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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지명 답사기 : 적천사(磧川寺) 도솔암(兜率庵)을 다녀와서
적천사(磧川寺) 도솔암(兜率庵)을 다녀와서
 
 
연구원 이정만
계해년 九월에 이를 마치시고 도주께서는 十월부터 다음 해 二월 중순까지 청도의 적천사(磧川寺) 도솔암에 있는 칠성각 뒤에 돌단을 높이 쌓고 二十四방위를 정하고 천지신명을 응기케 하고 공부시간은 저녁 일곱 시부터 다음날 아침 여섯 시로 정하여 일분일초도 어김없이 넉 달 동안 계속하셨는데 낮에는 공부 행하실 때 쓰실 글을 많이 쓰셨도다. 이때에 공부는 단 도수라 하셨으며 시종한 사람은 배 문걸ㆍ이 우형ㆍ박 민곤이니라. (교운 2장 28절)
 
  이번 답사지는 도주님께서 단 도수를 보셨던 적천사 도솔암이다. 단 도수는 1923년 10월(음)에서 1924년 2월(음)01 중순까지 넉 달 동안 저녁 일곱 시부터 다음 날 아침 여섯 시까지 일분일초도 어김없이 이루어졌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치 못할 공부였기에 위 『전경』 구절을 접할 때면 도주님에 대한 경외로운 마음이 절로 든다. 이러한 경이로운 행적이 있었던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우리는 화악산(華岳山) 적천사 도솔암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 적천사 도솔암 일대(출처:다음 지도)

 
  적천사가 있는 곳은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리 981번지다. 청도 나들목을 지나 남쪽 밀양 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다 보면 원리마을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에서 우측 길로 빠져 적천사까지 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기는 하지만, 길이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언덕이 잇따라 나타난다. 원리마을부터는 도로 폭이 좁아 대형차는 올라갈 수 없는 길이다. 차도가 생기기 전에 이 길은 걸어 올라가야 할 산길이었을 것이다. 마을 입구에서 차로 15분쯤 가면 적천사에 도착한다.
  적천사는 664(신라 문무왕 4)년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을 세운 것에서 시작된 사찰이다. 그러다가 828(흥덕왕 3)년에 흥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하였다. 고려 시대에 와서 1175(명종 5)년 보조국사 지눌이 크게 중창하여 영산전을 세우고 오백나한상을 모시는 한편 오백 명의 수행승을 상주하게 하면서 고승대덕(高僧大德)을 배출하였다. 당시의 산내 암자로는 도솔암(兜率庵)·은적암(隱蹟庵)·백련암(白蓮庵)·옥련암(玉蓮庵)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1664(현종 5)년에 임진왜란 당시 병화로 소실된 사우(祠宇)를 왕의 사액(賜額)02으로 중수하고, 1690(숙종 16)년에는 사천왕상을 조성하였으며, 1694(숙종 20)년에는 태허선사(泰虛禪師)가 중수하여 크게 번창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의병들의 규합 장소로 이용되었고 누각, 요사채 등은 병화로 소실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도주님께서 도수를 보셨던 도솔암이 있다.03 
 
▲ 적천사 은행나무(촬영: 2018. 9. 20)
 
 
▲ 도솔암 표지석(촬영: 2018. 9. 20)
 

  적천사 일주문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402호로 지정된 거대한 은행나무가 절 입구를 지키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보조국사 지눌이 1175년에 적천사를 중건한 후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서 된 나무라고 한다.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 전설을 가진 나무들이 꽤 많이 있다. 나무의 나이는 800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높이는 25~28m이고 둘레는 11m가량이다. 이 은행나무에는 도전님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일화도 있다. 다녀가신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도전님께서 어느 날 몇몇 임원과 이 절에 도착하시니 오던 비가 그치고, 주지가 자신의 이불을 가져다 드렸다고 한다. 또한, 이 은행나무는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운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데, 이날 새벽에는 은행나무에서 목탁소리가 났다고 한다.04

    
  적천사를 돌아보고 우리 일행은 도주님께서 공부하셨던 도솔암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 도솔암까지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출발하여 10분쯤 지나면 도솔암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누군가의 손으로 직접 쓴 글씨가 정겹다. 여기부터는 외길이다. 젊은 사람도 도중에 한두 번은 쉬어가야 할 만큼 좁고 비탈진 산길의 연속이다. 적천사에서 출발하여 30분 정도 지나면 도솔암에 도착한다.
 
