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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6년(2026)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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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척신의 시선으로 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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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가작

 

척신의 시선으로 본 나

 

 

자양25 방면 교무 김언정

 



  예전에 ‘척신(慼神)’이라는 말을 듣기만 하면 마음이 무겁고 불길하기만 했습니다. 내 앞길을 막는 존재, 내가 망하고 고통을 겪기를 바라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점차 수도를 해나가면서 척신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도 자신을 알아가는 데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려 왔지만, 겁액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특히, 저희 외가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출세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저에게 기대를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성적을 잘 받거나 상장을 받아오면 기뻐하며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성적이 떨어지면 욕을 하며 비난하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공부하는 학교와 학원까지 찾아와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머니의 행동 때문에 너무 숨이 막혀서 차라리 어머니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저에 대한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은 저를 비뚤어진 사람으로 자라게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따돌림을 당하고 극도의 우울증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라며 제 상태를 무시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당시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 그리고 진로에 관한 가족과의 마찰 등으로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이 있으면서도 현실에서 반드시 성공하여 저의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지고 싶다는 출세욕이 강했습니다. 다니던 대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무시당하기 싫었고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질수록 마음은 더 공허해졌습니다.
  그렇게 대학교 생활을 막 시작하던 그 무렵, 선각을 만나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선각들은 제가 자라오면서 겪었던 일이 겁액 때문이라고 교화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정성을 얘기하며, 겁액을 극복하면 나중에 더 큰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후천과 도통이 있다는 얘기에 끌려 수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도를 하는 데 마음을 잘 내지 않았습니다. 선각으로부터 겁액 극복이 중요하다고는 들었는데 가슴에 와닿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에서 정성을 들일 때도 마치 입력값을 수행하는 로봇처럼 움직이곤 했습니다. 선각들은 제가 하는 걸 보고는 “마음이 안 느껴진다”, “정성이 부족하다”라고 했습니다. 저를 인정해 주지 않는 선각들에 대한 불만이 쌓여만 갔습니다.
  포덕도 하고 회관과 도장에 꾸준히 갔으나 발전이 없었습니다. 저는 도에 마음도 없으면서 겉으로만 잘 보이려고 했으니 쓰임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출세욕이 컸기에 한때 저는 ‘도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선각에게 “저는 수도를 잘할 수 없는 사람이니 다른 후각을 찾아보세요”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한 일입니다.
  그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직장 내에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저를 욕하는 것 같아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과도하게 남의 눈치를 보니 근육이 굳어 몸이 아팠습니다. 굳어진 몸을 고쳐보려고 도수치료, 카이로프랙틱 등 비싼 치료도 오랜 기간 받아봤지만 다 그때뿐이었습니다.
제가 수도한 지 10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당시 저의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습니다. 온몸의 기력이 빠지고 실수 하나라도 하면 그걸 진정시키는 데에 몇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특히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렵고 심하면 관절과 근육도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미친X!’, ‘죽어버려’ 등의 외침들이 10분에 한 번꼴로 들려왔습니다. 도저히 살고 싶지 않고 하루하루 눈을 뜨는 게 괴로웠습니다. 신경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장기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던 중 예전에 저에게 해준 선각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 선각이 밤에 저희 집안과 관련된 꿈을 꿨다는 겁니다. “내가 꿈에서 김 교무 집안의 척신들이 모여있는 걸 봤어. 그중에서도 우두머리인 여자가 있었어. 단발머리였는데, 가위를 갖고 다니면서 자기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자르는 정신 나간 여자!” 당시에는 그 말을 듣고도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고생을 하고 나서야 그 말이 평소와 다르게 와닿았습니다. 자기 머리를 마구 자르고 있었다던 단발머리 여자 신은 저뿐만 아니라 저희 어머니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학생 때 어머니는 심하게 화가 나면 도저히 정상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기행을 했습니다.
  그 척신은 저 또는 저희 집안의 누군가로 인해 삶이 망가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척신 입장에서 제가 행복하게 사는 꼴을 보면 분통이 터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 같아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전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상제께서 하루는 경석에게 검은색 두루마기 한 벌을 가져오라 하시고 내의를 다 벗고 두루마기만 입으신 후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고 여러 사람에게 “일본 사람과 같으냐”고 물으시니 모두 대하여 말하기를 “일본 사람과 꼭 같사옵나이다” 하노라. 상제께서 그 의복을 다시 벗고 “내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 이웃 아이와 먹으로 장난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 그 서당에 오지 않고 다른 서당에 가서 글을 읽다가 얼마 후 병들어 죽었도다. 그 신이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해원을 구하므로 그럼 어찌 하여야 하겠느냐 물은즉 그 신명이 나에게 왜복을 입으라 하므로 내가 그 신명을 위로하고자 입은 것이니라”고 이르셨도다.(행록 4장 54절)

