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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1년(2021)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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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와 함께 읽는 전경 : 고깔

역사 문화와 함께 읽는 전경: 『전경』에 서술된 역사적 사실과 문화 전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여 전경 구절의 역사 문화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코너를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해당 구절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깔



교무부 신상미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사용하신 적이 있다. 고깔과 관련된 성구는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마장군(馬將軍)이라 써서 문 위에 걸고…”(공사 2장 2절), “백미 한 섬을 방에 두고 백지로 만든 고깔 二十여 개를 쌀 위에 놓고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니라….”(공사 2장 18절), “상제께서 밤에 이르러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응종에게 씌우고…”(공사 3장 7절)등 세 가지다. 상제님께서 고깔을 사용하신 의미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통문화 속에서 고깔의 유래와 상징을 통하여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고깔의 의미와 유래


  고깔은 위 끝이 뾰족한 모자를 말한다. 고깔의 옛말인 ‘곳갈’의 ‘곳’은 뾰족한 모서리나 삐죽 나온 부분인 첨각(尖角)을, ‘갈’은 관모를 뜻한다.01 고깔은 고대부터 동양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중국 주나라의 관모인 ‘변(弁)’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02과 스키타이계의 관모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 고조선 시대 초기부터 고깔의 종류인 변과 책(幘), 절풍(折風)을 한반도와 만주의 모든 지역에서 널리 사용했다는 주장이 있다.03 변은 한자 모양처럼 위가 불쑥 솟아오른 삼각형의 고깔이다. 양옆에 끈을 달아 묶을 수 있게 만들어 말을 타고 달려도 벗겨질 염려가 없다. 다산 정약용의 『아방강역고(我邦彊域考)』 변진고(弁辰考)에서 고조선 이후 한반도 남쪽에 생긴 삼한 중 변한(弁韓)의 변 자는 ‘고깔’을 좋아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라 언급하였다.


책은 건이라고 부르는 헝겊으로 된 긴 천을 머리에 두르는 것으로 귀인 계급만 사용할 수 있었다. 절풍(折風)은 변과 같은 삼각 형태로, 더 발전하여 새의 깃을 단 관모이다.04
  『후한서』 「동이열전」의 고구려전에는 고구려의 관모로 책과 절풍이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책은 중국의 변형(弁形) 관모와 비슷하나 뒷 장식이 없으며, 절풍은 중국의 변형 관모와 유사하고 절풍의 양옆에 새의 깃털을 꽂아 귀천의 구별을 두었다. 평안남도 쌍영총 벽화 ‘기마인물도’와 개마총 벽화 ‘무사의 관모’가 대표적인 절풍이다. 기마민족인 고구려에서는 왕이나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군사 활동에서도 말타기와 활쏘기를 매우 중요시했다.05 그래서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 벽화처럼 고깔을 쓰고 말을 타며 활을 쏘는 벽화가 많다. 공사 2장 2절에 상제님께서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마(馬)장군이라 써서 문 위에 걸고, 짚을 묶어 종을 만들어 방 가운데에 달아매어 백지를 발라 24방위를 둘러쓰고, 그 위에 백지를 오려 비늘을 달아 붙이신 모형이 마치 철갑옷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비늘 모양의 철판으로 만든 고구려 개마무사의 갑옷과 투구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백제 관모 역시 고깔 형태의 절풍에 새의 깃을 꽂은 조우삽관(鳥羽揷冠)이 있었으며 신분에 따라 색을 달리하였다. 백제인의 조우삽관은 돈황 막고굴 335굴 벽화에 문수보살과 유마거사의 대화를 지켜보는 사람 중 열린 옷깃을 한 백제인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06 신라 역시 토우를 포함한 여러 유물에서 고깔 형태의 관모를 찾아볼 수 있다. 신라의 상급 귀족 기마병을 재현한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상이 대표적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진덕여왕 2년(648)에 김춘추의 요청으로 당나라 태종으로부터 중국의 예복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부터 남자들은 절풍 대신에 천으로 만든 중국의 복두(幞頭)를 쓰기 시작하였다. 진덕여왕 3년(649) 정월부터 고깔 형태의 신라 금관 또한 자취를 감추고 당제의 면류관이 조선조까지 계속 사용되었다.07 복두는 오늘날까지도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의 사모관대나 아이의 돌잔치 복식으로 사용된다. 고깔은 승려나 무당 또는 농악대들이 쓰는 건의 하나로, 승무·농악·무당 등의 복식과 생일 때 생일 당사자가 쓰는 등 일부 찾아볼 수 있다.


