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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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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삶의 여러 장면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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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러 장면을 회상하며
 
 

자양20 방면 선감 양영화
글 편집  출판팀

 
 
 
  이 글을 쓰려니 속내를 보이는 거 같아 창피하지만, 내 안에 가두어 둔 내면의 껍질을 깨기 위해 용기를 내어 펜을 들어본다.
 
 
1. 친구를 대하며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졸업 전까지 줄곧 학급 임원을 도맡아왔다. 당시 해마다 나와 반장, 부반장을 번갈아가며 맡아온 절친이 있었는데,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 모두 각자의 삶에 바쁘다 보니 동창회가 아니면 얼굴을 보기 힘들다. 동창회도 수도생활을 하느라 가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나에게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두 명이 나를 찾아왔다.
  한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에게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 나를 찾아온 강력계 형사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오랜만에 만나서도 주위를 둘러보는 날카로운 눈빛이 어린 시절 반장할 때 교실을 둘러보던 모습 그대로다. ‘지금도 변함없이 성실히 직분을 다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런데 이 친구 대순진리회에 대해서 사전 검색을 하고 왔는지 대뜸 악성 댓글적인 말을 쏟아붓는다. 그리고는 “월급은 있냐? 어떻게 먹고 사냐?” 하는 질문 공세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이게 제일 궁금했나 싶다. 그리고는 등등했던 기세도 잠시,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형사라서 잠을 자면서도 항상 대기 상태고,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생명보험을 여러 개 들어놓고 있다는 이야기다. 
  함께 온 또 다른 친구는 현재 평택에서 벽돌 만드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 친구는 연구에 몰입하여 밤낮없이 일하는 경우가 잦아 매일 집에 들어갈 수 없어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며 고된 삶의 넋두리를 쏟아낸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겪었던 경험을 상기하며 지금은 자식들을 알뜰히 챙기기 위해 노력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런데 이 친구도 어김없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첫 물음이 “월급은 있냐? 왜 하필 대순이냐?”라고 질문한다. 나는 똑같은 질문에 웃음을 참으며 친구들에게 이야기로 답해 주었다.
 
 
내가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게. 옛날에 우리처럼 세 명의 절친한 소꿉동무가 있었단다. 15살쯤 되어 각자가 타지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겠지. 그래서 약속을 했어. 30년 후에 우리가 놀던 소나무 밑에서 보자고, 그래서 그동안 어찌 살았나? 확인하자고…. 약속한 대로 30년 후에 만났겠지. 한 친구는 지금으로 하면 5급 공무원이 되어 관복 차림으로 나왔고, 두 번째 친구는 지팡이를 짚고 도사가 되어 나왔어. 세 번째 친구가 안 보여 물어보니, 도사 친구가 소나무 위를 가리켰어. 큰 구렁이 한 마리가 고개를 쓱 내미는데 어딘가 슬픈 눈빛인 거야. 도사 친구 왈 “쟤는 재물에 너무 욕심내다 병에 걸려 일찍 죽어 구렁이로 환생해서 저렇단다. 애석한 일이지만 과보를 받으면서도 우리 약속은 잊지 않아 오늘 그 모습으로 와 주었구먼!…. 쟤도 안쓰럽지만 너의 얼굴에도 큰 화를 당할 액운이 보이는구나. 혹, 억울한 일 생기면 원수로 갚으려 하지 말고, 모든 일이 인과로 오는 것이니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해보시게. 그러면 살길이 열릴 것이야” 친구는 반신반의하고 헤어졌는데, 몇 년 지나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거야. 다행히 그때 문득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 마음을 누그려 화를 모면했단다.
 
