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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8년(2018)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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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길 : 무궁화

무궁화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최치봉
 
 
 
1. 여는 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국기인 태극기, 국가인 애국가, 그리고 국화인 무궁화가 있다. 이러한 국가의 상징은 그 민족의 역사성과 문화의 저변을 담지하고 있다. 태극기의 태극문양과 괘상은 음과 양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우주 만물이 생성, 발전하는 자연의 이치를 뜻한다. 따라서 태극기는 민족의 이상과 우주관이 담겨진 나라의 상징으로서, 우주와 더불어 길이길이 발전하고자 하는 우리 겨레의 이상을 집약한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애국가는 구한말 처음 불리기 시작하였고 정부 수립과 동시에 국가로 사용되었다. 애국가에 후렴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우리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한편 민족과 함께 한 무궁화를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민족에 있어서의 무궁화의 상징성을 짐작케 해준다. 대한민국의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해서는 제정과 공표가 밝혀져 있으나, 무궁화는 이러한 법적 규정이 모호하다.01 그러나 무궁화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었으며, 19세기 말에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되면서 나라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군자의 기상을 지닌 꽃’이라 예찬하였고, 서양에서도 무궁화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02라 하여, ‘거룩한 땅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으로 부르고 있다. 이렇듯 무궁화는 동서양을 아울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 중의 꽃이다. 늦여름이 되면 뜨거운 햇살을 이겨내며 도장 곳곳에서 무궁화는 그 꽃을 피워낸다. 우리 선조들은 겨울의 한파를 견디어내고 처음으로 꽃을 피우는 매화에 못지않게, 여름의 혹서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무궁화의 덕 또한 높이 칭송하였다. 한반도 곳곳에 피어 있는 무궁화는 대순진리회에 있어서도 청계탑, 돌병풍, 사자상, 호랑이상 등의 각종 석조물의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벽화, 단청, 표찰, 가로등에 이르기까지 늘 가까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 글에서는 너무 흔해서 자칫 소홀하게 여길 수 있는 무궁화의 가치와 상징에 대해 고찰해보고,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대순진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무궁화의 기록
  『산해경(山海經)』은 한반도에 무궁화가 자라고 있었음을 기록한 가장 오래된 신화집이다. 이 책은 기원전 3~4세기 춘추전국시대에 중국 변방 지역의 특색과 그 지역의 신, 괴수, 사람, 동물 등이 기록되어 내려오는 문헌으로, 서한(西漢)의 유흠(劉歆)에 이어 동진(東晉)의 곽박(郭璞)이 기존의 기록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다.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찼으며, 짐승을 먹는다. 두 마리의 무늬 호랑이로 하여금 곁에 있게 하며, 그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며 다투지 않는다. 훈화초(薰華草)라는 식물이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진다.03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며,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 이로 미루어 아주 예로부터 무궁화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침에 피어나서 저녁에 지는 무궁화의 특성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무궁화에 관한 『산해경』의 이러한 기록은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당나라 구양순(歐陽詢)은 “군자국에는 무궁화가 많이 피는데 백성들이 그것을 먹는다. 