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至誠)의 근본은 정직과 진실
교무부 박병만
‘성(誠)’이란 말은 ‘치성(致誠)’, ‘월성(月誠)’, ‘정성(精誠)’, ‘성심(誠心)’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도인들이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용어 가운데 하나다. 이 ‘성’ 자를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誠(성)은 믿음성 있고 진실하다는 의미를 지니며 言(언)과 음을 나타내는 成(성)으로 이루어졌다.”01라고 설명하였다. 한편, “成(성)은 완성되어 안정감이 있다는 뜻이므로 안정감이 있는 말[言], 곧 ‘진심’의 뜻을 나타낸다.”02라고 하는 설도 있다. 이러한 설명에 근거하여 ‘성’은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정성’, ‘참됨’, ‘성실하다’, ‘진실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올바른 수도를 위해 반드시 바탕으로 삼아야 할 세 가지 요점을 ‘삼요체(三要諦: 성ㆍ경ㆍ신)’라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이다. 『대순지침』에는 이 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도전님의 훈시가 있다.
성(誠) 자체는 하늘의 도요, 성(誠)하고자 함은 사람의 도이니 지극한 성으로 바르게 도 닦기를 힘써야 한다.(41쪽)
이는 “성(誠)은 하늘의 도요, 성(誠)하고자 함은 사람의 도이다.”03라는 『중용(中庸)』의 구절을 토대로 수도 과정에서 성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하신 말씀인 것 같다. 모두 33장으로 구성된 『중용』의 후반부(20장 후반~33장)에는 이 성 개념에 대한 논의가 매우 치밀하게 포괄적인 체계를 갖춘 채 전개되어 있다. 그러한 성에 대한 논의 전반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이 구절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늘’은 단지 하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을 포함하여 우리가 사는 자연 세계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도’는 이 자연이 변화하고 작용하는 원리(법칙)를 뜻한다. 자연은 매일매일 낮과 밤이 되풀이되며 1년을 주기로 항상 춘하추동이라는 4계절의 변화를 반복하고 있다. 또한,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으며,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나온다. 이러한 변화와 실상은 항상 차착이나 어김이 없다. 이렇게 참된 모습을 한결같이 지속하고 있으므로 『중용』의 저자인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는 자연의 이러한 모습을 ‘진실하다’, ‘성실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성’이라는 말로 표명하였을 것이다. 자연 세계는 일정한 원리에 따라 항상 스스로 그렇게 변화하고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사실적 세계를 ‘진실하다’, ‘성실하다’라고 해석하여 ‘성’이라는 가치적 언어로 드러내어 밝혔다는 뜻이다. 자사는 이렇게 자연의 한결같은 모습을 ‘성’이라 표명하고 나아가 이를 근거로 ‘성(誠)하고자 함’, 곧 이 성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을 사람의 도(길)라고 천명하였다. 이는 자연 세계에서 보이는 사실적인 현상을 근거로 삼아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규범을 제시한 것이다. ‘지극한 성’이란 이러한 노력을 극대화하는 것인데, 위의 도전님 훈시는 지극한 성으로 바르게 도 닦기를 힘쓰는 것이 우리 도인들의 당연한 길임을 강조하신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지극한 성’이란 어떠한 행위를 말하는가? 자연이 그렇게 한결같은 것처럼 우리도 한결같은 모습을 극진히 한다면 지극한 성이라 할 수 있을까? 『중용』에서는 “지성무식(至誠無息: 지극한 성은 쉼이 없다)”(26장)이라 하였다. 또한, 『대순진리회요람』에서도 “정성이란 늘 끊임이 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름이다.”(16쪽)라고 하였다. 이는 모두 지극한 성이 끊임없고 쉼이 없는 지속성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곧, 우리가 한결같은 모습을 얼마나 끊임없이 지속하느냐가 지극한 성의 관건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거짓된 마음으로 거짓된 행동을 한결같이 지속하는 것을 지극한 성이라 하지는 않는다. ‘성’에는 참된 모습을 한결같이 지속한다는 ‘진실함’, ‘성실함’이란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김형렬 종도가 상제님을 배알하고자 객망리 본댁으로 향하는 도중에 문득 소퇴원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꺼려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 가다가 상제님을 만나 뵙게 된 적이 있었다. 이때 상제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나를 좇고 금전과 권세를 얻고자 좇지 아니하는도다. 시속에 있는 망량의 사귐이 좋다고 하는 말은 귀여운 물건을 늘 구하여 주는 연고라. 네가 망량을 사귀려면 진실로 망량을 사귀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김형렬 종도는 이 말씀을 듣고 다른 종도들과는 다르게 진정으로 끝까지 상제님을 좇았다고 『전경』에서는 전하고 있다.04 이 이야기는 지극한 성은 어떠한 마음이 근본이 되어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데, 그 행간을 보면 아마도 당시에 금전과 권세를 얻고자 상제님을 좇았던 사람도 몇몇 있었던 것 같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나를 좇고’, ‘진실로 망량을 사귀라’ 등의 말씀에서 우리의 ‘순수한 본심’이 올바른 수도를 위한 지극한 성의 근본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마음’은 곧 천성(天性) 그대로의 순수한 본심을 말하며, 이 본심은 양심으로 ‘정직과 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05수도의 과정에는 항상 복마(伏魔)의 발동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금전이나 권세 등과 같은 물욕(物慾)에 사로잡혀 결국에는 순수한 본심을 잃고 탈선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세속적 물욕에 젖어 꾸준하게 한결같은 모습을 지속하며 도를 닦는다(?)고 한들 그것이 어찌 올바른 수도일 수 있겠는가. 반드시 ‘정직과 진실’이 근본이 되어야 ‘지극한 성(至誠)’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 올바른 수도의 길이 있다. 참다운 지성(至誠)이라야 감천(感天)할 것이다.
01 “誠, 信也, 从言成聲.”[허신 찬(撰), 단옥재(段玉裁) 주(注),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상해: 상해고적출판사, 1988), 92쪽] 『설문해자』는 후한(後漢) 때 허신(許愼, 30?~124?)이 편찬한 중국 최초의 자전(字典)이다. 단옥재는 『설문해자』의 이러한 설명에 대해 별도로 해석하지 않았다. 『설문해자』의 또 다른 주석서인 『설문해자금석(說文解字今釋)』에서는 “誠, 信實不欺.”(성은 믿음성 있고 진실하여 속이지 않음)라고 해석하였다.[탕가경(湯可敬) 찬, 『설문해자금석 상(上)』 (호남장사: 악록서사출판, 2002), 326쪽] 02 민중서림편집국 편,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 (파주: 민중서림, 2011), 2128쪽. 03 『중용』 20장,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04 교운 1장 7절 참고. * 망량(魍魎): 도깨비. 05 『대순진리회요람』, 19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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