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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9년(2019)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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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코너 : 참 군자의 길을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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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군자의 길을 소망하며



동명7  방면 교령 윤성미


  최근 고전 강의를 듣고 와 닿는 부분을 정리하던 중, 진(秦)나라 승상 ‘이사(李斯, ?~기원전 208년)’가 떠올랐다. 명석했지만 명리를 좇아 산 인물, 그의 삶과 고전의 지혜를 살펴보며 참 인재에 대해 그리고, ‘나의 길’에 대해서도 성찰해보고자 한다.
  난세에는 드러나는 인물도 있고,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음에도 몸을 숙이고 초야에 묻혀 지내는 이들도 있다. 출세의 길보다 안분지족의 삶을 택해 조용히 사는 이들을 높은 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한 예로, ‘장자’가 낚시를 즐기고 있을 때 초나라 왕의 명령으로 두 중신(重臣)이 장자에게 와서



“어떻게든 우리나라의 재상이 되어 주십시오. 폐하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하자 장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댁의 나라에는 사후 3천 년이 지난 영험한 거북 등껍질이 있다고 들었소. 왕은 이것을 비단으로 싸고 상자에 넣어 소중히 모신다고 하던데, 그 거북은 죽어서 그렇게 떠받들어지는 지금의 상태와 흙탕물에 꼬리를 끌면서도 살아있었을 옛날 중 무엇이 낫다고 생각했을까요?”
“그거야 살아있는 걸 좋아했겠지요.”
“자, 이제 돌아가 주십시오. 저도 흙탕물 속에 꼬리를 끌며 살고 싶소.”



  자유인으로 유유자적하게, 명리에 얽매이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장자의 삶의 방식이다. 반면 난세 영웅이란 말이 있듯이 세상이 어지러울 때 일어나는 영웅들도 많다. 그 목적이 의로운 세상을 위하는 바른 용기라면 세상에 필요한 진정한 인재는 그런 영웅일 것이다.
  이사는 장자와 달리 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을 적절히 이용하여 세도를 잡고자 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이사라는 인물을 알기 전에 읽었던 『간축객서(諫逐客書)』01는 내게 이사라는 인물을 통해 큰 그릇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진시황』과 『사기』를 통해 이사의 일대기를 살펴보면서 그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진나라로 떠나기 전 스승 순자에게 작별하면서 남긴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비천함이 가장 큰 수치요, 곤궁함이 가장 큰 슬픔입니다. 빈곤하고 비천함에 처하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명리를 아끼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배운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라는 말에서도 이사의 품성은 드러난다.




  진시황이 천하 통일을 이루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사, 분서갱유 등 거의 모든 것은 이사에 의해 움직였다고 볼 수 있는 진시황의 정책들, 하지만 통일한 지 15여 년 만에 진나라는 멸망했고 이사 또한 오형(五刑)을 당하고 허리까지 잘려서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삶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간언(諫言)은 주도면밀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가기 위한 것들이었다.『간축객서』에서 보이는 그의 됨됨이는 크고 원대한 그릇으로 보이기에 충분했지만, 한비자의 사상만 취하고 동문이었던 그를 자신보다 똑똑하다는 이유로 제거하려는 간언과 처세에서는 『간축객서」에서 표현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모호한 달변에 진시황은 넘어갔고, 그 예만으로도 이사가 정직한 지혜가 아닌 간지(奸智)에 능한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야심이 큰 인물이긴 하지만 세상의 부귀를 얻는 것만이 목적인 편벽된 소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사의 본모습, 그 절정을 보여주는 부분은 진시황이 죽으면서 큰아들인 부소에게 대를 잇는 유언을 남겼을 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환관 조고의 계략에 동조하는 부분에서 잘 나타난다. 천하를 통일한 진의 위력을 등에 업고 있던 승상 이사는 조고의 입질에 놀아나 그의 일생뿐 아니라 가족의 일생까지 망치게 했다. 이사의 한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록 과정에는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마지막만이라도 좋은 결과를 남겼어야 했는데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더 치졸한 인생으로 몰고 갔다.
  이사는 진정 자기를 대변해 줄 사람 하나를 만들지 못했다. 세상을 바로 잡는 것도 나라를 경영하는 것도 혼자 다 할 수는 없다. 나보다 잘난 사람,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이가 진정 큰 인물이다. 이사가 한비자를 죽이지 않고 한비자를 등용하고 밝은 지혜를 열어 진나라를 이끌었더라면 진나라의 운명도 자신의 이름도 빛낼 수 있었을 것이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기에 그 거대함을 이룰 수 있고,
(是以泰山不辭土壤, 故能成其大)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에 그처럼 깊어질 수 있고,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왕은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기에 그 덕을 밝힐 수 있습니다.
(王者不卻衆庶, 故能明其德)
02



  이러한 글을 진시황에게 올려 인재의 고른 등용을 역설했던 이사였지만 삶의 행적에서 참 군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귀영화를 비워내고 놓을 줄 아는 지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비굴한 언변을 놓지 않았던 이사의 일대기를 되짚어보며, 인생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부끄럽지 않은 이름으로 남을 삶인지 스스로 반추해봐야 한다. 후세에 남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명문의 글이 사악한 자기 계산이 담긴 글이라는 것이 애석하기만 하다. 이사가 노자의 덕과 장자의 달관한 인품을 조금만 갖췄더라면 『이사열전(李斯列傳)』의 후반에 사마천이 평했듯이 그는 주공 단, 소공석과 같은 열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이사의 일생에서 내 삶의 몇몇 순간이 떠올랐다. 입도한 지 20여 년. 도 안에서 상제님의 진리를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그 마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자부했다. 사교육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수도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힘이 들면 어두워졌고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한번은 작은 상자 속에 몸을 구부린 채 갇혀 버둥거리는 꿈을 꾸었다. 상제님께 너무 힘이 드니 그저 평범하게 살게 해달라고 심고 드리던 시절이었다. 도를 알면서도 개인의 편한 삶을 추구했으니 이사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가 수도하는 가장 큰 목적은 후천선경을 여는 일꾼이 되는 것이다. 입도하여 기본 자격은 갖춰졌다지만 형체만 그러할 뿐 정신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다. 선경 세상의 참 일꾼이 되려 한다면 범인(凡人)의 마음으로 도(道)를 닦아선 안 된다. 사람을 살릴 막대한 임무를 가진 도인들은 큰 사명감을 가지고 스스로 참 그릇을 빚어내는데 지극한 정성을 쏟아야 한다. 작은 것, 사소한 것 하나에도 정성하는 마음이 쌓이면 밝은 기운이 나를 감쌀 것이며 그 밝음을 좇는 이들이 모여들 것이며 그들과 함께 밝음을 어둠이 스민 곳곳에 퍼뜨려갈 것이다. 내게 시련이 더 오래 계속되더라도 올곧은 군자의 삶을 닮아가리라 담담하게 가슴에 새긴다. 참 군자의 길을, 참 도인의 길을 찾는 정직한 시작이 아닐까.





01 진(秦)나라 치수(治水)사업 중, 간첩 사건이 일어나자 외지 출신 관리자를 진나라 밖으로 추방시키라는 ‘축객령(逐客令)’이 내려진다. 이 명령으로 쫓겨난 초(楚)나라 출신 이사(李斯)가 진나라 왕에게 축객령을 거두어달라는 내용으로 쓴 상서(上書)다.
02 『간축객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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