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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이야기 : 『전경』 속 등장인물들의 인연 6

『전경』 속 등장인물들의 인연 6
1907년

 

 

교무부 정나연

 

▲ 피란동 순흥 안씨 재실



  지난 글에서는 1907(정미)년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 신경원, 김경학, 차경석, 박공우의 인연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같은 해 『전경』에 등장하는 안내성, 박장근, 문공신, 황응종, 신경수, 고부인, 이화춘, 임상옥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 중 안내성, 박장근, 문공신, 황응종, 신경수는 차경석처럼 일진회원이었고 고부인은 차경석의 이종누이다. 이화춘은 박장근의 이웃 마을 사람이어서 박장근과 함께 소개하고 임상옥은 별도로 다루고자 한다.
  안내성(安乃成)이 상제님을 따르게 된 인연에 대해서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안내성은 자신이 어릴 때 집을 떠난 아버지를 찾아다니던 중에 어머니와 함께 한동안 정읍 대흥리에 살았다. 그러다 장성하여 다시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하루는 ‘천선생(天先生)’을 찾아 모시라는 꿈을 꾸고 함께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내성이 태인에서 정읍으로 가는 길에 대각교에서 상제님을 만나 뵙고 따르기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그리고 교운 1장 21절에 “이후에 일진회원인 안내성ㆍ문공신(文公信)ㆍ황응종(黃應鍾)ㆍ신경수(申京洙)ㆍ박장근(朴壯根) 등이 상제를 추종하였도다.”라는 구절로 볼 때, 안내성도 일진회원이었으므로 정읍 대흥리에 상제님께서 계실 때 따르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안내성은 몹시 가난해서 정해진 거주지가 없었다.01 힘이 장사인 데다가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02 그가 참여한 공사 중에는 대흥리에 인접한 피란동에 있는 자신의 가문인 순흥안씨 재실에서 행해졌던 수기를 돌리는 공사가 있다. 상제님께서는 “이제 천하에 물기운이 고갈하였으니 수기를 돌리리라”라는 말씀과 함께 재실의 우물을 대[竹]가지로 한 번 저으시면서 공사를 시작하셨다.03 이 공사는 “천지에 수기(水氣)가 돌 때 와지끈 소리가 나리라”04라고 하셨던 『전경』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 재실 앞쪽 우물로 추정되는 곳의 위치



