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영과 야망심을 경계하라
교무부 박병만
.jpg)
“천자(天子)를 도모하는 자는 모두 죽으리라” 하셨으니 이는 수도인들의 허영과 야망심을 경계하신 말씀이다. (『대순지침』, p.42)
차경석(車京石, 1880~1936) 종도가 상제님의 명을 좇아 여러 날 동안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지쳐서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문 앞의 모시밭 가에 이르러 잠에 취하여 혼미에 빠져있었다. 이것을 보시고 상제님께서는 “천자(天子)를 도모하는 자는 모두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01 위의 도전님 훈시는 이 말씀을 빌려 우리에게 교훈하신 내용이다. ‘천자’는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천명(天命)을 부여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절대적 권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으며, 중국의 고대 왕조인 은(殷)ㆍ주(周) 이후로 왕을 가리키는 칭호로 사용되었다. 진시황(秦始皇)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스스로 황제(皇帝)라고 칭하였는데, 이후로 중국의 천자는 황제를 정식 칭호로 삼았다. 상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평소 차경석의 마음을 헤아리셨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사건은 상제님께서 1907년 11월경에 여러 종도와 더불어 후천(後天)에서의 음양 도수를 조정하려고 행하신 공사라고 볼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에게 종이쪽지를 나누어 주시며 각자 점을 찍어 표시하라고 하셨다. 이때 종도마다 각기 한 점 내지는 두 점, 세 점, 여덟 점을 찍었는데 차경석은 열두 점을 찍었다. 이것을 보시고 상제님께서는 “너는 무슨 아내를 열둘씩이나 원하느뇨”라고 물으시니, 그는 “열두 제국에 하나씩 아내를 두어야 만족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02 이러한 대답은 내심으로 천자가 되고자 하는 야망을 품었다는 의미다. 12개의 여러 나라라는 뜻의 ‘열두 제국(諸國)’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으나, 천자는 12명의 부인을 두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한(漢)나라의 14대 황제인 평제(平帝)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 막강한 권력자였던 왕망(王莽)은 딸을 황후가 되게 하여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왕망이 태후에게 “청컨대 오경(五經)을 상세하게 살피고 논하여서 아내를 맞이하는 예(禮)를 제정하여 (평제가) 12명의 여인에게 장가드는 원칙을 바로 세움으로써 대를 이을 자식을 널리 두되”03라고 하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렸다고 한다. 이 내용은 『대학연의』에 등장한다. 또한, 『백호통의(白虎通義)』에도 천자가 12명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임은 하늘(의 운행)에 12개월이 있어 만물이 반드시 생겨남을 본받은 것이라고 하며, 천자가 덕을 버리고 여색을 좋아할 수 있으므로 한 번만 동시에 12명의 아내를 맞이하게 할 수 있을 뿐이라는 설이 수록되어 있다.04 『대학연의』는 조선시대에 임금의 학문 수양을 위해 신하들이 경전과 역사를 강의하던 경연(經筵)의 교재로 많이 사용되었고,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혔던 책이다. 『백호통의』도 책명(冊名)과 책에 실린 여러 구절이 조선의 여러 학자 문집에 수십 차례 등장할 정도로 알려진 책이었다.05 이 책들의 영향으로 천자가 12명의 아내를 맞이한다는 설은 널리 알려지며 후대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차경석이 원하는 천자는 자신이 거대한 제국을 새로 세우거나, 기존의 황제 자리를 찬탈해야만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가 천자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jpg)
➊ 당시의 보천교 중앙교당과 대흥리 (출처: 일본 동경 학습원 대학 우방문고 소장) ➋ 당시의 보천교 보화문 ➌ 당시의 십일전의 삼광문 (출처: 『朝鮮の類似宗敎』)
차경석은 1921년 경남 함양의 황석산에서 고천제(告天祭)를 올리며 국호를 시국(時國), 교명을 보화교(普化敎: 후에 보천교로 개칭)라 선포하며 천자에 등극함을 하늘에 고하기도 하였다. 그는 1929년에 정읍 대흥리의 2만여 평 부지에 궁궐과 같이 40여 동의 웅대한 건물을 지으며 교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1936년에 57세를 일기로 갑자기 운명하였다. 보천교 건물은 경매에 부쳐져 모두 해체됨으로써 사라졌고 보천교도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차경석은 한때 ‘차천자’로 불리기도 하였다.06 하지만, 이는 역사상에 등장하는 천자로 볼 수 없는 헛된 칭호일 뿐이었다. 허영과 야망심은 진실한 마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결국 아무런 소득이 없는 헛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우리는 수도인으로서 도전님의 말씀처럼 허영과 야망심을 경계하여 결코 이러한 마음에 물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도인으로서의 본분과 사명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수도인으로서 우리의 본분과 사명은 무엇일까? 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降世)하셨으므로 해원상생(解冤相生)의 대도(大道)가 나올 수 있었다. 이 대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수도를 통해 도통(道通)과 운수(運數)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게 수도하며 이 대도를 널리 빛내고 펼쳐 상제님의 은혜에 보답해야만 한다. 이는 곧 수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소임으로 우리의 본분과 사명이 아닐 수 없다.
