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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탑,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출판팀 김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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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은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붉은 두 기둥 위로 직사각형의 높다란 팔각지붕을 얹은 일각문이 그렇고, 허벅01을 멘 여인의 그림자가 능소화 줄기 따라 연못에 잠기는 자양당 앞 정원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숭도문을 지나 완만히 경사진 길 위에 있는 흰빛의 청계탑(靑鷄塔), 그 뒤로 단청으로 화사한 정심원, 그 옆으로 봉강전이 어우러진 정심원 마당(정원)도 그러한 곳이다. 그 아름다움을 하나씩 짚어가며 득도와 성도를 표현한 청계탑과 그 주변을 돌아 보고자 한다. 숭도문 안에 들어서서 상제님 전에 읍을 하고 도전님께 인사를 드린 후 정면을 바라보면 하얀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청계탑이 눈에 들어온다. 그 청계탑까지 이어진 보도블록 길은 정각원과 임원동이 끝나는 지점에서 흰색의 사구석02으로 바뀐다. 숭도문 안쪽 읍배를 드리는 곳은 보도블록을 깔아 눈이 부시지 않게 하고 청계탑이 있는 곳은 사구석으로 길을 놓아 밝게 빛나게 하였다. 또한 돌의 흰빛이 구름처럼 보이게 하여 천상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종고각 앞과 청계탑은 같은 길 위에 있어 물리적으로 분리하거나 차별을 두지 않았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물리적인 높이를 둠으로써 임금과 신하, 신과 인간의 세계를 뚜렷이 구별했던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종묘와는 차이가 있다. 두 세계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도 청계탑이 있는 곳은 완만한 경사로 높이를 두어 신성함을 배가해 주고 있다. 그리고 종고각 앞은 빨간색과 회색의 보도블록을 교차해 놓음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종고각에서 청계탑으로 발길을 옮기면 잠그지 않은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 가는 것 같다. 동화 속에 좁은 숲길을 지나면 넓은 마을이 나오고, 나무꾼이 동굴을 지나 너른 세상을 발견하는 장면인 듯 열쇠 구멍 같은 좁은 길을 지나 정각원 옆 사구석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면 숨어있던 세계가 활짝 열린다. 이곳에 서면 왼편의 소나무에 가려진 물 떨어지는 연못과 가운데의 10층 청계탑, 그리고 오른편의 봉강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구석이 새로운 세계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정면을 바라보면 탑의 원형 좌대 1층과 돌병풍의 지붕선이, 원형 좌대 3층과 정심원의 2층 난간이, 그 위의 옥개석과 정심원 3층 난간 등이 원과 선으로, 각과 직선으로 만나 평면의 정심원에 청계탑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청계탑 뒤의 정심원은 높지도 낮지도 않아 답답하지 않으면서 아늑함을 선사한다. 완만히 경사진 길을 3분의 1쯤 더 올라가면 비 온 뒤 산허리를 두른 구름이 막 걷힌 것처럼 경사진 길에 살짝 감춰진 청계탑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떡메병03에 꽃이 둥실 떠 있는 듯 원형의 둥근 좌대와 8각, 4각의 탑이 9층 운형 아래에 피어 있다. 탑 옆에는 청계탑 쪽으로 구부러진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소나무가 없다면 삭막하였으리라. 나무로 된 건물과 돌로 된 건축물은 딱딱하고 생동감이 없다. 그런데 사계절 늘 푸른 소나무로 인해 이곳은 살아있는 곳으로, 생기가 넘치는 곳으로 깨어난다. 마치 득도(得道)와 성도(成道)가 꿈이 아닌 현실임을 알려 주는 것 같다. 완만한 경사길이 끝나고 평평한 마당에 들어서면 청계탑을 중앙에 두고 병풍은 좌우로 대칭을 이뤘고, 정심원 1층 배흘림 돌기둥은 위엄과 경건함을 잊지 않는다. 탑은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게,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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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탑 앞에 서서 탑과 둘레를 보면 둘레석04은 팔각으로 되어 있지만 완전한 팔각이 아니며 탑 또한 중앙이 아닌 뒤로 살짝 물러나 있다. 