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55년(2025) 11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전경 속 이야기 도장 둘러보기 정심원 내가 본 대순진리회 울타리 대순청소년 겨울캠프 접수 안내 생각이 있는 풍경 대순광장 내가 읽은 책 나누고 싶은 이야기 알립니다

내가 본 대순진리회 : 꺼지지 않는 수도, 살아 있는 신앙

꺼지지 않는 수도, 살아 있는 신앙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에서의 하루

 

 

김종만(경희대학교 학술연구교수)

 

타자의 시선 - 지옥일까, 은총일까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1905~1980)는 “타자는 지옥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타자란 그저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눈길이 나에게 머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그 눈빛에 비친 하나의 대상이 됩니다. 지하철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맞은편의 누군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면, 나는 그 시선 앞에서 스스로 의식하게 됩니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생각이 올라오면서, 나의 자유는 그 눈빛 앞에 갇히고 맙니다. 사르트르에게 타자는 바로 이렇게 나를 규정하고,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불편한 거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타자를 피할 수 없는 짐처럼 느꼈고, ‘타자, 그것은 곧 지옥이다’라는 냉혹한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레비나스(1906~1995)는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그는 타자를 단순히 나를 억누르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얼굴로 보았습니다. 타자가 나를 바라볼 때, 그 시선은 그저 평가가 아니라 “나를 해치지 말라”는 윤리적 호소입니다. 즉, 타자는 나를 속박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인간됨을 일깨우는 부름입니다. 사르트르가 타자를 ‘내 자유의 감옥’으로 본 반면, 레비나스는 타자를 ‘나의 윤리적 자유를 깨우는 목소리’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상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을 발견합니다. 지하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낯선 사람을 불편한 시선으로만 느낄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얼굴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내 이웃의 자취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첫 번째 길을, 레비나스는 두 번째 길을 본 것입니다. 결국 타자는 피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거울이자 이웃입니다. 철학의 언어로는 사르트르가 ‘실존의 투쟁’을, 레비나스가 ‘윤리의 책임’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의 시선으로 본다면, 타자는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라, 신(神)이 내 앞에 보내주신 얼굴입니다. 매일 마주하는 그 얼굴 속에서 신비로운 부름을 느낄 때 타자는 더 이상 지옥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한 은혜와 사랑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타인의 시선보다, 내 안에서 스스로 바라보는 시선이 더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회색 안개 같은 생각들이 일렁입니다. ‘나는 부족해, 늘 뒤처져 있어’, ‘내가 하는 일은 늘 틀리고 의미 없는 것 같아’,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지’라는 속삭임이 머릿속을 떠다닙니다. 그 안에서 나는 깨진 거울 조각처럼 흩어진 나를 바라보며,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stranger)처럼 느껴집니다. 카뮈(1913~1960)의 소설 『이방인(The Stranger)』 속 주인공인 뫼르소가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듯, 나는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에게 찍는 낙인의 무게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틱낫한(1926~2022) 스님은 이러한 내적 분열과 자기 대상화를 ‘상처받은 아이(wounded child)’라는 이미지로 풀어냅니다. 이 아이는 작은 마음의 상처를 지닌 존재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쌓인 외로움과 두려움,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진 연약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탓하고 마음속 낙인을 반복할 때,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조용히 울고, 세상과 단절된 채 외로이 존재합니다. 틱낫한은 그 아이를 억누르거나 외면하지 말고, 세심한 마음의 돌봄과 따뜻한 포용으로 만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흐릿한 내면의 안개 속에서 자신을 보듬고, 잃어버린 마음의 온기와 자기 신뢰를 되찾습니다. 바로 이러한 경험이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고, 자신과 세상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됩니다.

 

 



도장을 향한 첫걸음 - 낯섦에서 마주한 자기

 

  이런 생각들을 안고 처음으로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을 찾았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오래되고 낡은 건물일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전혀 달랐습니다. 거대한 정원은 마치 정교하게 다듬어진 타지마할의 묘당을 연상시키듯, 섬세한 조형과 조화로운 배치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정갈하게 세워진 건물과 최첨단 시설은 유럽의 고딕 성지처럼 장엄하면서도 단정했습니다. 정원의 질서와 건물의 조화로운 배열에서 느껴지는 깊은 안정감과 장엄함은, 내 마음속 상처를 살짝 어루만지며 새로운 성찰로 이끄는 듯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하나, 햇살에 반짝이는 건물의 유리창 하나까지도, 그 자체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를 부드럽게 바라보게 만드는 초대처럼 느껴졌습니다.
  본전으로 향하기 전 마주한 청계탑은 마치 영원의 빛을 품은 등불처럼, 나의 존재 중심을 비추며 혼돈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인도하는 듯했습니다. 탑의 고요한 자태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의 불안과 상처를 바라보며 은밀하게 위로를 건네는 신성한 존재였습니다. 하늘로 곧게 뻗은 첨탑은 신과 만나는 길처럼 나의 마음을 하늘로 열어주고, 탑을 둘러싼 정원과 작은 구조물들은 인간 세상을 보살피며 삶의 무게 속에서도 쉼과 평안을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햇살이 탑의 표면을 부드럽게 스치고, 바람이 정원의 나뭇잎을 살며시 흔들 때마다, 그 모든 자연의 흐름은 마치 청계탑이 나를 향해 건네는 따스한 손길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원의 끝자락에는 일념교(一念橋)가 놓여 있었습니다. 다리를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마음속의 소란과 번잡한 생각이 조금씩 잦아들고, 오직 한마음으로 현재의 순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일념’이라는 이름은 그냥 다리의 이름이 아니라, 수행자가 마음을 한 점에 모아 내면 깊은 곳으로 나아가며 성찰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임을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청계탑을 보고 일념교 위를 걷는 순간, 공간과 상징이 우리 마음속 길을 열어주고, 모든 이의 내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치유와 평안으로 인도한다는 깨달음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내 마음속 상처를 조용히 내려놓고, 희망과 평화를 다시 만나는 은밀한 안내자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 도장은 그냥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 안의 상처와 가능성을 비추는 살아 있는 거울로 다가왔습니다. 외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에서 깨어나는 내적 시선을 통해, 나는 비로소 스스로 돌아보고 마음속 상처를 직면하며 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공간 자체가 주는 장엄함과 안정감이, 단순히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내면의 울림으로 이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성(聖)과 속(俗)의 문턱 - 경건의 몸짓

