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번즉란(禮煩則亂)
교무부 조광희
▲ 종묘제례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예(禮)’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혹은 규범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공동체에서 구성원 간의 윤리와 도덕에 관련된 것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예가 과하거나 부족하면 오히려 본래의 목적을 훼손할 수 있다. 이에 적절한 예가 무엇인지 되짚어 볼 수 있는 고사성어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제사를 자주 지내는 것, 이를 일러 ‘공경하지 않음’이라고 합니다. 예는 번거로우면 어지러워져서 신을 섬기기 어렵습니다. 이에 왕이 말씀하셨다. “아름답도다! 부열아. 너의 말은 따를 만하다. 네가 이런 좋은 말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행해야 할 일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01
예번즉란(禮煩則亂)이란 예가 번다하면 혼란스럽다는 뜻으로 『서경』 「열명(說命)」 편에서 유래한 말이다. 『서경』은 대표적인 유교 경전으로 중국 고대 제왕인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왕과 그 왕조가 지향했던 정치의 도를 담고 있다. 그 중 「열명」 편은 상(商)나라 고종(高宗)이 재상 부열(傅說)에게 명한 말을 기록한 것이다. 부열은 바른 정사가 행해지고 옳은 제왕의 도가 베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종에게 한 나라의 왕으로서 행해야 할 점과 경계해야 할 부분을 진언하였다. 중국 당(唐)나라 때 『서경』의 주석서인 『상서정의(尙書正義)』에는 고종이 제사를 풍성하게 자주 지냈기 때문에 부열이 이를 경계하여 한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당시 상(尙)나라에서는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점을 쳐 그 결과에 따랐기 때문에 이른바 ‘신정(神政) 정치’가 행해지고 있었다. 대대로 상나라 왕들은 하늘의 대리자를 자처하면서 장엄한 제사 의식을 통해 이를 증명하고자 했다. 천신(天神)과 지신(地神), 그리고 조상신을 숭배했으며, 특히 사망한 선왕이 천신의 뜻을 전달해 인간세계에 복이나 화를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조상에 대한 제사를 성대하게 치렀다고 한다.02 조상의 기일 혹은 명절 때나 제사를 지내는 오늘날과 달리 상나라의 왕들은 제사를 크게 자주 지내곤 하였다. 그러나 부열은 제사를 너무 자주 하거나 사치스럽게 하면 오히려 신을 공경하는 본뜻을 해치게 될 수 있음을 고종에게 간언하였다. 이 의미는 『예기』의 기록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기』에서는 “제사를 자주 지내고자 해서는 안 된다. 자주 지내면 번거로워지고 번거로우면 공경하지 못한다. 제사는 드물게 지내려 해서는 안 된다. 드물어지면 태만해지고, 태만해지면 잊어버리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제사를 너무 자주 또는 드물게 지내면 공경함이 퇴색될 수 있어 그 마음가짐을 가장 경건하게 유지할 수 있는 주기를 찾아 지내야 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위대한 예법은 간결해야 한다.”03라고도 하여 제사의 형식과 절차가 번다해지고 제물이 과하게 차려지는 것을 경계하였다. 이러한 『예기』의 구절들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예가 최고의 공경을 표현하는 길임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04 이렇듯 예는 신에게 제사를 모시는 행위에서 유래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예는 행하는 것이다. 신(神)을 섬기고 복(福)에 이르게 하는 근거이다. 시(示)와 풍(豊)으로 이루어졌다.”05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예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의 신 중심적인 세계관을 탈피하고 사람 중심의 인문주의 형태로 변화됨에 따라 인간 사회에서의 규범으로 확장되었다.06 이에 따라 예번즉란 또한 인간관계에서의 바람직하고 적절한 예의 의미까지 포괄하는 고사성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도에서 예는 신명과 인간 모두에게 행해야 하는 도리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예번즉란이라고 하였듯이 예를 행함에 있어서 과함을 경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는 “마음이 있어서 몸을 움직여 나가는 것을 예의에 적중하게 알맞게 행해 나가는 것이 경이다. ‘예번즉란’이라고, 예가 너무 번거로워도 어지럽다.”07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이 몸을 주관하지만, 때로는 몸이 마음에 영향을 주기도 하므로 몸으로 표현되는 예가 번거로우면 마음이 불편하여 정성을 제대로 들일 수 없다. 따라서 예가 너무 번거로워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면 체계 질서를 이루고 화합하려는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적절하게 예를 행하는 것을 경이라 하신 것이다. 예는 공경을 다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올바른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사를 너무 굽실대면서 하거나 교화를 들을 때 무릎을 꿇는 등 몸을 힘들게 하는 번거로운 자세를 취한다면 행하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불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는 행하는 사람의 마음과 몸이 편안한 상태일 때, 제대로 된 정성이 우러나서 진정한 예가 될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불수전강전편왈예(不受專强專便曰禮)”08라고 하셨다. 이는 오로지 강하고 경직된 태도로 행하거나 오로지 편리함만을 좇아서 하지 않는 것을 예라고 가리키신 것이다. 예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면 마음의 정성을 다할 수 없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할 수 없다. 예는 평범하면서도 적중해야09 하는 것으로 과하여 번거로워져서도 안 된다. 예번즉란에서 보듯이 예를 행할 때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서 질서를 이루고 화합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01 『서경』 「열명(說命)」, “黷于祭祀, 時謂弗欽. 禮煩則亂, 事神則難. 王曰. 旨哉. 說乃言惟服. 乃不良于言, 予罔聞于行.” 02 「상나라의 건국」,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03 『예기(禮記)』, 「악기(樂記)」, “大禮, 必簡.” 04 금장태, 『귀신과 제사』 (서울: 제이앤씨, 2009), pp.82-83 참고. 05 허신(許愼), 『설문해자(說文解字)』, “禮, 履也. 所㠯事神致福也. 從示從豊.” 06 박병만, 「대원종: 우리에게 예의 의미는」, 《대순회보》 135 (2012), pp.39-40 참고. 07 「도전님 훈시」(1993. 7. 11); 이러한 예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훈시도 있다. 「도전님 훈시」(1989. 9. 19), “너무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 예는 적법ㆍ적당해야 한다.” 08 교법 3장 47절. 09 『대순지침』, p.5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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