낭야로부터 3만리 떨어진 곳이다”04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구당서』에도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였다”05라고 한 것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신라 시대 이미 우리나라를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중국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에서 무궁화와 한국의 관계에 대한 객관성을 더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군자국과 무궁화 나라임을 언명하여 왔다. 신라 효공왕이 최치원(崔致遠)에게 작성시켜 당나라에 보낸 국서 가운데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일컬음)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 호시국(楛矢國, 발해를 일컬음)은 강폭함이 날로 더해간다”라고 한 것이 있다. 조선 때 강희안(姜希顔)이 저술한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단군이 개국할 때부터 무궁화를 가꾸어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무궁화의 나라로 일컬었다”라는 기록이 있다.06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옛 기록에 이르기를 군자의 나라는 땅이 사방 천 리인데 무궁화가 많다고 하였다. 상고하건대 당의 현종은 신라를 군자의 나라라고 하였거니와, 또 고려 때에 본국을 일컬어 근화향이라고 한 기록은 대개 산해경의 기록에 의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치윤(韓致奫)은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신라를 군자의 나라라 일컬었고, 고려 때 본국을 무궁화가 피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군자의 일컬음이 있었으니 공자께서 살고자 하신 뜻이 이를 위함이다”07라고 하였다. 여기서 공자가 살고자 한 구이(九夷)의 땅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며, 우리나라를 상징할 때 군자와 무궁화가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08 이러한 기록들로 비추어볼 때 무궁화는 이미 수천 년 동안 한국에 자생하고 있었으며, 우리나라를 상징하고 있었음은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무궁화와 민족
  예부터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무궁화는 개화기 이후 더욱더 민족의 꽃으로 부각되었다. 민족혼과 겨레 얼을 상징한 무궁화는 일제강점기 때에 민족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가혹하게 탄압을 받았다. 한 식물에 대한 역사상 유례없는 핍박이 이루어진 것이다. 3.1운동 이후로 일제는 한반도 전역의 무궁화를 뽑고 벚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또한, 근역, 근화향이라는 말들이 일본에 대한 반항의식을 담고 있다고 판단하여 근역이 한국이 아닌 일본을 상징한다는 주장을 날조하기도 하였다. 또한, 무궁화를 ‘눈병 나는 꽃’, ‘부스럼 꽃’, ‘개똥 꽃’으로 폄하하고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조작하였다.09
  일제의 무궁화에 대한 핍박은 ‘무궁화사건’이 대표적이다. 남궁억(南宮檍)은 민족정신 고취를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무궁화심기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자신이 설립한 강원도 홍천의 모곡학교 학생실습지에 무궁화 묘목을 재배하여 전국 각지에 보내어 무궁화심기운동을 벌였다. 1933년 일제는 남궁억의 이와 같은 사업이 불온사상을 고취하고 치안을 교란한다고 하여 모곡학교 교직원과 교회 목사, 그리고 친척들까지 모두 체포하고 무궁화 묘목 8만 주를 불태워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도 꽃을 피워낸 무궁화는 민족혼을 일깨우고 광복이라는 희망을 상징하는 꽃으로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되었다.10 우리 민족은 왜 무궁화를 사랑하였고, 무궁화의 상징과 민족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무궁화는 첫째로 ‘은자(隱者)의 덕’을 지니고 있다. 무궁화는 사람의 시선을 일순간에 끌어버리는 현란하거나 향기가 짙은 꽃이 아니다. 아담하고 은은한 향기를 지닌 순결한 꽃으로 무궁화는 은자의 꽃이다. 은자 나라의 선인(先人)들은 흰빛을 숭상하며 수수하고 세속적 탐욕이나 오만이 없이, 점잖고 은은하며 겸허하여 너그러운 군자의 풍모를 지녔다. 둘째, 우리 민족은 ‘은근과 끈기’의 부지런한 민족이고 지조와 절개를 생명보다 귀히 여기는 단아한 민족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꽃을 100여 일 동안 끈질기게 이어 피우는 무궁화는 은근과 끈기, 부지런한 민족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무궁화는 토지의 후박을 가리지 않고 아무 데에서도 잘 자라고 많은 정성 들여 가꾸지 않아도 벌레 때문에 마르는 법 없이 잘 번성한다. 