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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1년(2011)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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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56) : 박공우가 상제님을 진심으로 받들게 되다

박공우가 상제님을 진심으로 받들게 되다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7[丁未]년 6월부터 상제님께서는 차경석이 있는 정읍 대흥리에서 두어 달 동안 여러 공사를 행하셨다. 이때 박공우(朴公又, 1876∼1940)는 고부 송월리01에서 처음 상제님을 뵙고 상제님을 좇아 대흥리에 와서 여러 공사에 참관하고 있었는데, 예전에 다쳤던 가슴이 다 낫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었다. 원래 성질이 사나워 남과 잘 다투었던 그는 얼마 전 천원(川原)02 장터에서 예수교 사람과 싸우다가 큰 돌에 맞아 가슴뼈가 상하였었던 것이다.
  상제님께서 아파하는 박공우를 보시고, “너도 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완쾌된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전에 상해한 자가 이제 너에게 상해를 입힌 측에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내 마음을 스스로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나으리라.”고 가르침을 내리셨다. 박공우는 크게 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풀면서 후일에 만나면 반드시 잘 대접하리라고 다짐하였다. 며칠 뒤 천원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리자, 상제님께서는 “네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열두 고을 목사가 움직였노라.”고 이르셨다.
  상제님께서 박공우를 데리고 다니시는 일이 많으셨으니, 이에 대해 “내가 너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네 뱃속에 경우가 많은 연고니라. 여자도 경우가 많아야 아이를 많이 낳으리라.”고 밝혀주신 바 있다. 그런데 박공우는 인품(人品)에 문제가 좀 있는 사람이었다. 상제님께서는 하늘도 뜯어 고치시고 땅도 뜯어 고치시며 사람도 신명으로 하여금 가슴 속에 드나들게 하여 다 고쳐 쓰시는 분이시니,03 과연 그런 박공우도 ‘고쳐서’ 쓰시고자 하셨다. 상제님께서 박공우에게 “너는 표단(豹丹: 표범의 성품)이 있으니 인단(人丹: 사람의 참된 성품)으로 갈음하라.”고 말씀을 하시자, 이로부터 그는 성질이 누그러져 남과 다투지 않게 되었고, 또 “너는 한 잔 술밖에 못된다.”고 하시니, 항상 술을 많이 먹고 주정도 심했던 박공우는 그로부터는 술 한 잔만 마셔도 바로 취하여 술을 더 마시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박공우는 상제님을 자주 모시고 다니다 보니, 특이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그는 상제님께서 어느 곳에 머무시다가 다른 곳으로 가려 하실 때는 밤이면 달무리가, 낮이면 햇무리가 항상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든지 햇무리나 달무리가 나타나면 상제님께서 출타하시려는 줄 알고 떠날 준비를 미리 하곤 하였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박공우를 데리고 가시면서 그로 하여금 우산을 사서 들게 하셨다. 박공우는 상제님께서 원래 우산을 드는 일이 없으셨고, 또 비록 비가 오더라도 비가 상제님을 범치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비가 오니, 상제님께서 박공우에게 우산을 쓰라고 하셨다. 박공우는 죄송스러워 상제님께서 우산을 쓰시기를 청하였더니 상제님께서는 다시 그에게 우산을 쓰라고 하셨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사이 공우는 물론이요 상제님께서도 비를 맞으시어 옷이 모두 젖어버렸다. 그제야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교훈하시기를 “이 뒤로는 우산을 들지 말라. 의뢰심과 두 마음을 품으면 신명의 음호(陰護)를 받지 못하니라.”고 하셨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박공우는 상제님에 대한 믿음이 점점 깊어갔다. 그런데 원래 그는 동학신도로서 일진회의 간부였다 보니, 상제님을 따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몰래 일진회 사무실에 다니며 일을 보고 있었다. 어느 날도 박공우는 일진회 사무실에 갔다 왔다. 그런 박공우를 보시고 갑자기 상제님께서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은 자는 그 몸이 찢어지리니 주의하라.”고 타이르시니, 깜짝 놀란 그는 일진회와의 관계를 아주 끊고 다시는 숨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박공우는 일진회도 그만 두고 동학에 대한 믿음도 접었지만, 상제님께 “동학주(東學呪)로 강(降)을 받지 못하였나이다.” 하며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동학주란 ‘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를 말하는데, 동학신도들은 이 주문을 열심히 읽으면 강령(降靈)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박공우 역시 상제님을 처음 배알하던 당시, 강령을 받기 위하여 49일을 한정하고 동학주로 기도를 드렸던 전력이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그것은 다 제우강(濟愚降)이고 천강(天降)이 아니니라. 만일 천강을 받은 사람이면 병든 자를 한 번만 만져도 낫게 할 것이며 또한 건너다보기만 하여도 나을지니라. 천강은 뒤에 있나니 잘 닦으라.”고 일깨워주시며, “내가 한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터이니 나의 말을 믿을지어다.”고 말씀하셨다.
  상제님의 경고에 따라 아예 일진회에 나가지 않게 된 박공우는 다른 종도들이 모두 상투 차림인데 비해 자신은 단발을 하고 있음이 부끄러워졌다. 당시 일진회 회원들은 모두 상투를 자르고 단발을 하고 다녔고 박공우 역시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짧은 머리털을 끌어 올려서 뭉뚱그려 상투 모양으로 묶었더니 그 모양이 마치 솔잎을 묶은 것과 비슷했다. 하루는 길가를 지나다가 우연히 일진회의 전 동지들을 만나 머리 모양이 이상하다고 놀림을 당하고 강제로 머리를 깎여 버렸다. 민망해진 박공우는 바깥 출입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다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홀연히 상제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밖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물으시니 그는 사실을 그대로 아뢰었다. 그러자 상제님께서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 머리와 무슨 상관하리오!” 하고 깨우쳐주시니, 공우는 즉시 상제님을 따라 나섰다. 

