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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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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군항에 대하여

군항에 대하여


교무부 강대성




“김 광찬ㆍ신 원일ㆍ정 성백ㆍ김 선경ㆍ김 보경ㆍ김 갑칠ㆍ김 봉규 등 여러 종도들이 二월 그믐에 동곡에 모였느니라. 다음 달 이튿날 상제께서 공사를 보시기 위하여 서울로 떠나시면서, “전함은 순창(淳昌)으로 회항하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키라”고 이르시고 “각기 자기의 소원을 종이에 기록하라”고 모여 있는 종도들에게 명하시니 그들이 소원을 종이에 적어 상제께 바치니 상제께서 그 종이에 안경을 싸시고 남기ㆍ갑칠ㆍ성백ㆍ병선ㆍ광찬을 데리고 군항(群港)으로 가서 기선을 타기로 하시고 남은 사람은 대전(大田)에서 기차를 타라고 이르신 후에 이것을 수륙병진이라고 이르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원일에게 “너는 입경하는 날로 먼저 종이에 천자 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고 정서하여 남대문에 붙이라”고 명하셨도다. 원일은 곧 여러 사람과 함께 대전으로 떠났도다. (공사 1장 17절)


  위 성구에 보면 상제님께서 일부 종도들을 데리고 군항(群港)으로 가서 기선을 타기로 하시고, 남은 사람은 대전(大田)에서 기차를 타라고 이르시며 이를 수륙병진이라 말씀하셨다. 이에 대하여, 도전님께서는 “부산(釜山)은 팔금산(八金山)이다. 상제님께서 군산(群山)에서 수륙병진도수를 보셨는데, 군산은 부산을 의미한다.”01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런데 이 훈시 말씀 중 ‘군산이 부산을 의미’한다는 부분에 대하여 《대순회보》에 이미 연구된 바가 있으나 자세한 설명이 나타나 있지는 않다.02 따라서 이 글에서는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지역은 군산이지만 실제로는 부산이란 점에서 두 지역 사이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위 구절에서 김 광찬 등 종도들이 2월 그믐에 모였다가 다음 달 이튿날에 상제님께서 서울로 떠나시면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위 구절의 시기는 1906년 3월 2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 “군산(群山)에서 수륙병진(水陸竝進)이라 하시며 서울로 가는 도수를 보셨는데, 군(群)은 무리가 많다는 뜻이다.”03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런데 이 훈시에서 보면 도전님께서는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지역인 군항(群港)을 군산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군항이 곧 군산이다. 이는 군항에 대한 《황성신문(皇城新聞)》04 1908년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에는 “군항수출입액, 이번 달 상순에 군산항에서 물품 무역 수출입액이 왼쪽과 같더라 …”05라고 나타나 있다.
  도전님께서는 앞서 “군산은 부산을 의미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는 부산이 군산으로 대치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군산과 부산의 연관성에 대해 훈시를 통해서 살펴보면, “군산(群山)에서 … 군은 무리가 많다는 뜻”이라고 밝혀 주셨다. 군(群: 무리)은 군(君: 임금) 자와 양(羊: 양) 자가 결합한 회의 문자이다. 양은 원래 군집(무리) 생활을 하는데 지팡이를 들고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그린 ‘君’ 자와 결합해 양 떼를 모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06 군산은 무리 군(群), 뫼 산(山)으로 이루어져 산이 무리 지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군산의 실제 지형을 보면, ‘산이 무리 지어 있다’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즉 대부분 약 100m 정도의 낮은 구릉들로 형성되어 있고 북쪽과 남쪽은 금강, 만경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서해가 자리 잡고 있어 삼면이 온통 물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다.07 그런데도 군산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기록에서 나타난다.