이는 숱하게 외침을 당하는 수난의 긴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은 민족의 운명과도 닮았으며, 민족의 ‘유구한 생명력’을 상징한다.11 넷째,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강인함’을 드러낸다.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가 다른 꽃들이 대부분 지고 난 다음, 여름 햇살을 받으며 줄기차게 꽃을 피운다. 한여름의 더위는 한겨울의 추위와 마찬가지로 시련이자 역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시련을 딛고 꽃이 드문 계절에 우아한 자태로 뜰을 장식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추앙하던 고귀한 덕인(德人)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다섯째, 무궁화는 꼭두새벽에 피기 때문에 그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모습은 여간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다. 하루의 첫 시작인 새벽 4시경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다음 날 아침에 수없이 피어 있는 무궁화는 전날의 꽃이 아닌, 모두 새롭게 피어난 꽃들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타고난 근면성을 표상하는 것이다. 또 무궁화는 매일 새롭게 피어 항상 새로움을 보여줌으로써 ‘나날이 쇄신’하는 우리 민족의 진취성을 나타내고 있다.12
 
 
4. 무궁화의 상징

가. 무궁(無窮)의 명칭
  무궁화는 훈화초, 근화(槿花), 목근(木槿) 등으로 불리어 왔으나 현재는 대부분이 무궁화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다함이 없다’는 명명은 비록 한자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쓰이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 가운데 무궁화의 의미에 대한 가장 오래된 언급은 고려 시대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 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13 이규보의 글 다음으로는 16세기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한글로 무궁화라는 표기가 나타나 있다. 『산해경』의 주석을 고려해보면, 훈화초의 훈(薰)은 근(菫)이라 하였으므로 “薰=菫=槿=木槿”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데, 근화를 목근화라고 한 것이 무궁화로 정착한 것이라 보여진다.14 무궁화는 하루에 보통 50송이 정도의 꽃이 피며, 100여 일 동안 피운 꽃을 합하면 한 해에 2~5천여 송이의 꽃을 피우는 셈이니, 다른 화목에서는 이와 같은 특유한 개화 습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와 같이 많은 꽃을 끝없이 무성하게 피워 무한정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나무이기에 무궁화는 곧 무궁을 상징하며, 그 자체로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한다.15
  한편으로 무궁은 “공간이나 시간 따위가 끝이 없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끝도 없고 한도 없다는 형용사는 주로 무극, 태극, 도, 신 등의 본체론적 개념을 수식한다. 대순사상에서 “대순(大巡)이 원(圓)이며 원이 무극(無極)이고 무극이 태극(太極)이라”16는 언급은 본체적 개념을 말한 것으로, ‘무극’은 ‘끝이 없다. 극이 없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데, ‘끝이 없다’라는 것은 곧 장소와 형상을 넘어서는 것으로 물질적인 한계가 없다는 말이 된다. ‘태극’의 ‘태’에서 크다는 의미의 언급은 지대무외(至大無外)17함을 말하며, 이 큼으로 인하여 끝이 없는 무극을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은 존재의 원점, 존재의 시원이라는 것과 원의 회전 운동이 상징하는 역동적 운동성, 보편적인 주기ㆍ순환ㆍ궤도ㆍ규칙성ㆍ진동 등을 구현하는 것으로 존재 능력과 생명의 다함 없는 무궁성을 상징한다.18  그리하여 이러한 무극, 태극, 원이 대순이라 함은 도의 표상으로서 무궁무진함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상징이 대순이라는 단어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무궁화는 우주를 상징하고, 우주의 도를 표상하고 있으며,19 대순에 있어 무궁은 도를 상징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나. 백(百)일의 개화
  백(百)은 아라비아 숫자로 100, 우리말로 ‘온’이다. 온갖, 온 누리, 온 세상 같은 표현들은 모두, 전부란 뜻을 갖고 있다. 백화점(百貨店), 백과사전(百科事典), 백화만발(百花滿發), 제자백가(諸子百家),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모든 것’을 뜻한다.
