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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과 ‘통섭’으로 사제동행
대진여자고등학교 교사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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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소사 대웅전
8월 11일, 1박 2일 일정으로 사제동행 답사를 다녀왔다. 사제동행의 의미와 통섭의 취지를 살려 1·2학년 학급별 학생 1명씩과 교사 13명, 모두 36명이 함께 했다. 주제는 충(忠)과 통섭(統攝). 신석정의 시와 삶을 통해, 또 효종의 북벌에 실제적 보탬을 위한 반계 유형원의 노력을 통해 충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석정문학관과 반계선생유적지를 답사지로 정했다. 또 어느 지역이라도 지질은 물론 식물, 역사, 문학이 연관되어 있다. 그러기에 변산반도를 입체적으로 답사하면서 교과와 관련된 내용을 융합적으로 이해하는 통섭이라는 교육적 목적에 맞춰 역사, 국어, 생명과학, 지리, 지구과학 전공 교사들이 참가했다.
내변산 트레킹과 적벽강 지질탐사
일찍 출발했으나 출근 시간에 겹쳐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된 데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비옷을 사서 지급하고 일부 일정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 향한 내변산탐방지원센터. 내변산의 싱그러운 가로수길을 즐기며 목표지점인 호랑이등긁게나무, 꽝꽝나무, 미선나무가 있는 곳까지 왔다. 호랑이등긁게나무와 꽝꽝나무는 변산이 북방한계선이고, 미선나무는 이곳이 남방한계선으로 모두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수종이다. 3종의 나무에 관한 학생들의 발표에 이어 생명과학 교사가 보충 설명을 했다. 생태탐방원에 도착하니 프로그램 인솔 교사 두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할 프로그램은 ‘다 같이 돌자 죽막마을 한 바퀴’. 젊은 해설사가 학생들과 자기 나이가 10년 차이라고 하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멋진 해설사 덕분에 학생들도 기분이 좋았고, 젊은 해설사는 학생들의 찰떡 호응에 흥겨운 목소리로 설명해 나가다 후박나무 앞에 섰다. 후박나무도 이곳이 북방한계선이다. 학생의 발표에 이어 해설사가 부연 설명을 했다.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신에게 제를 지내는 수성당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적벽강으로 내려왔다. 페퍼라이트, 주상절리, 단층, 돌개구멍 등에 관해 학생이 발표하고 해설사와 지리 교사, 지구과학 교사가 설명을 곁들였다.
숙소, 낙조, 감탄에 힘듦도 씻겨가고
오후 4시쯤 숙소를 배정하고 입실하자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감탄사가 연발했다. 숙소가 웬만한 호텔보다 쾌적하고 좋은 데다가 바다 전망이었다. 학생들은 교통 사정으로 오늘 바다에 못 간 아쉬움을 토로했다. 선생님들은 회의를 거쳐 다음 날 일정을 조정하여 격포해수욕장을 가기로 했다. 선생님들 몇 분이 낙조가 장관이라며 1km 거리에 있는 격포해수욕장으로 우산을 쓰고 갔다. 우천으로 학생들이 그 멋진 풍경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7시 20분경 잠시 비가 멈추더니 서쪽 바닷가 구름 사이로 해가 얼굴을 내밀며 주위를 붉게 물들였다. 게다가 동쪽 하늘에는 완벽한 반원의 쌍무지개까지 떴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함성이 들려왔고 객실에 있던 학생들도 밖으로 나와 동화 같은 풍경에 너나없이 즐거워했다.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준비 과정에서의 힘듦이 한순간에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채석강과 격포해수욕장, 그리고 부안청자박물관
아침을 먹고 격포해수욕장(채석강)에 내려 학생들에게 40분 정도 시간을 줬다. 선생님과 함께 채석강을 둘러보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맨발로 걸으며 바다를 즐기는 학생들도 있었다. 사제동행 체험학습은 집-학교-학원의 쳇바퀴인 학생들에게 휴가를 겸해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먼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긴 학생도 있고 둘 또는 셋이 나란히 걷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 시간을 소중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져 1시간이 지나도록 내버려두었다. 다음 목적지는 부안에 있는 청자박물관. 건물이 커다란 그릇을 닮았는데 국보로 지정된 ‘청자 상감당초문 완(碗)’을 모델로 건축했다고 한다. 청자를 조사한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교장 선생님이 상감청자 제작 방법, 청자의 가치와 문화적 특징에 관해 설명했다. 청자 도요지로 전남의 강진과 전북의 부안이 유명한데 특히 부안은 상감청자 제작지였다고 한다. 마이크가 문화해설사에게 전해졌고 우리는 청자의 역사, 특징, 용도 등의 설명을 들었다.
내소사
내소사 일주문 앞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가 청국장이라 학생들 입맛에 맞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연한 청국장뿐 아니라 반찬도 맛깔났다. 학생들도 맛있다 하며 더 요청해서 먹었다. 식당 주인이 아끼지 않고 서비스해 주고 음료수까지 하나씩 학생들에게 건넸다.
일주문 앞에 있는 천년의 느티나무가 할아버지 당산나무다. 매년 1월 14일에 스님과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일주문부터 약 600미터가량은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 중 하나라 불리는 내소사 전나무숲길로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상쾌하게 걷기 좋은 길이었다. 내소사는 전나무숲길, 대웅보전의 꽃살문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중간에 멈춰 전나무에 관한 학생의 발표를 들었다. 이어 걸으니 단풍나무 가로수길에 곧바로 천왕문이 나왔다. 또 커다란 느티나무가 시선을 붙잡았으니 할머니 당산나무로 여기서도 제를 지낸다. 그 왼편에 고려 동종 복제품이 있었다. 밀랍주조공법으로 실물과 똑같이 만들었다고 하니 실물을 못 봤어도 아쉽지 않았다. 학생의 발표와 더불어 교장 선생님이 맥놀이와 관련된 한국 종의 특징을 설명했다. 법당 안 부처님께 예를 표하고 대웅보전 꽃살문에 관해 준비한 학생의 발표를 들었다. 불상 뒤로 가면 백의관음을 볼 수 있다는 교장 선생님의 안내에 몇몇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직접 보러 불당 안에 들어갔다.
석정문학관
마지막 코스인 석정문학관에 도착했다. 학생 발표에 이어 나이 지긋하신 해설사의 안내로 신석정의 생애와 시, 그리고 교류했던 시인들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신석정의 시 「꽃덤불」로 해방 전후 시대상과 그가 추구했던 독립 국가의 모습에 대해 간략히 강의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학생이 내년에도 이런 프로그램을 하느냐고 물었다. 설악산생태탐방원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1학년 학생들이 꼭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휴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체험학습을 통해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의 소감문이 나의 이런 생각을 더 확고히 하는 것 같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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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제동행 체험활동은 정말 좋은 프로그램들이 알차게 짜여 있어서 어느 하나도 아쉬운 것이 없었다. 자연과 전통문화를 접하며 새로움을 배우고 낯선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으며 순간마다 특별한 추억을 남긴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평소 어렵게만 느껴졌던 선생님과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던 점이 정말 좋았다.” (1학년 전○리)
“충은 이순신이나 안중근과 같은 업적을 말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신석정 시인처럼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친일문학지의 원고청탁을 거절하며 지조를 지키는 것도 나라를 위한 소중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학년 유○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위에 동그랗게 뚫린 ‘돌개구멍(구혈)’이었다. 적벽강 돌개구멍을 직접 조사하고 발표하면서 이 구멍이 오랜 시간 동안 물의 회오리가 작은 돌을 회전시켜 암반을 깎아내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자연의 힘과 시간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2학년 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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