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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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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의 만남 : 『심경부주(心經附註)』에 나타난 마음 수양론

『심경부주(心經附註)』에 나타난 마음 수양론

 
 
연구위원 최정락
 
 
 
  도인에게는 마음 수양이 강조됩니다. 마음은 일신을 주관하여 만기(萬機)를 통솔 이용하는 인간의 내면입니다. 도전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01 그래서 도인은 인성의 본질인 양심을 되찾기에 전념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닦는 공부는 성리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송명시대의 성리학에서는 심성수양론적 영역을 심학(心學)이라고 하였습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실천 주체가 ‘마음[心]’이기에 성리학은 마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는 서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황돈(篁墩) 정민정(程敏政, 1446∼1499)의 『심경부주』입니다. 여기서는 『심경부주』에 나타난 마음 수양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황돈 정민정의 『심경부주』
 『심경부주』는 정민정이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 1178~1235)의 『심경(心經)』 1권을 기본으로 성리학자들의 주석을 증보하여 간행한 책입니다.02 이 책에서 정민정은 정자와 주자를 비롯한 많은 선유들의 글이 빠졌다고 보아 송대뿐만 아니라 원대 유학자들의 설까지 보충하였으며, ‘안(按)’이라고 하여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심경부주』의 첫 장은 ‘인심과 도심에 대한 장(人心道心章)’으로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전해준 심법(心法)에 관한 『서경』 「대우모(大禹謨)」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장들도 대부분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에 대한 여러 경전의 구절과 성리학적 수양방법에 관하여 언급한 구절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결국 『심경부주』는 도덕적 수양과 관련한 삼경(三經)의 여러 구절, 인(仁)이라고 하는 내면적 인격성에 대한 공자의 통찰과 마음을 수양하는 유학의 핵심적인 이론들을 포괄하여 제시하고 있는 저술입니다.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다
 『심경부주』에는 여러 마음 수양론이 기술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핵심 개념에 속하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인(仁), 신독(愼獨)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심과 도심은 마음의 양면성에 관한 학설로 인심이란 대체로 인간의 신체적 기운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도심이란 선천적인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심경부주』 첫 장은 『서경』의 인심과 도심의 심학적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16자 심법(心法)인 “인심은 오로지 위태롭고 도심은 오로지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야 진실하게 그 중도(中道)를 잡을 수 있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는 구절에는 인심과 도심이 공존하는 삶의 현실 속에서 도심을 잘 살펴 지켜야 한다는 심학의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03 
  16자 심법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인심과 도심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주자의 해석에 따르면 인심은 육체적인 욕구의 측면과 연계된 마음이고 도심은 도덕적 이성과 연계된 마음입니다. 마음은 단지 육체적 산물로서의 감각기관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과 연결되어 그 속성을 그대로 담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심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방치되면 인욕(人慾)으로 흘러 악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위태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도심은 도덕적 본성으로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지만 미묘해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도심의 실마리를 찾아서 끌어내고, 인심이 위태롭게 흐르지 않도록 조절하는 수양(修養)이 필요합니다. 유정유일(惟精惟一)인 ‘오로지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하는 것’은 도심을 지키는 방법입니다.04 이러한 유정유일의 수양을 통해서 도심을 지킬 때 그것을 잡는 방법이 윤집궐중(允執厥中: 진실로 그 중도(中道)를 잡음)입니다. 이에 대해 주자는 “도심이 언제나 한 몸의 주인이 되고 인심이 늘 그 명령을 따르게 하면 위태로운 것은 안정되고, 은미한 것은 드러나게 되어 움직이거나 고요하고, 말하거나 행하는 것이 저절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오류가 없을 것이다”05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심과 도심에 관한 장(人心道心章)’에서 발견되는 수양의 지향점은 도심이 주재하는 삶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仁)은 선행의 근원이다
  인(仁)은 인간의 본성으로 선행(善行)의 근원입니다. 『심경부주』에서 도심은 인(仁)·의(義)·예(禮)·지(智)로 표현되지만, 포괄하여 인으로 설명됩니다. 『맹자』에서 인은 모든 사람의 본성으로 자리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버려두거나 황폐하게 합니다. 맹자는 이를 ‘우산(牛山)의 나무’에 비유합니다.06 우산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지만 큰 나라의 교외에 있어서 사람들이 도끼와 자귀로 베어내고, 소와 양이 돋아나는 싹을 뜯어먹어 헐벗은 모습이 됩니다. 산의 본성은 나무를 키우지만 사람과 동물이 그것을 해쳐서 헐벗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인의(仁義)의 마음이 있지만 욕망으로 물들어 양심을 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맹자는 구방심(求放心)을 말했습니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을 줄 모르니 애처롭다. 사람이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을 줄 알지만, 마음을 놓아버리고서는 찾을 줄 모르니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07 맹자는 잃어버린 인의의 마음을 찾아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것이 진정한 학문의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신독(愼獨)은 마음속에서 삼가는 것이다
  신독은 자신의 마음을 삼가서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자는 “하늘의 덕[天德]이 있으면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는데, 그 요체는 오로지 홀로 있을 때를 조심하는 데[愼獨] 달려 있다”08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신독을 기본으로 하여야만 수신과 왕도의 구현이 가능하고 천도와 합치될 수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신독은 남이 알지 못하지만 자기 혼자만 아는 곳에서 더욱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입니다. 신독의 독(獨)은 자기만 혼자 거처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만 아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에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지 않도록 하는 무자기(毋自欺)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주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自欺]은 자기를 속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고,09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은 선을 행할 여지가 없으므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10
 
