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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종단의 일은 천지도수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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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관계에 있어서 전에는 사부정(死不淨), 생부정(生不淨), 몸부정[經度不淨]을 가려왔습니다. 몸부정은 가리지 않아도 되게 했는데, 다른 부정에 대해서도 안 가리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도주님 재세 시 공부는 지금 공부와는 다른데 부정을 가리고 내려왔지만, 지금 와서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것은 아닙니다. 지키려니 여러 가지로 불편합니다. 부정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마음에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습니다. 그것보다도 우리는 천지대도(天地大道)라 하고 하느님이신 상제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불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 같은 데도 가리지 않는데 우리는 가려왔습니다. 이것은 도주님 재세 시부터 가리고 내려왔고,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에서 생부정ㆍ사부정이 옛날부터 내려오니 정성 들인다는 데서 가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생사를 하느님께 맡기고 해나가는데, 사람이 나고 죽는다고 해서 상제님께서 안 좋게 하실 리가 없습니다. 옛날부터 생부정ㆍ사부정 했는데, 실제로는 부정이랄 게 없습니다. 사람의 몸은 신명의 집입니다.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크게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 형체, 그 모습입니다. 소나 개나 짐승이 죽으면 안 가립니다. 사부정이 있다면 가리겠습니까? 실제로 보면 사람이 죽은 것보다 짐승 죽은 것이 부정이 더 큰 것입니다. 모든 것이 실제 마음에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면 없습니다. 다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뭘 지저분한 것을 본다 해도 내 마음에 싫으면 싫은 것이고 대수롭지 않다면 대수롭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이 났다든지 죽었다든지, 뭐든지 내 마음에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시신도 한국 사람 죽은 건 무섭고, 외국인 시신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은 말이 통하니까 죽은 시신이 알아들을까 봐 그런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은 벌떡 일어나 무어라 할 것 같아 무서운 것입니다. 대도라 하면서 낳고 죽는 부정을 가릴 것이 없습니다. 실제 우리가 도를 믿으면서 죽을 때가 되어서는 하느님의 덕화를 바라고 합니다. 병이 났을 때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빕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경사라고 하고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신과 선(仙)이 인세에 오는데, 죄를 지어 죄를 닦기 위해 인간으로 왔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말하기를 신으로 있다가 죄를 짓고 인세에 내려왔다 하지 않습니까. 실제 그렇습니다. 어린애가 태어나서 용을 쓰고 울면 오래 산다고 하고, 잠깐 울다 말면 명이 짧다고 합니다. 힘을 쓰고 용을 쓰며 우는 것은 이런 힘든 생을 어떻게 오래 사느냐 하고 우는 것이고, 살짝 우는 애는 잠깐 살다 가면 되니까 덜 우는 것입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사바세계이며 고해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는 게 좋은 게 뭐가 있습니까. 어려움, 견디기 힘든 어려움뿐입니다. 그래서 죄를 씻으러 온 것입니다. ‘생부정’이라는 것은 죄를 짓고 태어나는 것이라 하여 미우니 보지 마라 해서 부정이라고 하는 것이고, ‘사부정’이라는 것은 나를 두고 죽어서 좋은 데로 먼저 간다고 미워서 부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정이라는 것이 있을 게 없습니다. 전에부터 우리가 부정을 가리지 말아야 하는데 하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 나는 것이 부정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 더러운 게 없습니다. 몸뚱이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짐승이 죽어서 썩는 것을 보면 더 더럽습니다. 그러나 그건 부정을 안 가립니다. 파리가 들끓고 해도 그건 부정이라 안 그럽니다. 사람 죽은 것은 그것보다 낫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부정이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도를 믿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을 전부 다 하느님께 맡기고 덕화를 바라며 해나가는 것입니다. 