 
  “이 이야기처럼 나는 수도인이야. 너는 형사가 되어 네가 쓰지도 못할 생명보험을 몇 개나 들어 두면서도 한쪽 가슴이 두렵고 허전하지?”, “그리고 너는 연구원이 되어 처자식 먹여 살리는 일에만 신경 쓰면서도 주말에 겨우 애들 얼굴이나 볼 뿐이고, 누구보다 관심 있어 하던 우리의 역사니 인간의 도리 같은 말이 이제는 생소하게 들리지?”, “앞의 이야기에 도사가 제일 나은 것처럼, 도 닦는 내가 가장 사람답게 사는 것 같지 않냐?” 하니까 “그건 그러네!” 하고 머슥하게 웃는다. 헤어지는 형사 친구에게 걱정되어 “몸조심해라” 했더니 “도 닦는 동창이 있어서 안전할 거야, 기도나 좀 해주라” 문밖을 나서는 친구 뒤로 다짐한다. ‘내 열심히 닦아서 너희들을 기다릴게. 우린 좋은 친구잖아’
 
 
2. 어렸을 적 한계를 넘기고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기도 하고 과거의 삶을 후회하거나 버리지 못한 미련을 발견하기도 한다. 과거의 삶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경우 우리는 방향을 선회하여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노력한다. 특히 그것이 배움과 학업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나 또한 그 시절의 삶이 후회되기도 하지만 그립기도 하다. 배움의 장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지금도 미련이 남는다. 이번을 계기로 그때 이루지 못했던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교육을 통한 자기성장도 할 겸 경기대 평생교육원에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다. 
  첫 수업을 듣기 위해 대학교 강의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고등학생 시절의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내 속에 존재하는 학창시절의 내면 아이와의 맞닥뜨림은 나를 그 시절로 되돌아가게 했다. 나이는 들어도 감수성과 감정은 늙지 않나 보다. 새로운 도전인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첫 수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담당 교과목 교수님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이지 하면서 10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 그때야 교수님은 헐레벌떡 뛰어오며 첫 수업에 자신이 지각했다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 얘기 끝에 수줍게 이름을 밝히신다.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인데 담당 교수님이 늦게 오시다니? ‘교수님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이 꽤 있는데 예의가 좀 없으시구나. 그리고 목소리도 맘에 안 들어. 어떡하지?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이대로 가다간 내가 공부를 못 하겠네….’
  핑계같이 들릴지는 몰라도 사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도 영어와 수학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어 해당 교과목 공부를 등한시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결국 대학시험에도 낙방이라는 고배의 쓴잔을 맛봐야 했다. 이런저런 학창시절 기억이 교차할 때마다 마음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야, 이거 과거에 풀지 못한 미해결 과제가 지금 이 시간을 통해 다시 오나 보다. 이걸 어떻게 풀지?’ 순간 ‘마음을 고쳐 내가 먼저 정성을 다해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우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님에 대한 편견을 바꾸기 위한 것이 급선무였다. 그때 나는 에너지 음료인 박카스가 생각났다.
  예전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서 한 달 동안 단청 작업에 참여했을 때 찌는 듯한 한낮 더위에도 도전님께서 내려주신 박카스 한 병이면 피곤함과 더위를 잊을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 학생을 위해 정성을 다해 강의해 주시는 교수님을 위해 수업시간마다 교탁 위에 박카스를 올려놓자! 그러면 교수님을 위하는 마음도 생겨날 것이고, 나도 수업준비를 더 열심히 하지 않겠어.’
  당장 다음 수업시간부터 마음으로만 계획하고 있던 것을 실행에 옮겨 강의 시작 전에 강단 책상에 박카스를 올려놓았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음료수를 올려놓았다. 한두 번은 학생들이 경쟁하듯 음료수를 올려놓더니 한 달이 지나면서 내가 쭉 하는 것을 보고 으레 이제는 내가 하겠거니 하고 다들 안 한다.
  그 뒤로 2년 과정을 마치기까지 노란색 포스트잇에 ‘감사합니다’를 써서 박카스에 붙여 교탁에 올렸다. 깜박 잊고 챙기지 못한 날은 학교 앞 약국에서 사서 들어갔다. 정성이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는 거니까 이 과정을 마칠 때까지 할 것을 다짐하면서 했다. 그러는 동안 난 박카스를 교수님이 드시나 안 드시나 마음이 졸여졌고, 메모를 보시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지다 보니 수업 시간이 매번 기다려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예습도 하게 되고, 강의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교수님은 매번 자신을 위해 박카스를 사다 주는 학생이 저라는 것을 알고 계셨고, 그 정성이 고마우셨는지 저에게 더 관심을 두었다. 처음 염려와는 달리 공부는 나날이 더 재미있었고 학업에 대한 결과도 시간이 거듭할수록 더 좋아졌다.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수료증을 받는 날이 되었다. 그날 교수님은 자신의 다이어리를 나에게 보여 주셨다. 내가 박카스에 붙인 메모를 버리지 않고 붙여두었다면서, 덕분에 즐겁게 가르칠 수 있었다고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신다. 그날 조교 선배도 “교수님이 원래 위가 안 좋아서 박카스를 안 드셨는데, 지금은 일부러 찾아드셔. 다 양 선생 덕분이야”라고 미소를 짓는다. 학창시절 풀지 못한 미해결 과제이자 겁액을 이 시간을 통해 해결하니 자신감도 생기고 마음이 한결 가볍다. 어렸을 적 넘지 못한 아픈 고통을 이렇게 극복할 수 있다니. 다시 한번 우리의 해원상생에 참으로 위대함을 느낀다.
 