  신화나 문화에서 볼 때, 백(百)은 ‘완성과 전체’, ‘진실과 가득 참’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단군 신화에서 환웅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동굴 속에서 백일을 견디라고 하였다. 통과 의례적인 전환을 위해 백일이라는 금기 기간이 필요했다. 백년 묵은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는 이야기는 완성과 안전성을 뜻한다.20 또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에서 백(百)이라는 숫자는 날짜와 결합하여 중요한 상징수로 쓰인다. 백일치성이나 백일 공덕 또는 갓난아이의 백일잔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가 끝나고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대접받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백일 떡 중 백설기의 ‘백(白)’은 숫자 ‘백(百)’과 음이 상통하므로 백 살까지 장수하라는 뜻이 있고, 백 집과 나누어 먹고 백 집에서 얻어 온 백 조각의 천으로 옷을 해 입히면 아이가 건강하게 백수를 누린다고 한다. 또 망자를 위한 백일재(百日齋)는 죽은 지 백일째 되는 날의 불공으로, 이는 사십구재까지 죽음 이후의 세계로 진입할 준비를 마치고, 완전히 저승의 존재로 변화됨을 의미한다.21 백종일(百種日)은 자신이 평소에 지은 모든 허물을 깊이 뉘우치고 하늘에 용서를 구하여 개과하는 것을 말한다.22
  『전경』에서는 백(百)과 관련한 백일 도수가 두 번 나오는데, 도주님께서 행하신 것으로 장소는 대원사와 태극도 도장에서이다. 대원사에서 백일 도수를 마치시고 종도들에게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니라. 아직 응기하여 있는 것을 내가 풀었노라”23라고 하셨는데, 이는 대원사를 상제님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라고 밝혀 주신 것으로, 후천 오만 년 도수를 펴셔야 하는 도주님께서 천지신명과 인간, 더 나아가 천지인 삼계에 이를 선포하신 것이다.24 이는 백(百)의 ‘전체, 온’의 상징을 고려할 때, 천지인의 삼계인 온 누리에 선포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도장에서의 백일 도수는 화천 전에 마지막으로 마치신 도수이다. “오십 년 공부 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며 지기 금지 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가 금년이다. 나는 간다.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25는 말씀에 비춰볼 때, 백일의 도수를 마지막으로 도주님 오십 년 공부의 완성을 뜻한다고 보이는데, 여기서도 백(百)의 ‘완성’이라는 상징성을 찾아볼 수 있다.
 
 
다. 다섯(五) 꽃잎
  무궁화의 특징은 꽃잎이 다섯인 오엽화(五葉花)로, 다섯 꽃잎 정오각형의 ‘완성’을 뜻하는 꽃이다. 무궁화는 다섯 꽃잎이 전체적으로 정오각형의 꽃 모형을 이루고 있다.26 오엽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오행(五行)과 연관된다. 오행은 음양과 더불어 자연을 이해하려는 동양의 대표적 관념이다. 오(五)라는 숫자는 오복(五福), 오륜(五倫), 오곡(五穀), 오음(五音), 오색(五色), 오관(五觀), 오미(五味), 오장(五臟), 오향(五香), 오형(五刑) 등으로 각각의 자연 사물이나 인사현상을 범주화하여 표현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동양에서의 5(土)는 토화(土化)작용을 하는 중성적인 존재로 우주운동의 실질적인 발전과 통일작용에서 일어나는 모순을 조절하는 작용을 한다. 5는 생수(生數: 1, 2, 3, 4, 5)의 종점인 동시에 성수(成數: 6, 7, 8, 9, 10)의 시점이며 또한 만물의 중심이다. 5는 모든 생수의 순수정기인데, 여기서 정기라는 개념은 ‘생명과 정신을 얽어매는 요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수는 5에 얽어 매이고, 성수는 생수의 순수정기인 5에 기반을 둔 상태이다. 이에 만물의 정신은 여기서 생기는 것이며, 모든 변화는 이와 같은 생성수의 변화 자체에 있는 것이다.27
  서양의 기하학에서 숫자 5도 동양과 마찬가지로 ‘생명력’을 상징한다. 정오각형의 대칭성은 생명을 나타내는 최상의 상징이다. 식물, 동물, 사람을 포함해 많은 생명체는 그 구조에 5의 기하학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정오각형의 대칭성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직관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미친 강한 심리적 영향력 때문에 오랫동안 높이 받들어져 왔다. 5는 자연계의 황금분할28, 황금사각형29, 황금나선형30 등에서 나타나고 이것은 자기 대칭성과 재생을 나타낸다. 나선형은 모든 방향으로 동시에 맥동하면서도 변화의 전 과정을 통해 그 성질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상징기하학의 특징을 내면적으로 볼 때, 이는 모든 종교에서 추구해온 인간으로부터 신적인 것으로 재탄생하는 영적인 재생을 시사한다. 우리 내면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우리 인식의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내부에 있는 고유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31 
  5는 동서양을 아울러 생명, 생명력, 재생, 완성을 상징한다. 자연계의 황금비율과 나선의 상징을 대표하는 숫자인 5는 자연계의 우주의 나선운동에 있어서, 실질적인 발전과 통일작용에서 일어나는 모순을 조절하는 작용을 한다. 그리하여 소우주인 인간에 있어서는 5의 상징은 생명과 정신의 중심으로 대표되는 것이다.