 
인간 본래의 양심을 되찾는 마음 수양론
  대순진리회에서도 『심경부주』에 나타난 ‘인심과 도심’, ‘인’, ‘신독’의 개념이 나타납니다. 먼저 도에서 인심은 사(私)이고 도심은 공(公)으로 표현됩니다. 도심이 지극하면 사심(私心)이 일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은 사심에 빠질 위험이 많아서 사욕을 누르고 공명정대한 도심을 드러낼 것이 강조됩니다. 그리고 인은 상대방을 편벽되게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인자를 도우신다고 말씀하셨고 인은 예를 통해 드러납니다. 또한 신독은 무자기(無自欺)로 표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자기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즉 자신과 상대에게 거짓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을 행하게 되면 잘못된 일이 생겨 척으로 나타나게 되고 결국 수도의 길을 막게 됩니다. 그래서 무자기를 근본으로 허세를 버리는 것이 만복의 근원이 됩니다. 도에서 표현되는 ‘인심과 도심’, ‘인’, ‘무자기’는 양심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심경부주』의 가르침과 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 심경부주』를 통해 우리는 심학에서 도덕과 실천을 강조하는 수양론이 전개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수양론은 도덕적 양심보다는 이기적 욕망에 중심을 두고 있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바로 보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현대문명이 안고 있는 문제 대부분은 물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들을 다루는 인간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달린 문제입니다. 사심에 사로잡혀 인간의 양심을 잃어가는 현대인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사심은 물욕으로 드러나며 물욕에 의해서 양심의 회복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대순진리회의 마음 수양과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진덕수, 정민정, 『국역 심경 주해 총람』(상·하), 이광호 외 국역, 서울: 동과서, 2014.
·홍원식 외, 『조선시대 심경부주 주석서 해제』, 서울: 예문서원, 2007.
·한국사상사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서울: 예문서원, 2002.
·김기주, 「심학, 퇴계심학 그리고 『심경부주』」, 『동양철학연구』 41, 2005.
·______, 「『심경』에서 『심경부주』로: 미완의 ‘주자학적 심학’」, 『퇴계학논집』, 2013.
·김종석, 「퇴계철학의 독자성과 『심경부주』」, 『퇴계학논집』, 2013.
·오석원, 「『심경』의 구성과 수양론 연구(1)」, 『동양철학연구』 36, 2004.
·______, 「『심경』의 구성과 수양론 연구(2)」, 『동양철학연구』 36, 2004.
·황금중, 「『심경부주』를 통해 본 주자학적 배움의 성격」, 『교육철학』 43, 2008.
·홍원식, 「퇴계 심학과 『심경부주』」, 『민족문화논총』 , 2004. 
 
 
 

01  『대순지침』, p.38 참조.
02  본문의 체계에서 『심경부주』는 권1에서 『시경』, 『서경』, 『역경』, 『논어』, 『중용』의 인용문을 실었고, 권2에 『대학』, 『예기』, 『맹자』의 3개 장을 실었고, 권3은 『맹자』 7개 장만으로 되어 있고 권4는 『맹자』의 2개 장, 그 외에 주자(朱子),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주렴계(周濂溪), 장횡거(張橫渠) 및 기타 정주학자들의 글을 실었습니다. 『심경부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학자는 주자가 239회이며, 그다음으로 정자가 80회입니다. 이 두 사람의 주석이 전체 분량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정주학을 기본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경부주』의 주석자 및 인용 횟수에 대해서는 오석원, 「『심경』의 구성과 수양론 연구(1)」, 『동양철학연구』 36 (2004), pp.373∼375 참조.
03 황금중, 「『심경부주』를 통해 본 주자학적 배움의 성격」, 『교육철학』 43 (2008), pp.197∼198 참조. 
04 유정유일(惟精惟一)을 유정(惟精)과 유일(惟一)로 나누어 보면, 유정(惟精)은 선을 가리는 것[擇善], 널리 배우고[博學], 자세히 묻고[審問], 신중하게 사색하며[謹思], 밝게 분별하는 것[明辨], 선을 밝히는 것[明善], 앎을 극진히 하고 사물을 탐구하는 것[致知格物]입니다. 유일(惟一)은 독실하게 행하는 것[篤行], 뜻을 성실히 하는 것[誠意] 등입니다. 정밀하게 하는 것은 인심과 도심 사이를 잘 살펴서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한결같이 하는 것은 본래의 마음을 지켜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05 『心經附註』, 「人心道心章」. “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 而人心每聽命焉, 則危者安微者著, 而動靜云爲, 自無過不及之差矣.” 이후 『심경부주』의 번역은 모두 진덕수, 정민정, 『국역 심경 주해 총람』(상·하), 이광호 외 국역 (서울: 동과서, 2014)을 따른다.
06 『心經附註』, 「牛山之木章」.
07 『心經附註』, 「仁人心章」. “仁, 人心也, 義, 人路也. 舍其路而不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08 『心經附註』, 「誠意章」. “程子曰: 有天德, 便可語王道, 其要只在謹獨.”
09 『心經附註』, 「誠意章」. “問劉棟看大學自欺之說如何? 曰: 不知義理, 却道我知義理, 是自欺. 朱子曰: 自欺是箇半知半不知底人, 知道善我所當爲, 却又不十分去爲善, 知道惡不可作, 却又是自家所愛. 舍他不得, 這便是自欺. 不知不識, 只喚做不知不識, 却不喚做自欺.”
10 『心經附註』, 「誠意章」. “又曰: ‘誠於中, 形於外’, 那箇形色氣貌之見於外者, 決不能欺人, 祗自欺而已. 這樣底, 永無緣做得好人, 爲其無爲善之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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