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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가작
의욕의 발동이 이끈 나의 성찰
신천3 방면 선무 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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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입도식을 한 내가 어느덧 서른아홉이 되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빠르게 지나왔다. 2007년 12월 17일, 유난히도 추웠던 그 겨울날에 나는 입도식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부모님의 이혼과 오랜 갈등 속에서 자라며 마음 한편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교생활과 공부,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그 허전함을 채워보려 했지만, 웃고 떠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마다 마음은 늘 텅 비어 있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부모님의 잦은 다툼은 나도 모르게 불안이라는 감정을 내면 깊숙이 자리 잡게 만들었다. 입도식 이후 대순진리를 알아가고 기도를 모시며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비로소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던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헤아리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잠을 계속 자면 허리가 아프고, 맛있는 음식도 지나치면 질리고, 돈을 모으고자 하면 할수록 욕심은 더 커졌다. 문제를 없애려 애써도 문제는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이 결국 ‘나 자신’임을 인정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돌아보아야 했다. 지금도 여전히 반성과 개심의 과정에 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 육신을 지닌 존재로서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과정 자체는 피할 수 없는 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지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서 속에서 움직인다. 1년 12달 365일, 나의 하루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아침ㆍ점심ㆍ저녁, 해와 달의 반복 속에서 세상은 늘 나에게 묻는 듯했다. “너는 무엇을 깨달으려 이 하루를 살아가는가?”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은 각자의 마음속 욕망이 드러난 결과물이 됐다. 그 욕망이 선한지 악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포덕교화기본원리』를 읽으며 특히 마음에 깊이 와닿은 구절이 있었다. “인간은 자기 도량에 따른 기획의 설계가 의욕(意欲)의 발동이다. … 이 인간의 의욕이란 제한이 없어서 허영과 야망으로 넘쳐 허황된 꿈으로 사라지기 쉽다.” 이 구절을 보면서 나는 내가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기획과 설계를 해왔는지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허황된 기대 속에 좌절했던 순간들이 적지 않음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나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기보다 환경과 타인을 원망하며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던 세월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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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누구보다도 나는 불평과 불만이 많았고 쉽게 남을 비난하곤 했다. 상대방이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며 마음속으로 선을 그었다. 정성 또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기준을 스스로 정해 놓고, 왜 더 요구하느냐며 반발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왜 내가 굳이 더 배려하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가?’라는 생각 속에서 나의 이기심은 점점 당연한 것이 되어갔다. 이러한 오만함과 거만함,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어리석음을 나는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마음속에 쌓인 불만과 분노는 마치 코골이처럼 끊임없이 밖으로 새어 나왔고, 나는 그것을 절제하기보다 거리낌 없이 표출하며 지내왔다. 지금에 와서야 돌아보면 그 모든 모습은 세상을 향한 불만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결과였음을 알았다. 지역이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져도,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의 본질은 비슷했다. 비슷한 고민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고 유사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었다. 문제가 나한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동일한 현상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 의욕의 발동을 반성하고 조정하며 수심연성으로 마음을 닦고 성질을 연마하는 과정은 결국 나 자신을 더욱 깊이 마주하게 하는 길이었다. 그동안 도장을 다니며 상제님과의 인연으로 수도를 이어오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이유는 분명했다. 상제님의 진리 안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 상처받고 불안했던 나, 미숙하고 오만했던 나를 하나씩 돌아보며, 이해하고 반성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왔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세상은 여전히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 주변 사람을 통해 나를 보고, 갈등을 통해 나를 비추며, 깨달음을 통해 다시 나를 세운다. 19년의 수도 과정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모든 답은 내 안에 있으며, 내면의 수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나는 상생의 마음을 바탕으로, 오늘도 그 길 위에서, 자신을 마주하며 걸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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