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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1년(2011)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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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게시판 : 우리 도를 신도(神道)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Q & A 게시판

 

 

교무부


Q.  우리 도를 신도(神道)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우리의 도(道)를 신도(神道)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단순한 의미의 도(道)라는 말과는 확실히 그 의미가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 취지와 목적, 그리고 우주에 대한 이해 수준의 차이에 따라서 각기 다른 수많은 도가 있습니다. 본래 우주의 이치는 하나로서 우주적 차원에서 볼 때 도는 하나일 수밖에 없는데, 수많은 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들 모두가 인위적(人爲的)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 도(道)를 신도(神道)라고 명명한 것은 응당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명확히 아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알지 못하고는 올바른 도를 닦을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수도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진리이든지 그것을 성취하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각기 거기에 상응하는 방법과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도(道)도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독특한 목적과 깨달음이 있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특별한 수도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고 큰 운수를 받으려면 반드시 먼저 신도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고, 그 목적과 취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여 그에 알맞은 수도법에 따라 일심(一心)으로 성ㆍ경ㆍ신(誠敬信)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임을 누차 말하였으나 깨닫지 못함은 신도와 인위적(人爲的)인 사도(邪道)를 구별하지 못한 까닭이다”(『대순지침』 39쪽)라는 말씀에서 나타나듯이 우리는 인위적인 사도와 신도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이들의 차이점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올바른 신도의 각(覺)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에 맞는 수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인간들은 천지의 존재법칙(存在法則), 운행법칙(運行法則) 즉 우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성인(聖人)들은 하늘이 내려준 우주의 이치를 보고 깨달아 인간들이 그것을 알 수 있도록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인간들의 욕심과 아집, 편견, 독선 등으로 인하여 그 본래의 이치가 변질되고 올바르게 전해지지 못하였으니, 이렇게 해서 생긴 수많은 소산물들을 우리는 인위적인 사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 사도는 어느 정도는 진리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많은 부분이 변질되어 하늘과 땅의 이치를 거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로 하여금 인간 본래의 무욕청정한 마음자리로 돌아가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인간들을 병들게 하고 타락하게 하며, 또한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도라는 것은 인위가 아닌 신위(神爲)의 차원(次元)에서 이루어지고 운용(運用)되는 도(道)를 말합니다. 신(神)은 진리에 지극하다는 상제님의 말씀처럼 신명(神明)은 인간처럼 편견ㆍ오만ㆍ아집 등이 없으니 천지의 이치를 어그러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는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공사 1장 3절)라는 말씀과 같이 모든 일을 근본적으로 신도로부터 해결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세상에는 신도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지에 신명이 가득 차 있으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나니라.”(교법 3장 2절)라는 말씀에서 보더라도 천지 만물이 신도 안에 포용 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이 신(神)으로 구성되어 있고 만사가 신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므로 모든 것은 신의 일이고 모든 도는 신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신도란 보다 깊고 높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조그마한 신(神)의 차원에서 말하는 신도가 아니라 우주를 관장하는 높은 우주적 차원의 신명을 통한 신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제님께서 행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잠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신명들의 하소연에 의해 천하, 온 우주를 대순(大巡)하신 후 인세에 강세하셨습니다. 그리고 천ㆍ지ㆍ인(天地人) 삼계(三界)가 너무나 깊이 병들고 도수가 어그러져 이것을 뜯어 고치는 대역사(大役事)를 하신 것입니다. 선천(先天)의 세상이 지나친 상극(相克)으로 인하여 온 우주에 원이 가득 차 있어 이것을 뜯어 고치고 원을 풀어 상극(相克)도수를 상생(相生)도수로 바꾸시는 것을 천지공사라 합니다. 즉 온 우주, 온 천지를 개조(改造)함에 있어서 사사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신명들 즉 천지신명들의 참관 하에 공적(公的)으로 처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주관하는 것은 오직 우주의 조화주(造化主)이신 상제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이것을 함께 도울 수 있는 신은 바로 우주의 운행도수를 맡을 수 있는 천지신명들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상제님께서 주관하시고 천지의 모든 대신명(大神明)들이 참여하여 짜 맞추어진 도수는 천부적인 종통(宗統) 계승에 의해 그 맥이 전해지게 됩니다. 우주개조(宇宙改造)를 위해 삼천(三遷)의 이치로서 맞추어진 도수로 인해 그 완성의 임무가 도주님, 도전님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십년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 도수(공사 3장 37절 참조)로써 도주님의 종통계승은 확정되었으니, 이를 알려주시기 위해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행록 5장 29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때로 금산사의 금불을 양산도(兩山道)라 이름 하시고 세속에 있는 말의 양산도와 비유하시기도 하셨도다.”(예시 15절)라는 기록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이란 서울로부터 만방에 펼쳐 나가는 것…”(예시 46절)이라고 하여 대순진리회의 출현이 예시되어 있으니 이와 같은 것을 천부적 종통계승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 도를 신도라 함은 상제님께서 천지신명들을 대동하고 우주를 뜯어 고쳐 새로운 후천(後天)을 창조하는 공사를 행하셨는데 이것이 완성되기 위해서 천부의 종통계승으로써 현재의 대순진리회가 창도 되었던 것인바, 바로 이러한 우주적 차원의 신명에 의한 도라는 뜻으로 신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구천상제님이신데, 구천(九天)이라 함은 이 우주를 총할하시는 가장 높은 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구천상제님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뜻하며, 하느님께서 천지 대신명을 벌여놓고 펼치신 도가 바로 우리 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인위적인 사도와 대비하여 우리 도를 신도라 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도를 해 나가면서 우리 도는 신도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도의 특징을 잘 밝혀 주는 것으로 수도의 엄격성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간 이 신도라는 말을 자신의 잘못된 언행을 합리화하는 데에 무심코 쓰게 되는 경우도 있고, 단지 신비주의에 치우쳐 사사로움을 감추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도가 말 그대로 신도임을 깨닫는다면 천지의 이치를 올바로 느끼고 모든 일을 경위에 맞게 처리하고 무자기를 바탕으로 어두운 방에서도 결코 자기를 속이지 않는 진실성을 가지고 수도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도(神道)라 함은 인간이 사사롭게 지어낸 도가 아니라 우주를 조화하시는 상제님께서 우주의 모든 대신명(大神明)들을 대동하시고 우주를 개조하기 위해 공사를 행하시고 이에 따라 수도를 할 수 있도록 짜여진 도를 말합니다. 이러한 도를 행하는 목적은 인간개조, 정신개벽으로 신인조화(神人調化)를 이루어 우주의 모든 이치에 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시 인위(人爲)를 경계하고 심(心)을 곧게 세워 성(性)을 올바로 발휘함으로써 천리(天理)의 지극(至極)함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대순회보』 12호 - 「신도(神道)의 의미와 수도의 자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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