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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6년(2026)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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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향 속에서 피어난 도깨비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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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장려

 

향 속에서 피어난 도깨비방망이

 

 

금릉5-2 방면 교무 반대호

 



  향을 피우면, 방 안의 공기가 먼저 바뀌었다. 연기가 올라가며 천천히 퍼지는 그 시간만큼은 대학 생활 적응의 순간, 훈련장의 구령, 점호의 발소리도 잠시 멀어졌다. 나는 기도방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마음을 한곳에 붙들어 맸다. 그리고 매번 같은 문장을 꺼냈다.
  ‘제가 군 자대배치를 받는다면 수도권에 가까운 곳으로 배정되게 해주세요. 선각분들을 더 자주 뵙고 틈틈이 도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대학 생활과 병행하는 학군사관후보생(ROTC) 생활을 시작한 2학년 때부터였다. 졸업을 앞두고 자대 배치 통보를 받는 날까지, 나는 마음속에서 그 문장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누군가에게는 소원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욕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버티는 방법’에 가까웠다. 군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내가 나를 잃지 않으려면 붙잡을 중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후보생 동기들은 내가 수도한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 어떤 동기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런 것도 하느냐”고 웃어댔다. 또 어떤 동기는 “네가 믿는 거면 존중한다”라고 말해 주기도 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적당히 웃고 적당히 넘겼다. 설명해도 다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고, 억지로 전하려다 오히려 가벼워지는 것들도 있으니까.
  사실 상황은 냉정했다. 통상적으로 ‘ROTC 출신의 신임 장교 중 70~80% 이상이 강원도 산속에서 근무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그러니 수도권이나 그 근처로 가는 일은 ‘희박하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확률이 낮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심고를 드렸다. 기도방에서 혼자 향을 피우고 골몰히 앉아 있으면 마음속의 소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어디로 가게 되든 결국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그때마다 되새겼다. 심고는 결과를 강요하는 주문이 아니라 중심을 만드는 연습이었다.
  드디어 졸업 시즌이 왔다. 훈련 일정과 과제, 각종 정리할 것들로 하루가 빠르게 흘렀고, 배치 통보는 문자로 온다고 했다. 휴대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괜히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문자가 왔다.
  “30사단 배정.”
  30사단?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익숙하지 않은 숫자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검색창을 열었다. 화면에 뜬 지도를 보는 순간,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서울 경기권에 있는 부대였다. 다시 말해, 수도권. 내가 그토록 바랐던 그 거리였다.
  그때의 감정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이뤘다’보다 ‘허락받았다’에 가까웠다. 내가 잘나서 받은 선물이 아니라, ‘아직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끈’이 있다는 신호 같았다. 입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 인연의 끈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느끼던 때였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이상하게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음보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자대에 들어가 소대장 생활을 시작하자,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현실은 다시 단단하게 발목을 잡았다. 체력과 일정, 책임, 사고 가능성,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 군대는 늘 ‘마음만으로는 안된다’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럴수록 심고는 더 선명해졌다. 바쁜 날에는 아주 짧게라도 마음을 바로 세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끌고 가는 게 ‘단순한 일’이 되지 않도록, 국방의 임무를 맡고 있는 내가 하늘의 일을 해야 함을 잊지 않도록,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심고를 드렸다. 딱 한 번의 기도가 인생을 바꾼 게 아니라, 수없이 반복한 마음의 방향이 나를 지켜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알게 됐다. 내가 수도권 배치를 원했던 이유는 사실 단지 좋고 편한 자리가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선각분들을 더 자주 뵙고 도를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은 내가 혼자 잘되기 위한 욕심이 아니라 ‘도문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살아내고 싶다’라는 간절함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간절함은 주변으로 번졌다. 때때로 나는 소대원들과 동료, 선후배 장교들 사이에서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고 즐거운 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훈련으로 밤을 새우고, 일촉즉발의 사고를 막아야 하고, 누군가의 목숨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서 나는 가끔 스스로가 텅 비어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 내가 동료와 소대원들에게 할 수 있는 건 유창한 교화보다 다만 곁에 있어 주고, 한 번 더 들어주고, 내 마음의 중심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마음의 길을 선택한다는 건 누군가가 말 몇 마디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각자의 순간에 각자의 방식으로 문 앞에 섰고, 나는 그 문이 열릴 때까지 옆에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 다섯 명의 용사가 입도했다.
  가끔 나는 ‘심고는 도깨비방망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옛이야기 속 방망이는 두드리기만 하면 금은보화가 쏟아진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심고는 그런 쉬운 마법이 아니었다. 심고는 원하는 걸 “뚝딱” 만들어 내기보다, 내가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지, 그걸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먼저 묻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회라는 모습으로,
인연이라는 모습으로,
책임이라는 모습으로 조용히 건네준다.

 

  돌이켜보면 나의 군 생활에 30사단 배치는 소원이 이뤄진 장면이 아니라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자리’가 주어진 순간이었다. 나의 간절함을 이뤄준 심고는 금은보화를 준 게 아니라 내가 흔들릴 때마다 두드려서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방망이 하나를 쥐여준 셈이다.
  지금도 가끔 향 냄새를 맡으면 그날이 떠오른다. 문자 한 줄, 부대지도가 그려진 화면,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던 상제님을 향한 감사함…. 그때 나는 분명히 느꼈다. 도움을 받았다는 건 이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방망이를 두드린다. 나만 잘되게 해달라는 두드림이 아니라 내가 맡은 사람들을 무사히 지키게 해달라는 두드림. 하늘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용기를 달라는 두드림. 내가 만나는 인연을 소중히 하게 해달라는 두드림. 그리고 언젠가 또 누군가가 길 앞에서 흔들릴 때, 내가 그 옆에 설 수 있게 해달라는 두드림.
  ‘심고는 도깨비방망이다.’
  다만 그 방망이가 만들어 내는 건 금빛 보물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서게 해주는 마음의 중심을 세워주는 방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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