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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6년(2026)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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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이야기 : 장효순의 화난

장효순의 화난

 

 

교무부 김현진

 


어느 날 종도들이 상제를 뵈옵고 “상제의 권능으로 어찌 장 효순의 난을 당하셨나이까”고 여쭈니라. 상제께서 “교중(敎中)이나 가중(家中)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하여지나니 그것을 그대로 두면 세상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 기운을 받아서 재앙을 해소하였노라”고 이르셨도다.(행록 3장 8절)

 

  위 구절은 1904년 1월에 있었던 장효순의 화난에 대한 상제님의 말씀이다. 『전경』에서 장효순의 화난을 읽을 때면 상제님께서 구타를 당하시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어 마음 한편으로 불편함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장효순의 화난을 공사의 일환으로 처결하였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교중과 가중의 분쟁으로 신정이 문란해져 세상에 재앙을 막고자 몸소 그 기운을 받아 해소하였다고 하신 부분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장효순의 화난 과정과 함께 상제님께서는 이 재앙을 해소하시기 위해 어떻게 대처하셨는지를 일어났던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화난의 주요 인물은 장효순이다. 장효순은 장흥해의 아버지이다. 그는 본래 전주 부중 사람들에게 천둥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성질이 사나웠지만 상제님과는 친분이 있었다. 장효순은 시집간 딸이 횟배앓이로 죽게 되었을 때, 그는 전주부에 머무시던 상제님을 찾아가 고쳐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상제님의 덕화로 딸이 낫게 되었고(제생 6절) 이를 계기로 친교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연의 시작은 아들인 장흥해로 인해 연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흥해는 상제님께서 서원규의 약국에 계실 때 김병욱(金秉旭)과 같이 상제님을 찾아뵌 후 따르기 시작하여 상제님 종도가 되었던 인물이다.01 이렇게 상제님을 따르고 종도들과 친분을 유지하던 장효순과 장흥해 부자가 화난을 일으킨 것이다.
  장효순의 화난은 1904(갑진)년 1월 15일에 일어났다. 상제님께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는데, 장효순이 갑자기 죽어 가는 손자를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상제님께서는 혼몽 중에 “냉수나 먹여라”라고 이르셨고 장효순이 그대로 행한 뒤 손자는 죽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고의로 죽인 것이라며 상제님을 난타하고 결박하여 장방(長房: 관아의 서리들이 거처하는 방)으로 향하였다. 그러다가 상제님께서 10만 냥의 증서를 가지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자 돈을 요구할 욕심에 갑자기 사과하며 옛정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장효순과 헤어진 상제님께서는 서원규의 집으로 가셔서 하룻밤을 지내시고 다음 날인 1월 16일에 이직부의 집으로 가셨다. 이날 장효순은 상제님께 돈을 갈취할 욕심에 행방을 찾다가 보이시지 않자 상제님 가족들이 살고 계시던 전주 화정리 이경오의 집에까지 와서 행패를 부렸다. 그리고 서원규와 김형렬을 구타하고 상제님 부친의 소실인 천원 장씨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림 1> 장방의 위치와 종도들의 집 위치 위성사진(출처: 구글어스)



상제님의 행적


  『전경』에 장효순의 화난이 있을 당시 상제님의 행적을 보면 1월 15일 장효순의 난을 겪으신 후 서원규의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다음 날(16일)에 이직부의 집으로 가시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16일에 상제님의 행적을 보면 이직부의 집 이외에 상제님 부친의 소실이었던 천원 장씨의 집에도 가셨던 것으로 보인다. 행록 3장 7절을 보면 상제님께서는 천원 장씨에게 “술을 빚으라” 이르시고 “누구든지 술을 먼저 맛보지 말라”라고 당부하셨는데 “상제의 부친이 오시자 장씨는 상제께서 하신 말씀을 잊고 웃술을 먼저 떠서 드리니라.”라는 내용이 있다. 당시 상제님의 가족은 이경오의 협실(방 한 칸)에 살고 계셨다.
  16일에 천원 장씨의 집에 오신 상제님께서는 장씨가 빚어 놓은 술을 상제님의 부친께 드린 것을 아시고 꾸짖으시며  “가족들이 급히 피하여야 화를 면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이후로 상제님 가족들이 화를 피하여 태인 굴치로 가신 것을 보았을 때 아마도 천원 장씨는 상제님의 가족들에게 이 말씀을 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천원 장씨는 피신하지 않고 있다가 들이닥친 장흥해 가족들에게 구타를 당하게 되었다. 상제님께서는 얼마 후 다시 방문하여 “생지황(生地黃)의 즙을 내어 상처에 바르라”라고 말씀하셔서 몸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당시 상제님의 행적을 정리해 보면 화난을 겪으시기 전에 천원 장씨에게 들르셔서 술을 빚으라고 이르시고 1월 15일 화난을 겪으신 후 서원규의 집에서 하루 머무셨다. 1월 16일에는 이직부의 집과 천원 장씨가 있는 곳에 모습을 나타내셨다. 천원 장씨에게 가족들의 위험을 알려주시고서는 이직부의 집에서 한 달 조금 넘게 머무시는 사이에 아픈 장씨에게 들러 상처를 치료해 주셨을 것이다. 이후 김형렬의 안내로 원평 김성보의 집에 머무셨으며(행록 3장 9절) 2월 하순 무렵에는 가족이 있는 태인 굴치로 가셨다.(권지 1장 28절)

 

 



