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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8년(2018)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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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칼럼 : 지식의 힘과 전인교육

지식의 힘과 전인교육
 
 
연구위원 김주우 
 
 
『전경』에 ‘박람박식(博覽博識)이 두렵다’하셨으니 도인들은 솔선하여 전인교육에 힘쓰고 자녀교육에도 충실하라. 『대순지침』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변함이 없다. 흔히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떤 힘의 원천이 앎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앎은 어떠한 사물이나 사건, 현상 등을 인식한 정보로써 현실의 다양한 경험과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문명사회에서 그것은 다름 아닌 삶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판단한 것, 지혜와 상식을 포괄한 넓은 의미의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의 속성은 급변하고 불투명한 환경 속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생존을 위한 절대적 힘으로 여겨졌다.
  역사적으로 지식의 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18세기에 출현한 산업혁명이다.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과학기술의 발전은 천연자원의 사용을 엄청나게 증가시켰으며 기계를 이용한 상품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기술의 변화는 인구의 증가뿐만 아니라 유례가 없는 물질적 풍요를 제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인류는 과학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여 어떤 문제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과 달리 열강들은 과잉생산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고, 그 첨예한 대립은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야말로 세계는 약육강식(弱肉强食)과 같은 상극(相克)의 원리만이 유일한 질서로 존재할 뿐이었다. 이처럼 지식의 진보는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인간을 위협하는 전쟁과 환경문제 등의 위험요소를 낳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류의 지식은 상전벽해(桑田碧海)에 비견될 만큼 우리의 의식과 환경을 변화시켰다. 다방면의 전문가들 또한 현대의 많은 성취와 문제가 모두 산업혁명을 계기로 시작되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문명(文明)의 문제는 항상 지식을 생산하고 습득하는 주체인 사람으로부터 야기되었다. 어떤 지식이 개인을 넘어 집단의 삶을 풍요롭게 할 때 공적인 헌신성을 발휘한다. 이러한 지식은 생존에 유용한 것일 뿐만 아니라 결코 윤리성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지식을 계략(計略)으로 사용했을 때는 공존보다 파국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역사를 통해 경험하였다. 가치 중립적이라 여겨지는 지식의 역할, 즉 순기능과 역기능은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지식의 활용을 담당하는 인간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식은 교육의 역사와 그 궤도를 함께한다. 도전님께서 “교육이란 인생의 가장 위대한 일인 동시에 또한 퇴패(退敗)의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01라고 하신 가르침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교육은 개인이나 문명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고 역사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어떤가?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물질만능주의와 공리(功利)를 좇아 경쟁하는 진풍경은 지난날 산업혁명의 기억에 갇힌 꼴이다. 어려서부터 지식을 쌓는 데 몰두하지만, 지식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한 것 같다. 지식은 분란(紛亂)과 쟁투(爭鬪)를 예방하고 자신의 인격함양과 타인에게 유익함을 줄 때 그 본연의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대순지침』에 “전경에 ‘박람박식(博覽博識)이 두렵다’하셨으니 도인들은 솔선하여 전인교육에 힘쓰고 자녀교육에도 충실하라”02는 말씀을 깊이 자각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질적 향상은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인존시대(人尊時代)를 맞이하여 ‘온전한 인간’을 육성할 것인가 아니면 독선(獨善)에 빠진 ‘독불장군’을 육성할 것인가는 우리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왜 배우는가’의 물음은 ‘왜 지식이 필요한가’에 대한 반문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성이 존중될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가 얽혀있는 복잡다단한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생존환경은 단편적이고 특정 분야에 국한된 지식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영역에서 총체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박람박식’을 갖춘 도덕적 인간상이 요청되는 사회이다. 즉 문제와 갈등을 상호존중과 이해라는 상생(相生)의 관점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종교와 사회는 같은 시공간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수도의 궁극적 목적이 도통(道通)이라면 그것을 위한 교화육성의 지향점은 지식과 함께 호생(好生)의 덕을 갖추는 ‘전인교육’에 있다고 생각된다. 인재 육성은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우리 종단의 미래와 공익(公益)을 생각할 때 교육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01 「도전님 훈시」 (1985. 11. 13)
02 『대순지침』,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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