상제님 말씀에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선령신이 60년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그것을 부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부터 부정이란 게 전해 내려왔고 우리 마음에 끼여서 그렇지, 부정이라 할 게 없습니다. 우리가 수도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정을 다 가리고 나갈 수는 없습니다. 자리공부를 하면서 이런 것 때문에 우리의 귀중한 공부를 못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제 와서 이것을 가릴 때가 아닙니다. 절 같은 데는 사람이 죽으면 즉시로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주지 않습니까. 절에 비교할 게 아닙니다. 우리의 도가 크고 대범하다고 생각할 때 부정을 가리는 것은 안 맞습니다. 이제는 가리는 단계가 아닙니다. 전부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믿는 정성에서 생부정ㆍ사부정이 예로부터 내려온 것이니 가렸던 것이지, 하느님을 믿으면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다른 겁재는 다 없앴으나 병겁(病劫)만은 남겨두셨다고 합니다. 의통(醫統)으로써 죽은 사람을 밟고 다니면서 사람을 살려야 되는데 이것을 부정이라고 하여 가리면 그 일을 못 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마음에 끼면 꺼림직하고 그렇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도주님 재세 시, 공부하는 데 부정을 가리셨습니다.01 나도 부산에서 다닐 때 어떤 집에 애가 태어나는 걸 봐서 공부 못 들어간다고 말씀드리면 도주님께서 불러서 “너와 내가 그런 것 때문에 큰일을 못 하면 되느냐,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어도 일체 말하지 마라.”는 분부가 계셨습니다. 공부하는 데 보았다고 해도 일체 말하지 마라. 마음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정을 가릴 시기가 아닙니다. 하느님이신데, 대범하고 크신데, 부정이 아닙니다. 생부정ㆍ사부정을 염두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제님이 하느님이신데 불교, 기독교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도장에 참배 때 애들이 와서 울고 그러면 죄송스럽다고 걱정하는데, 내가 “그냥 놔둬, 괜찮을 거야, 상제님께서도 그 울음소리 듣고 좋아하실 거야!”라고 했습니다. 어린애들 들어와서 울고 그러면 상제님께서 웃으면서 좋아하실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그러시고 맙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신이 나가고 몸만 남는 것입니다. 더럽고 그럴 게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린애가 태어났는데 더러울 게 뭐가 있습니까. 어린애도 사람인데 꺼릴 것이 없습니다. 짐승이 썩어서 상해 냄새가 나도 부정이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은 가리고 그럴 게 아닙니다. 지금 여러 가지 공부가 돌아가고 있는데 가릴 때가 아닙니다. 앞으로 사람이 막 쓰러질 때 송장을 밟고 다니면서 너희가 사람을 살릴 것이다 하셨는데, 부정을 가릴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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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거라는 게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종교를 믿고 나갈 때는 자기가 믿는 종교 그 이상은 없습니다. 다 자기 종교가 옳다고 믿으니까 믿고 나갑니다. 옳다는 게 없다면 믿어지지 않습니다. 각 종교는 다 자기 종교가 옳다고 하는데, 우리 대순진리회는 특히 크게 무엇을 가지고 옳다고 하겠습니까? 다른 게 아닙니다. 그것은 대순진리회의 이론입니다. 남의 종교를 어떻다 말할 게 없지만 우리 이론이 무엇인가 얘기하려니까…. 상제님을 믿는 종파도 많습니다. 다 자기의 믿음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다른 곳에는 상제님께서 재세 시 하신 말씀이나 행적을 보고 하느님이 틀림없다고 믿고 상제님을 믿으면 도통을 받는다고 믿는 게 전부입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처럼 임원부터 체계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같으면 신도가 있으면 어느 곳이나 교회 하나 지어서 목사 한 사람이 나가서 하면 됩니다. 거기는 교화를 한다고 하지만 교화가 일률적입니다. 늘 같은 얘기를 하기 때문에 듣기 쉽고 말하기도 쉽다고 합니다. 다 똑같은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상제님을 믿는 다른 종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나 가서 영도ㆍ지도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는 교화를 해도 일률적이지만 우리는 이론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론입니다. 이론이므로 얼른 들으면 처음 듣는 사람은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그러나 교화를 하면 들을 때는 누구나 듣기 쉽고 알기 쉽습니다. 이론이 체계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 내수 선ㆍ교감들 보면 국민학교 나온 분도 있는데, 이분들이 밖의 더 많이 배운 사람을 교화하면 수긍하고 도에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이론에 맞기 때문입니다. 