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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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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상제님 덕화로 얻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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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 덕화로 얻어진



구의8 방면 선무 황성혜




  저는 20대에 입도했습니다. 수도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가족의 반대로 월성만 모시며 수도해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부족한 정성이 늘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나도 선각들처럼 상제님 공사를 받들어야 하는데, 언제쯤 할 수 있으려나’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때마다 선각은 “그래도 월성을 꾸준히 모시고 상제님 받들고자 하는 마음을 놓지 않으면 좋은 기회가 올 거예요”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 집 지하실은 빗물이 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늘 고민이었습니다. 늦은 시간 직장에서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안방에는 선풍기가 틀어져 있는데 부모님께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딜 가셨지? 이 시간에 나가실 분들이 아닌데, 이상하다’ 하면서 아버지 친구분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저씨는 “오후에 방수페인트 칠한다고 했는데 지하실에 내려가 봐”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지하실로 내려가 보니 문은 안에서 잠겨져 있고 신나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찔렀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문을 두들겨 보고 큰소리로 부모님을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바로 119에 신고했습니다. 시간은 왜 이리 더딘지. 냄새는 더 강하게 났고 혼자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119가 왔고 구조대원들이 빠르게 문을 따고 들어갔습니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어머니는 뻣뻣한 장작처럼 보였고 살아계신 것처럼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나마 아버지는 부축을 받으며 나오셨습니다. 저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의식을 회복했고 허벅지 한쪽에만 화상을 입으셨습니다. 문제는 아버지 화상이 심각했습니다. 의사는 화재로 인한 화상치료도 어렵지만, 약품에 의한 화상치료가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페인트 성분을 알아내야 치료가 빨라진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소식을 선각에게 말씀드렸더니 병원에 오셨습니다. 선각이 페인트 가게부터 회사까지 전화하며 사정 얘기를 했지만, 페인트 회사는 혹여 자신들의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할까 봐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선각은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해보자고 하시며 심고를 드리고 페인트 회사 연구소로 연락을 하였습니다. 간곡하고 끈질긴 설득 끝에 간신히 정보를 알아냈고 의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의사는 쪽지에 적힌 성분을 보고 화상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화상치료는 그 부위를 긁어내고 치료해야 해서 엄청 고통스럽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저한테 너무 힘든 모습을 보이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당신께서도 피도 못 보실 정도로 심약하신 분인데 저를 대신해 아버지 치료실에 들어가셔서 곁을 지키셨습니다. 정말 어머니들은 강한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가 존경스러웠습니다. 의사는 치료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한 달은 걸려야 퇴원할 수 있고 흉터도 남을 거라고 했습니다.
  선각은 저에게 축시 기도를 모시고 법수를 부모님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매일 밤 정성껏 기도를 모시고 법수를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치료한 지 보름이 안 되었을 때 의사는 “약물 화상치료가 이렇게 빨리 회복이 되는 경우가 흔한 일이 아닌데…”라고 놀라워하며 퇴원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15일도 안 되어 부모님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셨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선각의 정성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부모님께서도 선각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정말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사고 후유증은 안정이 되었고 이 일을 겪으면서 ‘상제님을 믿고 정성을 들이면 덕화를 입게 되고 믿음도 강해지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제님의 덕화를 알았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은 은혜를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살리고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답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방면 선감께서는 이러한 제 마음을 아셨는지 도장에서 수호를 설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도장에서 좀 더 나은 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수호를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혼자 자유롭게 살아온 저는, 숙소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식사, 수면, 샤워, 휴식 같은 일상생활을 다른 사람과 같이한다는 것도 힘들었고, 성격도 예민한 저에게는 사람들과 소소하게 부딪히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렇게 힘들어하며 불평불만을 쏟아낼 때마다 선각은 저에게, 자신의 겁액을 닦는 과정이라고 교화해 주며 불편을 살펴 주고 제가 이런 겁액을 풀어내고 성숙하고 올바른 수도인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습니다.
  선각의 정성과 도움으로 시학공부도 하고 수강도 들어가며 도장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 나갈 무렵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선각은 금강산 연수를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멀미가 심해 차를 타고 멀리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여행도 가지 않았으며 회사 또한 가까운 곳으로 다녔습니다. 더군다나 금강산 연수는 많은 낯선 사람들과 5박 6일을 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연수를 가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그때의 저는 참 유별나고,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선각은 이런 저를 교화하며 달래기도 하며 성격과 체질을 바꾸는 게 수도하는 거라 하기에 마음을 돌려서 연수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첫 연수 때에는 멀미도 하고 좌충우돌 힘들기도 했지만, 연수를 다녀오며 이러한 겁액도 풀리고 도에 대한 더 큰 깨달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도전님에 대해서 더 알게 되어 믿음은 커졌습니다. 다음 연수 때에는 방면의 선사와 함께 가게 되어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고, 이후로는 연수가 나오면 기쁜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성숙하지 못했던 저는 도장에서 수호를 서며 시학공부, 수강, 연수를 들어가게 되었고 식당 당번도 할 수 있었습니다. 선각의 도움으로 때때로 드러나는 겁액을 이겨내며 더 성숙한 사람으로, 올바른 수도인으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상제님의 덕화와 선각들의 정성으로 된 것임을 알기에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수도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상제님께 다짐하며 수호를 열심히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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