.jpg)
➊ 해체 전의 보천교 십일전(출처: 『朝鮮の類似宗敎』) ➋ 보천교 십일전을 해체해 재건축한 조계사 대웅전(2014년 10월 23일 촬영)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본분과 사명을 어떻게 실행해야만 하는가? 스승을 받들며 제자로서 본분과 사명을 다하고자 했던 한 인물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스승의 차원을 넘어 상제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우리와 입장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자공(子貢)은 공자보다 31세 연하의 제자였다. 공자가 고국인 노(魯)나라를 떠나 정치적 이상을 펼치고자 14년간 여러 나라를 편력할 때 자공은 그 곁을 드나들며 고난과 역경을 함께했다고 한다. 자공에 대한 공자의 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언변이 뛰어났고 재화를 늘리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07 아마도 공자 학단(學團)의 재정은 상당 부분이 자공에 의해 확보되었을 것이다. 다음은 자공이 진자금(陳子禽)이라는 제자(공자의 제자라는 설도 있음)와 나눈 대화이다.
진자금이 자공에게 말하길, “선생님은 참 겸손하십니다. 중니(공자)께서 어찌 선생님보다 더 낫겠습니까?”라고 하였다.08
자공이 답하여 말하길, “군자는 한마디 말로써 지혜롭게도 여겨지고, 한마디 말로써 지혜롭지 못하게도 여겨지니, 말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께 미칠 수 없음은 마치 하늘을 사다리 놓고 올라갈 수 없는 것과도 같다. 공자께서 한 나라를 얻으셨다면, 이른바 나라를 바로 세우면 곧바로 섰을 것이고, 이끌었으면 이끌렸을 것이며, 편안하게 해주면 이웃 나라 사람들이 귀순했을 것이고, 고무시키면 조화로운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공자께서 살아계실 때는 온 백성이 영광스럽게 여기고, 돌아가시면 애통해할 것이니, 어떻게 그 누가 공자의 경지에 미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 대화에서 자신은 결코 스승의 경지에 미칠 수 없다는 겸손함과 더불어 스승 공자에 대한 지극한 공경심과 애틋함이 넘쳐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공은 언변과 재화를 늘리는 재능이 뛰어났으나, ‘하늘’의 비유에서 보듯이 스승 공자를 하늘과 같이 여겼다는 것이다. 공자가 서거했을 때 제자들이 모두 3년 상을 치르고 떠났는데, 오직 자공만은 홀로 남아 공자의 묘 옆에 초막을 짓고 3년을 더 머물다가 떠났다고 전한다.09 돌아가신 스승의 곁에 남아 6년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결코 예사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에서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널리 떨쳐지게 된 것은 자공이 앞뒤에서 모시고 도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10 곧, 공자가 후대에 널리 추앙받게 된 데에는 자공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이다. 자공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에 힘입어 더욱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며 제자로서 본분과 사명을 다하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제자의 차원을 넘어 우주 삼라만상을 주재하시는 상제님을 신앙하며 그 가르침을 받드는 수도인이다. 자공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뜻이다. 항상 허영과 야망심을 경계하고, 수도인으로서의 본분과 사명에 더더욱 충실해야만 할 것이다. 허영과 야망심은 아무런 소득이 없는 헛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결국 후회와 고통만을 남길 뿐이다. 우리의 본분과 사명인 상제님의 이 대도를 바르게 수행하며 널리 빛내고 펼치는 일에 진심갈력(盡心竭力: 마음과 힘을 있는 대로 다함)해야 할 것이다.
01 교운 1장 51절 참고. 02 공사 2장 16절 참고. 03 『대학연의(大學衍義)』 권17, 「간웅절국지술(姦雄竊國之術)」, “請考論五經, 定娶禮, 正十二女之義, 以廣繼嗣,” 『대학연의』는 송(宋)나라 때 주자학자였던 진덕수(眞德秀, 1178~1235)가 편찬한 것으로 『대학(大學)』의 의미를 알기 쉽게 해설한 책이다. 04 『백호통의』 권9, 「가취(嫁娶)」, “或曰, 天子娶十二女, 法天有十二月, 萬物必生也. 必一娶何. 防淫泆也. 爲其棄德嗜色, 故一娶而已, 人君無再娶之義也.” 『백호통의』는 후한(後漢)의 역사가였던 반고(班固, 32~92)가 지은 책이다. 역시 후한의 학자였던 채옹(蔡邕, 132~193)이 조정(朝廷)의 제도와 칭호에 대해 기록한 『독단(獨斷)』 권상(卷上)에서는 “천자가 12명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임은 하(夏)나라의 제도이다.(天子取十二, 夏制也.)”라는 기록이 보인다. 05 대표적으로는 구봉 송익필(宋翼弼)의 『구봉집(龜峯集)』이나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송자대전(宋子大全)』 등을 들 수 있다. 06 1921년 이후 차경석의 행적은 ‘교무부, 「27년 동안의 헛도수」, 《대순회보》 68호 (2007), pp.10-11; 류병무, 「차경석의 행적으로 본 성경신의 의미 고찰」, 《대순회보》 163호 (2014), pp.115-116’ 참고. 07 『논어(論語)』, 「선진(先進), “子曰, … 言語, 宰我子貢.”; “子曰, … 賜不受命, 而貨殖焉.” 여기에서 ‘사(賜)’는 자공의 이름이다. 성은 단목(端木)이며 자공은 자(字)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권9,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서도 “말솜씨로 이름을 날렸다.(有口才著名.)”라고 기록하고 있다. 08 『논어』, 「자장(子張)」, “陳子禽謂子貢曰,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子貢曰, 君子一言以爲知, 一言以爲不知, 言不可不愼也.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夫子之得邦家者, 所謂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其生也榮, 其死也哀, 如之何其可及也.” 09 『사기(史記)』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 “孔子葬魯城北泗上, 弟子皆服三年. 三年心喪畢, 相訣而去, 則哭各復盡哀, 或復留. 唯子贛廬於冢上, 凡六年然後去.” 자공을 ‘자공(子贛)’이라고 기록하였다. 10 『사기』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 “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 子貢先後之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