  안내성은 이등박문(伊藤博文)과 관련한 공사에도 참여하였다. 이등박문은 1905년 조선에 통감부가 설치된 후 부임한 초대 통감으로 한국 병탄의 기초공작을 수행한 인물이다.05 당시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 계셨던 상제님께서는 안내성에게 곤봉으로 마룻장을 치라고 하시며 “이제 병고에 빠진 인류를 건지려면 일등박문이 필요하고 이등박문이 불필요하게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전경』에는 “그 뒤 이등박문이 중국 할빈 역에서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에게 암살되었다.”06라고 나오는데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 일은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후 3개월여가 지난 1909년 10월 26일(음력 9월 13일)에 일어났다. 이 외에도 안내성은 후천의 음양 도수를 조정하는 공사,07 역도를 조정하는 공사08 등 여러 공사에 참여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그에게 “불의로써 남의 자제를 유인하지 말며 남과 다투지 말며 천한 사람이라 천대하지 말며 남의 보화를 탐내지 말라. 보화라는 글자 속에 낭패라는 패 자가 들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기도 하셨다.09
  박장근(朴壯根)은 순창군 농암(籠岩)에 살았던 인물로 차경석과는 일진회원의 인연으로 알게 되어 상제님을 따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농암은 대흥리를 중심으로 볼 때 동남쪽 방향에 있으며 직선거리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로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1907년 6월부터 두어 달 동안 상제님께서는 차경석의 집인 정읍 대흥리에 계시면서 박장근의 집을 왕래하셨다. 하루는 박장근의 집에서 정읍으로 떠나려 하실 때 차경석이 와서 배알하며 “길이 질어서 한 걸음도 걷기 어렵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양지에 “칙령 도로 신장 어재 순창 농암 이우 정읍 대흥리(令道路神將 御在淳昌籠岩 移于井邑大興里)”라고 쓰신 후에 그것을 물에 담궜다가 끄집어내어 짜고 화롯불에 사르셨다. 그러자 갑자기 큰비가 내리다가 그치고 남풍이 불더니 다음 날에 땅이 굳어졌다.10
  박장근의 집에서 상제님께서는 조선의 국운을 돌리는 공사를 행하셨다. “이곳에 큰 기운이 묻혀 있으니 이제 그 기운을 내가 풀어 쓰리라. 전명숙과 최익현이 있었으되 그 기운을 쓸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여 동학이 성공하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11 그리고 공사에 최수운을 청하고 그를 대접하기 위해 박장근에게 식혜 한 동이를 빚게 하셨다. 이날 밤 초경(初更: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이 되어 식혜를 큰 그릇에 담아서 인경 밑에 놓으신 후에 “바둑의 시조 단주(丹朱)의 해원도수를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시며 공사를 보시니 과연 최수운이 와서 공사에 참여하였다.12 이 공사 외에도 그는 종도들과 함께 고부화액(1907년 12월~1908년 2월)을 겪었는데 감옥에서 풀려 난 후 상제님을 원망하면서 불경한 패설을 일삼았다. 그 후 의병에게 매를 맞아 뼈가 부러지는 일을 당하기도 하였다.13
  이화춘(李化春)은 1907년 10월경 상제님께서 순창군 농암 박장근의 집에서 가까운 마을인 피노리(避老里)를 거쳐 태인 행단으로 행하실 때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순창군 피노리에 살았는데 박장근의 집이 있는 농암과는 산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었다. 이렇게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살았던 것으로 볼 때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였을 것 같다. 그리고 박장근이 일진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화춘 또한 일진회와 인연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화춘이 살았던 피노리는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던 전명숙이 체포된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녹두장군 전봉준관’이 건립되어 있다. 상제님께서는 이곳 피노리에서 사명기를 세워 전명숙과 최수운의 원을 풀어 주는 공사를 보셨다. 상제님께서는 이화춘에게 누런 개 한 마리를 잡고, 술 한 동이를 마련하고, “이곳에서 전 명숙이 잡혔도다. 그는 사명기(司命旗)가 없어서 포한(抱恨)하였나니 이제 그 기를 세워주고 해원케 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사명기 한 폭을 지어 높은 소나무 가지에 달았다가 떼어서 불사르시고 최수운을 해원케 하셨다.14 이 공사 이후 두어 달이 지나 고부화액이 있었는데 이화춘도 이때 함께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08년 1월 10일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간 후 상제님을 원망하고 불경한 패설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3월에 의병이 쏜 총에 맞아 죽었는데 상제님께서는 글을 써서 불사르심으로써 천노(天怒)를 당한 그를 귀신으로서 위안하셨다.15
  다음으로 소개할 인물은 문공신, 황응종과 신경수이다. 문공신이 상제님을 만난 것에 대해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가 일진회에 회의를 품고 활동을 중단하고 있던 중 어떤 사람이 찾아와 ‘순창 회문산 밑에 이인(異人)이 났다더라’라고 하는 말을 듣고 회문산을 향해 갔다. 중도에 있던 농바위 주막을 지나려 할 때 그곳에 계시던 상제님을 만나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문공신이 상제님을 따른 이후에 그와의 인연으로 황응종과 신경수가 상제님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공신과 황응종은 고부 와룡리에 거주하였는데 바로 옆집에 터를 잡고 살았던 아주 가까운 이웃이다. 신경수는 문공신의 벗으로16 와룡리에서 약 500m 정도 거리의 이웃 마을인 운산리(雲山里)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이 지역에 오시면 두 마을에 사는 세 사람의 집을 왕래하시면서 천지공사를 보기도 하셨다. 대표적인 공사로는 1907년 12월 선기옥형(璿璣玉衡) 도수를 정하시는 것으로 신경수의 집에는 저울 갈고리 도수, 황응종의 집에는 추 도수, 문공신의 집에는 끈 도수를 보셨다. 그리고 신경수 집에 일월 대어명(日月大御命) 도수를, 문공신의 집에는 천지 대팔문(天地大八門) 도수를 정하시고 세 사람의 집에 밤낮으로 번갈아 다니시며 공사를 행하셨다.17
