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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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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일심의 실천적 지향

일심의 실천적 지향



교무부 손영배



상제께서 화천하시기 전해 섣달 어느 날 백지에 二十四방위를 돌려 쓰고 복판에 혈식천추 도덕군자(血食千秋道德君子)를 쓰시고 … “이것이 남조선 뱃길이니라. 혈식 천추 도덕 군자가 배를 몰고 전 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니라. 그 군자신(君子神)이 천추 혈식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음은 모두 일심에 있나니라.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고 이르셨도다. (예시 50절)


  윗글은 무신(1908)년 12월쯤 상제님께서 후천 선경을 향해 나아가는 남조선 배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이 배는 배를 모는 뱃사공을 혈식천추 도덕군자로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인 도사공(都沙工)을 전명숙(全明叔, 1855~1895)으로 삼아 일심(一心)을 가진 자를 태우고 항해한다. 도사공이란 조세(租稅)로써 거둬들인 곡물을 운반하는 조운선(漕運船)이나 군함선에 소속된 뱃사공의 우두머리를 일컫는다.01 『전경』에 상제님께서 일심에 대하여 말씀하신 여러 구절이 있는데 윗글도 그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일심에 관해 쓴 글을 보면 ‘구천상제님을 따르고자 하는 한결같은 마음, 도와 합일시켜주는 불변의 마음, 마음의 집중, 충의의 마음, 한결같이 참된 마음’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02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한결같은 마음’이나 ‘충의 마음’, ‘마음의 집중’ 등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던 ‘도덕군자의 일심’은 개인적인 마음의 다짐만으로는 ‘만인의 추앙’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풀이가 ‘도덕군자의 일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상제님께서 높이 평하셨던 군자신의 일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보통 일심은 ‘한마음’이라고 한다. 한마음은 마음이 ‘어느 하나에 집중한 상태’를 말한다. 항상 이러한 마음을 오래도록 ‘한결같이’ 지속한다면 항상심으로써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넓게 보면 마음이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하나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하나에 집중한’ 일심의 예는 『전경』에도 나온다. 상제님께서 전주 용두리 윷판에서 노름꾼과 대적하실 때, 나올 윷을 먼저 말씀하시고 윷가락을 던졌는데 그대로 나온 것이다. 이를 궁금히 여기는 종도들에게 “던지는 법을 일정하게 하면 그렇게 되나니 이것도 또한 일심이라.”03고 말씀 하셨다. 이는 원하는 윷 패가 나오도록 던지는 방법을 일정하게 하려면 ‘마음을 집중한 것’도 일심이라고 하신 것이다.
  일심이 어떤 집중된 상태의 ‘마음가짐’이라고 했을 때, 그런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 마음을 ‘한결같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은 ‘무엇에 집중하는가?’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마다 집중하는 목표에 따라 ‘마음이 지향하는바’가 다양할 수 있다. 따라서 일심을 이해할 때는 반드시 ‘지향하는 바’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일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데 그 목적에 따라 사사로운 욕심을 지향하기도 하고 공적 이익을 지향하기도 한다. 만약 노름판이라면 노름꾼의 마음은 남의 돈을 따는 데 목적을 두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름꾼의 마음은 사사로운 욕심을 지향한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는 만인의 추앙을 받았던 군자신과 이들을 이끄는 도사공인 전명숙의 마음가짐을 들 수 있다.
  먼저 전명숙의 마음가짐은 1895년 2월(음력)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킨 수장으로 참형을 앞두고 받았던 심문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문: 그대는 해를 입음이 없는데 난을 일으킨 것은 무슨 까닭이오?
답: 일신의 해로움을 위하여 봉기함이 어찌 남자의 일이 되리요.
많은 백성이 원통하고 한탄해 하는 까닭에 백성을 위하여 해를 제거하고자 함이외다.
문: 그대가 고부 수령에게 해를 입음이 많지 않은데 무슨 연유로 이러한 거사를 하였는가?
답: 세상의 일이 날로 그릇되어 가기에 분개하여 한번 세상을 구하자는 의견이외다.
04


  위 심문에는 전명숙이 지향했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탐관오리들의 폭압과 학정으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제거하여 세상을 구하려 했다고 말한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이루어진 심문관과의 문답에서 그의 흔들리지 않았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지향했던 이러한 마음을 상제님께서는 “전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느니라.”05라고 평하기도 하셨다.