그게 안 맞으면 안 들어옵니다. 어느 종교나 화평ㆍ세계평화를 갈망합니다. 기독교는 세계평화를 주장하지만 힘이 있는 나라, 미국 등 선진국 위주입니다. 내가 생각할 때 어떤 종교라도 세계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됩니다. 세계 모두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데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의 해원상생이 아니면 평화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남을 원망하지 않고 서로 없으면 못 산다는 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입니다. 이것을 말로만 하면 안 되고 실천해야 됩니다.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하는 것은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입니다. 도통진경은 도를 통하는 것이고, 음양합덕은 대립된 것이 화합되어 상부상조하고 도와주는 것이고, 신인조화는 신과 사람이 조화가 되는 것인데 이것을 도통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되면 화합이 되고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상낙원이든 무엇이든 다 여기에 있습니다.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일어납니다. 신인조화 즉 도통이 되면 모든 것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형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도통이 되어야 진정한 해원상생이 됩니다. 도통은 해원상생이 아니면 안 됩니다. 다른 것으로는 전 세계가 갈망하는 평화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진리 아니면 안 됩니다. 말로는 쉽고,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이론입니다. 이런 이론이 진리가 아닙니까? 이론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진리입니다. 진리를 표현해서 말하는 것이 이론입니다. 진리는 무궁무진합니다. 이론, 진리, 이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통해야 다 아는 것입니다. 이론은 연구하고 깨달아야 되지, 그냥 듣고는 모릅니다. 우주 안의 군생 만물을 빠짐없이 다 알면 통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꾸 이야기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됩니다. 임원들이 남을 몇십 년 가르쳐 왔어도 누가 무엇 하나 물으면 만인(萬人) 앞에서 똑 떨어지게 진리를 말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못합니다. 모르는 사람한테나 자기주장을 할지 모르지만…. 잘 안다고 하는 중체 임원이 있어도 자기 선감이 물으면 대답을 잘 못합니다. 우리의 진리는 무궁무진합니다. 틀림이 없고 옳다고 하는 것은 대순진리의 이론 그것입니다. 임원들 중에도 배웠다는 임원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교화를 들었을 리 없습니다. 그래도 이론상 수긍이 됐으니까 입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다고 그 선각은 다 아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평생을 배워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통해야 다 압니다. 선ㆍ교감이 되려면 한 10여 년 걸리는데 각자 자기 실력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밖의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입니다. 신이 응해 있어 다릅니다. 그래서 수도의 과정을 밟고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도에 들어와서 임원까지 되었을 때는 운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진리, 이론에 있어서 운에 맞으면 이것을 도수(度數)라 합니다. 우리의 나가는 과정이 모두 진리에 다 맞아 나갑니다. 그것을 길이라 합니다. 말로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겪어보아 운에 맞아 나가니 아는 것입니다. 운이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어느 날에 어떻게 나서 어디서 커서 어떻게 된다는 등등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진리라 합니다. 즉 천지가 열릴 때에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것, 그것을 운기(運機)라고 합니다. 운기란 우리가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이 천지가 시작될 때 다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하고 나하고 이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다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오다가다 잠깐 만나는 것도 운이라고 하고 연분이라 합니다. 그 과정을 그대로 나가니까 이것을 도수라고 합니다. 도수에 맞으면 틀림없이 됩니다. 