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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6년(2026)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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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성구 : 속담에 발복이라 하나니

속담에 발복이라 하나니

 

 

교무부 김의성

 


이때에 경학의 형이 아우를 오라고 사람을 보내온지라. 상제께서 그를 보낸 후에 발을 당기고 가라사대 “속담에 발복이라 하나니 모르고 가는 길에 잘 가면 행이요 잘못 가면 곤란이라” 하시고 곧 그곳을 떠나 최 창조의 집에 독행하셨도다. 그곳에 머무시다가 다시 혼자 그 앞 솔밭을 지나서 최 창겸에게 이르러 잠시 몸을 두시니 상제께서 계시는 곳을 아는 사람이 없었도다. (행록 5장 10절)

 


  위의 성구는 상제님께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시던 과정에서 김경학 종도와의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된 구절이다. 행록 5장의 1절부터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당시는 상제님께서 화천(化天)하신 기유(1909)년의 행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01 상제님께서는 “속담에 발복이라 하나니 모르고 가는 길에 잘 가면 행이요 잘못 가면 곤란이라”라는 말로 가르침을 주시고 거처를 옮기셨다. 상제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중심으로 행록 5장 10절의 내용을 이해해 보자.

 

 

김경학의 일화와 발복


  상제님께서 언급하신 ‘발복’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 전 친히 발을 당기시는 행동을 취하셨다는 점을 보면, 『전경』에 등장하는 ‘발복’은 신체의 발[足]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02 비록 문헌 자료에서는 신체의 발과 연결되어 ‘발복’이 등장하는 속담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구전되어 온 이야기를 채록해 모아놓은 자료가 있어 상제님 말씀의 본뜻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다음은 해방 이전에 태어난 구술자가 남긴 녹취 내용이다.

 

  다리 흔들지 마라, 다리 흔들면 복이 나간다. 그런 게 발복이라. … 발에 복이 있다. 우리가 막 먹는데, 누가 들어오면 “발복 있네, 먹을 복 있네” 하면서 딱 주잖아. 그래서 발을 흔들지 마라 그러는 거야. 발에 붙었던 복이 떨어진다는 거다.03

 

  구전된 내용에서 ‘발복’은 ‘발이 가져다주는 복’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발에 복이 깃든다는 이 말은, 집안 어른들로부터 “다리 떨지 마라, 복 나간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세대에게는 익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 발은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신체 기관이니, 발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운이 달라진다고 여겼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발길이 닿은 곳에서 우연히 먹을 것을 얻게 되는 일은 작지 않은 복이었을 것이다. ‘발복’이라는 말이 생겨날 만도 하다.