  중종 2(1624)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우도도만호(全羅右道都萬戶)」, ‘군산재옥구현북진포(群山在沃溝縣北鎭浦; 군산은 옥구현 북쪽 진포에 위치)’에 따르면, 군산진[群山鎭: 이때의 군산은 ‘군산도(群山島)’로서 현재의 선유도를 이름]이 진포(鎭浦)로 옮기면서 그대로 군산(群山)이라 부르게 되자 과거의 군산진을 고군산도(古群山島)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08 고군산은 지리적으로 바다의 섬이었지만 만경강 하류에 인접하여 육지처럼 보여 ‘주위의 여러 섬이 무리 지어 있는 산’처럼 보이는 형국이었다.09 이로써 ‘무리를 지어 있는 산[群山]’이라는 뜻의 지명은 고군산(古群山)에서 비롯되었음이 확인된다.
  위 훈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부산은 팔금산’이라고 하신 부분이다. 부산(釜山)을 파자하면 팔금산(八金山)10이 된다. 팔금산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부산을 둘러싸고 있는 여덟 개의 산을 팔금산이라고 하는 설이 있으며,11 도전님께서 군산(群山)에 대해 “군(群)은 무리가 많다.”, 그리고 “부산(釜山)은 팔금산(八金山)이다.”라고 말씀하신 점을 고려해 보면, 산이 무리 지어 있는 지형이라는 유사성에서 군산과 부산의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군산과 부산은 엄연히 다른 지역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상제님께서는 특정 지역에 관한 공사를 하실 때 그곳에 가지 않으시고 연관성 있는 다른 지역을 택해서 공사를 보신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지기를 뽑으시기 위해 일본의 지명인 신호(神戶, 고베)와 어음이 같은 신호(神濠, 신방축)에서 보신 공사,12 청주(淸州) 만동묘(萬東廟)에 가서 보시려던 청국 공사를 청도원(淸道院)에서 보신 공사들이 그러한 예로 볼 수 있다.13 이러한 측면에서 부산에 관한 공사를 군산에서 대신 보셨을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군항에서의 수륙병진도수와 관련하여 수륙병진은 바다 또는 강과 육지에서 아울러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그 유래는 『자치통감』의 ‘적벽대전(赤壁大戰)’에 관한 기록에 나타난다. 적벽대전은 중국 후한(25~220)말에 소규모 병력인 손권(孫權)ㆍ유비(劉備)의 연합군이 양쯔강[揚子江] 중류의 적벽에서 조조(曹操)의 대군을 물리친 전투이다. 이때 연합군이 사용했던 전법이 바로 강과 육지를 동시에 진군하는 수륙병진이었다.14 즉 수륙병진은 수로(水路)와 육로(陸路)로 동시에 나아감을 뜻한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수륙병진’을 인용하시어 군산과 대전에서 서울로 가는 공사를 보셨다.
  수륙병진도수에 관해, 도전님께서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시어 대순진리회를 창건하시는 도수라고 밝혀 주셨다.15 훈시에 “감천도장은 … 바다 쪽으로 나가는 모양으로 되었다.”16, “배가 꼭 바다의 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17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천지신명을 모신 곳이 도장이다.”18, “내가 떠나니 신명들도 아미동 산 고개를 넘어 다 떠나가더라.”19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군산에서 공사를 보신 수륙병진도수는 도전님께서 육로를 통해 서울로 올라오시는 실제적 이동으로, 수로의 이동은 도장이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지는 상징적 의미로 보인다. 요컨대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지역인 군항(군산)은 부산을 암시하며, 군항에서 공사를 보신 수륙병진도수는 부산 태극도에서 대순진리회로 종단이 변천되는 과정을 도수로 짜 놓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01 「도전님 훈시」(1989. 5. 8); 부산과 관련하여 또 다른 훈시에 “부산(釜山)은 가마솥 부(釜)로서 입금산(入金山)이다.”라고 하신 말씀도 있다. 「도전님 훈시」(1984. 12. 27); 팔금산(八金山)은 글자의 형태로 보아 입금산(入金山)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02 군항과 관련하여 《대순회보》에 언급된 글이 네 차례 나타난다. 하지만 기존 선행연구에선 군산과 팔금산에 관한 훈시내용의 단순 소개와 군산(항)의 자연환경과 역사 등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종단사 연구팀, 「지명소개(상제님편) : 상제님ㆍ도주님ㆍ도전님과 관련한 지명소개-군산, 군항편」, 《대순회보》 151, (2013); 박정욱, 「『典經』지명 답사기 : 군산항(群山港)을 다녀와서」, 《대순회보》 135, (2012);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46) : 수륙병진도수」, 《대순회보》 110 (2010); 「종단역사코너: 도전님의 이궁(移宮)이 갖는 의미, 《대순회보》 199 (2017).
