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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2년(2022)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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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이야기 : 행록 3장 19절의 교훈

행록 3장 19절의 교훈



대순종교문화연구소 김성수



금구 수류면 평목점(金溝水流面坪木店)에서 정 괴산(丁槐山)이라는 자가 집안이 가난하여 주막의 술장사로 겨우 호구하면서 매양 상제를 지성껏 공양하더니 상제께서 어느 날 우연히 주막에 들렀을 때 괴산이 상제께 올리려고 개장국을 질솥에 끓이다가 질솥이 깨어지므로 그의 아내가 낙담하여 울고 섰거늘 상제께서 측은히 여기셔서 쇠솥 하나를 갖다 주었더니 이로부터 그의 가세가 날로 늘어났도다. 그 후에 그가 태인 방교(泰仁方橋)로 이사하게 되자 그 쇠솥을 수류면 환평리(環坪里) 정 동조(鄭東朝)에게 팔았더니 이로부터 괴산은 다시 가난하게 되고 정 동조는 도리어 살림이 일어나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 솥을 복솥이라 불렀도다.(행록 3장 19절)


  행록 3장 19절을 읽은 수도인이라면 가장 먼저 조정산(趙鼎山) 도주님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정산의 ‘정(鼎)’은 솥을 의미하는 한자이기 때문이다. 상제님의 호인 증산(甑山)의 ‘증(甑)’은 시루를 의미하는 한자로서, 솥과 시루가 만나야 떡이 완성된다는 종통 계승의 이치는 누구나 이해하고 있는 바이다. 그리고 깨지기 쉬운 ‘질솥’이 아닌 깨지지 않는 ‘쇠솥’ 역시 상제님의 유지(遺志)를 구체화 시키신 도주님의 유법(遺法)이 확고 불변한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는 상제님께서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고 하신 그 금산사의 미륵장륙상 아래에 있는 쇠솥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수도인들은 이 구절을 읽으며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잘 지키고 끝까지 놓지 않는 것만이 후천의 운수를 받는 확실한 길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그런데 이 외에도 인간적인 차원에서 정 괴산의 에피소드를 바라보면, 또 다른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가난한 형편에서도 매양 상제를 지성껏 공양했다’는 정 괴산이 그 보답으로 가세가 날로 늘어 부자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이사로 인해 솥을 같은 동네에 살던 사람에게 팔고 나서 다시 가난해졌다는 얘기는, ‘참 안됐네. 그래도 상제님을 공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인데… 솥만 안 팔고 가지고 있었으면 계속 잘 살았을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런 안타까움은 그 사건이 우연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우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재세 시에 상제님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까이에서 모신 종도들 조차도 그분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나중에 도주님에 의해서야 그 신격(神格)이 밝혀지게 된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선생님이고, 잘 모시게 되면 아들을 얻는다던가, 재물을 얻고, 병을 치유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정 괴산 역시 이분을 잘 대접하면 자신에게 어떤 이로움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가난한 와중에서도 매양 대접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는, 아무런 대가 없이 상제님을 대접할 정도로 그분을 마음속으로 흠모하고 존경했다면, 그런 대상이 자신에게 선물해 준 솥을 이사를 가면서 함부로 남에게 팔지는(그냥 준 것도 아니고) 않았을 것이다. 솥이라는 물건의 특성상 어느 지역으로 가든지, 혹은 주막을 운영하든 안 하든, 실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고 지금도 이사 날짜를 받아서 계획했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솥만이라도 가져다 놓으면 이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민간의 습속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미 자신은 상제님을 공양하여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본래의 목적은 달성되었으니 솥쯤은 가볍게 처분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많은 돈을 벌어 여유가 생긴 살림살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솥을 친한 사람에게 증정하는 형태가 아니라 현금화해서 챙기는 것은 그 솥에 상제님과의 어떤 기념할만한 추억도 없었다는 얘기가 되며, 돈에 대한 그의 집착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정 괴산이 그 솥에 부자의 열쇠가 있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팔지 않았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그 솥이 복 솥이라는 것도 알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상제님께서 김형렬에 대해 “…네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나를 좇고 금전과 권세를 얻고자 좇지 아니하는도다…”(교운 1장 7절 중) 라고 가르치신 대목을 보면 어떤 마음으로 상제님을 대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기복(祈福)이 종교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수도인들이 단순한 기복만을 가지고 수도 생활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수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대순진리회요람』은 수도(修道)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 상제님(上帝任)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정신(精神)을 모아서 … 공경(恭敬)하고 정성(精誠)을 다하는 일념(一念)을 스스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잊지 않고 지성(至誠)으로 봉축(奉祝)하여야 한다.


  교법 3장 22절의 “…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고자 제각기 소원에 따라 부족함이 없이 받들어 줄 것이므로 도인들은 천하사에만 아무 거리낌 없이 종사하게 되리라”고 하신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도인들이 상제님을 모시는 마음을 늘 잊지 않고 생활화한다면 굳이 기복(祈福)에 매달리지 않아도 기본적인 복록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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