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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심우도의 면이수지를 보며

심우도의 면이수지를 보며

 

 

교무부 주소연

 

▲ 면이수지 (여주본부도장 심우도 벽화)



  도장에 참배하러 가면 언제나 대순진리회 수행 과정을 표현한 심우도(尋牛圖)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심우도’는 수도의 여정을 소를 찾는 과정에 비유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 벽화이다. 진리를 찾는 수행 과정을 소를 모는 목동에 비유하는 것은 불교나 도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순진리회 심우도에서 소는 대순진리를 상징한다. 여주본부도장 봉강전 뒷벽에는 여섯 단계의 심우도가 크게 그려져 있다.
  심우도를 볼 때마다 항상 생각하게 되는 것이 “나는 어느 단계에 있을까”이다. 참배에 같이 온 도인과 서로 “넌 어느 그림 단계에 있니?”라고 묻는 일은 도장 방문에서 의미 있는 경험 중 하나이다. 이미 입도를 하였으므로 ‘봉득신교(奉得神敎)’ 단계는 지났지만, 아직 수도 과정에 있으므로 대부분 ‘면이수지(勉而修之)’ 아니면 ‘성지우성(誠之又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지우성’이라고 답하는 경우보다 ‘면이수지’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소를 만난 성지우성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비바람 속에 놓인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면이수지는 수도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으므로 벽화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면이수지의 의미와 중요성

 

  면이수지(勉而修之)는 ‘힘써서 도를 닦는다’라는 뜻으로서 이때 도는 대순진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순진리회요람』에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 본래의 청정한 본질로 환원토록 수심연성(修心煉性)하고 세기연질(洗氣煉質)하여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의 대순진리를 면이수지하고 성지우성하여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를 정각하고 일단 활연관통(豁然貫通)하면 삼계를 투명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나니 이것이 영통이며 도통인 것이다.01

 

  면이수지는 대순진리를 몸과 마음으로 얻기 위해 어려움을 극복하며 노력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대순진리는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의 종지로서 우리가 수도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진리이며, 이 땅에 실현해야 할 상제님의 뜻이다. 대순진리를 체득하는 과정이 수도이다. 수도는 무자기가 되려고 노력하고, 척을 풀고 남을 잘 되게 하는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노력을 포함한다. 면이수지는 특히 시련을 마주하고 겪어나가는 상황을 나타낸다. 이는 수도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힘써 닦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대순진리를 힘써 닦는 과정은 남과의 관계에서 나도 모르게 쌓인 척을 푸는 일도 포함한다. 척이란 남이 나에게 갖는 원한으로서 남을 미워하거나 호의를 무시하여 생기게 된다.02 내가 지은 척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 복마(伏魔)의 발동이다. 상제님께서 “ …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교법 2장 15절)고 하셨다. 복마는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 ‘마’를 가리킨다. 숨어 있는 ‘마’는 여러 힘든 상황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척을 푸는 과정에서 온갖 혼란과 고난을 경험할 수 있다. 면이수지 벽화는 어려움을 견디며 힘써 척을 풀어가는 가운데 마음을 닦고 대순진리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면이수지는 대순진리를 체득하기 위해 반드시 자신이 풀어내고 겪어야 할 과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할 것이다. 이때 면이수지의 그림이 여러 가지 표현으로 나타나는 점을 참고할 수 있다. 대순진리회 심우도의 기본적인 형태는 봉강전의 심우도처럼 6폭이다. 하지만 이외에도 포천수도장의 9폭 심우도가 있다. 이때 폭 수의 차이는 바로 면이수지 단계에서 나타난다.03 


 

