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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2년(2022)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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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공모전 : 나의 고난 해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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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우수 / 잠실30 방면 선사 허윤정



나의 고난 해방기



病有大勢 病有小勢 大病無藥 小病或有藥
然而大病之藥 安心安身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
得其有道 則大病勿藥自效


  병세문에 위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대병에는 안심안심, 즉 도를 얻는 것이 약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 대병은 몸의 병이 아닌 정신과 마음의 병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현대인들은 몸의 병보다는 정신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느낍니다. 저 또한 극심한 마음의 병을 앓았습니다. 어리석게도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해 멀리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사투를 벌였던 과정을 글로 쓰려고 하니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21살에 입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무슨 고민이 그렇게도 많은지 세상에서 제가 제일 불행한 사람인 것만 같았습니다. 당시 여러 가지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그중 하나는 심한 외모 콤플렉스였습니다. 제가 너무 흉측한 괴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얼굴이 붓기 시작하더니 땡땡하게 불어서 이목구비가 살에 파묻힌 모습이 된 것입니다. 원인도 모르고 이유도 모르는 이 증상으로 병원도 가보고 한의원도 가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선각들이 겁액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면서 공덕을 쌓고 수련을 많이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정성을 들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100일 정성 첫날 꿈을 꾸었는데 집에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가 들어와서 저를 공격하며 달려들었습니다. 어찌할지 몰라서 당황하던 중 향로가 보였고 저도 모르게 향로에 향을 피우자 벌레들이 순식간에 도망갔습니다. 선각은 꿈이 무언가 풀리려는 신호인 거 같으니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뭔가 반응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몸과 얼굴에서 안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가벼워졌습니다. 100일 정성 뒤에는 정말 예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정성이 끝나기 무섭게 증상이 돌아왔고 착시까지 시작되었습니다. 거울 속 제 얼굴이 괴물처럼 보였고 거대한 탈을 쓴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울을 보면 놀라기 일쑤였고 결국 거울을 보지 않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간절히 심고도 드려 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고민하는 저에게 선각은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모든 것들이 겁액 때문에 겪는 것이지만 결국 출발점은 나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야. 정성도 중요하지만 내가 내 마음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문제를 풀 수 있어.” 나는 너무 괴로운데 결국 내 탓이라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각이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시달리다 못해 신경 정신과를 찾아갔습니다. 병원에서는 ‘안면이형장애’라고 했습니다. 자기 얼굴의 결함이 좀 더 왜곡되게 보이면서 강박적으로 시달리게 되는 정신 질환이라고 합니다. 눈의 양쪽이 다르면 작은 차이로 티가 나지 않아도 자기는 그 차이를 크게 느끼면서 장애라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저에게 스스로 얼굴이 어떻게 보이냐고 물었고 저는 부어있고 괴물처럼 보인다고 얘기했습니다. 의사는 실제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저에게 유난히 과장 되게 보이는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의사는 치료할 수 있으니 희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약을 먹고 2주에 한 번씩 상담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거울도 쳐다보기 싫은 모습인데 도장에 치성을 모시러 가면 희한하게도 얼굴이 가벼워지면서 정상으로 보였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치성을 모시러 가기만 하면 하염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이게 현실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심리적인 부분도 있지만, 기운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저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도를 잘 닦아봐야겠다, 도를 닦다 보면 풀리겠지 하며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방면에서 회관을 짓고 있었습니다. 회관 공사에 단청, 식당 작업 등 공을 쌓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저는 단청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의욕만 앞서 붓은 제멋대로였고 단청이 들쑥날쑥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삼청을 칠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삼청을 칠했는데 다시 보니 양청 자리였고 주홍 자리인 줄 알았는데 장단 자리인 등 자꾸 헷갈리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색칠이고, 신경 써서 하는데도 인지가 왜 잘못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저 때문에 물감을 다시 칠해야 해서 차질이 빚어졌고 저는 단청을 중단하고 다른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심하던 저에게 임원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힘들겠지만 이건 오히려 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란다. 도에서는 어떤 일도 허투루 일어나지 않아. 이렇게 실제와 다르게 본다는 것은 네가 왜곡해서 본다는 것이고 너의 어떤 마음으로 인해서 실제와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야. 그러니 네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답을 찾을 수 있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핵심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씀의 반만 이해했습니다. ‘아, 내 마음에 문제가 있구나.’ 막연하게 내 마음으로 인해서 안면이형장애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제 얼굴을 보고 욕할까 봐 공공장소에는 가기 어려웠고 상점에 들어가면 직원이 쫓아내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상태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겪어오면서 이 괴로움은 도를 닦아야만 풀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할 일은 사람을 잘되게 하는 것이다.’ 이 마음으로 제 망상과 시달림은 뒤로한 채 남을 잘되게 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들과 얘기할 때마다 죽을 것 같은 공황 상태에 빠졌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나보다 더 정상이고 나는 장애가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습니다.
  매번 힘들어하는 저를 선각들은 늘 진심으로 살펴주고 이끌어주셨습니다. 선각들의 지극정성 덕분에 겨우겨우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서 포덕도 하고 공덕을 쌓아가니 꿈쩍도 안 할 것 같던 병도 조금씩 차도가 보였습니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거울로 보기에 왜곡이 되는 현상도 좀 줄어들었고 망상도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종종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떤 마음을 바꿔야 이 겁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제는 내 마음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외형적인 문제로 생각하기보다는 제 마음의 바탕에서 찾아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생각을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이 답을 수도하면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포덕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성격과 사연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결핍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여성분은 집안, 능력 등 많은 것을 가졌어도 본인의 언니에 비해 부족하다며 스스로 한심하다고 치부했습니다.
  포덕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그랬지만, 후각들도 비슷한 문제를 토로했습니다. 후각들은 완벽주의라는 굴레에 갇혀 있었습니다. 한 후각은 너무 예민하고 이상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후각을 상대하자니 저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열 가지를 맞춰주어도 한 가지를 맞춰주지 못하면 섭섭해했습니다. 후각들과 제가 만난 사람들을 들여다보니 저와 닮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3자의 관점에서 타인을 통해 비추어보니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는 것, 바로 ‘욕심’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어릴 적부터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곤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지만, 저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평불만을 했습니다. 한번은 정말 가지고 싶어 했던 가방을 누가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 가방을 받고 너무 기뻐하다가 그 가방에 흠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큰 흠집이 아니었음에도 저는 그 흠집이 너무 눈에 거슬렸고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그 가방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것만 보아도 저의 성격이 그런 부족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가 채우지 못한 것, 받지 못한 것에만 집중하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쌓아온 것이 결국엔 이런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제껏 큰 것을 바라고 대단한 것만을 바라는 것이 욕심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이것만 좀 잘 되면 좋겠는데, 혹은 저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만 해주면 좋겠는데…’ 이런 식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식대로 되기를 바라는 욕심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집착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연연하지 않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해야 했고 혹여 안 되는 상황이 되어도 절대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원하는 대로 되기 어려운 상황이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저는 ‘원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되게 해야지’라는 논리가 강했습니다.
  그것이 집념이 되어 뭔가를 이루는 데 쓰이면 좋겠지만 제 만족을 채우는 데에 집착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늘 제 만족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도를 닦는 것도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서였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결국 잘못된 관점으로 이어지고 결국 병을 키우게 된 것입니다. 저의 치우친 관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마음의 중심을 바꿔야만 했습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이타적인 삶으로… 이제껏 제 만족, 제 목표만을 위해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전체를 보고 타인에게 시선을 돌려서 남을 잘되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후각들에게 집중했습니다. 예전에는 형식적으로 신경 쓴 부분도 있었는데 이제는 진심으로 관심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마음을 올바르게 쓰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평생을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이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면 쓸수록 제 안에서 부정적인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평생토록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병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것을 해도 변하지 않던 이 증세가 남을 잘되게 함으로써 풀리게 된 것입니다.
  입도했을 때 우리 공부는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이고, 그로 인해 나의 척이 풀려 나도 잘되는 되는 것이라는 교화를 들었는데 20년 가까이 되어서야 그 참된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상제님 말씀대로 실천하니 지금은 많이 나아져 온전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 선한 길을 내는가 악한 길을 내는가 그것에 따라 자신의 운명은 달라집니다. 마음을 바르게 먹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 닦고 노력해야 합니다. 머리로는 쉬운 원리이지만 마음으로 행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입도해서 제 마음을 알고 풀어 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수도하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살아도 깨우치지 못하고 고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상제님의 덕화로 새 삶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도를 닦으면서 상제님의 진리가 인간으로 인간답게 제대로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마음이나 이치에 어두운 채 욕심과 욕망에 치우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 욕심에 눈이 어두워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상제님의 덕화와 선각들이 저에게 쏟아주신 많은 정성이 있었기에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 마음 잊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참된 수도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심사평