  동양의 상수학에 있어 5는 모든 생수의 순수정기이며, 성수의 기반이라고 하였는데, 『전경』에서는 오주(五呪)를 빗대어 천지의 진액(津液)이라 밝히고 있으니,32 여기서의 ‘생명과 정신을 얽어매는 요인’인 5의 상징이 천지에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5. 맺는 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과 함께 수난을 받아온 무궁화는 이미 그 상징적 의미가 실제의 대상을 압도한다. 하나의 꽃을 넘어서 민족 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무궁화의 ‘무궁(無窮)’은 생명력과 형이상학적 본체, 도(道)를 표상하며, ‘백(百)’은 질적으로 완성과 전체를 뜻하고 공간적으로는 온 누리, 온 세상을 뜻한다. ‘오(五)’는 생명, 재생, 자기대칭성, 순수정기, 완성 등을 상징한다. 이렇듯 무궁화는 도를 상징하고 군자국에 피어왔으며, 생명과 완성을 뜻하는 민족의 꽃으로, 그 의미가 우리 종단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고고하며, 꾸밈없는 미를 간직한 무궁화는 예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꽃이다. 무궁화는 법적 규정이 없이도 우리의 관념 속에 나라의 꽃이라고 강하게 인식되어 있다. 이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무궁화가 나라의 확고한 상징임을 뜻한다. 노래와 시, 글에서도 무궁화는 우리 민족, 우리나라 그 자체이다. 이런 무궁화이므로, 민족종교를 표방한 대순진리회 도장에 만발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궁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너도나도 모두 무궁화가 되어, 지키자 내 땅 빛내자 조국, 아름다운 이 강산 무궁화 겨레, 서로 손잡고서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은 무궁화다.33
 
  곁에 두고 함께 하는 사이에 우리 민족은 어느덧 무궁화의 품성을 닮아버렸으리라. ‘무궁화가 되자’는 노래 가사 말은, 도를 상징하는 무궁화를 닮아가라는 도인들을 향한 울림이 아닐까? 앞으로도 민족의 전통과 얼을 지켜나가 그 아름다움을 만방에 드러내길 기원해본다.
 
 
 

011883년 1월 27일 태극기의 제정 반포가 이루어졌다. 애국가는 1936년에 만들어져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국가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무궁화의 경우는 대한민국이 수립된 직후인 1949년 10월 대통령 휘장과 행정·입법·사법 3부의 휘장을 모두 무궁화로 도안하여 문교부가 제정·사용했고, 1950년에는 태극기의 깃봉을 무궁화의 꽃봉오리로 제정했을 뿐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정식 규정한 발표는 없었다. 조선의 윤치호(尹致昊, 1865-1945) 등의 발의로 애국가를 만들 때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조선의 나라꽃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1935년 10월 21일, ≪동아일보≫ 학예란 참조.)
02 가스펠서브, 『라이프성경사전』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6) 참조. 샤론은 선택받은 땅이란 뜻으로 비옥함, 풍요로움, 신실함, 영화로움 등으로 상징된다. 장미는 아름다운 꽃과 사랑의 대명사이다.
03 『山海經』, 『海外東經』, “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在旁, 其人好讓不爭. 有薰華草, 朝生夕死.”
04 『藝文類聚』, 卷89, “君子之國, 多木堇之華, 人民食之. 去琅邪三萬裏.”