 
  포천수도장 9폭 심우도를 보면, 봉득신교와 성지우성 사이에 기존의 면이수지 그림 하나에 다른 세 개가 추가되어 면이수지를 네 단계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6폭 심우도에 없는 그림들로서 면이수지의 세분화한 단계들로 볼 수 있다. 면이수지의 첫 번째 단계인 ③번 그림을 보면, 동자가 따라가던 소 발자국이 끊어지고 없어져 당황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이는 수도 과정에서 시험이나 어려움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④번 그림은 저 멀리 뒷모습만 보이는 소가 누렇다는 점이 눈에 띈다. ⑤번 그림에서 소가 누런색에서 흰색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동자가 어려움 속에서도 수도를 해나가면서 점차 도가 밝아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⑥번 그림에서 소는 보이지 않지만, 동자는 고삐를 쥐고 계속해서 길을 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소가 안 보이고, 발자국이 없어졌다가 나타나거나, 누런 소가 흰 소로 변하는 것 등의 표현은 시련의 과정을 겪으며 수도를 해나갈 때 점점 더 대순진리를 선명하게 깨우쳐 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04 
  심우도의 폭 수나 표현의 차이에 대한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면이수지 단계가 중요하게 부각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면이수지 단계에서 어떤 과정을 겪을 수 있는지 벽화 속 그림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면이수지의 경험

 

1) 시련을 견디는 인내
  면이수지의 그림 속 동자가 처한 상황은 대순진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시련을 의미한다. 동자는 소의 발자국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는데, 몰아치는 비바람에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며, 하늘에선 천둥과 번개가 쳐서 모든 것이 힘들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천둥, 번개, 비바람 등은 자신의 마음과 성품, 기질을 닦고 단련하기 위해 다가오는 상황과 척을 푸는 과정에서 복마의 발동으로 일어나는 온갖 어려운 상황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전경』에 보면, 이선경의 빙모(김형렬의 여동생)가 떡을 찌는 일화가 있다.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들은 바가 있어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하고 49일간 정성을 들이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날마다 머리를 빗고 목욕재계를 한 뒤 떡을 한 시루씩 찌는 일을 거듭하자 괴로워하면서 불평을 품었다. 그러자 떡을 아무리 오래 쪄도 떡이 익지 않았다. 신명이 그녀의 성심이 풀린 것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녀는 매우 당황하였고, 이를 보신 상제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이 불평을 품었던 마음을 상제님께 용서를 구하였다. 그러자 떡이 잘 익었고, 이후로 정성을 다하여 무사히 49일간 떡 찌는 일을 마치게 된다.05




  이러한 일화처럼 수도를 하면서 겪는 시련이 너무 힘들어서 피하거나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한 시련은 척으로 인해서 겪을 수 있다. 『전경』에 보면 종도들이 척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일화가 여럿 있다. 일례로 박공우가 예수교 사람과 다투다가 가슴뼈를 크게 다친 일처럼 자기도 모르게 지은 척이 남을 통한 시련으로 올 수도 있다.06 도전님께서 “해원은 척을 푸는 일이며 척을 맺는 것도 나요 푸는 것도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풂으로써 상대는 저절로 풀리게 되니”07라고 하셨다. 박공우가 상제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기를 공격한 사람을 은인으로 여기자 상처가 나았다. 이처럼 시련을 겪는 상황을 척을 풀 수 있는 기회로써 감사하게 여긴다면 그 어려움을 견디는 과정이 그리 힘들지 않을 수도 있고 빨리 해소될 수도 있다. 이처럼 마음을 바로 잡고 어려움과 고통을 잘 인내하며, 척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면이수지의 단계에서 나타난다.