교중이나 가중의 분쟁


  상제님께서는 “교중(敎中)이나 가중(家中)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하여지나니 그것을 그대로 두면 세상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느니라.”라고 하시며 당시 상황을 교중의 분쟁이라는 표현을 하셨다. 화난의 경과를 살펴보면 상제님께 돈을 갈취하려다 상제님을 찾지 못한 장효순의 가족은 상제님 가족들이 사는 전주군 화정리의 이경오 협실까지 찾아갔다. 장효순의 가족에는 장흥해도 함께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김형렬이 방문하자 장흥해의 가족들이 김형렬을 결박하여 서원규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서원규의 집에서 상제님께서 계신 곳을 대라며 서원규와 김형렬을 함께 구타하였다. 이후 김형렬은 밤을 틈타 피하였고 서원규는 장흥해에게 매일 행패를 당하였다. 이 때문에 서원규는 생업인 약국도 폐쇄하고 가족들과 익산으로 도피하였다. 이렇게 상제님을 따르는 종도였던 장흥해가 서원규, 김형렬을 핍박하며 분란을 일으켰으므로 이를 교중의 분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쟁의 원인은 10만 냥 증서를 탐낸 장효순의 욕심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장효순이 처음에 난을 일으킨 원인은 손자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 10만 냥의 증서를 가지고 계신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갈취하기 위해 상제님을 찾으려고 난동을 부린 것이다. 장효순이 증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들인 장흥해를 통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장흥해는 1903(계묘)년 3월에 김병욱이 백남신을 천거할 때 백남신이 상제님께 10만 냥의 증서를 올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행록 2장 20절) 이러한 사실을 부친인 장효순에게 전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장효순은 공사에 쓰인 10만 냥을 갈취할 속셈에 난을 일으켰고, 상제님께서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난 교중이나 가중의 분쟁이 신정의 문란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염려하시며 공사를 처결하신 것이다.
  종교 교단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세계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건이다.  역사적으로 종교 분쟁은 권력과 돈 그리고 독단적 교리 해석의 차이가 결합된 복잡한 이해관계가 원인이 되어 주로 발생하였다. 이러한 인간 세상에서의 대립과 갈등에 대하여 상제님께서는 “사람들 끼리의 싸움은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의 싸움을 일으키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되나니라.”(교법 1장 54절)라고 말씀하셨다. 위 공사에서 상제님께서 ‘교중이나 가중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이 문란해 진다’라고 하신 말씀 또한 신명계와 인간계의 이런 관계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기운을 받아서 재앙을 해소하시다


  장효순은 손자가 죽은 것에 대해 “이것은 고의로 손자를 죽인 것이 분명하니라. …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신통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으리라.”(행록 3장 2절)라고 말하였다. 손자의 죽음을 상제님의 탓으로 여긴 것이다. 장효순 손자의 죽음은 그저 명이 다한 것으로 보인다. 상제님께서는 아픈 사람들을 많이 치료해 주셨지만, 타고난 수명은 사사로이 연장해 주지 않으셨다. 심지어 상제님의 동생 강영학의 경우 그가 죽게 됨을 미리 아셨음에도 그의 수명을 연장시켜 살려주지 않으셨다.(권지 1장 29절) 그럼에도 장효순은 손자의 죽음을 상제님의 탓으로 돌리며 척을 걸었고 이를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실로 여기며 상제님께서 공사에 사용하신 10만 냥의 증서를 갈취하고자 하였다.
  세상을 바로 잡고 상생의 도로 세계의 민생을 건지기 위해 천지공사를 행하시던 상제님께서는 이를 공사로써 해결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내가 그 기운을 받아서 재앙을 해소하였노라.” 하셨는데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장효순에게 난타를 당하신 일이나 상제님의 가족들을 피신시키신 일은 몸소 재앙을 해소하시기 위한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재앙을 풀기 위해 운장주(雲長呪)를 사용하셨다는 말씀도 하셨다. 행록 3장 31절에 보면 “내가 태을주(太乙呪)와 운장주를 벌써 시험해 보았으니 김병욱의 액을 태을주로 풀고 장효순의 난을 운장주로 풀었느니라”라고 하셨다. 운장주는 1909년에 종도들에게 가르쳐주는 주문인데02 장효순의 화난을 풀기 위한 이 공사를 보실 때 이미 운장주를 사용하셨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효순의 화난은 상제님께서 교중이나 가중의 분쟁으로 신정이 문란해져 세상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을 막으시고자 그 기운을 받아서 해소하신 공사이다. 이 화난을 일으킨 장효순은 천하 창생을 건지기 위해 천지공사를 행하시는 상제님께 손자의 죽음을 탓하며 척을 걸고 공사에 쓰신 10만 냥을 탐하여 난동을 부렸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이를 몸소 받아 내시면서도 그를 탓하지 않으셨다. 공사가 마쳐진 이후 1904년 6월에 김형렬은 상제님께 장효순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며 “장효순은 진작 우리의 손에 죽었어야 마땅하거늘 저절로 죽었으니 어찌 천도가 공정하다 하오리까”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으신 상제님께서는 “이 무슨 말이냐 죽은 자는 불쌍하니라”라고 꾸짖으셨다.(행록 3장 13절) 이렇듯 상제님께서는 장효순의 화난을 천지공사의 일환으로 처결하신 후 종도들에게도 공사로서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도록 하신 것 같다.

 

 

 


 01 『증산의 생애와 사상』, p.91 참고, “서원규(徐元奎)가 경영하는 약방에 거처를 정하셨다. 이곳을 김병욱(金秉旭)ㆍ장흥해(張興海)ㆍ김윤찬(金允賛) 등이 찾아왔다.”
02 교운 1장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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