03 「도전님 훈시」(1984. 12. 27).
04 “서울에서 남궁 억 등이 국민 지식의 계발과 외세 침입에 대한 항쟁의 기치 아래 1898년에 창간한 일간신문. 후에 1910년 《한성신문(漢城新聞)》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황성신문(皇城新聞)」,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05 “群港輸出入額 本月上旬에 群山港에셔 物品貿易輸出入額이 如左더라.”, 《황성신문》 1908. 7. 18. 2면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신문 아카이브); 종단사 연구팀, 「지명소개(상제님편) : 상제님ㆍ도주님ㆍ도전님과 관련한 지명소개-군산, 군항편」, 《대순회보》 151 (2013), p.21 참고.
06 ‘군(群)’, 『네이버 한자사전』 참고.
07 김의한, 「군산(群山)이란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국립군산대 언론사》 2011. 3. 3 참고.
08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옥구 산천조(沃溝 山川條)」에는 “진포재현북십육리유어량(鎭浦在縣北十六里有魚梁; 진포는 현에서 북쪽으로 16리에 선창과 어항이 있다)”라고 나타나 있다.「지명: 군산」, 군산문화원. http://gunsan.kccf.or.kr/참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 「만경현 관방(萬頃縣關防; 만경현 관문(요새)」에는 “군산병선박입처 해도 군산도 망입도(群山兵船泊立處 海島 群山島 望入島; 군산은 병선을 정박시킨 곳이라 하였고 섬으로는 군산도와 망입도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윤정숙, 「개항장과 근대도시 형성에 관한 역사 지리학적 연구: 군산항을 중심으로」, 『지리학』 32 (1985), p.82 참고.
09 군산은 고려시대부터 문헌에서 나타나며, 여기는 고군산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고려 인종 원년(1123) 송나라 사신으로 왔던 서긍(徐兢, 1091~1153)이 우리나라를 다녀간 후에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군산도(群山島)’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무리 지어 있는 산처럼 보이는 섬’이란 뜻을 가진 군산도, 즉 고군산군도는 선유도를 중심으로 횡경도, 말도, 방축도, 신시도 등이 둥글게 둘러싸여 있는 모양이다. 김의한, 앞의 글 참고.
10 ‘釜山’를 파자(破字)하면 八 + 金 + 山, 즉 팔금산이 된다.
11 김덕삼, 「부산의 고대문화와 이야기를 통한 부산의 발전 방안 연구」, 『향도부산』 33 (2017), p.225 참고.
12 『전경』에 상제님께서 일본의 지기를 뽑는 공사를 보신 지역이 태인에 있는 신방축인데, 한자로는 신호(神濠)라고 불리어 일본의 신호(神戶, 고베)와 어음이 같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된다.(공사 3장 31절 참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글에 나타나 있다.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68) : 신방축 공사」, 《대순회보》 133 (2012), p.23 참고.
13 공사 2장 6절 참고.
14 「수륙병진」, 『전경용어사전』 참고.
15 “서울도장의 창건은 상제님의 수륙병진도수(水陸竝進度數)에 의한 것이다.” 「도전님 훈시」(1988. 12. 5) 참고.
16 「도전님 훈시」(1984. 12. 27).
17 「도전님 훈시」(1991. 2. 12).
18 「도전님 훈시」(1994. 5. 16).
19 「도전님 훈시」(198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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