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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9년(2019)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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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성구 :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



연구위원 강대성


상제께서 김 형렬을 불러 물으셨도다. “네가 나의 사무를 담당하겠느냐.” 형렬이 “재질이 둔박하와 감당치 못할까 하나이다”고 대답하는 것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꾸짖으시니 형렬이 대하여 “가르치심에 힘입어 담당하겠나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라. 마속(馬謖)은 공명(孔明)의 친우로되 처사를 잘못함으로써 공명이 휘루참지(揮淚斬之)하였으니 삼가할 지어다”고 일러 주셨도다.(권지 2장 38절)


  위 성구의 마속(馬謖, 190~228)과 제갈공명(諸葛孔明, 181~234)이란 인물이 등장하는 시기는 중국역사에서 위진남북조시대 중 삼국시대이다. 당시는 위(魏)·촉(蜀)·오(吳) 세 나라가 중원을 통일하기 위해 천하를 삼분하여 대치하고 있었다. 위나라 초대 황제 조비(曹丕, 187~226)가 죽고 그의 아들 조예(曹叡, 205~239)가 즉위하자 공명은 중원을 평정하기 위해 북벌(北伐)을 결심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목을 벤다는 휘루참지의 일화는 바로 제갈량의 제1차 북벌 중에 일어난 촉나라와  위나라의 가정전투(街亭戰鬪)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촉나라의 공명은 위군과의 대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친우인 마속에게 중요 보급거점인 가정을 지키라는 책무를 부여했다. 그 임무는 바로 한중(漢中)으로 통하는 요새가 가정인 만큼 요긴한 길목에다 진영(陣營)을 세우되 울타리까지 세워 적을 방어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정에 이른 마속은 지형을 살펴본 뒤 산꼭대기 숲 속에 군사를 매복해 두면 적들이 침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격하기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마속은 공명의 말을 듣지 않고 산 위에다 진영을 세웠고, 자신의 예상과 달리 위나라 군사들에 포위되어 산 위에 갇힌 신세가 된 촉나라 군사들은 위군에게 대패하게 되었다.01 이에 공명은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참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상제님께서는 마속과 공명의 고사를 말씀하시기 전에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라고 김형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무한 유사지 불명’의 의미와 관련하여 회보에 나와 있는 내용 중에서 대표적인 두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먼저 《대순회보》 22호에는 ‘무한 유사지 불명’에 대해 ‘관리의 명철하지 못함을 한스러워 말라’고 하여 관리를 수도인으로 비유하였다. 이는 수도인으로서 능력의 뛰어남보다 성(誠)·경(敬)·신(信)으로 도법을 준수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02 또한 《대순회보》 26호에선 ‘맡은 바 임무를 명확히 처리하지 못하여 한을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의미에서 제갈공명이 일 처리를 공명정대하게 한 것을 두고 상제님께서 높이 평가했다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03 전자는 ‘유사(有司)’를 ‘관리(官吏)’로, 후자는 ‘임무’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무한 유사지 불명’에서 ‘유사’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직무(職務)’를 말한다. 한편 조선 시대에 ‘유사’가 쓰인 용례를 살펴보면 어떤 정해진 실무를 맡아 처리하는 ‘관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04 이외에도 『고문진보(古文眞寶)』에 한유(韓愈, 768~824)가 지은 「진학해(進學解)」 편에 ‘유사’가 ‘관리’라는 뜻으로 쓰였다.


국자선생(한유)이 아침 일찍 태학에 들어가 학생들을 불러 교사(校舍) 아래에 세워 놓고 훈화한 내용이다. … 누가 재주는 많은데 드날려지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제군들은 학업이 정진되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지 관리가 현명하지 못함을 근심하지는 말고, 행실이 완성되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지 관리가 공정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라.….05
 

  위의 내용에서 ‘관리가 현명하지 못함을 근심하지는 말고’에 대한 부분이 ‘무환유사지불명(無患有司之不明)’이다. 『전경』의 해당 구절에는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으로 ‘患’이 ‘恨’으로 바뀌어 있다. ‘무환유사지불명’은 태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장차 자신들이 인재로 등용되고 안 되는 것을 관리가 현명하지 못함과 공정하지 못한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진학해」 편에 나오는 ‘유사’는 인재를 발탁(拔擢)하기 위한 직책에 종사하는 ‘관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경』에 상제님께서 ‘무한 유사지 불명’하라고 하신 뜻은 무엇일까? 이는 해당 성구의 문맥에서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권지 2장 38절은 크게 “상제님께서 김형렬을 불러 … 무한 유사지 불명하라.”와 “마속은 … 일러주셨도다.” 의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상제님과 형렬의 문답식 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공명과 마속의 고사이다. ‘무한 유사지 불명’은 상제님께서 마속과 공명의 일화를 들어 형렬에게 마음에 새겨두라고 하신 말씀이다. 명(明)은 사전적 의미로 ‘밝다’, ‘똑똑하다’, ‘확실하게’란 의미인데 의역을 하면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나의 일을 맡고자 한다면 맡은 바 직무를 어긋남이 없이 확실하게 하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속이 공명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有司)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였기(不明)에 대사를 그르쳐 자신이 참형을 당하는 한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순회보》 22호와 같이 ‘유사’를 ‘관리’, ‘명’을 영리하고 재주가 있는 ‘총명’하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관리는 어떤 소임을 부여받은 당사자이다. 마속은 공명으로부터 공적인 임무를 부여받은 일종의 관리자로 볼 수 있다. 마속이 재주는 뛰어났으나 공명의 명령을 듣지 않아 결국 군율을 어겨 군법의 존엄성을 훼손하였다. 마속은 재주가 아무리 뛰어났어도 자신의 능력만 믿고 공적인 일을 그르친 것이다. 수도인에게 있어서 도법을 믿고 따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능력보다 성경신으로 도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면 『전경』의 ‘무한 유사지 불명’은 필자의 견해로 본다면 ‘개인의 재능보다 성경신으로서 도법을 준수함과 아울러, 맡은 바 임무를 명확히 처리하지 못하여 한을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마속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였다고 보이는 점은 바로 공명을 온전히 믿고 그로부터 받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무엇보다 형렬에게 이 점을 유념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수도생활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수도의 기본인 만큼 ‘무한 유사지 불명’하라는 상제님 말씀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금언(金言)이라 할 수 있다.






01 박덕규, 『중국 역사이야기 2』 (서울: 일송북, 2008), pp.173-181 참고.
02 교무부, 「전경속의 고사성어: 揮淚斬之 (휘루참지)」, 《대순회보》 22 (1991), p.2.
03 이경원, 「전경속의 인물: 제갈공명 (諸葛孔明)」, 《대순회보》 26 (1991), p.8.
04 『태종실록(太宗實錄)』, 太宗 5年, 10月 24日, “… 형벌을 행할 적에 무릇 대벽(大辟)이 있으면, 유사(有司)가 옥사(獄事)를 갖추어 상부(相府)에 보고하고 …” ; 『성종실록(成宗實錄)』, 成宗 6年, 1月 25日, “…이에 유사(有司)에 명하여 구전(舊典)을 탐토(探討)하고…”
05 한유 外, 『신완역 고문진보 후집(新完譯 古文眞寶 後集)』, 김학주 옮김 (서울: 명문당, 2008), pp.395-396: “國子先生 晨入大學 招諸生立館下 誨之曰; …孰云多而不揚 諸生業還不能精 無患有司之不明 行患不能成 無患有司之不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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