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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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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눈물의 사과

눈물의 사과
 
 
월정 박창용*
 
 
 
  현대는 남녀 간 직업의 장벽이 허물어져 가는 시대이다. 전통적으로 일의 종류에 따라서 남녀의 직업에 차별이 있었는데 점차 능력 위주로 바뀌고 있다. 남녀 간에도 치열한 경쟁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힘든 택배 일도 여자들이 많이 하고 있다. 국민소득은 늘어가고 있지만, 경쟁이 심해지는 걸 보면 삶이 그만큼 각박해진 탓인가 보다.
  올해 30대 중반인 순진한 씨도 남편의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택배 일을 하며 가정의 경제를 돕고 있다. 택배 일을 하다 보면 말 못할 어려움에 처할 때가 많다. 엘리베이터 시설이 없는 건물에 무거운 짐을 운반해야 할 때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같이 힘이 드는가 하면 주소가 틀려서 몇 번씩이나 위층 아래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불평을 터트려야 한다. 어떤 이들은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여성에게 한심스럽게 데이트를 하자고 수작을 걸기도 한다.
  이럴 때 피로를 덜어주는 천사 같은 말 한마디가 있다. 따뜻하고 인정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짐 가져오느라 수고했어요. 잠깐 들어와서 차 한 잔 마시며 땀 닦고 가세요.”
  또 어떤 이는 쌀쌀맞기가 엄동설한의 눈보라보다도 매섭고 차다. 인정머리가 모자란 것일까? 사람을 우울하게 하면서 기분을 망쳐버리는 염라대왕의 준엄한 음성처럼 들린다. “왜 이렇게 늦게 배달했어요? 그리고 칠칠치 못하게 이게 뭐예요? 물건이 망가졌잖아요.”
  같은 인간이 하는 말인데도 억양과 느끼는 감정은 천양지차이다.
  하루는 순진한 씨가 노인 내외만 사는 집에 사과 한 박스를 배달했다. 가끔 택배를 배달하러 들르면 인정스럽게 대해줘서 안면이 익었다. 그날따라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과 상자를 주방까지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일이 바쁜 시간에 현관까지 갖다 줬으면 됐지 주방에 옮겨달라는 말에 짜증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순순히 옮겨드렸다.
  휠체어를 타고 계신 할아버지는 주저주저하다가 또 어렵게 말했다.
  “새댁 미안한데 사과 두 개만 깎아주고 가면 안 될까요?”
  “할아버지, 제가 지금 한창 바쁜 시간이라서 사과를 깎기가 좀 그러네요. 죄송해요.”
  돌아서 나오려는 순간 할아버지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순진한 씨는 아차 싶어서 도로 식탁에 앉으며 물었다.
  “할아버지,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사과가 먹고 싶은데 아내가 잠이 든지라 깨우기가 민망해서 그래요.”
  순진한 씨는 이왕에 시간이 지체됐으니 잠시 쉬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박스를 뜯어서 사과 두 개를 꺼내놓고 나머지는 부엌 베란다로 옮겨드렸다. 사과를 대충 씻어서 성의 없이 빨리 깎았다. 그리고는 사과를 먹기 좋게 잘라서 접시에 가지런히 놓았다. 핑계 대기 좋은 말로 바쁘다고 둘러댔지만, 잠깐의 수고로 할아버지의 안색이 다시 환하게 밝아진 모습을 보았다. 순진한 씨는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다는 작은 안도감을 느끼며 아파트를 나왔다.
 
 