 
 
3. 수강을 마치며-천성을 회복하라 
  ‘정수연의 부도지’와 송준희 교수의 ‘고대사 환국’ 동영상을 보고 나의 DNA 유전자가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를 무자기를 근본으로 한 양심 회복과 비교하며 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 수강이 나왔다. 때마침 수강의 주된 강의 내용이 양심이어서 내 공부였구나 싶었다.
  수강 둘째 날 옆의 임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도 중에 움직이면 안 돼요. 부동심(不動心) 부동신(不動身)이에요” 하고 나무라듯 말했다. 난 순간 회피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 할게요” 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1년 전부터 고관절 통증으로 다리가 아파 교정 치료를 수차례 받았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어 늘 기도 모실 때면 자주 다리를 옮기거나 무릎을 꿇고 해왔다. 기도를 안 모시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모시는 게 정성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틀렸다고 하니 부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하라’라는 교화를 들으면서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부정하고, 회피하고, 합리화하는 생각과 감정도 사심일 거라고.
  상제님께서는 사람의 성격과 체질을 고쳐 쓰신다고 하셨는데, 수도 생활 중에서 기도시간도 안심, 안신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한마음으로 정성을 드리면 고쳐지지 않을까? 고장 난 물건을 고칠 때도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하물며 도통군자로 거듭나기 위한 기국을 만드는 일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아무리 아파도 안 움직이는 게 맞다 싶다. 내가 크게 손해 볼 짓을 하고 있었던 거다. 예컨대 병원에서 수술받는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움직이면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정성을 들이는데 바른 마음가짐과 태도는 기본이라고 생각되었다. 
  새벽 1시 기도시간. 이번에는 아무리 아파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심고 드렸다. ‘상제님 임의에 맡기겠습니다. 정말로 상제님의 덕화를 바르게 펴고 싶습니다. 고쳐 써 주십시오.’ 환자가 의사를 믿지 않으면 아무리 의술이 훌륭한들 고칠 수 있겠나? 내가 그동안 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하고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반성하고 고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고쳐 써 주십시오. 저는 정말로 상제님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 정성을 다해 기도를 모셨더니 예전에는 통증으로 힘들었던 기도 시간이 한 시간 내내 아프지 않고 마쳐졌다.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다음 날 아침 7시 기도 시간. 어제 일이 한 번으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하며 일심으로 기도에 임했다. 그리고 다시 심고를 드렸다. ‘1%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상제님 전에 저 자신을 맡기겠습니다. 고쳐 써 주십시오. 반성하고 고쳐 나가겠습니다.’ 역시나 아팠던 다리에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기도 모시는 동안 처음 앉은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무사히 기도를 모셨다. 정말로 상제님은 이렇게 존재하고 계신 것을, 눈에 안 보인다고 마음의 눈으로 찾지 않고 이리 믿음이 부실했으니 정말로 죄송스러웠다.
  수강을 마치고 회관에 와서 주일 기도를 모시는데 속으로 ‘이번이 3번째인데 혹여 내 마음을 시험해 보기 위해 엄청 아프지 않을까?’라는 찰나의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을 거다. 너의 믿음을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 했는데, 당연히 이래도 믿겠느냐? 라고 시험이 있을 수 있을 법도 하다. 만약 그러면 어떡하지? 죽었다 생각하고 일심으로 임하자. 죽을 만큼 아파도 절대로 다리를 움직이지 말자. 다리 수술하는데 아픈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임했다.
  아니나 다를까, 종전과는 다르게 다리가 죽을 것처럼 아팠다. 마치 다리가 깁스한 듯 딱딱하게 굳고, 무릎에서 ‘쏙쏙 쏙쏙…’ 소리가 날 정도였다. 이미 예상하고 임했던 터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 했지만, 왜 그리도 시간이 안 가는지, 손뼉치는 마침 소리가 빨리 들려오기를 학수고대하면서 아픔을 잊기 위해 숫자를 세었다. 드디어 ‘짝·짝·짝’ 마침 소리. 굳었던 다리가 언제 그랬나?는 듯 ‘스르르’ 경직을 푼다. 일어나라는 ‘흥’ 소리에 쥐가 나서 못 일어나겠지? 싶었던 다리가 가뿐히 일어나진다. ‘참 신기하네!’
  이렇게 한 번 더 고통이 오더니, 시험을 통과했는지 지금은 기도 모실 때 아프지 않고 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는다. 상제님의 덕화를 입은 것으로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세상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놀랍고 경이롭고 감사할 따름이다. 양심을 회복하고 믿고 맡기면 그 즉시 상제님 덕화를 받아 모실 수 있나 보다.
 
