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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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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 :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연구위원 김영일
 
 
 
 『비 오는 날』의 작가 손창섭은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35년 만주로 건너갔다가, 이듬해에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공휴일」(1952), 「사연기」(1953)가 『문예』 지에 추천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59년에는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72년 일본으로 건너간 후, 철저하게 은거 생활을 하다가 2010년 사망하였다. 1953년에 발표된 『비 오는 날』은 손창섭의 대표 작품인데, 6·25전쟁을 배경으로 원구, 동욱, 동옥의 왜곡되고 불행한 삶을 그리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원구가 동욱의 집에 놀러가면 줄곧 쫓아다녔던 동옥. 1·4 후퇴(1951년) 때 오빠 동욱과 같이 북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그녀는 이제 이십오륙 세가 되었다. 한쪽 다리가 가늘고 짧은 불구지만 총기(聰氣)가 있고 미모가 뛰어나다. 동욱이 미군 부대를 다니며 주문을 받아오면 초상화를 그려 연명하고 있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한다는 생각에 반감을 품고, “무덤 속 같은 방”01에 박혀 우울과 슬픔으로 지내고 있다. 이에 따라 성격도 불구적으로 변하는데, 근래에는 오빠를 믿지 못해 선금을 받고 그림을 그려준다. 그러면서도 고독을 견딜 수 없어 한다. 그런데 원구가 찾아오면서 밝고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는 자기를 업신여기지 않고 편하게 대해 준다고 느끼는 것이다. 오직 원구만이 현재의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듯 자주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집을 떠나면서 원구에게 전하는 편지를 남긴 것도 그러한 마음에서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 매달렸던 것이다.
 
 

  동욱은 원구가 자신의 집에 찾아오기 전, 손수레에서 잡화를 파는 일을 하는 그를 만나 술을 마셨다. 둘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날마다 서로의 집에서 놀았던 사이다. 술을 마시다가 동욱은 머리를 떨어뜨린 채 중얼거린다. “내가 자네람 주저 없이 동옥이와 결혼할 테야.” 한 번은 원구가 동욱의 집에 왔을 때이다. 원구가 잠이 들려고 하는데, 동욱은 잠꼬대처럼 “커다란 적선(積善)으로 생각하고, 동옥과 결혼할 용기는 없는가?”라고 한다. 그 후, 다시 술을 마시다가 동욱은 지난번과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원구에게 세 번이나 여동생과의 결혼을 권한 것이다.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서 혹은 오빠로서의 짐을 덜고자 그렇게 말한 것 같지 않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다년간 성가대를 지도했던 동욱은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원구와 동옥의 부부로서의 인연을 감지하고 전한 것이 아닐까. 
  원구가 처음 남매의 집에 갔을 때, 동옥은 반항적으로 대했다. 원구는 불쾌하면서도 “얄궂은 힘에 조종당하듯” 또다시 찾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듭된 그의 방문에 그녀는 점점 정상적으로 바뀌는데, 원구는 반가워할 뿐 그녀에게 다른 감정이 생기진 않는다. 세 번이나 결혼을 권하는 동욱의 말에도 무감(無感)하다. 장마가 한 달 가까이 계속될 무렵, 다시 남매를 찾아간다. 새 집주인인 사내가 동욱은 군대에 끌려간 것 같고, 동옥은 이삼 일 전에 떠났다고 한다. 동옥이 맡긴 편지는 아이들이 찢어 없앴다면서. 그리고 동옥을 걱정하는 원구에게 “얼굴이 고만큼 밴밴하고서야 어디 가 몸을 판들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고 한다. 이에 원구는 마음 한구석에서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 하는 격분의 소리를 듣는다. 곧이어 그 소리가 “까마득히 먼 곳”에서 자기를 향하여 날아오는 것으로 느낀다. 동옥과의 인연을 저버린 자신을 하늘이 질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책은 둘의 부부로서의 인연이 하늘의 뜻이었음을 방증(傍證)한다. 하늘은 전쟁으로 삶과 성격이 파괴된 동옥을 원구를 통하여 구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격분도 한순간이다. “천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듯한 육체의 중량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말없이 발길을 돌이킨다.” 무기력한 원구. 동옥에 대한 원구의 무감은 무기력에서 오는 무능력인 것이다. 이렇게 원구와 동옥은 끝내 맺어지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사십 일간 계속된 장마를 배경으로 한다. 남매의 집 천장 사방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삶과 인간성을 남김없이 파괴하는 전쟁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황 속의 동옥을 하늘은 원구를 통해 살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 뜻은 동옥이 원구를 원하는 것으로, 동욱이 둘의 인연을 직접 전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인사(人事)에는 하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원구는 보고도 듣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있어서 인간의 의지와 행위가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다. 모사재천(謀事在天) 성사재인(成事在人).
 
 
 

01 작품 속의 표현을 큰 따옴표(“ ”)로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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