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스물하나, 벌써 스물하나 “저는 도인입니다”
출판팀 이공균
대순청소년캠프에서 진행한 대학부 캠프는 이번이 두 번째다. “모험하는 마음으로 개최한 첫 번째 대학부 캠프가 성공리에 마무리된 덕분에 두 번째 캠프도 열 수 있었다”라는 오세기 교감(수련원 시설장, 아이들에겐 캠짱쌤으로 불린다)은 성공의 원인을 ‘따뜻함’에서 찾는다. 대순진리회에서 따뜻하게 품으려 하는 것을 이제는 아이들도 알고 있으며, 그 따뜻함이 친구, 지도교사와 공유되어 동질감과 소속감을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훌쩍 커버린 학생들 사이엔 첫 만남의 낯선 감정이, 6개월 만에 본다는 그 미묘한 어색함이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하는 10여 년간의 캠프 덕분에 낯섦보다는 반가움이, 어색함보다는 재회의 기쁨이 더 앞선다. 마치 가족 같은 끈끈함이다. 문득, 대순청소년캠프를 숱하게 취재하며 이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어른’이나 ‘도인’으로 대해본 적 있는지 고민했다. 결론은 ‘없다’였다. 기자의 편견이다. 그래서 대학부 캠프에서 젊은 도인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한다. 캠프가 시작되고 인터뷰할 학생을 찾아보지만 쉽지 않다. 결국 프로그램을 빙자해 학생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①인터뷰할 사람! ②≪대순회보≫에 나올 사람! 의외로 많은 학생이 손을 들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심상치 않은 질문을 하나 더 던진다. ③「심우도」 교화를 할 수 있는 사람! 남학생 1명, 여학생 1명이 아직 손을 들고 있다. 2명이라니, 땡잡았다. 빨리 MZ라고 불리는 젊은 도인, MZ 도인의 수도 수첩을 한번 들춰보자.
chapter 1. 자기소개
김민서.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김민서 내수입니다. 원래 꿈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였는데, 지금은 ‘남을 특별하게’ 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친절하게 안부를 묻고, 커피에 대해 알려주는 일이 너무 좋습니다. 특히 후배들을 가르치고 챙기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간혹 외국인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일이 생기는데, 대화를 나누고 싶어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성향은 I(내향형)인데 수도를 하며 자신감을 얻어서인지 E(외향형)처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게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수도 열심히 해서 선각이신 엄마가 상급 임원 임명을 모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게 꿈입니다. 엄마랑 저랑 제 후각이랑 셋이 손 꼭 잡고 끝까지 수도하겠습니다. (웃음) 신병윤. 안녕하세요. 공고를 졸업하고 전기분야 방위산업체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고 있는 신병윤 선무입니다. 도인으로서 ‘시작했으면 끝은 보자!’라는 마음으로 수도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을 포덕해 선무 임명을 모셨는데, 친구 사이에서 선각이라는 선을 지켜야 하는 게 제일 어렵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꿈이요? 흠….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대체복무를 마치고 나서도 전공을 살려 일을 하면서 수도 생활을 이어가지 않을까요? 그 속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게 가장 큰 꿈입니다.
chapter 2. 도인임을 자각했을 때
김민서. 제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는 도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엄마는 월성만 모시는 정도였는데, 태반에 문제가 있어 저를 사산할 뻔했습니다. 그때 방면분들이 모두 나서서 엄마의 건강을 챙겨주고, 제가 무사히 나올 수 있게 심고를 드리셨다고 해요. 이 덕분인지 저는 세상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고, 이때부터 어머니는 본격적으로 도를 닦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도를 닦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코로나19로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입도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덕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캠프에도 후각과 함께 왔어요!
신병윤. 부모님 두 분이 수도 생활을 할 때 만나서 저를 낳으셨습니다. 입도식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2011년에 한 기억이 있네요.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 도담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관에 계신 도인분들과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수도가 생활이 된 듯합니다.
chapter 3. 나에게 ‘도’란? 김민서.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해서 힘들었습니다. 그땐 어려서인지 도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이유 없는 오해와 시기를 받으며 힘들게 학교에 다녔었는데, 이 모든 문제가 저의 겁액임을 깨닫고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도를 원망하다가 도를 닦아야 살 수 있다고 바뀌게 된 거죠. ‘받다’가 아닌 ‘주다’로 인생철학이 바뀐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때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때와 맞물려 포덕을 시작한 시기입니다. 포덕을 하면서 저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도’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의 삶’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병윤. 저는 ‘도’를 ‘물’이라 생각합니다. 생명에 물이 꼭 필요하듯, 삶에도 도가 꼭 필요합니다. 도가 없으면 사람이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를 닦는 과정에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찾아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고난은 인간의 본질, 대순진리에서 말하는 ‘양심’을 찾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전 수도를 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자 한다면 안 이루어질 것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chapter 4. 대학부 활동이 필요할까? 김민서. 먼저 대학부보다 청년부 활동이 되면 어떨까요? 대학 진학한 학생과 취업을 선택한 학생 모두 대순진리회가 운영하는 청년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대학부 캠프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 또래 친구들과 도장 박물관에서 교화를 듣고 함께 퀴즈를 풀어보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방면에서도 또래 도인끼리 모여 주말마다 토론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좀 지루할 수 있겠다 싶어 걱정이 많았는데 의외로 재밌고, 알아가는 만큼 도심도 더 커지는 듯합니다. 특히 포덕해서 후각들과 함께 가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도장 박물관 북카페에서 또래 도인끼리 모여 북토크를 하거나, 주제 보물찾기 같은 걸 해서 찾은 주제로 토론해보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면 젊은 도인들의 도심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취업한 친구들은 참여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주말 행사면 저는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저에겐 이런 행사가 활력이 되거든요!
신병윤. 이번 대학부 캠프에서 큰 힐링을 받았습니다. 특히 박물관 교화와 특강이 너무 좋았습니다만 박물관 교화가 너무 짧아 아쉬웠습니다. 전 부산에 살아 대학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확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가까운 부산이나 부산 인근에서 이루어지는 대학부 활동이 있다면 참여하고 싶습니다.
교육의 성과는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조급함이 생길 수 있다. 대순청소년캠프도 2005년에 처음 개최됐다. 벌써 20년째다. 그 20년의 투자가 대학부 캠프의 성공이라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인터뷰에 참여한 신병윤 선무, 김민서 내수도 캠프를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 생긴 대학부 캠프에 어엿한 어른으로, 도인으로 다시 왔다. 이들을 이끈 건 또래 도인이라는 공감대와 캠프에서 꾸준히 쌓아 올린 따뜻한 인연일 것이다. 1984년 수도인 자녀들이 모여 만든 ‘대순학생회’를 부활하려 한다는 청소년수련원 오세기 교감의 노림수가 이제야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수도인 자녀와 젊은 도인들은 ‘우리의 앞날’이라며, 대순진리회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을 버티며, 팬데믹이라는 시련까지 이겨내고 드디어, 미래를 짊어진 희망이 한 걸음 움직였다. 우리는 그 장면을 ≪대순회보≫ 284호에서 함께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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