 

  본전 앞에서 나는 두 손을 단전에 겹쳐 공손히 모으고, 안경을 벗은 채 천천히 본전을 향해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 순간의 동작은 그저 예법이라고 하기보다는 내 안의 숨결을 성스러운 빛과 이어주는 다리와 같았습니다. 손끝과 손바닥에 전해지는 미세한 긴장, 허리를 굽혔다가 곧게 세운 채 깊게 숨을 고르는 순간, 내 마음속 번잡함과 무거움은 서서히 가라앉고, 온 마음이 한 점으로 모이는 느낌이 찾아왔습니다. 합장과 비슷하지만, 내면을 깨우고 신성한 공간으로 나를 이끄는 실제적 수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걸음걸이 하나, 손가락 하나까지도 세심히 조심하며, 나는 일상의 소음과 분주함을 뒤로하고, 신성한 공간으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습니다. 종교학자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가 말했듯, 이러한 몸짓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일상의 세계를 넘어 신비로운 차원으로 마음을 열어주는 길입니다.
  본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만이 아니라, 모든 신령이 깃든 거룩한 자리였습니다. 그 안에서 한 몸짓, 한 걸음마다 존경과 신앙의 마음을 담으며, 나는 마음속 깊은 평화와 고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발걸음을 맞추고 손을 모을 때마다, 하루의 긴장과 걱정은 잠시 멈추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신령과 하나되는 감각이 찾아왔습니다. 성스러움과 평안함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순간, 나는 그저 외부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닌, 이 공간 속에서 숨 쉬고, 느끼고, 마음을 다해 초월의 시간을 마주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끊이지 않는 소리 - 살아 있는 신앙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그곳에서 단 하루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는 ‘수도(주문)의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는 내부 규율에 따라 결코 끊어져서는 안 되며, 그 끊김이 없는 울림은 고대 배화교(拜火敎, Zoroastrianism)의 꺼지지 않는 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여주본부도장은 그들의 전통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 그 소리를 통해 살아 있는 신앙의 심장으로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대형 종교 단체들이 아무리 웅장한 집회로 가득 차도 행사가 끝나면 텅 빈 건물처럼 적막해지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365일, 24시간 끊이지 않는 수도의 소리가 신도들의 일상과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순간 본전은 더 이상 건축물이 아니라, 수행의 소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울림 속에서 나는 마치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치유의 노래를 들은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주문 소리는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자, 세상을 향한 윤리적 응답이며, 신앙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증표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끊임없는 수행의 울림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세상을 조금 더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대순진리회는 단순한 종교적 공간을 넘어, 신앙의 심장과 생명력을 지닌 살아 있는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의미 - 꺼지지 않는 돌봄의 종교

 

  오랜 세월 동안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인간의 길을 밝혀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상처로 가득하고, 많은 이들은 편견과 자기 부정 속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갑니다. 그때 여주본부도장에서 들려온 꺼지지 않는 수도의 소리는, 바로 이 시대의 상처 입은 이들을 향한 따뜻한 응답처럼 제 마음 깊은 곳에 울려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돌봄과 세상에 대한 응답을 동시에 부르는 노래와도 같았습니다. 사르트르의 지옥을 넘어, 레비나스의 윤리적 부름에 응답하고, 틱낫한이 말한 자기 포용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힘, 그 길 위에 대순진리회가 굳건히 서 있다고 느꼈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수도는 그냥 의식의 반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꺼짐 없는 등불처럼,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신령한 호흡이자, 다른 어떤 종교 집회와도 구별되는 살아 있는 맥박입니다. 그 소리 속에는 인간을 살리고 세상을 새롭게 열어 가려는 하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소망합니다. 대순진리회가 앞으로도 이 꺼지지 않는 수도의 울림을 통해, 이 시대의 상처 입은 이방인들에게 다가가고, 마침내 개벽(開闢)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는 종교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기를…, 그리하여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수도의 울림 속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이웃을 끌어안으며,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은이 소개


  김종만은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B.A)를 공부하고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석사학위(M.A)를 받았으며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마쳤다. 고려대학교 포닥연구교수로 연구활동을 수행하였고, 현재는 경희대학교 종교시민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중이며, 고려대, 서강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한국종교학회 상임이사, 한국신종교학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관심사는 종교 간 대화, 불교, 그리스도교, 한국종교 전반에 걸쳐 있다. 단독 저·역서로는 『틱낫한과 하나님』(저서), 『한국종교 따로보기』(저서), 『틱낫한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역서), 『틱낫한의 깨어있는 마음수행』(역서)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공동 저서와 연구 논문이 있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