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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6년(2026)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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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0을 멈추게 한 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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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가작

 

0을 멈추게 한 밥 한 그릇
-영화 《넘버원》을 통해 돌아본 해원상생과 보은의 마음-

 

 

문정2 방면 선무 최민정

 


  우리 도장에는 해원상생 벽화가 있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논길 위로 무거운 새참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른 듯하지만, 어머니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져 있다. 그 시선은 오직 곁의 아이를 향해 있다. 자신의 고단함보다 아이의 안위를 먼저 살피는 그 눈빛은 말없이 한 가지 도리를 일깨워 준다. 모성은 인내를 넘어 상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감당의 마음이라는.
  나는 수도의 길을 걸으며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벽화를 바라보곤 한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삶을 내어주는 마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베푸는 자애의 마음이 과연 내 안에도 자리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최근에 접한 영화 《넘버원》은 그 벽화 속 어머니의 미소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쉽게 잊고 사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0이라는 숫자가 던지는 물음


  영화의 설정은 다소 기이하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질문이 담겨 있다. 주인공 하민은 어느 날부터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마다 눈앞에 숫자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숫자가 어머니의 남은 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해 준 존재를 영영 잃게 된다는 두려움으로 하민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민은 밥을 먹지 않으면 숫자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어머니를 잃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지만 그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결실인 ‘밥상’ 자체를 외면하는 일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우리의 모습도 이와 닮지 않았는가?’라고 돌아보았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오히려 관계를 멀리하기도 한다. 혹은 은혜를 받는 것이 미안하고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스스로 거리를 두며 관계의 흐름을 막아 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민은 어머니와 점점 멀어진다. 단지 한 끼 식사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기울여 온 정성과 사랑의 자리를 함께 거부한 셈이 되었다. 어머니를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머니의 사랑이 머무는 자리를 스스로 비워 버린 것이다. 숫자는 멈추었는지 몰라도 관계의 온기와 생명의 기운은 점점 식어 갔다. 이 모습은 은혜의 흐름이 막힐 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메말라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밥 한 그릇에 담긴 보은의 정성


  영화의 전환점은 하민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찾아온다. 병든 몸으로 어렵게 돌아온 집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밥상이 차려져 있다. 자신이 그토록 외면하고 피했던 그 밥상 앞에서 하민은 끝내 무너져 내린다. 그가 외면했던 것은 한 끼 식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날마다 쏟아 온 정성과 생명의 흔적이었다.
  대순진리회에서 보은(報恩)은 고마움을 느끼는 마음에 그치지 않는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그것을 삶 속에서 되돌려 갚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하민은 그제야 받기만 하던 자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어머니를 위해 직접 밥을 짓기 시작한다. 서툰 손길로 쌀을 씻고 물의 양을 맞추고 뜸을 들이는 그 모든 과정은 단순한 가사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는 하나의 정성이 된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이 담긴 밥 한 그릇이 어머니에게 전해지는 순간, 영화 속 숫자는 비로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한 기적의 연출이라기보다 막혀 있던 마음의 물꼬가 다시 트이고 관계의 흐름이 회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받기만 하던 자리에서 벗어나 은혜를 되새기고 직접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 관계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보은이란 결국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내 곁의 소중한 인연을 향해 진심을 다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일상에서 마주한 해원상생의 모습

 

 영화의 여운은 스크린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오래전 도장에서 만났던 한 도우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자녀를 오랜 세월 돌보며 수도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무거운 짐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언제나 평온한 안색으로 자녀를 대했다.
  어느 날 그는 정성껏 지은 밥을 자녀의 입에 한 술씩 떠 넣어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있다.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벽화 속 어머니와도 같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얘가 살아 있어서 내가 밥을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감사인지 모릅니다. 이 아이 입에 밥이 들어가는 걸 볼 때마다 내 안의 원망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요. 이 한 술이 저와 아이를 함께 살리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는 자녀를 돌보는 일을 단순한 희생이나 감내로 여기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을 이어 주는 상생의 자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밥 한술을 떠 넣는 일이 곧 자신의 마음속 원망과 응어리를 풀어 가는 해원의 공부가 되고 있었다. 그에게 밥 한 그릇은 자녀의 생명을 이어 주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수도를 이루어 가는 정성의 실체였다.

 

 

내가 잊고 있었던 은혜를 돌아보며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거창한 진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익숙하게 여기며 지나쳐 왔던 일상의 은혜들이었다. 부모님의 밥상, 도장에서 묵묵히 정성을 다하는 도우들의 손길, 말없이 나를 배려해 준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나는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멀리 있는 큰 은혜는 기억하려 하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살리고 있는 은혜에는 무뎌져 있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더구나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정성을 소홀히 하며 때로는 내 기준과 감정만 앞세운 적도 적지 않았음을 반성하였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심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인색했을지도 모른다.
  수도는 멀리 있는 특별한 사건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내 곁의 은혜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은 곧 원망을 줄이는 길이 되고 감사하는 마음은 곧 상생의 기운을 여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0을 멈추게 하는 우리의 정성


  우리는 저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를 하나씩 이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고 받은 은혜를 잊고 관계를 소홀히 할 때 그 숫자는 어느새 메마름과 단절의 방향으로 기울어 갈 수 있다. 마음속에 서운함과 원망이 쌓이고 관계의 온기가 사라질 때 우리의 삶은 비록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이미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상제님께서 밝혀 주신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은 이러한 메마름과 단절을 멈추게 하는 길이 된다. 그 길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영화 속 하민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던 소박한 밥 한 그릇처럼 내 곁의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안부 한마디, 상대를 존중하는 겸양의 자세 그리고 나보다 남을 잘되게 하려는 작은 실천 속에서 상생의 기운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오늘도 도장의 해원상생 벽화 속 어머니는 말없이 미소 짓고 있다. 그 미소는 나에게 조용히 묻는 듯하다. “너는 지금 누구의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 가고 있느냐?”라고. 나는 이 물음 앞에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0을 향해 가던 관계와 마음을 멈추고 다시 생명의 온기와 상생의 방향으로 돌려세우는 힘은 먼저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작은 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차려 내는 마음의 밥 한 그릇이 누군가의 메마른 마음을 적시고 막혀 있던 관계를 풀어 주는 작은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한 작은 보은의 실천이 쌓일 때 우리 삶과 세상 또한 조금씩 해원상생의 길로 나아가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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