▲ 신라 금령총 기마인물상의 관모



고깔의 상징과 민간신앙

  고깔은 우리나라에서 직물을 접어 사용한 것으로 가장 오랜 역사가 있다. 고깔을 만들 때 주로 모시·삼베 등의 저마포(苧麻布)를 사용하였다. 이등변삼각형으로 배접한 베 조각을 둘로 꺾어 접어서 다시 이등변삼각형이 되게 하고, 터진 두 변에서 밑변만 남기고 다른 변은 붙이는 형식이다.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후 종이로 고깔을 만들었다.08
  삼각형의 고깔은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통해 땅을 바탕으로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09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등지에서 사용한 고깔형 관모를 착용한 사람 또한 왕이나 귀족, 신 등으로 고귀한 신분이다.10 중국 고대사회에서도 변관을 쓴 사람들은 신(神)의 뜻을 전달하고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였다. 모자를 쓴 사람을 상형화한 ‘령(令)’이란 글자는 모자 쓴 사람이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11 즉,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하늘의 대리자’라는 의미가 된다.
  고깔은 왕이나 귀족, 사제 등의 고귀한 신분과 지배층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의 매개자 역할을 한다. 무속 의식에서 무당이 고깔을 쓰고 신령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나 스님들이 고깔을 쓰고 승무하는 배경엔 이러한 상징성이 담겨 있다.12 공사 2장 18절에 상제님께서 12월 1일 대흥리에서 백미 한 섬을 방에 두고 백지로 만든 고깔 20여 개를 쌀 위에 놓고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게 하셨다. 이 구절의 명확한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의 민간신앙 중에서 쌀과 고깔을 사용하는 의식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 승무: Master Assistant Kim Myo Seon performing(출처: en.wikipedia.org)



  그 의식은 신체(神體)인 단지에 쌀을 넣고 백지로 덮은 후 고깔을 씌워 모시는 가정 신앙의 조령숭배(祖靈崇拜)이다. 신체가 없이 받들어지는 건궁인 경우도 있으며 장남 집에서 주로 부녀자들이 안방의 시렁 위에 모신다. 조상신은 대개 ‘조상할매’로 여신이며, 조상단지는 지방에 따라 조상님(보령)·제석(서울)·세존단지(영덕도)·부르단지(임실) 등 다양하게 불린다. 그리고 조상 신앙의 성격은 조상·삼신·곡신이 서로 중복을 이루고 있어서 구분이 되지 않기도 한다.13 제석(帝釋)은 해산(解産)을 주관하는 삼신(三神)이나 곡식을 주관하는 곡신으로도 여긴다.14 
  상제님께서 강세하시고 주로 공사를 보신 곳인 전북지역의 조상단지 의식에서 제주(祭主)는 대개 부녀자가 하지만 명절이나 조상의 제삿날에는 남자 가장이 제주를 한다. 그리고 호남 일대에는 추수를 기념하여 그 해 처음 수확한 쌀을 단지에 담아 놓고 남는 쌀로 밥을 지어 제사 지냈다.15 비록 공사 2장 18절에 제일(祭日)이 12월 1일로 추수 때가 아니지만 백미 한 섬을 방에 두고 백지로 만든 고깔 20여 개를 쌀 위에 놓고 상제님께서 “불과 물만 가지면 비록 석산바위 위에 있을지라도 먹고 사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이때 조상단지 없이 고깔이 얹어진 백미 한 섬은 조상보다는 곡신의 성격과 유사할 것으로 추측된다. 


▲ 백미 한 섬 위에 놓인 20여개의 고깔(출처: 2016년 종단역사사진전)



  한국문화에서 고깔은 고대부터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다양하게 변화해 왔으며 신분을 구분하는 것은 물론, 하늘과 관련된 의식에 주로 사용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천지인’ 사상을 고깔 형태의 모자에 표현하여 이를 머리에 쓰고 하늘에 소원을 빌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국전통문화에 나타나는 고깔의 상징성을 『전경』 구절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고깔을 만들어 마장군이라고 쓴 구절에서는 철투구를 쓰고 철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이 연상되고, 백미 한 섬을 방안에 두고 그 위에 20여 개의 고깔을 놓은 구절에서는 곡신을 연상하게 한다. 물론 고깔을 쓴 장군을 연상하게 하는 종 모양의 인경과 곡신을 연상하게 하는 백미 한 섬을 상제님께서 무슨 공사를 위해 쓰셨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황응종 종도가 쓴 고깔은 산하 대운을 거둬들이는 공사에 활용되었다는 사실만 『전경』에 기록되어 있다.






01 편집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서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p.365.
02 같은 책, p. 365; 한국민속대사전 편찬위원회,『한국민속대사전』(서울: 민족문화사, 1993), p.108.
03 박선희, 『한국 고대 복식』 (서울: 지식산업사, 2002), pp.221-292.
04 유승옥 외 2명, 『복식 문화』(서울: 교문사, 2003), p.32.
05 이형구, 『발해 연안에서 찾은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서울: 김영사, 2004), p.302 참고.
06 전홍철 교수, 「돈황 벽화 속 백제인」, 《全北日報》 2017. 2. 3.
07 채금석·김소희, 「한국 고대 고깔과 종이접기」, 『한국의상디자인학회』 20 (2018), pp.6-8 참고; 김부식, 『삼국사기』 1, 최호 역 (서울: 홍신문화사, 2001), pp.102-109. 
08 김지현, 「현대 섬유미술에 있어서의 종이작업에 관한 연구」 (상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4), pp.14-15 참고.
09 채금석·김소희, 앞의 책, p.3.
10 강순제·전현실, 「고깔형 관모에 관한 연구」, 『한국복식학회지』 52 (2002), p.127.
11 허진웅, 『중국 고대사회』, 홍희 옮김 (서울: 동문선, 1993), p.52.
12 정형진, 『바람 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 (서울: 소나무, 2011), p.114.
13 한국민속대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민속대사전』 (서울: 민족문화사, 1993), pp.1270-1271; 장주근저작집간행위원회, 『한국의 민간신앙』 (서울: 민속원, 2013), pp.326-333.
14 이능화, 『조선무속고』 (파주: 창비, 2013), pp.337-338: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속의 세계』 (서울: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2007), pp.91-94.
15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같은 책,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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