이론에 맞고 천지도수(天地度數)에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보다 특히 좋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천지가 정해놓은 과정 그대로 가는 것, 천지운기 천지도수에 맞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가 좋다고 해도 우리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가령 사람 이름을 아무렇게나 개똥이라고 지어도 그것은 사람이 지은 게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 땅이 생길 때부터 다 정해져 있습니다. 운기가 돌아가는 것을 천지도수라 합니다. 운, 운기, 도수는 천지가 생긴 처음부터 벌써 완전히 정해져 겪고 나가는 과정입니다. 사람이 머릿속으로 무엇을 생각한다 해도 진리 밖에 있는 것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진리 안에 있는 것이면 나와집니다. 천기자동(天機自動)으로 움직입니다. 뭔가 나오려면 사람한테 생각되어져 나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다 천지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생각이 나오질 않습니다. 여러분은 부산을 안 가봐서 잘 모를 것입니다. 도주님 재세 시 부산 감천에 도장을 세워 영대를 모셨는데, 그때는 영대하고 내정(구덕정사) 두 채밖에 없었습니다. 도주님 화천 후에 수도하는 데 필요한 집을 설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지었습니다. 이것은 대순성적도(大巡聖蹟圖)에 나와 있습니다. 나도 그림을 보고 생각났는데, 짓고 나니 그 형태가 배 형국이었고 그 배가 감천 앞바다를 향해 머리를 대고 있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필요해서 짓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 대순의 도는 상제님께서 근래에 오셔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이 시대에 상제님께서 인세(人世)에 오시고 대순진리회가 생겨서 발전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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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곡동에 도장을 지었습니다. 꼭 지어야 되었습니다. 그곳에 도장을 안 지으면 안 되었습니다. 중곡동 도장이 내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것을 도수, 운로(運路)라 합니다. 운에 박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중곡동(中谷洞)에서 중(中)은 무기(戊己) 토(土)이고, 진술축미(辰戌丑未)도 토(土)입니다. 조금도 빈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86년 여주에 수도장을 지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서울도장이 복잡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를 위해서 지었습니다. 당시 영대였던 여주 봉강전은 서울 중곡도장 영대하고 똑같았습니다. 여주에 도장을 짓는 것도 천지도수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안 하려고 한다고 안 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도장 지을 때 여름에 비가 오고 그래도, 일을 못 한 적은 하루도 없습니다. 그때는 태풍이 제주도에서 왔습니다. 태풍이 부산으로 넘어오다 없어지고, 없어지고 해서 여주는 태풍이 안 왔습니다. 제주도는 태풍이 많았습니다. 그때 1년에 태풍이 24호∼25호 있었습니다. 어제도 19호 태풍인데 그해는 전부 제주도에서 왔습니다. 공사 잘 했습니다. 하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86년 공사 마치고 중곡동 도장이 좁아서 앞으로를 위해 지금의 봉강전인 영대를 지었다고 얘기했지만, 중곡동 도장과 여주 수도장은 천지의 조판 이후 짜여진 천지도수입니다. 어느 때가 되면 대순진리회에서 중곡동과 여주에 도장을 짓는다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이 운이고 도수입니다. 몇 해 안 되었는데 발전이 많이 되었습니다. 89년에 제주도 도장 지을 때도 태풍이 없었습니다. 바람 하나 안 불었습니다. 그래서 8층 짓는데 4개월 반만 걸렸습니다. 그때는 태풍이 중국에서 와서 부산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래서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육지하고 제주도하고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여주도장 공사 거의 끝날 때쯤 앞 도로가 포장되었습니다. 부군수가 와서 참 이상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왜 그러냐니까 포장이 도장 공사 끝나는 데 맞춰지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도 도장을 지을 때는 비 약간 오고 바람이 안 불어 귤이 안 떨어져 귤이 풍작이 들어서 값이 쌌습니다. 제주도는 바람 많고 날이 궂은 곳입니다. 88년 6월 여름에 내가 애들 데리고 제주도에 일주일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태풍인지 상당히 바람이 불 때였습니다. 내가 가기 2일 전에 태풍이 불어서 해수욕하러 온 사람들이 다 집에 돌아갔는데 내가 간 후에 태풍이 없어져 조용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올림픽이 한국의 경사라 잘 치르라고 태풍까지도 안 불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제주도는 태풍 피해가 거의 없습니다. 