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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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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자기합리화’라는 무서운 덫

‘자기합리화’라는 무서운 덫
 
 
성산 방면 선사 이은희
 
 
 
  대부분의 사람은 대체로 자신은 나름 옳으며 잘못한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정말 이 말대로 올바르고 잘못이 없는 사람들만 있다면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일 텐데 말이다.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01에 의하면, 습관적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며,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 대신 자기의 입장만을 고수한다. 어찌 보면 자기 나름은 그것이 선(善)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행동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선하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선의 뜻은 ‘착하다, 좋다, 훌륭하다, 잘하다, 옳게 여기다, 아끼다, 친하다, 사이좋다, 착하고 정당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 등이라고 되어 있다. 다 좋은 뜻이다. 문제는 착하고 좋으며 옳고 정당하게 여기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가는 행위에 대해서도 자신은 정당하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연쇄살인범조차 자기는 정당방위였고 세상이 자기를 오해하고 몰라준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떻게 상식적인 기준을 훨씬 넘어서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정말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 자기를 합리화하다 보면 이것이 습관이 되어 어지간한 일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나중엔 자기가 얼마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지 알아채지도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이렇게 조금씩 자신을 정당화할 거리를 찾고 합리화하는 게 습관화되다 보면 나중에는 엄청난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기합리화에 빠져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양심의 소리를 조금씩 무시하다 보면 어느새 만성이 되어 양심의 소리는 올라올 틈새마저 다 막혀 버린다. 그렇게 되면 내면에는 양심과 사심의 갈등조차 없어져 마치 안심·안신이 된 것인 양,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온 것인 양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자기합리화라는 무서운 덫에 걸렸는데도….
  그래서 많은 철학자와 종교가들은 자신과 세상의 진짜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더러운 면을 회피 말고 똑바로 바라보고, 누구나 피하고 싶은 죽음도 인정하여, ‘뭐가 가짜이고 진짜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순간순간 어떤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도 자신 모르게 연쇄살인범이나 후안무치한 범죄자들과 같은 그런 마음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수칙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 도인의 옥조(玉條)이고, 자기 마음을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늘 자신을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는 무자기(無自欺)는 옥과 같이 귀한 조항이니 반드시 지키라는 상제님의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것이 도통의 가장 중요한 기본 조건이 아닐까? 『대순진리회요람』의 취지에 따르면,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 본래의 청정한 본질로 환원토록 수심연성하고 세기연질하여”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마음을 속이지 않아야, 즉 ‘자기합리화라는 더러운 껍데기를 벗어던져야’ 인간 본래의 맑고 깨끗한 본질인 양심을 찾을 수 있으며, ‘도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도’라는 경지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고, 영통·도통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는 ‘무자기’는 도통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도통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혹시 현재 우리 자신은 자기의 마음을 속이고 있지 않은지 철저히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아니야!’라든가, ‘나는 그런 거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쩌면 너무도 두꺼운 자기합리화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할 일은 도통 받는 그날까지 혹시나 내가 나 자신을 속이는 게 없는지 늘 조심하고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면이수지(勉而修之), 성지우성(誠之又誠)하면서. 사실 자기합리화에 빠지지 않기가 쉽지 않기에 도주님께서 연운체계의 수도법을 짜주신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수반을 거울로 삼고 자신을 보라고.
  대부분 자기는 선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기에 자기합리화의 덫에 걸린 줄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수가 많다. 자동차 백미러에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인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s, 인간사고의 맹점(盲點)이라고도 함]처럼.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이것의 의미는 충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나의 맹점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맹점이 무엇인지 일러 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부족한 점과 잘못을 발견하고 고쳐서 한층 성숙한 사람으로 도약할 멋진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아들러는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자기 잘못을 고치는 일인 것 같다”02라고 하였다. 바꾸어 생각하면 어렵기에 그 일을 해낸다면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부족한 점과 잘못을 일러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고 보답으로 맛난 식사라도 대접해야 할 것이다. 도전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자기 잘못의 발견은 위대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얘기할 때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 들거나, 상대는 틀리고 내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고픈 생각이 들 때,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순간, 자신이 자기합리화라는 올가미에 걸려들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 주변에서 충언해주는 사람은 점점 멀어질 것이고, 자기를 옳다고 하고 칭찬해주는 간신만 늘어날 것이다. 그럴수록 자기가 잘하는 것으로 더욱 착각하게 되어 더 크고 두꺼운 쇠 항아리를 머리에 이게 될 것이다. 자신은 맑은 하늘을 보았다고 착각하면서….
  상제님께서도 ‘한쪽 말은 전부 옳고 다른 쪽 말은 전부 틀렸어’ 하는 것은 의(義)가 아니라고 하셨다.03 내가 틀릴 수 있고 상대방의 말이 맞을 수 있음의 여지를 남겨두는 여유 있는 태도. 이런 자세가 어쩌면 자기합리화라는 덫에 빠지지 않게 하고, 빠졌더라도 빠져나올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상호이해(相互理解)가 해원상생’이라고 말씀하신 도전님의 훈시가 생각난다. 해원상생을 이루려면 상호이해가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 때,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겸허하게 귀를 기울일 줄 알 때, 서로의 입장과 주장이 이해되어 해원이 되고 상생이 될 것이다. 자신은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상대에게만 자기를 이해해 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어쩌면 누구나 자기합리화의 덫에 어느 정도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래서 도주님께서 훈회에 ‘마음을 속이지 말라’, 수칙에서도 ‘무자기(無自欺)는 도인의 옥조(玉條)’라 하여 재차 강조하신 게 아닐까? 상제님께서도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04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05고 하셨다. 즉 내가 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고 있는지, 혹 사심에 사로잡혀 사심이 본심인 양 마음을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 끊임없이 늘 자신을 살펴보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인 신동엽 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되새김질해 보고자 한다. ‘누가 감히 자기가 맑은 하늘을 보았다고 자만하는가’라는 외침을 겸손하게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겨누어 보고자 한다.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무리며….”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06               
 
 
                               신동엽(申東曄, 1930~1969)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무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01 알프레드 아들러, 『인간이해』, 라영균 옮김 (서울: 일빛, 2015), p.20. 아들러는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이며, 프로이트ㆍ융과 함께 3대 심층 심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아들러는 평생을 ‘인간 이해의 심리학’을 체계화하는 데 전념하였으며,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곧 삶의 주인이 되는 길임을 알려준 최초의 인본주의 심리학자이다. 아들러의 사상을 대화체로 풀어쓴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가 최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널리 읽혔다.
02 앞의 책.
03 “…不受全是全非曰義….” (교법 3장 47절).
04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 머리와 무슨 상관하리오….” (교법 2장 10절).
05 “…마음을 부지런히 하여 힘쓸지니라….” (교법 2장 12절);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 (교법 2장 56절).
06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작과비평사, 1999), pp.13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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