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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9년(2019)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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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10년 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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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내수



금릉1-6 방면 평도인 신현경


  내 나이 34살, 입도한 지 10년이다. 내가 말로만 듣던 10년 내수가 되어버리다니. 회관에 가거나 도장에 가면 20대 선무, 중체 임원, 상급 임원분도 있는데 나의 수도는 왜 이리 더딘 건지. 무엇을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극성을 떨며 해내서 주위 사람들에게 악바리 소리를 듣던 나인데…. 선천 오만년의 겁액을 푸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아니면 그만큼 많은 복을 짓는 것이기에 척도 많이 작용하고 감당할 것이 많은 걸까?
  “신내수 1년에 1호씩 하네요. 원래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지는 법이잖아요.”
라는 선각들의 격려 한마디에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새는 제가 그런 그릇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라고 대답하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포덕 10호. 멀리 보면 아직 기회도 많지만, 같이 수도할 수반 한 명 없는 지금의 내가 초라하고 창피하다.
  나는 대학교 3학년 여름에 친언니의 권유로 입도했다. 어릴 적부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삼수까지 하고는 고3 때 수시 지원으로도 갈 수 있던 지방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다니면서 놀고 싶지 않았다. 공부를 중요시했던 아버지의 보살핌 덕분에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 흔한 아르바이트 한번 안 하고 집, 학교, 도서관을 다니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성적은 턱걸이 상위권이었고 친구들에게 공부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이런 답답한 심정을 언니에게 말하니 입도를 권했다.
  “나 요새 대순진리회에서 공부하고 있어. 너도 입도 치성 모시고 100일 정성을 들여봐. 분명 좋아질 거야.”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하고 제사나 고사를 빼놓지 않고 지내던 집안 분위기 덕분에 치성이 낯설지 않았다. 다만 언니가 종교에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 와중에 언니의 명쾌한 한마디.
  “대순진리회가 어떤 곳인지 알아봐야 확실해지겠지. 하지만 네 정성을 하늘은 아실 거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래, 한번 해보자!’ 결심하고 정성을 들였다.
  도인들은 내가 알고 지내던 주변 사람들과는 달랐다. 옷도 화려하지 않고 화장도 안 하고 수수했다. 그리고 남이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고 했다. 요새 같이 이기적인 세상에 남 잘되도록 마음을 쓴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수함 때문에 선각께 다가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놓았던 힘들었던 부분을 털어놓았다. 100일 동안 포덕소에서 교화를 듣기보다 주로 내 이야기를 했다. 후천은 어떤 세상인지, 꼭 수도해야 하는지 의문도 많았지만, 그냥 선각들이 좋아서 교화를 들었다. 도의 행사에 참석하고 교화도 들으면서 도가 조금씩 좋아졌다.
  그런데 4학년이 되자 집안 경제가 어려워졌다. 학교에 다니는 내내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뿐이었는데 마지막 학기는 등록금도 부담스러웠다. 답답하고 막막한 심정으로 도인들에게 상담하니 어디에 있더라도 수도하는 것이라며 정신 풀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조언해줬다.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다. 선각은 한 달에 한 번 내가 사는 곳까지 찾아와 교화해주었다. 돌아보니 나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기보다 인정받기 위한 욕심으로 공부했었다. 명문대학원에 가고 싶은 거였지 어떤 공부를 할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학비를 감당하며 갈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대학원만 생각하며 달려왔는데….
  선각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세상일인데 자존심으로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냉정하게 현실에 대해 조언했다. 정신이 확 들었다. 그동안 움켜쥐어왔던 공부에 대한 집착을 뒤로하고 학원 강사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작은 학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뜻밖에 재미있었다. 아이들을 좋아했고 내가 공부를 워낙 힘들게 했기에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일은 재미있었고 노력한 만큼 돈을 벌었다. 학생들도 좋아하고 학부모와 신뢰가 쌓여 과외도 끊임없이 들어오니 20대의 나로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돈을 벌었다.
  만약에 선사가 나의 진로에 대해 냉철하게 조언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부모님께 의지해서 사는 철없는 학생이 되었을 거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선각이 고마웠다. 평일에는 학원에서 수업하고 주말에는 과외를 하며 바쁘고 보람차게 생활해 나갔다.
  4년이 지나고 28살 겨울, 오랜만에 포덕소에 갔다.
  “신내수, 전에는 아기 같았는데 이제 성숙해 보이네요.”
  다시 포덕소에 오니 ‘나도 이제 수도를 열심히 해야 하나? 아직 포덕은 여전히 자신이 없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등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일하느라 바빴지만 짬을 내어 포덕소에 가서 기도 모시고 교화 듣고 치성에 참석하고 회관에서 도인 자녀들을 가르쳤다. 일하다 지친 몸으로 회관에 가면 맑아지니 회관에 가는 것이 나의 행복한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1년이 지난 후 수도에 뜻을 세우고 포덕소 생활을 하게 되었다. 상제님에 대한 교화도 새롭게 들렸다. 무엇보다 도인들이 다들 젊은데 포덕소에서 정성을 들이는구나 생각이 드니 나도 포덕하고 싶었다. 내가 늦었다는 생각과 빨리 포덕을 해내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그 뒤로 4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결과가 없어 괴로워하다가 찬찬히 나를 돌아보니 무엇이 부족했는지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포덕을 하면 내 성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입도 치성 모시는 데 급급했다. 나는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기도방을 청소하고 기도를 모셨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도인들 식사를 준비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열심히 교화하는 나는 다른 내수들이 포덕소에서 대충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고 어쩌다 한번 친구를 만나 교화하고 입도 치성 모시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포덕 결과는 없고 수도는 힘들고 선각들은 내가 나만을 위해 수도한다고 하니 마음에 갈등이 심했다.
  어린 나이에도 도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수도하는 순수한 내외수들이 부러웠다. 다른 사람들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상제님을 믿는 그 자세를 배우고 싶었다. 돈이 있든 없든 삶이 어떻든 선입견 없이 모든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는 선각들을 본받고 싶다. 이제 나도 상제님을 진실로 믿고 남을 잘되게 하는 깊이 있는 수도를 해야겠다. 남을 보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겪는 모든 것이 나의 겁액임을 인식하고 풀어 보려고 한다. 겁액을 푸는 과정에서 여러 복마의 발동이 있지만, 극복하고 나아가는 데 성공이 있음을 되새길 것이다.
  포덕소 근처에 새로 구한 직장이 판매직이라 매출에 대한 부담감으로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일하기 일쑤다. 일이 힘드니 도안에서 선각들이 마음 써준 것이 새삼 고맙고 내가 시기 질투하던 도우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나도 겉은 웃으면서도 다른 직원보다 내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판매할 때도 있고, 고객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면서 속으로는 욕할 때도 있지만, 마음을 진실하게 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직장 생활에 지칠 때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도장에 가서 치성 모시고 음복을 하던 때가 그립다.
  이번 도장 치성에는 꼭 참석해서 영대에 배례 드리고 도인들과 모여 앉아 음복하고 맑은 기운을 모셔올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 했으니 마음을 먹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입도한 지 10년에 포덕 10호인 내 작은 소망이 사그라질까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입은 상제님의 덕화가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히 전해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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