  문공신(文公信)은 고부화액 때 감옥에서 순검들에게 옆구리를 채여 위독하게 된 적이 있었다. 이때 상제님께서는 “급한 병이니 인곽을 써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며 종도들을 관처럼 둘러 세우시고는 직접 소변 찌끼를 받아서 조금 잡수시고 문공신에게 먹게 하셨다. 이것을 황공이 여기며 마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돌리고 회복하였다.18 그러나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로 상제님을 원망하고 불경한 패설을 일삼았다. 어느 날 상제님께서 그의 집에 오셨을 때 고부화액을 겪을 당시의 음식값을 갚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불쾌한 어조로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그 돈을 독조사 도수에 썼음을 말씀하셨다. 그 후 박장근과 이화춘이 패설을 일삼다 화난을 겪은 사실을 들으신 상제님께서는 문공신에게 마음을 바로잡을 것과 천노가 있음을 알려주셨다.19 또 그가 고부화액 때 얻은 병이 도졌을 때 이를 치유해 주셨다.20 문공신은 상제님을 따르며 물화상통 공사,21 선기옥형(璿璣玉衡) 도수를 정하는 공사,22 독조사 도수에서 주인으로 참여한 공사,23 후천의 음양 도수를 조정하는 공사24 등 여러 공사에 참여하였다.
  황응종(黃應鍾)은 상제님을 따르기 전에 객망리 강씨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서 그곳의 강씨 문중 사람들과 친분이 있었다.25 그는 상제님에 대한 믿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일화를 가진 인물이다. 황응종은 아들이 병으로 위급해졌을 때 청수를 떠 놓고 상제님께서 계신 곳을 향하여 아들의 병이 치유되기를 두 손 모아 발원함으로써 아들의 병을 치유한 일이 있었다.26 그가 문공신의 치유를 도왔던 일화도 있다. 문공신이 고부화액으로 얻은 병이 도져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을 때 옆집에 살고 있던 황응종이 상제님을 찾아뵙고 그 상황을 아뢰었다. 상제님께서는 “그를 죽게 하여서야 되겠느냐. 찹쌀 아홉 되로 밥을 지어 먹이라”라고 일러주셨다. 황응종이 돌아가서 그대로 문공신에게 전하니 그는 그대로 믿고 행하여 병에 큰 차도를 보고 병석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27
  황응종은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운장주(雲長呪)를 알려주신 공사에 참여하였다. 그는 노랑 닭 한 마리를 올렸는데 상제님께서는 그날 밤 김형렬에게 그 닭을 잡아서 삶게 하셨다. 그리고 함께 있던 종도들과 나눠 드신 후 운장주를 지어 종도들에게 단번에 외우게 하셨다.28 이 외에도 황응종은 조선의 국운을 돌리는 공사,29 선기옥형 도수를 정하는 공사,30 후천의 음양 도수를 조정하는 공사31 등 여러 공사에 참여하였다.
  신경수(申京洙)는 고부 운산(雲山)에 살았던 인물이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백지에 저수지와 물도랑의 도면을 그려 불사르셨는데 이 공사는 운암강(雲岩江)의 물길을 김제 만경(金提萬頃) 들판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이때 도면을 그리신 후 종도들에게 “이곳이 운산(雲山)이라.”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같은 명칭을 가진 운산에 살고 있었던 신경수가 이 공사에 참여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운암강(雲岩江) 물은 김제 만경(金提萬頃) 들판으로 돌려도 하류에서는 원망이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는 대한불갈(大旱不渴)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 나는 전북(全北) 칠읍(七邑)에 흉년을 없애리라”라고 하셨다.32 현재 운암강의 물줄기는 유역변경식발전소인 섬진강 수력발전소를 통해서 김제평야로 흐르고 있다.
  신경수는 상제님께서 그의 집을 수명소(壽命所)로 정하시는 공사에도 참여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공사 중에 “경수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정하노니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고 혹 단점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지 말라”라고 하시며 이 공사의 의미를 말씀하셨다.33 1907년 12월 신경수는 그의 집에서 순검들을 기다리고 계셨던 상제님과 함께 고부 경무청으로 압송되어 고부화액을 겪었다.34 이 외에도 그는 선기옥형 도수를 정하는 공사,35 후천의 음양 도수를 조정하는 공사,36 역도(逆度)를 조정하는 공사37 등 여러 공사에 참여하였다. 상제님께서는 동곡약방을 설치하실 때 크고 작은 궤를 2개 만드셨는데 그중 작은 것은 둔궤라고 하시어 공부하실 때 72현의 72둔궤로 쓰시다가 신경수의 집에 두셨다.38
  고부인(高夫人)의 본명은 고판례로 차경석의 이종매(姨從妹)이며 남편을 잃고 대흥리에 살고 있었다.39 1907년 11월 초 상제님께서 정읍 대흥리로 가실 때 태인 고현내 행단에서 차경석에게 수부(首婦)가 들어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11월 3일 차경석이 상제님을 모시고 자신의 집에 도착하여 고부인을 천거하였다. 이로부터 그녀는 상제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고부인은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몇 번 등장하는데 그중에는 1908년 2월 상제님께서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 하시며 행하신 무당 도수 공사가 있다.40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그녀가 안질에 걸렸을 때,41 그녀의 모친이 단독을 앓았을 때 치유해 주셨다.42


