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의 신수, 호랑이
출판팀 한상덕
▲ 여주본부도장 포정문 앞 호랑이 석상 (2021년 7월 18일 촬영)
우리 도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신수(神獸) 가운데 하나가 호랑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대부터 호랑이를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인간을 지켜주는 영험한 동물로 여겨왔다. 이는 호랑이가 용맹함과 강인함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호랑이는 신수로 여겨 궁궐과 사찰의 건축양식에서 권위와 위용을 나타내는 요소가 되었다. 우리 도장에서도 정각원과 포정문 입구에는 석호(石虎)가 자리하고 있어 그 위용을 마주할 수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역사가 범엽(范曄, 398~445)이 저술한 『후한서(後漢書)』에는 우리나라를 ‘호담지국(虎談之國)’이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호랑이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보다 호랑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토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와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헌강왕 11년(885년)에 “호랑이가 궁궐 마당까지 뛰어 들어왔으며, 민가에 내려와서 어린아이들을 주로 물어갔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숙종 23년(1697년)에 “포악한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므로 비록 평원과 마을에 잇닿아 있는 곳이라도 사람이 감히 혼자 다니지 못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호랑이에 의하여 사람이나 가축이 해를 입은 환난을 일컬어 ‘호환(虎患)’이라 불릴 정도였다. 사람들은 호환을 겪으면서 호랑이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경계하면서도 잡귀를 물리치는 신령한 동물로 경외하였다. 이는 모든 동물을 능히 다스리는 호랑이의 힘을 빌려 현세의 질병과 나쁜 기운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러한 호랑이에 대한 믿음은 역사 속에서 여러 형태로 표현되었다. 조형으로 표현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호랑이 유적으로는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반구대(盤龜臺) 암각화를 들 수 있다. 이 선사시대 바위 그림에는 호랑이가 함정에 빠졌거나 새끼를 밴 모습 등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또한 호랑이가 지닌 신수의 이미지는 흰색의 털을 가진 백호로 표현된다. 이와 관련된 유물로는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며 고려 석관의 사신도 등에도 지속해서 나타난다. 그 모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호랑이의 모습과는 달리 용과 흡사하게 표현되어 영물로 신성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통일신라시대 능묘의 십이지신상, 조선시대 궁궐의 월대 난간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궁궐이나 능묘에 세워진 호랑이는 잡귀를 막는 수호신이나 방위신의 기능을 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호랑이에 대한 존숭의 관념은 대표적인 민간신앙 중 하나인 산신신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산신신앙은 온갖 재앙과 질병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신봉되어 온 신앙이다. 산신당에는 산신도가 모셔지는데, 산신은 보통 깊은 산을 배경으로 신선이나 법복을 입은 승려로 표현된다. 특이한 점은 산신과 함께 호랑이가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호랑이 숭배 사상은 중국의 역사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으로 여긴다’라는 구절이 있고, 『신당서(新唐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도 ‘산신에게 제사 지내기를 즐겨한다’라고 실려있다. 이를 통해 고대사회 전반에 걸쳐 한반도에 산신신앙의 전통이 이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산신신앙에서는 산신이 호랑이로 표현되거나 호랑이가 산신의 수호동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호랑이를 별칭하여 산군(山君), 산령(山靈), 산중영웅(山中英雄) 등으로 부르는 데에도 이러한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민간의 산신이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으로 불교에 수용되어 사찰 내에 산신각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복과 수명을 빌고 재물과 자식을 바라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해 사찰 내에 산신을 봉안하는 공간인 산신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호랑이가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민간의 정서와 결합하여 기복적인 성격이 더해지면서 그 상징성은 확장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의 호랑이는 능묘의 호석이나 불교의 공예품, 그리고 민화와 부적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지금도 도장의 포정문과 정각원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호석상이 석조대좌 위에 앉아있다. 부리부리한 두 눈과 의연한 자태는 호랑이의 위용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우리 문화 속에서 잡귀를 물리치는 신령한 동물로 여겨온 호랑이가 우리 도장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도장을 수호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오늘도 도장의 호랑이는 수호의 표상으로 굳건히 자리하여 힘찬 포효를 멈추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김왕직, 『알기쉬운 한국건축용어사전』, 파주: 도서출판동녘, 2008. 박은정, 「문학: 근대 이전 호랑이 상징성 고찰」, 『은지학회』 43, 2015. 김현진, 「한국 사찰의 산신 수용과 의례」, 『한국학논집』 8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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