마치 달항아리의 밑굽이 주는 부조화의 조화를 보는 것 같다. 달항아리는 몸체는 큰데 밑굽이 작아 보는 이로 하여금 달처럼 허공에 둥실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정면의 둘레석은 길고 뒤는 작아 비대칭의 모습이며 탑은 팔각 안 정면에서 ⅔지점에, 좌우 옆면에서 중간지점에, 뒤에서 ⅓지점에 있다. 이런 구조상의 이유로 탑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원형 좌대 1층 심우도를 보면 심심유오에서 멀어졌던 거리가 면이수지에서 가까워진다. 그러다가 다시 도지통명에서 멀어진다.05 이는 구도(求道)의 과정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가 느껴지고 다가오는 때는 면이수지처럼 진심으로 갈구하고 정성을 들일 때 이거나 어렵고 힘들어도 도를 찾을 때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심심유오처럼 진리를 아예 모르거나 도지통명처럼 진리를 얻어 자연과 내가 일체가 되면 도는 느껴지지도 않고, 있어도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정말 절묘하게 진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탑의 정면 중앙 난간대 아래에는 하엽석이 없다. 마치 문을 열고 들어오라는 것처럼, 깨달으면 열리고 깨닫지 못하면 닫힌 세계를 말하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난 마음을 닦아 둥글둥글하게 하라는 듯 상극의 창생들을 구해서 진리와 하나가 되라는 듯 뾰쪽한 잔돌에 둘러싸인 청계탑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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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로 가는 서쪽 계단을 올라 정심원 처마 끝 선에 서서 아래를 보면 하얀 사구석 위에 정심원 1층 12개의 배흘림 돌기둥이 어우러져 구름 속에 떠 있는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을 준다. 더더욱 정심원의 현판에서 院(원)은 가려 보이지 않고 ‘正心(정심)’만이 보여 바른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듯하여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이곳에 서서 청계탑을 보면 소나무잎에 탑의 24절기 부분이 가려져 있어 소나무 자체가 변화하는 절기요 그 위에 드러난 28수는 항상 빛나고 있는 하늘을 말해주는 것 같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06는 서쪽을 흙으로 된 산으로 부드럽게 그렸고 동쪽은 돌로 된 산을 날카롭게 그려 유교의 사상을 태극으로 잘 표현하였다. 정심원 정원은 동북쪽 청계탑 영역과 남서쪽의 빈 공간이 태극처럼 표현되어 대순이 원이며 원이 무극이고 무극이 태극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봉강전의 풍경(風磬)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항상 깨어 있으라 경종(警鐘)을 울리고, 시간에 맞춰 대원종(大願鍾) 소리가 울리면, ‘종소리의 울림이여 온누리가 미혹에서 깨어나리라…. 오방제군과 이십사절이 서로 응하고 이어받아 이 지상에 만상을 이루게 되니 덕화가 초목에도 입혀지고, 보살핌이 만방에 미침이로다’07라는 종운이 울려 퍼지며 이곳은 인간의 세계이면서도 신의 세계가 된다. 청계탑이 있는 정심원 정원은 옛 선인이 그린 그림 속의 세상이 꿈이 아님을 보여 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01 제주도 지역에서 물을 길어 운반하는 용구. 02 보통 화강석으로 만들며 고열의 불꽃을 이용하여 석재 표면을 처리한다. 이 때문에 비가 와도 신발이 미끄러지지 않는다. 03 원통형의 몸체에 입이 크게 벌어진 형태로 백자항아리라 부르기도 함. 꽃을 꽂는 화병이었던 것으로 추정. 「백자 청화동정추월문 항아리」, 『문화재청』. 04 둘레석은 기둥돌(동자석주)과 그 사이를 연결하는 난간석(돌란대)으로 되어 있다. 난간석 아래에 일정 간격으로 연잎 모양의 받침석을 두는데 이를 하엽석(荷葉石)이라고 한다. 정면의 가운데 난간석 아래에는 하엽석이 없다. 05 청계탑의 심우도는 정면에서 볼 때 왼쪽의 심심유오와 오른쪽의 도지통명이 같이 보인다. 병풍 쪽에서 청계탑의 심우도를 보면 면이수지와 성지우성이 같이 보인다. 06 겸제 정선이 1737년에 내금강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진경산수화풍이 잘 드러난 작품. 07 ‘鍾聲鳴兮여 宇宙警應이로다..., 五方帝君과 二十四節이 相應相續하야 在地成形하니 化被草木에 賴及萬方이로다’의 해석. 「종운 : 종운(鍾韻)」, 《대순회보》 206호 (2018), pp.60~6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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