 
  나아가 발이 가져다주는 복은 단순히 먹을 것을 얻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찾아온 기회들이 우리의 운명과 삶을 한꺼번에 바꿔놓을 중대한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발이 이끄는 대로 우연히 들른 자리에서 평생의 배우자를 만나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어 찾아간 가게에서 귀인을 만나 사업의 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무심코 향한 발길이 뜻하지 않은 사고나 다툼의 현장으로 이어져 긴 고난의 시작이 되고 마는 경우도 있다. 발걸음이 이끄는 만남과 사건이 삶의 전환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발복’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가 더욱 와닿는다.
  그렇다면 상제님께서는 왜 ‘발복’에 관한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누구에게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살펴보자. 행록 5장 10절 뒤에 이어지는 11절의 내용을 보면 경학의 형이 상제님께서 머무시고 계셨던 집에 사람을 보낸 이유가 드러난다. 당시 경학의 형은 상제님께서 경학을 속여 가산을 탕진하게 했다는 소문을 듣고, 상제님께서 거처하시던 집에 사람을 보내 경학이 상제님을 따르지 않도록 설득하려고 했다.04 그뿐만 아니라 경학의 형은 상제님을 경무청에 신고까지 했다.
  기존의 《대순회보》에서는 상제님께서 경학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심부름꾼과 함께 그를 형의 집에 가도록 하시면서 “속담에 발복이라 하나니 모르고 가는 길에 잘 가면 행이요 잘못 가면 곤란이라”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서술하고 있다.05 상제님께서는 형의 속셈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그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경학을 내보내면서도, 맞닥뜨리게 될 당사자인 경학에게 가르침을 주시고자 하신 말씀으로 짐작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경학은 상제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당시에는 그 의미를 몰랐을 테지만, 상제님의 말씀은 곧 경학이 가는 길에 대한 예견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경학이 길 위에서 마주한 상황은 곤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심부름꾼을 따라나선 경학은 형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순검과 길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순검의 추궁에 상제님의 거처를 발설한 것으로 보인다.06 경학이 순검과 함께 발걸음을 돌려 상제님을 찾으러 갔지만, 상제님께서는 이미 떠나신 뒤였다. 이어 최창조의 집에도 들렀지만, 계시지 않았다. 그때 상제님께 세배하러 들른 황응종과 문공신이 애꿎게 순검에게 구타당하는 화를 당하게 된다.
  경학의 ‘발’은 우연히 순검을 마주치게 했고, 순검에게 상제님께서 계신 곳을 자백했던 그의 행동은 다른 종도들이 화를 입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상제님의 거처를 순검에게 곧이곧대로 말한 것은 상제님께서 평하셨던 그의 성품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상제님께서 김경학의 사람됨을 ‘직장(直腸: 곧은 창자)’이라 하신 말씀은, 위기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07 이처럼 김경학의 일화는 상제님을 따르는 상황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행동을 했는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김경학은 동학 활동을 하다가 1907년 이후에 상제님을 따르게 된 종도이다.08 비교적 늦은 시기에 상제님을 따랐던 종도이지만,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하시는 동안에 물심양면으로 추종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덟 살 난 아들과 자신의 위독한 병을 상제님께서 고쳐주셨던 사건09 때문이었는지 김경학은 자신의 집을 내어드리면서까지 상제님을 보필하였고, 천지공사에도 많은 쓰임이 되었다.10
  하지만, 경학의 직장과 같은 성격에 친형의 만류나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이 더해진다면, 상제님을 믿는 마음이 흔들릴 수 있었을 것이고, 변함없이 바른 마음으로 상제님을 따르는 행동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경학은 이 사건이 일어나고 몇 달 후, 상제님께서 화천 하시기 며칠 전에 과격한 언행을 보이기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11 이를 생각하면, 상제님께서는 김경학이 선택한 ‘행동’에 따라 행운과 곤란이 결정된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치기 위해 ‘발복’의 속담을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다.

 

 

수도인에게 발복의 교훈


  ‘발복’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모르고 가는 길에 잘 가면 행이요 잘못 가면 곤란이라”라는 말씀에는 행동에 따라 주어지는 결과의 이치가 잘 드러난다. 이 말씀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상제님을 믿고 따르는 길을 걷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모르고 가는 길”이라는 말씀은 그 길의 소중함과 무게를 깨닫지 못한 채 걷고 있는 이들에 대한 언급으로도 볼 수 있다. 상제님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큰 복인지 당시 상제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따랐던 종도들조차 온전히 헤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행록 5장 10절의 말씀은 상제님을 믿고 따르는 현재 우리 수도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가르침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 훈시하신 내용이다.

 

『전경』에 발복이라 하나니 한 발 잘 가면 행(幸)이 되고 잘못 가면 불행(不幸)이 된다 하셨으니, 사람은 행동으로써 운명의 진로(進路)가 좌우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신 것이다. … 사람의 행동에서 운명이 좌우됨을 뜻함이니, 모든 행동이 다 마음을 대신한 표현임을 깊이 각성할 일이다.12

 

