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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의 신 하백, 바다를 만나다
교무부 손영배

▲ 하백, 이미지 출처: 중국, 张渥九歌图卷
『장자』에 나오는 아래 이야기는 황하(黃河)를 다스리는 신(神) 하백(河伯)이 넓은 바다를 보고 자신의 좁은 식견을 한탄한다는 내용을 담은 우화로, 여기에서 ‘망양지탄(望洋之歎)’이 유래되었다.
황하의 신 하백은 가을 홍수로 자신이 다스리는 황하의 물이 불어 끝없이 펼쳐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세상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 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는 강을 따라 흘러 북해(北海)에 이르자 물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놀라 탄식하였다. 북해의 신(神) 약(若)을 우러러보며 말하길 “그대의 끝없음을 보고 있으니, 그대의 문 앞에 이르지 않았다면, 깨달은 자들에게 오랫동안 웃음거리가 될 뻔했소”라고 했다. 이를 들은 북해신 약은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해 줄 수 없는 것은 우물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벌레에게 얼음에 관해 말해 줄 수 없는 것은 여름만 알기 때문입니다. 경험과 지식의 한계에 갇혀 있는 사람[곡사(曲士)]에게 도(道)에 관해 말해 줄 수 없는 것은 배운 것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01
하백은 중국 신화에서 인간이었을 때 ‘풍이(風夷)’02라는 부족의 한 사람으로 팔석(八石)03을 먹고 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황하를 다스리는 신이자 강신들의 우두머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홍수를 일으키는 황하의 신 하백에게 그 피해를 막기 위해 여자를 인신 공양하여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신화에서는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생명을 빼앗기도 하는 그를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하기도 한다.04 우화에서 하백은 자만에 빠져 가을 홍수로 끝없이 넘실거리는 황하의 웅장한 물결을 보고 자기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독차지했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해에 이르러 바다를 본 순간 놀라 탄식하며 북해신 약을 우러러보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백의 말을 들은 약은 우물 안에만 사는 개구리, 여름 한 철에만 사는 벌레를 들어 비유하며 자신이 배운 지식에만 얽매여 있는 곡사(曲士)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도에 관해 말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 경험과 지식이라는 한계에 매여 있으면 도(道)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더 넓은 세계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실례로 유럽에서는 16세기 이전까지 천동설(天動說)이 진리로 여겨져 오다가 16세기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주장한 지동설(地動說)로 인해 인식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데, 유럽인들이 지동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300여 년이 걸렸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우화에서 자만에 빠져있던 하백은 북해를 보고 더 큰 세상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탁월한 면모를 보여준다.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조각상, 폴란드 바르샤바 스타지치 궁전 앞
이러한 하백의 태도를 본 약은 그에게 “이제 그대와 큰 이치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05라고 말하며 세상의 물은 자신보다 큰 게 없고, 바다는 가득 차 넘치거나 마르지 않는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는 스스로 많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나는 내 모습을 하늘, 땅과 비교해봅니다. 음양에서 생명의 흐름을 받아 내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조그만 돌멩이나 키 작은 나무가 거대한 산에 있는 격입니다.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바로 드러납니다. 어찌 스스로 많다고 하겠습니까?06
북해신 약은 자신이 하늘과 땅 사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천지 앞에 겸허한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뛰어난 식견이 있다 하더라도 이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족함을 알고 겸손할 것을 깨우쳐 주는 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 사회 속에서 배운 지식으로 꿈을 이루고자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상제님의 진리를 만나게 되었을 때, 사실과 현실에 얽매여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기에 하백처럼 받아들이지 못해 진리를 인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하백과 약의 우화에서 나타나듯이 겸손하게 도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상제님을 신앙하며 일상생활에서 정성을 다해 수행하다 보면 때때로 어떤 깨우침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기서 자신이 얻은 것에 만족한다면 자만했던 하백과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남과 다른 식견을 얻었다 하더라도 북해신 약처럼 우리는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고 언제나 겸허한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할 듯하다. 자기 경험과 지식의 한계에 갇혀 있는 사람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낮추어 서로 묻고 배운다면 상제님의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01 『장자』, 「외편추수(外編秋水)」; 장자, 『장자』, 조현숙 옮김 (서울: 책사랑, 2020), pp.347-348 참고. 02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는 풍이가 동방의 아홉 이민족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03 도가에서 불로불사의 묘약을 만들 때 사용하는 여덟 가지 돌을 말한다. 04 김명옥, 「고구려 건국신화 하백의 출자에 대한 인식 재검토」, 『문화와 융합』 41 (2016), pp.306-307참고. 05 장자, 『장자』, 조현숙 옮김 (서울: 책사랑, 2020), p.348. 06 같은 책,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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