 

 


  이 무렵 박공우가 상제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완전히 따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두 가지 있었다. 한 번은 상제님께서 박공우 등 몇 종도들을 데리시고 살포정 주막에 오셔서 쉬시는데, 갑자기 번개와 우레가 크게 일어나 주막을 범하려 하였다. 상제님께서 번개와 우레가 일어나는 곳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번개와 우레가 곧 멈추었다.
이때 공우는 상제님께서 번개를 부리기도 하시고 또 꾸짖어 물리치기도 하시니 틀림없이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시는 하느님이시라고 생각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상제님을 좇을 것이라고 결심하였다. 또 어느 날 상제님께서 박공우에게 “‘만날 사람 만났으니’라는 동학가사를 아느냐? 이제부터 네가 때마다 하는 그 식고(食告)를 나에게 돌리라.” 하시니, 감복한 그는 “평생의 소원이라 깨달았나이다.” 하고 고백했다. 원래 박공우는 다른 동학신도들과는 달리 하느님을 꼭 뵙게 해 달라고 발원하는 식고를 남몰래 드렸는데,04 이를 상제님께서 아시고 그 식고를 상제님께로 돌리라고 하셨던 것이다. 상제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깊이 깨달은 그는 상제님을 지성으로 받드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01 現 전북 정읍시 장순리 송내마을. 

02 現 전북 정읍시 입암면 천원리. 

03 교법 3장 1절.

04 당시 동학 신도들은 최제우의 기운을 받겠다는 의미인 ‘대신사응감(大神師應感)’이라는 식고를 드렸다는 말이 전한다. 한편 동학 신도들이 최제우를 대신사(大神師)라는 호칭으로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시기는 1908년이었으므로, 상제님께서 박공우에게 식고에 대한 말씀을 하신 1907년 무렵에는 동학신도들이 ‘대신사응감’이라는 식고를 드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김탁, 『한국종교사에서의 동학과 증산교의 만남』, 한누리미디어, 2000, pp.28∼29) 원래 동학 신도들이 드리는 식고는 ‘천지부모(天地父母) 특사조반(特賜朝飯) 감사무량(感謝無量)’이었는데, 지금은 ‘천지부모님과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제가 지금 한울님 은덕으로 ○○밥을 먹게 되었사오니 감사하옵니다’라고 한다.(『한국 민속의 세계』 제10권,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2001, pp.31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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