‘나의 고난 해방기’는 무려 20년간 자신의 병마를 곡진하게 전달해 주는 글이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잡하고 갈래가 많은 기복과 굴절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알게 된다. 사람은 가슴속 깊이 품고 사는 게 있다. 아무 곳에서도 드러내지 못하고 비밀스럽게 감추고 사는 비밀이 있다. 어쩌면 이로 말미암아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고난의 해방기’는 중간중간의 과정에서 야기되는 좌절과 포기의 양상 및 그 극복의 역정을 솜씨 있게 짜 맞춰 나가고 있다.
  다만, 짧은 분량에 고통스러운 자신의 주제를 다룬 탓인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의미를 만들어 간다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주제를 향하여 개별적인 이야기가 힘겹게 매달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읽으면서 행간을 해석해 나가는데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심리적 갈등과 긴장을 특유의 세밀함으로 서사화한 이야기다. 때로는 단단한 단어들로 지어진 마치 ‘돌담’처럼 견고한 세계도 보여주기도 한다. 홀로 자신 속에 갇혀 20년간 원인도 처방도 모를 병을 앓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은 치료가 힘든, 자신이 지고 갈 근원적인 삶과 자신이 존재하는 조건일 것이다. 얼마나 무서울까? 누가 이 병을 주었는지, 그리고 병원균은 무엇인지, 처방은 있는지. 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무서운 병 속에서 부단히 변형되는 얼굴을 의식하고 거대한 탈을 쓰는 고통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자신의 한계 조건이다. 사람이란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유한한 존재이며, 인간존재의 한계성을 의식하면 할수록 그 한계를 초극하려고 하는 것은 삶의 본연적인 모습이리라. 일체의 감상성을 배제한 담담한 어조로 말하면서 따뜻하고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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