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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장려
우리 교화부의 화양연화
평해8 방면 교정 문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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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하늘에선 부드럽고 따스한 금빛 햇살이 내려오고, 어루만지듯 바람이 살며시 차가운 두 볼을 스쳐 가는 날. 뭐든 다 잘될 것 같고, 모두가 행복할 것 같은 그런 날. 그날이 딱 그랬다. 눈부신 햇살 아래, 우리 동부회관 교화부는 설레는 마음으로 ‘화양구곡’ 답사길에 올랐다. 이번 답사의 기획과 진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포항 방면 동부회관 교화부가 맡았다. 우리 교화부는 특이하게도 중간 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상급임원분과 다른 많은 분을 모시고 답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소를 정하고 인원을 파악하며, 현지 프로그램을 의논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당연히 우리 교화부에는 중간 임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끌어 주고 응원해 주시는 상급임원 여섯 분이 계신다. 장소와 인원 규모는 계절과 여러 상황을 헤아리신 상급임원분들께서 정해 주셨고, 우리는 그 안에서 세부적인 것들을 채워나갔다. 대형버스 3대에 전체 인원 150여 명. 이분들을 모시고 어떤 답사를 다녀와야 할지 의견도 분분하고 걱정도 많았다. 교화는 어떻게 진행하고, 각 차 안에서 진행과 어떤 프로그램을 하며 즐겁고 알차게 다녀올지 등등 우리는 많은 것을 의논하며 또 떨려 했다. 1차 모임에서는 각 조의 조장과 촬영자, 퀴즈 출제자를 정하고 이동 시간과 동선을 함께 점검했다. 처음부터 답사를 준비해 나가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다. 화장실 이용에 10분이면 충분하다, 많은 인원이 움직이니 빠듯하다는 의견이 부딪쳤다. 촬영이 어렵다는 분, 교화 준비 시간이 모자란다는 분, 퀴즈 출제가 어렵다는 분…. 20명의 의견을 모으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득 우리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앞에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만 따르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 우리가 직접 기획과 진행을 맡게 되기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답사지 자료를 만들며 서로가 서툴렀던 기억이 난다. 자기 의견을 어떻게 내야 할지, 또 상대방의 의견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헤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오해가 생겨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고 마음과는 다르게 날카로운 말이 오가기도 했다. 이런 서툴고 어려웠던 과정을 풀고 해결하는 과정을 겪으며 경험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큰일을 앞두니 긴장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 교화부 담당 정 보정께서 우리를 지켜보며 조율해 주셨다. 나는 차량 이동 중 진행할 간단한 프로그램을 맡았다. 대구에서 화양구곡까지 2시간 반, 그 시간 동안 모두가 함께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이전에 상제님 강세지 답사 때 ‘노트 꾸미기’를 진행했던 일이 떠올랐다. 1950~1960년대생인 어머니 세대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나 알아가기’ 활동이었는데, 예쁜 스티커도 붙이고 자기 얼굴도 직접 그려보며 그날 하루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다들 동심으로 돌아간 듯 신이 나셨고, 마치 유치원생처럼 즐거워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행복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도 그 행복을 드리고 싶어 종이접기와 노래 주고받기, 조별 박수 대결, 그리고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새우깡 게임’을 의견으로 냈다. 교화부에선 함께해 보자며 긍정적으로 받아주셨다. 우리는 답사 전까지 색종이 접는 법을 배우고 함께 연습했다. 노래도 개사해서 부르고 손뼉 치며 “하하 호호” 즐거웠다. 어려워하는 분도 있었지만, 함께 참여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정 보정께서는 이동 시간과 동선 확인을 위해 사전답사까지 다녀오셨고, 우리는 그 결과를 토대로 동선을 다시 파악하며 몇 번이나 수정을 거듭했다. 최종안은 6개 조로 나누어 화양구곡 각 구간과 첨성대, 만동묘에 배치된 퀴즈 출제자에게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퀴즈를 푸는 것이었다. 조원들의 화합과 함께 지식을 쌓고, 마지막 보물찾기와 퀴즈 시상식으로 마무리하기로 사전 준비를 마쳤다.