  도전님께서는 ‘발복’에 관한 상제님 말씀을 수도인의 행위에 적용하여 설명해 주셨다. 주목할 부분은 “사람의 행동에서 운명이 좌우됨”이라고 하신 말씀이다. 상제님 말씀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의 행동이 곧 운명의 진로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강조하시며, 수도인이 매 순간의 행동을 얼마나 신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신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에서 드러나는 행동은 발자국처럼 이르는 곳마다 자취를 남기게 된다. 그 자취는 조그마한 흔적이지만, 하나하나가 운명의 작은 씨앗이 된다. 나쁜 씨앗은 나쁜 열매를 맺고, 좋은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듯이, 잘못된 행동은 스스로 곤란한 운명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고, 바른 행동은 하나하나가 쌓여 복된 운명의 토대가 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수도인에게 ‘발복’의 교훈이란 단순히 발걸음이 가져다주는 행운을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행동과 선택이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간다는 능동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라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해 보면, 상제님께서는 ‘발복’의 속담을 인용하시어 경학이 당시에 겪게 될 상황을 예견해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더욱 근본적으로는 경학을 비롯한 종도들에게 상제님을 믿고 따르는 길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일깨워 주시는 동시에, 그 복을 지켜내는 것이 자기 행동에 달려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고 볼 수 있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 상제님을 믿고 따르는 수도인에게도 깊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수도인이라면 수도의 길에서 내딛는 작은 행동 하나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것이 쌓여 복된 운명의 토대가 된다는 『전경』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01 『전경』의 행록 5장은 1909년 음력 1월부터 6월까지의 행적이 서술되어 있다.
02 동음어인 한자어 발복(發福)과는 뜻이 전혀 다르다. 조선 시대 문헌 자료에도 종종 등장하는 이 발복은 풍수지리상에서 길지를 택하면 운이 트여 복이 닥치게 된다는 의미로, 복의 근원을 공간과 지세(地勢)에서 찾는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고산유고(孤山遺稿)』 제5권 下, 「의(議)」 산릉의(山陵議), “그러고 보면 이 묘소는 바로 홍씨(洪氏)의 성(姓)이 이 산에서 발복(發福)한 시조(始祖)의 무덤으로, 대대로 고위 관원을 배출한 것이 100여 년을 밑돌지 않는다고 사료되니, 이곳은 정기(精氣)가 비축되어 있는 완전한 땅은 못 된다고 하겠습니다. (然則是乃 洪姓此山發福之始祖也, 代赫冠冕. 料不下百餘年, 此非蓄氣儲精充備全完之地也.)”
03 『한국 구비문학 대계』, 「발복」 (https://kdp.aks.ac.kr/gubi), 조사일시: 2018.01.31, 제보자: 경기 거주 1938년생 여성 어르신. (문어체에 맞게 약간 윤색하였음)
04 행록 5장 11절, “원래 경학의 형은 이상한 술객이 경학을 속여 가산을 탕패케 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편으로 경학을 만류하고자 또 한편으로 그 술객을 관부에 고발하려는 심사에서 사람을 보낸 것이니라. 그리하여 경학이 집으로 돌아오는 중도에서 순검을 만나 함께 집에 오니라. 그리고 순검은 상제를 못 찾고 최 창조의 집에 가서도 역시 찾지 못하고 있는 중에 상제께 세배하려고 최 창조의 집에 들어선 황 응종과 문 공신을 구타하였도다.”
05 기유년 정월 2일에 차경석의 사촌 형뻘인 차문경이 상제님을 비방하였고, 군병들이 출동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다음날에는 김경학의 형이 상제님을 경무청에 고발하여 순검이 출동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사건은 4일이 되자 완전히 해소되었는데, 이것을 상제님께서 경석과 경학을 시험하신 공사의 내용으로 보고 있다.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돌이키기만 하면 仙人이 되리라」, 《대순회보》 142 (2013), pp.17-20 참고.
06 같은 글, pp.18-19 참고.
07 같은 글, p.20 참고.
08 정나연, 「『전경』 속 등장인물들의 인연5」, 《대순회보》 298 (2025), p.17 참고.
09 제생 28절, 29절 참고.
10 공사 3장 1절, 27절, 32절; 교운 1장 32절, 39절; 권지 1장 20절 참고.
11 상제님께서 화천 하시기 며칠 전에 종도들이 상제께서 나서기를 청하였지만, 사람이 없어서 나서지 못함을 말씀하시자 경학은 “증산을 따른들 무슨 소용이 있었으며, 또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복이 없는 사람이니 함께 손을 잡고 물러가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불손한 언행을 보이기도 했다. 『증산의 생애와 사상』, p.269 참고.
12 「도전님 훈시」(198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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