 
4. 껍질 깨기-개과천선
  지난날의 수도 생활을 돌아보면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정말로 창피한 모습이지만 과감히 공개하는 이유는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과보를 달게 받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다. 나는 수도를 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선 후각 관계에서 때때로 갈등이 생길 때면 선각을 불신하여 불편하게 여긴 적도 많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내면의 ‘분노’라는 마그마를 본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넘어오는 간닢을 잘 삭혀 넘기라고 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그것을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됨을 자각하여 알아차리자 ‘선각이 이리 하니까 내가 이리 하지’란 시비의 선글라스가 벗겨지는 듯했다. 그래,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을…. 시비의 화살을 거두어들이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일상의 과부족을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지금까지 나의 상극적인 선입견과 가치관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과오를 뉘우치자 그간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우리 도는 음양합덕인데 나는 그동안 이 원리를 깨닫지 못했다. 나 외에 다른 이는 나와 상대적으로 음양 관계라고 생각한다. 내가 양이고 타인이 음이면 당연히 보는 관점과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른 만큼 서로 존경하고 상호 협동하면 음양 양측의 덕이 모여 문제를 바르게 해결하게 되는 상생의 이치를 못 깨달은 것이다. 이 하나의 무지가 위로 아래로 계속되는 시비와 갈등 속으로 나를 밀어 넣기만 했던 것이다. 그동안은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려 이해하고 용서하는 해원상생을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대순사상과 교리적인 부분 이외에도 지금까지의 개인적인 수도 경험으로도 상제님이 계심과 도통이 있음을 확신한다. 25년 동안 수도해서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당신이 하시는 일을 탕자의 일에 비유한 구절이 있다. 나는 상제님의 일꾼인 만큼 돌아온 탕자의 심정으로 개과천선할 것이다. 토성도장 가는 길에 새 바위가 상징하듯 알을 깨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이제는 통증으로 말미암아 아픈 다리로 기도시간을 힘들게 보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을 나로부터 찾고 이를 반성하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니 건강뿐만 아니라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과 시비도 더는 내 마음에 자리하지 않는다. 이제 내 마음 속 모든 것의 묵은 돗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아플 것 같은 다리에 힘이 충분히 충전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삶이 더 행복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상제님 감사합니다’ 하는 내면의 외침도 같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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