’였다. 수행관(修行觀), 신앙관(信仰觀), 의례관(儀禮觀), 종교정신이 외형적 형식으로 표현되는 심미관(審美觀)을 통하여 대순진리회와 중국 도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한 내용이었다. 박마리아 선감의 발표가 끝난 후, 11시부터는 종합토론 시간을 가졌는데 음양론, 신도, 신인합일 등 삼국의 도문화에 공통적으로 있으면서도 그 정의는 다른 키워드들에 대한 문답이 오갔다. 한 시간여 만에 토론이 끝나고 총평시간이 이어졌는데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번에 삼국이 도문화에 관해 교류할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서로에 관한 연구를 더 많이 해보자는 것이었다. 총평을 끝으로 발표와 관련된 일정이 모두 종결되었지만, 공식행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베이징대학 안에 있는 샤오위엔 7호 건물 1층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종교문화답사를 위해 버스에 탑승했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가 ‘도문화’이다보니 방문예정지가 중국 도교의 핵심지인 동악묘와 백운관(白雲觀: 베이징[北京] 시즈문[西直門] 밖), 명ㆍ청대의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단공원(天壇公園: 베이징[北京] 외성(外城)의 남동쪽)이었다. 중국의 도교는 원(元)나라 때부터 크게 둘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중국 남부지역에 널리 퍼졌던 정일교(正一敎)와 북방지역에 번성했던 전진교(全眞敎)가 그것인데, 규모가 축소되어서인지 둘 다 지금은 ‘교(敎)’가 아닌 ‘파(派)’로 불리고 있었다. 정일파는 다양한 형태의 민간신앙을 두루 수용하여 기복이나 재액 등의 요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전진파는 민간신앙적인 부분을 배격하고 자기수양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 덕목과 실천적 요소를 강조하여 인간의 생활윤리를 설파하고 있다. 정일파가 우리나라의 무속(巫俗)과 같은 요소가 많다면 전진파는 불교 같은 요소가 많았다. 같은 도교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전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방문예정지 중에서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동악묘였다. 동악묘는 북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교사원이자 베이징민속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바로 맞이하게 되는 건물은 주신(主神)인 동악대제가 모셔져 있는 대악전이다. 그 주위에는 마치 울타리처럼 사당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는 복과 죄를 관장하는 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위엔즈홍 도장(道長)은 우리 일행을 위해 일부러 대악전에서 종교의식을 진행하여 그 모습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대악전과 통로로 연결된 육덕전, 각종 묘비들, 옥황전, 진무전 등의 건물을 지나가면서 이런저런 설명과 문답이 이어졌다. 좀 더 오래 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다음 장소인 백운관으로 출발했다.

  아쉽게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개방시간이 끝난 터라 모든 문이 닫혀 있어서 건물 안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백운관의 도장은 친절히 우리 일행에게 각 건물의 유래나 모셔진 신위에 대해 세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백운관은 전진교의 총본산으로, 공산정권 수립 전까지 도교 국제협회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탄압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흥미 있었던 건물은 삼관전(三官殿)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삼관신앙은 도교 초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신앙인데 자신의 죄를 소멸하고자 할 때 3장의 종이에 그 죄를 적은 다음, 한 장은 산에서 태우고[天], 한 장은 땅에 묻고[地], 한 장은 물에 녹이면[水] 된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그 기원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해서 귀국하면 조사해 보리라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백운관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건물은 마지막에 봤던 뇌조전(雷祖殿)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이곳 역시 건물의 문이 닫혀 있어서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안내문 하단에 쓰인 ‘뇌조성탄: 농력(農歷, 음력) 6월 24일’이라는 글귀가 눈길을 잡았다. 상제님의 화천일이 뇌조의 탄생일이라고 쓰인 부분이라든가 신위의 격에 관한 견해 차이 등등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시간 관계상 더 자세히 듣지 못하고 백운관을 나서야 했다. 천단공원도 입장가능 시간이 지나 버려서 방문하지 못하게 되어 많은 아쉬움을 안은 채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 참관을 돌아보면 색다른 경험과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라는 것은 늘 그렇듯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크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반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처 준비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동반한다. 한국, 중국, 일본이 갖고 있는 ‘도(道)’라는 공통점을 주제로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 전자에 속한다면, 자료 구비와 학회 일정 등이 후자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저것 따지기 이전에 전자에 더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외국 학자들이 우리의 교리를 연구하기 위해 발걸음을 떼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아니겠는가? 또한 나 스스로도 ‘이런 준비가 필요하겠구나.’라든가 ‘이것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은 어디서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알게 되는 것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에 나온 것이리라. 상제님의 덕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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