 

 

2) 혼돈의 상태와 시험
  비바람과 천둥 번개 속에서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돈의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는 마치 길을 잃은 것과 같다. 대순진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9폭 심우도의 면이수지처럼 동자가 소 발자국을 보고 따라왔는데 발자국이 갑자기 끊길 수도 있고,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심해지는 것은 물론, 소가 아예 안 보일 수도 있다. 봉득신교 단계에서 믿음을 갖고 수도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가는 길이 맞을까?’, ‘이 진리가 내가 찾던 것이 맞을까?’ 하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소가 보이지 않고 길을 잃은 상태는 시련인 동시에 시험이기도 하다. 『전경』에 보면, 류훈장은 왜군이 침입한다는 소식에 평소 신뢰하던 하인 최풍헌에게 피난할 길을 물었고, 가산을 그에게 모두 맡겼다. 그런데 갑자기 최풍헌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08 최풍헌이 돈을 받아 간 후 술을 마시고 방탕하여도 믿고 있었는데, 죽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처럼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의심이나 두려움이 생기면서 그 길을 계속 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마치 길을 가다가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앞이 안 보이고 혼란스럽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도 과정에서 때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을 내려놓고 가르침을 따라 묵묵히 가던 길을 가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저 멀리 산기슭에 소의 뒷모습이 보인다. 『대순진리회요람』에 믿음[신(信)]에 대한 설명에서 “한 마음을 정한 바엔 이익과 손해와 사와 정과 편벽과 의지(依支)로써 바꾸어 고치고 변하여 옮기며 어긋나 차이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09라고 하였다. 우리가 봉득신교의 단계에서 대순진리를 따르기로 한 것은 나의 선택이고 그 길을 가겠다는 의지였다. 면이수지 과정에서 겪는 시련과 혼돈은 나의 마음과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며, 상제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고, 대순진리를 점점 더 밝게 깨우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3) 소를 향해 굳건하게 나아가다
  소를 보았기 때문에, 설사 다시 소가 보이지 않거나 비바람이 거세지더라도 굳건하게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동자의 힘찬 발걸음에서도 나타난다. 소를 향해 굳건하게 나아가는 길에는 신묘하게 길을 찾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신명의 안내와 도움이라고 할 수 있다. 동자가 험한 산중 속에서 비바람을 맞으면서 어떻게 소를 찾았을지 잘 알 수 없듯이, 우리도 어떻게 소를 발견하고 길을 찾아야 할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마음으로 척을 풀고 어려움을 견디고 나아가다 보면, 어떻게든 그 난관을 건너는 길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선경의 장모가 상제님께 용서를 구하고 마음을 고쳐먹자 떡이 잘 익은 경우도 그렇다. 또한, 앞의 박공우 일화에서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은인으로 여기고 마음을 풀자 열두 고을의 목사들이 모여 그의 상처를 낫게 하였다. 목사들이 모인 것이 어떻게 그의 상처를 치유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거기에는 신묘한 신명의 도움이 작용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소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이 어떤 의미였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깨닫고 풀어내야 했는지를 보게 되고, 시련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상제님과 천지신명, 선령신들의 도움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척을 푸는 과정에서 소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이 대순진리를 깨닫기 위해 내가 겪고 견뎌야 했던 수도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소의 전체 모습이 환하게 드러나고, 우리는 마침내 소 즉, 도를 만나는 성지우성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 여주본부도장 심우도 벽화


 

  이처럼 면이수지 단계는 비바람 속에서 척을 풀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선각의 가르침을 따르고, 때로는 신명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마침내 소의 뒷모습을 발견하며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시련을 잘 견뎌내면서 대순진리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면이수지의 중요성을 생각할 수 있다. 면이수지를 거쳐 성지우성으로 나아가는 이 여정은 내가 짓고 맺은 척을 해소하고 대순진리를 내면화하며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길이다. 끊임없는 정성을 들이다 보면 언젠가는 도와 내가 하나가 되는 도통진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이 길을 걷는다.

 

  

 


 01 『대순진리회요람』, p.9.
02 『대순진리회요람』, pp.19-20.
03 차선근, 「대순진리회와 불교의 심우도 비교연구」, 『대순사상논총』 46 (2023), p.47 참고.
04 차선근, 같은 글, pp.47-58 참고.
05 행록 1장 29절 참고.
06 교법 3장 12절 참고.
07 『대순지침』, p.27.
08 교법 3장 17절 참고.
09 『대순진리회요람』,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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