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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1년(2021)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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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모악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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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의 기억



원평1-7 방면 선무 오유진




  어미 모(母)에 산악 악(岳). 모악산에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모습의 돌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저의 어머니도 생각나고, 어머니처럼 돌봐주시는 선각분들도 생각나고, 또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도 생각이 납니다. 『전경』에서 중요한 구절에는 어김없이 ‘금산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통의 증거가 있는 곳이고 상제님께서 직접 응해 계셨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금산사의 반대편에는 대원사가 있습니다. 이 두 곳은 저에게 있어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다녔던 수학학원 위에 모 교단 도장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관심이 있어서 저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조상님이나 정성 들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가 잘 안 될 때는 주문은 몰라도 모 교단에서 준 태을주 테이프를 틀어놓고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교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면서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즈음 진로를 고민하면서 다양한 선배들과 만나던 중 선각분을 만나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주문을 본 순간 제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태을주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선각분들께 상제님만 믿는 단체와 대순진리회가 왜 다른지 교화를 듣고 나니 새삼 종통의 증거가 뚜렷이 새겨진 금산사에 찾아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하게도 방면에서 금산사에 같이 탐방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금산사에 도착하자 갑자기 임원분께서 미륵전의 솥을 만져봐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심고 드리면서 솥이 있는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긴 시간 볼 수 없어서 잠깐 스치듯이 보고 올라왔지만 뭔가 오랫동안 묵혀놓았던 숙제를 푼 기분이 들어서 신이 났습니다. 신기하게도 금산사에 다녀온 후로 어머니께 자주 연락도 드리고 《대순회보》도 매달 전해드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도치성 교화를 하였습니다. 도장에서 상제님 화천치성에 참석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어머니께서 치성 모실 수 있게 도와드렸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도에 대해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수반들과 함께 대원사에 갔습니다. 가을날에 단풍 구경 온 관광객들과 신나는 트로트 행렬을 뚫고 우리는 심고를 드리며 대원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대원사 입구 주차장을 올라갈 때부터 머리가 엄청나게 쑤시며 콕콕 찌르기 시작하더니 대원사 앞마당에 가서는 거의 눈을 뜨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지럽고 힘들었습니다. 순간 제가 10년 동안 수도를 하면서도 남을 위해 예쁘게 마음을 쓰지 못하지 않았나, 선각분들께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했구나, 수반들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했던 것들이 반성이 되면서 아파야만 깨닫는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1901년의 혼란스러웠던 조선 시대에 상제님께서는 조용히 대원사에 들어가셔서 천지대도를 여셨고, 49일의 불음불식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 공부가 감히 저로서는 상상도 안 되기에, 천지대도가 열렸다고 교화를 들었어도 사실 체감이 안 됐습니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지식으로만 찼던 제 머릿속에서 맴돌던 교화가 이해되는 듯했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조금씩이나마 바뀌어 들어갔고, 조상님과 신명과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본래 강원도 건봉사의 승려였던 금곡대사는 전생에 월광대사였는데 대원사 중수가 그의 할 일이었기에 상제님께서 수명을 늘려주셨다고 합니다. 반드시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그 사람과 만나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만약 금곡대사가 상제님께서 쓰실 대원사를 지으려고 태어났다면, 저 또한 수도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제님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시니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짐승이 갑자기 반기면서 모여들어 무엇을 애원하는 듯했다고 합니다. 상제님께는 금수들까지도 후천 해원을 구하려 함을 알아주시고 보듬어주시니 그 마음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는 우주처럼 넓게 느껴졌습니다. 지진이나 해일이 일어나기 전에 동물들은 재난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 도망쳐 살아난다는 뉴스를 봤는데 그런 능력이 사람에게도 있었으나 욕망에 눈이 어두워 거의 없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천 5만 년 동안 나 자신이 먼저 살아남기 위해, 무한 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해 남을 살피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그 마음을 고쳐 살릴 수 있도록 써주시니 참 감사했습니다.
  상제님께서 다녀가신 뒤 1918년에는 도주님께서 11월에 찾아오셨습니다. 『전경』에 ‘개벽 후 후천(後天) 五만 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그 아니 좋을시구’라고 하시는 말씀이 저에게는 그렇게 든든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도주님과 상제님께서는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일을 같이한 적도 없으신데 이렇게 통해서 공사를 보신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1921년에는 도주님께서 종도들에게 칠성경을 외우게 하시고 대원사로 들어가셔서 백일 도수를 마치셨습니다. 마치신 날이 칠월 칠석날이라, 그때야 종도들이 칠성경을 외운 뜻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칠성경에는 하늘에서 무한한 복록을 주시기 위해 정성 들여주시고 사람을 키워주신 은혜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상제님, 도주님께서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주실 수 있을까 고민하셨던 흔적이 대원사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현대에 수도하는 도인들이 쉽게 주문을 외우고 선각분들과 대화하면서 깨닫고 교화를 듣고 주일을 모시고 수련을 모시는 등, 다양한 도의 일을 편하게 할 수 있게 공사를 봐주셨다니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께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하면서 보은하는 마음을 새기며 내려왔습니다. 함께 도를 닦는 수반이 없었을 때는 선각분의 마음을 몰랐고, 도를 닦기 전에는 어머니의 마음을 몰랐는데 모악산에서 그런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이제는 회관이나 도장에서 함께 할 수 없으니 저도 제 위치에서 바르게 도를 닦는 참된 도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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