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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9년(2019)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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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자모지정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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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지정의 마음으로
 
 

범천20 방면 평도인 김현진

 
 
 
  결혼 후 3년 동안 정성 들여 기다리던 아이를 품에 안게 되었다. 그때의 감동은 정말 뭐라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초보 엄마인 나는 도대체 아이가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젖을 물려 재워놓으면 10분 만에 깨서 울고, 잘 자다가도 갑자기 깨서는 집이 떠나갈 듯 울어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지만,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보았다. 그러면서 ‘아. 졸려서 그런 거였구나, 배가 고팠구나, 성장통을 겪는 중이구나’ 하고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는 이유에 대해 조금 알아간다 싶었을 때, 잠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2~3시간 간격으로 모유 수유를 하였다. 문제는 이 패턴이 밤에도 지속된다는 것이다. 어쩔 땐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시간마다 깨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다시 마음을 부여잡고 수유하려는데 마침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활짝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도 예뻐서일까?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짜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쪽잠도 익숙해지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를 재우려는데 온몸이 불덩이였다. 놀란 마음에 얼른 해열제를 먹이고 아이를 안았다. 그러기를 2시간, 10kg이 나가는 아이를 계속 안고 있었더니 점점 팔과 허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아이가 쌕쌕거리며 힘들어해서일까… 몸이 힘든 것보다 아이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졌다. 아이가 어서 낫기를 바라며 상제님께 얼마나 간절히 심고 드렸는지 모른다. 입도한 이후로 제일 절절하게 빌었던 것 같다.
  그렇게 4시간이 흘러 날이 조금씩 밝아올 즈음 열이 내리고 숨소리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 안심하고서 아이를 눕히고는 잠시 허리를 펴기 위해 거실 바닥에 누웠다. 그때 거실에 있던 아이 책꽂이에 『대순지침』이 한 권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아이가 책을 훼손할까 봐 방안 책꽂이에 옮겨 두려고 뽑아 들었다. 방안으로 가면서 『대순지침』을 펼쳐 드는데, 마침 “윗사람은 모자의 정과 애휼(愛恤)의 마음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소중한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후각을 대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불현듯 나의 첫 후각이 생각났다.
  나의 친구였던 첫 후각.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나는 그를 어떻게 대했던가. 첫 포덕이었기에 너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어떻게 이끌어줘야 할지 몰랐기에 후각의 상황이나 의견은 거의 물어보지 않고 “참배 가세요. 기도 모시세요. 연수 다녀오세요”라고만 하였다.
  이후 내가 세심히 챙겨줘야 하는 부분이 많았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교화를 잘 하지 못해서 혹시 후각이 수도를 안 한다고 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고는 다른 분들에게 챙겨달라고 부탁드렸었다. 후각을 직접 챙기지 않다 보니 점점 오해가 생기는 상황도 많이 생겼다. 후각과 약속을 해도 거의 딱 맞게 도착하거나 늦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후각이 힘든 것을 이야기할 때 다 들어주는 것보다 중간에 잘라서 그건 너의 잘못이라고 다그치기만 했었다. 그렇게 후각과 사이가 점점 틀어졌고 연락도 뜸해져 결국 왕래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그때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만큼 했더라면, 지금처럼 가끔 연락하는 정도가 아닌, 좀 더 좋은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각에 대한 미안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한번 연락해 볼까 하다가 말았다.
  다음날 나는 다시 용기를 내서 후각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끔 안부 전화하는 거 외에는 거의 연락한 적이 없고 부재중일 때도 많아서 걱정하고 있는데 후각이 마침 전화를 받았다. 한참 마음을 졸여서일까.
  “여보세요.”
  후각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었다.
  “저예요. 오랜만이죠? 궁금해서 한번 전화해봤어요.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도 전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겸사겸사 연락했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
  “요즘 뭐 그렇죠.”
  후각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많이 힘들어요? 말이라도 하면 좀 나을 텐데. 내가 들어주고 싶은데 도장 근처로 한번 올래요?”
  “뜻밖이네요. 예전엔 제 얘기 별로 안 들어주시고 저한테 별로 관심도 없으셨던 거 같았는데요. 도장 근처로 가는 건 상황 보고 괜찮으면 갈게요”
  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후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마침 주말에 온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때부터 약속한 날이 올 때까지 혹시나 후각이 못 온다고 하지 않을까, 오다가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틈틈이 심고를 드렸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다. 처음 포덕을 할 때처럼 가슴이 설렜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커피숍에 도착했다. 잠시 후, 시간에 딱 맞춰 들어온 후각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먼저 와 계셨네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분이….”
    나는 넉살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외수가 보고 싶어서 먼저 왔죠.”
  후각은 내 말에 살짝 당황해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후각은 요새 부인과의 갈등으로 고민이라고 하였다.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결혼해서 살아보니 의견 충돌이 잦아서 요즘 너무 힘들다고 하였다. 딱히 주변에 말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너무 갑갑하던 찰나에 내가 전화를 하여 바람도 쐴 겸 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후각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후각에게 우리는 일상생활이 수도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우리는 인중(人中) 수도라고 하였다. 그래서 수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꾸기보다 부인에게 맞출 수 있는 선까지는 해주고 정 안 되겠다 싶은 건 대화로 잘 노력해 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부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라고 하였다. 후각은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참 많이 변하셨네요. 그전엔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셔서 많이 서운했었거든요.”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때는 어렸고 서툴러서 실수할까 봐 겁났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들어주고 같이 이야기해 주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요. 어쨌든 부인이랑 화해하고 여유 나면 다음엔 가족끼리 다 같이 와요.”
  “다음엔 그럴게요”라고 후각은 웃으며 이야기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 나름대로 후각을 위한다고 했던 일들이 과연 그에게 도움이 됐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하는 것과 수반을 대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나의 후각, 이제부터라도 자모지정의 마음으로 대하리라 마음속으로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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