05 『舊唐書』, 199 「신라전」 737년(성덕왕 36).
0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무궁화 참조.
07 『논어』 「자한」 13, “子欲居九夷 或曰 陋如之何 子曰 君子居之何陋之有”.
08 이경선ㆍ이명규ㆍ정민, 「나라꽃 무궁화의 어문학적 고찰」 『동아시아 문화연구』 9 (1986), pp.411-412.
09 이경선ㆍ이명규ㆍ정민, 「나라꽃 무궁화의 어문학적 고찰」, 『동아시아 문화연구』 9 (1986), p.418.
10 이홍직(李弘稙)의 『국어대사전』에 “무궁화는 구한국 시대부터 우리나라 국화로 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 다수에 의하여 자연 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예부터 ‘근역’ 또는 ‘무궁화 삼천리’라 한 것으로 보아 선인들도 무궁화를 몹시 사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1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백과 국가문화상징 무궁화」, 2006, (문화콘텐츠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 참조.
12 이상희,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 (서울: 넥서스, 2004), 무궁화 참조.
13 李奎報, 「次韻文長老朴還古論根花幷序」, “무궁화의 이름에 대해 논하는데 혹자는 무궁(無窮)하다는 뜻이니 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무궁한 것을 일컫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또 이르기를 무궁(無宮)의 뜻이니 이것은 군왕이 이 꽃을 사랑하여 궁(宮)이 무색함을 일컫는 것이라 하기도 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 이로 보면 무궁화란 낱말은 12~13세기 이미 우리나라 안에 퍼져있었으며, 당대의 사람들도 무궁화가 왜 무궁화로 불리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14 심재기, 「무궁화의 내력」, 『한글한자문화』 7 (1999), pp.31-33.
15 이상희,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3』 (서울: 넥서스, 2004), 무궁화 참조.
16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 (서울: 대순진리회 출판부, 1978), pp.4-7.
17 『莊子』, 「天下」,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것을 일컬어 大一이라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일컬어 小一이라 함(至大無外 謂之大一 至小無內 謂之小一).”
18 최치봉, 「대순사상의 태극에 관한 연구」, 『대순사상논총』 23 (2014), pp.398-402 참조.
19 이채원, 「한민족의 신관과 상제님의 신명조화」,《대순회보》 6호, “우리 민족은 하늘에 원 뿌리를 가지고 있는 천손 민족이다. 그래서 우주의 표상인 태극기를 국기로 삼고 무궁화를 국화로 삼았으며 하늘 높이에 연을 띄우며 하늘을 쳐다보며 조상을 숭배하고 하늘을 받들고 살아왔다.”
20 공주 대룡리 용강거리제 전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
21 허동화, 『우리규방문화』 (서울: 현암사, 2006), 백수백복도 참조.
22 박마리아, 「독자코너: 한국과 중국에서의 백종일의 의미」, 《대순회보》 112호 (2010), pp.90-93 참조.
23 교운 2장 21절.
24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전경 다시 읽기: 후천(後天) 五만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대순회보》 188호 (2016), pp.32-39 참조.
25 교운 2장 66절.
26 정하용, 「무궁화의 빛과 얼」, 『地方行政』 32 (1983), p.132.

27 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 (서울: 대원출판, 2010), pp.194-200.
28 ‘1 : 1.61803…’을 황금비(黃金比) 또는 외중비(外中比)라 한다. 또, 정오각형의 같은 꼭짓점[頂點]을 지나지 않는 두 개의 대각선(對角線)은 서로 다른 쪽 대각선을 황금분할 한다.
29 황금비로 이루어진 사격형으로, 시각적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도형으로 불린다.
30 황금나선은 황금사각형에서 정사각형을 제외한 직사각형은 다시 황금사각형이 되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고, 황금사각형의 황금비의 꼭짓점을 곡선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러한 황금나선은 자연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1 마이클 슈나이더,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서울: 경문사, 2002), pp.96-117 참조.
32 교운 1장 30절.
33 윤석중 작사ㆍ손대업 작곡, 《무궁화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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