 
▲ 삼성각(촬영: 2013. 7. 26)
 
 
▲ 삼성각 뒤편 지형(촬영: 2018. 9. 20)
 
 
  도솔암 주위를 돌아보니 법당인 도솔암과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도주님께서 공부하시던 당시에 있었던 칠성각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삼성각을 짓고 난 후에 칠성각이 없어진 듯하다. 왜냐하면, 삼성각은 산신각의 산신, 독성각의 나반존자, 칠성각의 칠성신을 모두 모신 전각이므로 삼성각을 짓고 난 후에는 칠성신만을 모신 칠성각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여러 사찰을 다녀보면 삼성각이 있는 곳은 산신각·독성각·칠성각이 없고 삼성각이 없는 절에는 산신각·독성각·칠성각을 모두 따로 두거나 그중 일부를 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주님께서 공부하실 때에 있던 칠성각 자리는 어디였을까? 칠성각 대신 건립된 삼성각 자리일까? 우리 일행은 먼저 삼성각이 있는 곳으로 가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전경』 내용 가운데 “… 도솔암에 있는 칠성각 뒤에 돌단을 높이 쌓고 …”라는 구절의 내용에 근거하여 생각해 보면 지금의 삼성각 자리는 아닌 것 같다. 칠성각 뒤에 돌단을 높이 쌓으려면 그곳에 단을 쌓을만한 완만한 지형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삼성각 뒤편 지형을 보면 경사가 거의 30도가 넘는 급경사 지역이다. 이러한 곳은 돌단을 쌓기 힘든 곳이므로 지금의 삼성각 자리에 칠성각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에서 칠성각이 있었을 만한 다른 장소를 찾아보았다. 도솔암 본당 뒤편 삼성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편 지역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그곳은 칠성각과 같은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기에 적당한 평평한 땅이 있고, 그 위쪽으로도 완만한 경사의 땅이 어느 정도 있어서 돌단을 쌓을 만한 공간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 법당 뒤편 칠성각과 돌단 추정지 지형(촬영: 2018. 9. 20)
 
 
  칠성각 뒤편에서 도주님께서는 돌단을 쌓은 뒤 24방위를 정하고 천지신명을 응기케 하여 단 도수를 보셨다. 이렇게 행해진 단 도수는 어떤 의미를 지닌 공부였을까? 『전경』에 기록된 것만으로는 그 내용이 너무 소략하여 공부의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교운 2장의 내용을 보면 도솔암에서 단 도수가 행해진 때는 황새마을의 본소(本所)를 중심으로 포덕 활동이 이루어졌던 ‘황새마을 시기’05였다. 따라서 도솔암에서의 단 도수가 행해졌던 황새마을 시기와 바로 이어지는 무극도(无極道) 창도까지의 도주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의미에 대한 조그마한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황새마을 시기에 있었던 도주님의 주요 행적을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선돌부인으로부터 봉서를 받으심(1919년 1월 15일)
■ 상제님께서 남기신 둔궤를 통사동 재실로 모셔옴(1919년 9월 4일)
■ 통사동 재실에서 해원상생 대도의 진리를 설법하심(1919년 9월~1920년 2월 중순)
■ 둔궤를 모시고 공부하시던 중 둔궤가 열림(1920년 2월 17일)
■ 대원사에서 백일 도수를 보심(1921년 3월 26일~7월 7일)
■ 상제님의 성골을 통사동 재실로 모셔옴(1921년 9월 5일)
■ 상제님의 성골과 금품을 도난당함(1922년 12월 30일)
■ 김병문의 집에서 둔 도수를 보심(1923년 1월~3월)
■ 전교(傳敎)의 임무를 담당할 주선원(周旋元)과 주선원보(周旋元補)란 두 직책을 마련하심(1923년 3월~1923년 6월)
■ 「전교」를 내리심(1923년 6월 23일)
■ 박동락의 집에서 단 도수를 보심(1923년 6월~9월)
■ 적천사 도솔암에서 단 도수를 보심(1923년 10월~1924년 2월)
■ 밀양 세천에서 보시던 둔 도수를 마치고 무극도장터에 돌아와 치성을 올리심. 치성을 끝내고 보두법을 행하시고 둔 도수를 보실때 써 놓았던 글종이를 불사르심(1924년 4월)
■ 밀양 종남산 영성정과 함안 반구정에서 폐백 도수(幣帛度數)를 보심(1924년 5월~10월)
 