▲ 전명숙(전봉준) 동상(서울 종각역 6번 출구)



  상제님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일심의 예로 드신 적이 있다. 이는 최익현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일심의 힘이 크니라. 같은 탄알 밑에서 정낙언(鄭樂彦)은 죽고 최면암(崔勉菴)은 살았느니라. 이것은 일심의 힘으로 인함이니라.”06라고 말씀하셨다. 최익현이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일심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자 한 뜻에 한결같은 마음을 두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전명숙과 최익현의 공통점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직 백성을 위한 한마음을 지향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혈식천추 도덕군자의 마음가짐은 앞에서 인용한 예시 50절을 통해서 그 지향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구절은 후천 선경으로 향하는 남조선 뱃길에 관한 내용이다. 이 길을 가는 배는 혈식천추 도덕군자가 사공이 되어 몰고 간다. 혈식천추 도덕군자는 오랜 시간 동안[천추] 혈식[생고기]으로 제사를 받아 온 인물들로 도와 덕으로써 세상에 큰 공덕을 남겼던 이들을 통칭한 것으로 생각된다.07 상제님께서는 이들을 군자신(君子神)이라 칭하시며 “그 군자신이 천추 혈식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음은 모두 일심에 있나니라.”라고 하셨다.


▲ 여주본부도장 일념교



  군자신의 일심은 만인의 추앙을 받아왔다는 사실로부터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들이 ‘만인의 추앙’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고통스러운 삶에 신음하고 있던 창생들을 구제하는 데 ‘오직 한마음’이었고 그 일에 일생을 바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이 베푼 공덕에 대한 보답으로 도덕군자라 추앙하며 천추 혈식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군자신이 ‘창생을 구제하려 했던 한결같은 마음’은 이들을 이끄는 도사공인 전명숙의 마음과 그 지향하는 바가 일맥상통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심은 ‘마음의 집중’이나 ‘한결같은 마음’, ‘변치 않는 마음’으로 ‘어느 하나에 집중한 한결같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은 마음먹기에 따라 노름꾼처럼 사욕에 치우칠 수도 있고 공적인 대의를 목적으로 지향할 수도 있다. 만인의 추앙을 받았던 도덕군자의 일심은 사사로운 마음에 치우치지 않고 창생 구제를 위해 헌신했던 마음이다. 상제님께서는 군자신의 일심을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여기서 ‘일심’은 군자신과 같은 마음이며 그러한 마음이어야 남조선 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조선 뱃길은 상제님께서 삼계공사를 행하여 열어 놓으신 후천 선경을 향한 길이다. 후천 선경은 상제님의 광구천하(匡救天下)와 광제창생의 대의로 이룩되는 세계이다. 즉 포덕천하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포덕은 광제창생의 대의를 실천하는 일이다. 도전님께서는 포덕에 대하여 “상제님께서 광구천하(匡救天下)와 광제창생하시려고 하신 9년간의 천지공사를 널리 알려 지상낙원의 복을 받게 하는 일”08이라고 훈시하셨다. 지상낙원의 복을 받게 하는 일은 도덕군자가 실천하여 베풀었던 공덕과 같은 일이다. 그러므로 포덕은 도덕군자와 같이 일심을 실천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01「도사공」, 『한국고전용어사전』.
02 ‘구천상제님을 따르고자 하는 한결같은 마음’[이경원, 「대순진리의 무자기-정신개벽에 관한 연구」, 『대순사상논총』 13(2001), p.204.], ‘한 마음, 통일(統一)된 마음, 변함없는 한결같은 마음’[황현하, 「일심에 대한 소고」, 《대순회보》 9호(1988), p.11.], ‘인간을 도와 합일 시켜주는 불변의 마음’[고남식, 「人間을 도와 合一 시켜주는 힘이 일심」, 《대순회보》 33호(1992), p.5.], 그리고 ‘마음을 집중함, 충의의 마음, 한결같이 참된 마음’[이광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없이 베풀어 주리라」, 《대순회보》 247호(2022), p.19.] 등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이처럼 ‘진리에 대한, 구천상제님을 따르고자 하는, 변함없는, 집중’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어 일심이 설명되고 있지만 이를 일반화해 보면 ‘어느 하나에 집중한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03 권지 1장 18절.
04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사료(史料)아카이브,  『전봉준공초』, “開國五百四年二月初九日東徒罪人全琫準初招問目, ‘問: 汝는被害이음는起鬧는何故오 供: 一身의害을爲야起包미엇지男子의事가되리요衆民이冤歎는故로民을爲야除害코이니다.’, 乙未二月十一日全琫準再招問目 ‘問: 汝가古阜倅에게被害함이不多한데緣何意見을로此擧를行얏냐. 供: 世事가日非기로慷然와一番濟世잔意見이외다.’”
05 교법 1장 2절.
06 교법 3장 21절 참고.
07 김주우, 「전통 제례에서 혈식천추 도덕군자의 의미」, 《대순회보》 196호 (2017), p.111 참고.
08 『대순지침』,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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