 

  상제님께 원한을 품은 신의 한을 직접 풀어주셨는데 하물며 저 같은 사람은 어떨까요. 전에는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제가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척신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제가 당연히 받아야 할 고통을 겪는 게 아닐지 싶었습니다.갈수록 저는 심하게 괴로웠습니다. 척신이 저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선각은 제 상태를 살피고는 포덕소에 와서 기도라도 모시고 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포덕소 사람들이 저를 피하고 싫어한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가기 싫었습니다. 게다가 몸을 일으키는 게 너무 힘들고 움직이는 게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겁액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몸을 일으켜 포덕소에 들러서 기도를 모셨습니다. 선각은 힘들다고 거의 매일 하소연했던 저를 다독이며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회관 식당 당번을 해보라고 추천했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이른 아침 회관에 도착해서 감사의 마음으로 주방 정리와 식사 준비를 도왔습니다. 식당 당번하기 전에는 죽을 것같이 힘들었지만, 막상 당번을 마치고 나니 몸은 가벼워지고 생각도 맑아졌습니다.
  그러다 방면 회관 치성 날이 가까워졌습니다. 큰 기운을 모시려고 하자 기운이 극심하게 드러났습니다. 치성 날이 가까워지면서 증상이 더 심해지더니, 치성 날 회관을 들어서는 순간 바닥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선각은 그때 회관 안의 모든 사람이 놀라며 저를 쳐다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대로 앞을 보고 걷지도 못해 선각의 부축을 받아 내수 대기실로 올라갔고, 수도인들의 걱정 어린 시선 속에 겨우겨우 한복을 갈아입었습니다.
  저는 그때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자리라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고 봉심전에 올라가 시립을 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저 혼자만 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치성 내내 상제님께 심고를 드렸습니다. 또한, 저를 괴롭히는 척신에게도 빌었습니다. ‘당신의 인생을 망쳐서 죄송합니다. 갚을 길이 없겠지만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용서가 되지 않겠지만 용서해 주세요’라고 계속 빌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치성을 모시고 내려왔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죽겠다 싶은 생각에 더 정성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바로 나아질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척이 무섭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일주일에 3일, 3시간씩 블로그 발행 아르바이트를 이를 악물고 다녔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일하지 않았던 게 그때가 처음입니다. 사장님은 나중에 정직원으로 저를 채용했습니다. 하지만 정직원이 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저에게 “몸이 좋아질 때까지 당분간 풀타임이 아닌 하루 4시간만 근무해”라고 했습니다. 편의를 봐주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선감께서도 저를 찾으셨습니다. 제가 몸이 안 좋아 일도 제대로 못 다닌다는 말을 듣고 저에게 좋은 병원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소개받은 병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아봤는데, 의사는 저에게 “카르마[업보]의 영향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라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도에서만 듣던 얘기를 의사에게 들으니 충격이었습니다. 치료를 받은 지 한 달 정도 후에 몸이 어느 정도 나아졌습니다. 그 병원에서 치료받은 게 효과가 좋았는지, 제 업보가 차츰 풀린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몸이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고 여전히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 버거웠지만, 해볼 만하겠다 싶어 사장님에게 다시 8시간 근무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일을 다닌 지 1년이 넘었고 승진도 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분들도 친절하고 잘 대해줍니다. 겁액이라 인식하고 극복하려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일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습니다. 또한,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기념일 때 선물도 챙겨드리고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불안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건 저에게 있어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저의 겁액을 극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정말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지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도를 하지 않았다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선각분들의 도움으로 수도를 하게 되었고, 겁액을 극복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덕을 하며 제가 느낀 걸 남들에게도 알려주고 힘든 사람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준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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