어제도 태풍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현재 포천에서 학교를 짓고 있는데 지금까지 19호 태풍이 와도 다 남부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태풍이 남쪽으로 와서 지나가고 해서 포천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제주도는 금년에 큰 태풍 피해가 없었습니다. 어제 연수반이 19호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못 간다고 했는데도 비행기가 6시 반부터 정상 운행했습니다. 어제 포천에서 여주까지 오는데 비가 많이 왔었습니다. 포천에 전화했더니 비가 안 온다고 했습니다. 일을 다 했습니다. 이런 것을 경험해 가면서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을 다 알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주도 연수생이 비 때문에 견학을 제대로 못한 적이 없습니다. 포천에서도 진입로를 넘어가면 비가 억수로 쏟아졌는데 현장 공사장으로 들어오면 비가 안 왔습니다. 포천 사람들이 대진대학을 지으니 비가 안 온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실제로 우편물을 매일 배달하는 사람이 날마다 뛰어 들어옵니다. 밖에서는 비를 맞고 왔는데 포천 현장에 가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운이라 하고 천지도수라 합니다. 모든 게 다 정해져 있고, 오늘 태풍 부는 것도 정해진 도수입니다. 천지가 생길 때 그날 태풍이 오는 것도 다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을 도수, 운이라고 합니다. 포천도 터를 사던 해에 시봉이 따라 다녀서 알 텐데, 길을 4차선으로 닦아 놓았어도 차가 없었습니다. 천호동 광진교로 해서 가는데 50분밖에 안 걸렸습니다. 학교가 들어가니 지금은 차가 많습니다. 이것도 한국 땅이 생길 때부터 미리 다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와 다르다고 자신감을 갖고 믿는 것이 바로 이것, 운, 도수입니다. 바람까지, 비까지도…. 도인은 도장 일 모든 것이 운이고 도수에 맞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주도 수련도장을 참 잘 했습니다. 연수도장을 지으려고 객망리에 땅을 사두었는데 무엇에 묶여서 허가가 나지 않아 못 했습니다. 여기 (여주)도장 짓던 해 강릉에 도인이 있다고 해서 부전 선감 시켜 터를 하나 알아 봐라 했는데 설악산은 안 된다고 그랬습니다. 국립야영단지를 팔지 않는답니까? 그래서 거기다 해보려고 그해 여름에 여러 번 들어가 다녔는데 못 했습니다. 금산사 부근도 여러 번 가 봤었습니다. 제주도는 강남 선감한테 얘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제주도 2진 관광03 때 제주도에 갔을 때 그 집에 가서 일주일 있으면서 류 선감 시켜 날마다 땅을 보러 다니게 했습니다. 그래도 좋은 자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내일이 올라오는 날인데 속으로 ‘자리가 안 나오는 것은 하지 말라는 뜻이니 오늘까지 안 나오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생각하고 포기하려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이 잘못된 것을 알았습니다. 계속 외지고 한적한 곳에 몇만 평 구입해서 하려고만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도심지 번화한 시내로 하려고 마음먹고 나가니까 그날로 바로 정해졌습니다. 그곳이 노형동입니다. 제주도에 연수생들이 120명 갑니다. 연수가 언제 끝나느냐고 묻는데 이제는 더 늘어나 160명 들어갑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전에는 통일교가 돈이 많고 사람도 많다고 했는데, 제주도로 계속 연수반이 가고 또 증원되니 지금은 대순진리회가 돈 많고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외국인도 많고 각지에서 관광하러 오는데, 왔다 가면 대순진리회를 다 알고 갑니다. 저절로 홍보가 되는 아주 좋은 곳입니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주도가 명당은 명당입니다. 어디든지 가보면 다 좋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도수입니다. 천지가 생길 때 자리가 정해졌고, 언제 어떻게 된다는 것도 다 정해져 있습니다. 지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가 그렇습니다. 다들 자기 종교가 좋다고 하지만, 우리 이상 없다는 것은 바로 운, 천지도수이기 때문입니다.
1991. 9. 28(음 8. 21)
✽ 아래의 각주는 위 훈시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무부 편집팀에서 첨부한 것입니다.
01 태극도 시절 생부정이나 사부정을 가리는 기간은 똑같이 21일(비당사자는 7일)이었다.
02 대강전 2층에는 영대와 법당이 있었으므로 위에서 말씀하신 ‘영대’는 ‘대강전’을 가리킨다. ‘내정’은 ‘정사’를 말씀하신 것이다. 03 도전님께서 제주도에 도장을 지으시기 전에 임원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가신 적이 있었는데, ‘2진’이란 2차로 간 것을 말한다.
도전님 훈시│ 267호부터 게재하고 있는 「도전님 훈시」는 1984년부터 1995년까지 훈시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종무원에서 공식적으로 기록한 것을 기본으로 하고, 여러 임원이 기록한 내용을 참고하여 대순종교문화연구소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모두 자문위원들의 고증을 거쳤습니다. 기존의 《대순회보》에 기재한 15편의 「도전님 훈시」는 제외하고 시간적인 순차에 따라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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