▲ 대흥리 차경석의 집 전경


  임상옥(林相玉)은 김제 수각리(水閣)에 살았던 인물이다. 수각리는 현재 김제시 하동 지역이다. 『전경』에서는 그가 상제님을 따르게 된 인연 관계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임상옥이 『전경』에 등장한 시기는 고부인과 비슷한 11월 초여서 언뜻 보면 두 사람이 비슷한 때에 상제님을 따르기 시작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상제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11월에 동곡에서 임상옥이 등장하는 사기(沙器)를 옮기는 공사를 행하신 후 정읍 대흥리로 가셔서 고부인을 만나신다. 사기를 옮기는 공사는 10월부터 시작되어 동곡에서 마무리된다. 10월에 순창 농암에 계셨던 상제님께서는 김형렬에게 명하시어 김광찬, 이도삼 등과 함께 10일 동안 일만 이천 개의 시(侍) 자를 쓰게 하셨다. 그리고 11월 초에 동곡에 오셔서 양(羊)을 잡아 피를 손가락에 묻혀 종도들이 써놓은 일만 이천 시(侍)란 글자에 바르셨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사기를 김제(金堤)로 옮겨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때 임상옥이 들어왔다. 상제님께서는 청수를 담았던 사기그릇을 개장국에 씻어 임상옥에게 주셨다. 며칠 후에 그릇의 사용처를 여쭈니 “인부를 많이 모아 일할 때 쓰라”라고 말씀하셨다.43 이 일화에서 임상옥이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던 곳으로 들어왔다는 것으로 볼 때 이전부터 상제님을 따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09년 2월에 있었던 공사에도 등장한다. 상제님께서는 2월 9일 김제 내주평(金堤內主坪)에 사는 처남 정남기의 집을 찾으셨는데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을 찾아보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까지 등불을 밝히시면서 여러 집을 다니신 후 임상옥의 집에 오셨다. 그의 집에 도착한 상제님께서는 글을 쓰신 후 종이를 가늘게 잘라서 이으셨는데 그 길이가 뒷담에서 앞대문까지 꼭 맞았다.44 이 공사를 보시고 상제님께서는 같은 마을의 김문거(金文巨)에게 가셨다가 만경 삼거리(萬頃三巨里) 주막집에서 쉬셨다. 이때 지나가는 중에게 돈 세 푼을 주셨다. 그리고 김자현에게 “오늘 오후에 백홍(白虹)이 관일(貫日)하리니 내가 잊을지라도 네가 꼭 살펴보도록 하라”라고 하셨는데 말씀 그대로 백홍이 관일하였다.45
  지금까지 1907년 『전경』에 등장하기 시작한 인물들의 인연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해에는 차경석과 함께 일진회 활동을 했던 안내성, 박장근, 문공신, 황응종, 신경수가 상제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안내성과 문공신은 이인을 찾던 중에 상제님을 만나서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문공신과의 인연으로는 황응종과 신경수가, 박장근은 일진회 활동을 통한 차경석의 인연으로 상제님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장근의 인연으로 짐작되는 인물로는 이화춘이 있고 차경석의 인척으로 고부인이 등장한다. 임상옥은 『전경』에 인연 관계가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 그가 상제님을 따르게 된 경위를 알 수 없다. 다음 글에서는 1908년에 『전경』에 등장하기 시작한 인물들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01 신상미, 「피란동 안씨 재실과 안내성 종도」, 《대순회보》 143호 (2013), p.38 참고.
02 안내성 종도 후손 안◯◯ 씨 인터뷰(2015.09.18).
03 공사 3장 21절 참고.
04 예시 51절.
05 종단 홈페이지 ‘전경용어사전’.
06 행록 5장 5절 참고.
07 공사 2장 16절 참고.
08 공사 2장 19절 참고.
09 교법 1장 38절.
10 권지 1장 13절 참고.
11 공사 1장 27절.
12 공사 2장 3절 참고.
13 교운 1장 31절 참고.
14 공사 3장 2절.
15 교운 1장 31절 참고.
16 행록 4장 46절 참고.
17 예시 31절 참고.
18 공사 3장 59절.
19 교운 1장 31절 참고.
20 제생 35절 참고.
21 공사 2장 23절 참고.
22 예시 31절 참고.
23 행록 3장 65절 참고.
24 공사 2장 16절 참고.
25 종단역사연구팀, 「전경 지명 답사기 : 고부 와룡리(古阜 臥龍里)」, 《대순회보》 196호(2017), p.38 참고.
26 권지 2장 12절 참고.
27 제생 35절 참고.
28 교운 1장 22절.
29 공사 2장 3절 참고.
30 예시 31절 참고.
31 공사 2장 16절 참고.
32 공사 1장 28절 참고.
33 예시 46절 참고.
34 행록 3장 55절.
35 예시 31절.
36 공사 2장 16절.
37 공사 2장 19절.
38 공사 3장 10절.
39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59) : 행단에서의 공사와 사기(邪氣)를 옮기는 공사」, 《대순회보》 123호 (2011), p.14 참고.
40 공사 3장 33절.
41 권지 2장 34절.
42 제생 41절 참고.
43 공사 2장 14절.
44 행록 5장 6절.
45 행록 5장 6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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