답사 당일, 3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우리는 각 차의 진행자 소개를 시작으로 그날의 일정을 공유했다. 인솔자의 각오와 격려사를 들은 뒤 노래도 부르고, 종이도 접으며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신나게 이동했다. 색종이를 접느라 고개를 숙이다 멀미를 하신 분도 계셨지만, 그래도 다들 환한 표정이었다. 답사지 도착 전, 교화부에서 준비한 교화도 함께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린이 같은 순수함에서 금세 수도자의 모습으로 귀 기울여 교화를 듣는 모습에 우리 또한 정성을 담아 교화하며 목적지까지 나아갔다. 화양구곡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계곡으로,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은거하며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떠 이름 지은 아홉 개의 절경이다.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어우러져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첨성대와 만동묘가 있다. 만동묘는 송시열(1607~1689)의 뜻에 따라 그의 수제자인 권상하(1641~1721)가 1703년에 세운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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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3장 32절과 교운 2장 50절을 보면, 만동묘는 상제님께서 황극신을 옮겨오게 될 인연이 있다고 하셨고, 도주님께서는 황극신이 봉안되어 있는 만동묘 유지를 두루 살펴보고 돌아오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황극신이 옮겨 온 인연이 서린 그곳, 황극신이 봉안되어 있었던 만동묘, 첨성대를 직접 보고, 무이구곡을 본떠 만들었다는 절경을 함께 감상하려고 화양구곡을 찾았다. 도착 직후 우리는 먼저 점심을 먹었다. 날씨가 추울 거로 예상했지만 부드럽고 따스한 금빛 햇살이 내려오고, 바람은 포근했다. 미리 준비한 밥과 반찬을 식판에 나눠 먹으며 즐거웠다. 식사 후 다시 조별 활동이 시작되고 교화부는 각자의 포지션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나의 역할은 6곡 능운대의 퀴즈 출제였다. 능운대까지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맑은 물 위로 구름이 수줍게 내려앉은 2곡 운영담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조금 더 올라가니 만동묘를 지나 하얀 모래와 반짝이는 물결이 어우러진 4곡 금사담의 절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시선을 옮길 때마다 기암괴석들이 마치 한 폭의 병풍처럼 펼쳐졌다. 그렇게 화양천의 물소리를 동무 삼아 걷다 보니, 어느덧 구름을 찌를 듯 웅장하게 솟아오른 능운대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멀리 5곡 첨성대가 보였다. 특히 화양구곡에서 5곡 첨성대와 만동묘는 우리 수도인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장소다. 황극신(皇極神)을 이 땅으로 옮겨오게 된 인연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황극신이 머무는 곳이 곧 그 시대의 중심이 된다는 의미를 되새겨보니, 상제님의 공사가 없었다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첨성대는 도주님께서 다녀가신 직후 석문이 갈라지며 ‘옥조빙호(玉藻氷壺)’와 ‘만력어필(萬曆御筆)’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던 신비로운 장소다. 그 기적 또한 어쩌면 도주님의 종통 계승을 더욱 명확히 밝혀주신 것이면서 우리가 앞으로 상등국이 될 것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옥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뜻하는 옥조빙호라는 글귀를 가슴에 새기며,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마음가짐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내가 걸어온 그 길을 따라 줄지어 올라오는 조원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능운대 퀴즈가 어려웠는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들렸고, 그때 나는 퀴즈는 쉽고 재미있게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어려운 퀴즈를 술술 맞춰 나가는 동부회관 도인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느껴졌다. 모든 조가 다녀간 뒤 우리는 만동묘 앞에 모여 보물찾기를 했다. 나는 아쉽게도 찾지 못했지만, 방면 도인들이 보물을 찾아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보물찾기까지 마치고 나서 대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한 분 한 분께 소감을 여쭤보고, 다시 노트에 기록해 보았다. 교화부가 꾸려진 지도 벌써 5~6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날 점심을 먹다 교화부가 생길 것이니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중간 임원이 상급임원 앞에서 교화한다는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아주 막연했던 것 같다. 그 막연함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몇 년간 삼삼오오 모여 공부도 하고, 답사도 다녀보며 준비해 왔다. 그러던 중 교무부의 도움으로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컴퓨터 전원도 켤 줄 모르고, 키보드 하나 치는 것도 낯설던 우리를 이리저리 다독이며 PPT 파일까지 만들 수 있도록 이끌어 준 교무부 덕분에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개인을 넘어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동부회관 교화부가 되려고 노력한다. 각각 다른 방면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내고 맞춰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다. 서로의 서툰 모습에 상처받기도 했고, ‘꼭 이렇게까지 힘들게 맞춰가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순진리는 혼자가 아닌 서로 화합하며 존중하는 것이기에, 그 서운함마저 녹여내는 과정이 진짜 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그날의 화양구곡은 우리에게 답사지 그 이상이었다. 서툴고 막연하기만 했던 우리 중간임원들이 서로를 다독이며 한 발짝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자 진정한 ‘화양연화(花樣年華: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나는 시절)’였다. 황극신의 기운이 서린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느꼈던 설렘과 정성을 오래 간직하며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를 믿고 응원해 주시는 상급 임원분과 그리고 동부회관 수도인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지만, 그 따뜻한 마음과 관심에 힘입어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동부회관 교화부가 되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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