 
  이 황새마을 시기가 끝난 뒤 바로 1925년 구태인 도창현에 무극도장이 건립되고 무극도가 창도된다. 황새마을 시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무극도 창도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극도 창도는 종단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도주님께서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영대에 봉안하시고, 종지 및 신조와 목적 등의 교리체계와 구체적인 조직체계를 갖추어서 종단(宗團)을 창설한 일이기 때문이다. 도주님의 공부 목적이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천지도수(天地度數)를 풀어서 그 도수에 맞추어 펼쳐나가시는 데 있었기 때문에06 무극도 창도가 우리 종단사에 있어서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중요한 역사적 사건 이전에는 반드시 상당한 준비 과정의 시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종단사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무극도가 창도 되기 바로 전에 황새마을 시기가 있었으므로 그 기간에 행해졌던 도주님의 행적들은 무극도 창도와 관련지어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 칠성각과 돌단 추정지(출처: 다음 지도)
 

  예컨대 밀양 세천에서 행해졌던 둔 도수(1923년 1월~1924년 4월경)가 그러하다. 도주님께서는 이 둔 도수를 마치고 1924년 4월에 마련된 무극도장터에 돌아와 치성을 올리셨는데, 치성을 끝내고 도장터에서 보두법을 행하시고 둔 도수를 보실 때 써 놓았던 여러 글종이를 불사르셨다. 왜, 둔 도수를 보시며 써 놓으셨던 글종이를 무극도장터에서 태우신 것일까?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둔 도수가 무극도 창도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면에서 황새마을 시기에 행해졌던 도솔암에서의 단 도수도 무극도 창도와 관련하여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단 도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관련 자료의 한계로 인하여 단 도수를 보셨던 전후 종단사의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대략 살펴보았지만 명확하게 밝혀내기 어려웠다. 이 공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는 칠성각이 있던 위치이다. 칠성각이 있던 장소는 지형상으로 보았을 때 지금의 삼성각 자리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며, 도솔암 법당 뒤편 삼성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편이 더 유력해 보였다. 둘째는 단 도수가 종단사에서 가지는 의미이다. 도솔암 공부에 대해서는 교운 2장의 내용이 소략하여 그 의미를 직접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단 도수 전후 종단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았을 때 황새마을 시기가 끝나고 바로 뒤에 이어지는 무극도 창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답사를 마치고 도솔암 주위를 둘러보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조선 말에 의병들이 적천사를 근거지로 삼았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도를 펴시기 위해 화악산(華岳山) 깊은 산중에서 넉 달 동안 쉼 없이 단 도수를 보셨다. 한치의 어그러짐도 없어야 하는 막중한 사명(使命)이었기에 힘든 길이셨으리라! 그러나 오로지 상제님의 뜻을 받들려는 일념으로 단 도수를 보셨을 것이고, 이것은 또한 무극도 창도를 위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01 편의상 이후에 나오는 모든 날짜에서 음력 표기를 생략하기로 한다. 단, 사진 촬영 날짜는 양력으로 표기한다.
02 사액은 임금이 사당ㆍ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그것을 새긴 액자를 내리는 일을 이르던 말이다.
03 정병조, 「적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pp.426-427;  김미경, 「적천사」, 디지털청도문화대전, http://cheongdo.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eongdo&dataType=01&contents_id=GC05501454
04 도전님 훈시(1988. 10. 27) 참고.
05 필자는 도주님께서 황새마을 본소를 포덕 활동의 중심지로 삼았던 1918년 10월 이후부터 1925년 무극도 창도까지를 편의상 ‘황새마을 시기’라고 하겠다.
06 교운 2장 11절, “… 개벽 후 후천(後天) 五만 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그 아니 좋을시구 …”; 교운 2장 48절, “… 상제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나가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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