  그로부터 일여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다시 가을이 찾아와 사과가 풍성해졌다. 늦가을 찬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순진한 씨가 사과 한 박스를 들고 다시 할아버지 아파트를 찾았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이번에는 할머니가 달려 나와서 마치 순진한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주었다.할머니는 바쁘다는 순진한 씨를 기어코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더니 뜨거운 차와 과일을 내오셨다.
  “벌써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죠?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무거운 택배 일을 하다니 새댁이 참 대견해요.”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인걸요. 이제 일이 몸에 배어서 괜찮아요.”
  “차 한 잔 마시면 몸이 좀 따뜻해질 거예요. 그리고 새댁 고마워요.”
  “할머니, 고맙긴요. 당연히 제가 할 일을 하는 거예요. 집을 방문할 때마다 늘 저를 칭찬해주시고 음료수를 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고마운걸요.”
  할머니는 잠시 새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셨다. 새댁이 무안하여 외면하려 하자 할머니는 뜻밖의 말을 하셨다.
  “글쎄 그날 나는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잠이 깬 후 난 눈물의 사과를 먹었다우. 청승맞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에요.”
  “할머니, 사과를 언제 잡수셨다는 거예요?”
  “난 우리 영감이 중풍으로 쓸 수 없는 손으로 깎아준 사과인 줄 알았거든요.”
  “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사과를 참 좋아해요. 그날 영감이 사과를 어떻게 깎았을까 봐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새댁이 바쁜데도 시간을 내어 사과를 깎아주고 가서 정말 고마웠어요.”
  “할머니, 작년 가을에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요. 내가 잠에서 깨면 사과를 먹이려고 글쎄 마음 약한 영감이 바쁜 새댁한테 떼를 쓰셨지 뭐예요.”
  “할머니,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지금껏 기억하고 계세요?”
  “영감은 사지가 마비되고 뒤틀려서 걷지도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휠체어 타고 여기 마루와 방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전부였지요.”
  “아 그러셨어요? 제가 그렇게 우둔한 여자는 아닌데 미처 그걸 몰랐네요.”
  “그리고 얼마 후 영감은 그렇게 힘들게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날 우리 영감은 중풍으로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바쁜 새댁한테 그런 무리한 부탁을 드린 거라우.”
  “그러셨군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아휴 죄송해서 이를 어쩌죠?”
  “바쁜 시간에 사과를 깎아줬는데 죄송하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우리 영감이 새댁이 친절한 여자라고 가시기 전까지 얼마나 칭찬을 많이 하셨는데 그래요?”
  “이를 어쩌면 좋아, 제가 해드린 게 뭐가 있다고 그런 칭찬을 하셨을까? 전 그때 바쁘다고 핑계 대면서 마지못해 사과를 깎아드렸을 뿐인데요.”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도 나 몰라라 하는 세상이에요. 그런데 짬을 내서 남을 도와주며 친절을 베푸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그 순간 순진한 씨는 마치 예리한 송곳으로 자신의 양심을 찔러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대순진리회 수도인이었다. 성정이 바른 그녀는 평소 대순진리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착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라는 대순진리회의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스스로 부끄러워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정신이 멍해지면서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사과 한 개도 맘대로 깎을 수 없는 불편한 몸으로 작은 아파트 공간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양 살았던 할아버지의 고된 삶을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몸이 부실한 할아버지를 내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대하지 못하고 내 가족처럼 살갑게 해주지 못했을까? 난 그동안 나보다 힘든 사람에게 바쁘다는 이유로 모른 체하였고 힘들다는 핑계로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그런 줄도 모르고 대충 얼렁뚱땅 사과를 깎아드린 게 못내 후회되는데 그걸 대단한 일처럼 일 년 이상을 가슴속에 고맙게 간직하고 사셨다니 송구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도 늙어서 사과 한 개도 깎지 못할 때가 곧 닥칠 터인데 너무 이기적이고 타산적이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할머니는 순진한 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며 말했다.
  “이 옷은 우리 영감이 새댁한테 주는 고마움의 표시예요. 추운 겨울에 일하러 나갈 때 입으면 따뜻할 거예요.”
  그것은 두툼한 겨울용 오리털 파카였다. 언뜻 보기에도 따뜻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할머니, 이러시면 안 돼요. 전 이 옷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날 새댁은 우리 영감이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잠이 깨면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사과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거든요. 영감이 일 년만 더 사셨어도 새댁한테 직접 전했을 텐데.”
  할머니도 말끝을 잇지 못했다. 저 티 없이 맑은 노부부의 애틋하고 가슴 뭉클한 사연이 아름다운 전설처럼 눈에 보일 듯 가까이 다가올 것만 같았다. 이렇게 마음 여리고 따뜻한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마냥 아쉽고 죄송스러웠다. 한편으론 사랑까지도 물질과 이기심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계산된 사랑은 얼마나 단단한 것일지 의문이 몰려왔다. 순진한 씨는 미련했던 자신의 옹졸한 마음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늙는다는 건 누구나 겪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과정인데 그동안 제가 조금 젊은 걸 가지고 너무 오만에 빠졌었나 봐요. 저의 무지를 나무라주세요.”
  “원 겸손하기도 하지, 새댁처럼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 그게 무슨 말이우? 새댁 정말 고마워요.”
  순진한 씨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답답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성의 없이 마지못해 도와드렸던 것이 정말 못난 행동이었다고 자책했다.
  우리는 남을 돕는 일에 아직 누군가를 도와줄 형편이 아니라고 변명하거나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소홀히 하려 한다. 물질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줄 수 있다. 밝은 표정과 따뜻한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어려운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상을 구하지 않는 봉사와 친절한 행동은 남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행복하게 한다.
  ‘낯선 사람과 특히 도움이 필요한 힘든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라. 어쩌면 그는 변장한 성자의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상제님이 허름한 복장을 하고 당신에게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에게도 항상 친절하여야 한다. 그게 인간이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요, 대순진리회 수도인의 참모습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생일대에 다가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 보내고 후회하며 살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기꺼이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무시하거나 성의가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버리는 인간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남의 일이라고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말자. 작은 친절이 힘이 되고 용기를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힘없고 능력이 모자라는 어떤 사람에겐 그런 요청이 생사를 가늠하는 일이고 가장 절박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인간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작은 친절에도 고마워할 것이다. 우리는 늦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가치 있고 후덕하게 하는 선행을 쌓는 일이기도 하지만 대순진리회의 가르침처럼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친절로 다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일반인으로서 교무부 연구원이 보내준 ≪대순회보≫를 받아보고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고, 2016년 대순문예전을 홍보하는 글을 보고 용기 내어 ‘눈물의 사과’로 응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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