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 방면 여천회관
출판팀
▲ 금릉 방면 여천회관 전경 (2024년 6월 7일)
전라남도 여수(麗水)는 ‘아름다운 물’ 혹은 ‘아름다운 바다’로 풀이되지만 ‘물이 좋고 사람이 아름답다’라는 말에서 연유한다. 여수는 북쪽으로 순천과 광양이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으며, 오동도와 함께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곳이다. 여수는 한때 여수시와 여천시, 그리고 여천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8년 여수시로 통합되었고 옛 여천시가 있던 곳에 금릉 방면 여천회관이 있다.
▲ 4층 봉심전 입구 벽화 여수는 풍수에서 봉황이 둥지로 날아든다는 비봉귀소(飛鳳歸巢)의 형국이며 부를 상징하는 열두 거북이 있는 길지라고 한다. 회관 근처에는 거북 모양의 거북선공원이 있으며 회관 동쪽에는 고락산(鼓樂山)이 있고 서쪽에는 무선산(舞仙山) 있다. 고락산은 일명 괘락산(掛樂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둥둥둥’ 북을 울리면 무선산에서 선녀가 내려와 즐겁게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회관 남쪽에는 이순신 장군이 망을 보고 훈련도 시켰다는 망마산(望馬山)이 있고, 산 아래에는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다는 선소(船所)가 있다. 여수에는 이충무공자당기거지, 전라좌수영 본영인 진남관, 이순신 장군이 군령을 내린 고소대, 사당인 충민사와 함께 이순신광장, 이순신공원, 이순신대교 등 이순신 장군 유적과 함께 관련 시설이 여러 곳 있다.
① 3층 집회실 ② 3층 임원 대기실 복도 ③ 3층 임원 대기실 방 ④ 2층 내수 대기실 방 ⑤ 2층 내수 대기실 복도
취재진이 회관에 도착하니 김도란 선감이 남도의 넉넉한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금릉 방면은 1980년대 중반에 여수에서 포덕사업을 시작했고 터미널에서 멀지 않는 시내 변두리에 포덕소를 얻었다. 포덕사업이 잘되어 도인이 늘자 이곳의 일꾼들이 광주나 전남의 여러 지역으로 포덕소를 얻어 수도처를 넓혔고 옛 여천시 중심지에 3층 건물을 회실로 사용했다. 그 당시 여수에서 수도를 하는 도인들은 주일기도를 모시기 위해 회관이 있는 전주나 함안까지 가기가 너무 멀어 여수에도 회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회실 건물의 주인이 바뀌어 건물을 비워야 했다. 그래서 회관이 될 만한 건물을 알아보던 중 회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3층 건물을 소개받았다. 사실 이 건물은 비만 오면 건물 내부로 물이 많이 샜다. 건물주인이 여러 번 방수 공사를 했는데도 누수가 잡히지 않아 부동산에 싸게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금릉 방면의 회관 공사를 계속해 온 담당자가 비 오는 날 건물을 둘러봤고 누수의 원인을 확인했는데 초기에 방수를 잘못해서 누수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었다며 공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금릉 방면 도인들은 회관으로 쓰이려고 그랬던 것 같다며 건물을 매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회관은 한 층을 더 올렸고 H빔으로 시공해 기둥은 없고 층고는 높였다. 4층은 을좌신향(乙坐辛向)으로 진영을 모신 봉심전, 3층은 임원 대기실과 집회실, 2층은 내수 대기실이며, 1층은 외수 대기실과 사무실이고 홀이 있다. 홀에는 테이블과 커피자판기를 놓아 이웃들도 차를 마시러 오는 대화하기 좋은 장소가 되었다. 지하는 식당과 기계실이다. 공사를 할 때 많은 사람이 모여도 안전하게 건물 보강을 하는 등 건물 안전에 특히 신경을 썼으며 지하에는 기둥을 추가로 만들어 더욱 튼튼하게 했다.
① 회관 주변 전경 ② 4층 봉심전 입구 ③ 2층 기도실 ④ 회관과 무선산 고락산의 위성지도(네이버 위성지도 위에 별도 표기)
회관 공사를 하던 2002년에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였고 우리나라는 월드컵 4강에 들었다. 작업자들도 우리나라 경기가 있는 날에는 같이 응원했고 한마음이 되었다. 아마도 이런 기운 덕분이었는지 공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신명 나게 일했고 작업은 큰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으며 다치는 사람도 없었다고 김선감은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회관이 있는 곳은 옛 여천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곳이기에 특히 주변의 민원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공사 시작 전에 이웃에 일일이 찾아가 인사를 했고 공사 기간에 이웃에서 불편한 것을 말하면 공사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바로 처리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회관 주변 사람과는 잘 지내고 있으며, 회관 앞에 식당 사장이 봉안치성날 회관 하늘에서 용이 날아가는 것을 봤다며 귀띔을 해주었다고 한다.
▲ 1층 홀 전경
① 지하 식당 ② 1층 사무실
봉안치성일이 7월 15일이기에 “여수는 우리나라 남단에 있고 7월 15일이면 한여름인데 더운 날 치성을 모셔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이날은 백중일로 도주님께서 금산사에 가셔서 오늘이 백종일(百種日)이니 인간 백종의 허물을 청산하는 날이니라. 인숙무죄(人孰無罪)요 개과하면 족하니라고 하셨기에 내가 아는 잘못뿐만 아니라 혹여 나도 모르게 지은 잘못이 있지 않은가 하는 마음으로 치성을 맞이하기에 더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김선감의 이 말에 어떤 시련을 겪어도 마음에 품은 뜻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질풍경초(疾風勁草)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여수는 묘하게도 금이랑 연관이 있다. 천자문에 금생여수(金生麗水)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 여수에서 금이 나온다는 뜻이다. 또한 시속에 여수에 와서 돈 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더불어 여천회관의 도로명 주소가 흥국로(興國路)다. 국가를 흥하게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의 충심을 가진 금싸라기 같은 도인이 많이 나와 세상을 크게 흥하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취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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