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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0년(2010)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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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이야기 : (64)금강산을 노래한 삼형제

(64)금강산을 노래한 삼형제 

 

 

글 교무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이름을 날린 문인으로 김창집·김창협·김창흡 삼형제가 있었다. 맏형인 김창집[金昌集, 호 몽와(夢窩), 1648~1722]은 시와 함께 주로 정론(廷論)을 많이 썼다. 그는 숙종 말년과 경종 초에 왕세자의 대리청정을 주장했다가 반대파의 탄핵을 당하고 이듬해에 사사(賜死)되었다. 둘째인 김창협[金昌協, 호 농암(農巖), 1651~1708]은 숙종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대사성·청풍부사에 이르렀으나,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사약을 받고 죽자 벼슬을 내놓고 산중에 들어가서 살았다. 시보다 산문의 대가로 명성을 날렸던 그는 문집인 『농암집』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내용과 아름다운 문체로 이채를 띠었다.

  셋째인 김창흡[金昌翕, 호 삼연(三淵), 1653~1722]은 형들과는 달리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명승지와 농어촌을 찾아다니며 시 짓기를 낙으로 삼았다. 그는 아버지와 맏형이 당쟁으로 사사되자 권력다툼에 이골이 난 조정의 관료들을 혐오하여 더욱 창작에만 몰두하였다. 그의 문집인 『삼연집(三淵集)』에는 양반들의 비리와 착취로 인해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참상과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 삼형제는 성격이나 취미, 창작기법은 서로 달랐지만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아 명승지를 유람하며 글짓기를 좋아하였다. 그중에서도 ‘금강산’을 유람하며 창작한 작품에는 금강산에 대한 그들의 특별한 애정이 잘 드러나 있다. 삼형제는 금강산 탐승 중에도 창작을 위한 사색을 멈추지 않고 주요 명소의 절경을 실물처럼 묘사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김창집의 시 ‘마하연’과 김창협의 ‘만폭동’도 좋지만 막내인 김창흡이 비유와 대조의 수법으로 금강산의 절묘한 경치를 생동감 있게 묘사한 ‘구룡연’ 9수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이 시에서 구룡연계곡에 펼쳐진 아홉 개의 못을 차례로 따라 내려가면서 아홉 마리 용이 깃든 그 못들의 특징을 수준 높은 기교와 섬세한 필치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첫번째 못은 맑게 트인 거울일런가

바위는 둥글고 물은 새맑아

높다란 언덕위에는 나무도 없으니

무엇을 붙잡고 솟아오르랴.

 

 

두번째 못은 달아맨 바가지련가

폭포수를 어지러이 삼켰다 뱉네.

누가 알랴 크지 않은 저 시냇물이

골짜기 에워돌아 바다로 갈줄.

 

 

세번째 못은 어이 출렁거리나

물빛은 검푸러도 밑이 보이네

어떻게 신비로운 늪 가까이하리

내 말없이 에돌아 언덕오르네

 

 

네번째 못은 느릿느릿 잘도 흐르네

물빛이며 물소리 마음끌리네

거울보다 맑고맑은 여울로 가다

몇번을 고개돌려 못을 보았나

 

 

다섯번째 못은 물살이 급히 돌려다

남쪽기슭 이르러서 솥물처럼 고였네

앞서거니 뒤서거니 흘러드는 물

가득차면 빙빙돌며 춤을 추는듯

 

 

여섯번째 못 아름답기 구슬같은데

물에 씻긴 돌무늬 곱기도 하네

사람들 그것보면 눈이 커지고

높이 나는 구름도 푸르러지리

 

 

일곱번째 못은 너비가 크진 않지만

조용히 흐르는 물 정겹구나.

하늘위의 견우성, 수레를 몰아

바다밑 용궁에 찾아가는가.

 

 

여덟번째 못은 물이 얕아 여울이뤘네.

그속에 잠긴 용은 몸 드러내리

한낮에 흐르는 물 바라보려니

저절로 졸음이 와 졸고말았네.

 

 

아홉번째 못은 산밖으로 흘러가는데

천길 긴 두레박도 퍼기 어려우리

주야로 방아찧는 물소리에도

못안에 잠긴 용은 편안하리라.

 

 

  한편 삼형제 가운데 산문(散文)에 능했던 김창협은 금강산을 노래한 시도 썼지만 조선의 자랑인 금강산을 만방에 더 널리 소개하려는 포부에서 주로 기행문 창작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 금강산을 돌아보고 『동유기(東遊記)』를 썼는데, 이것은 1671년 8월 19일부터 9월 2일까지 14일간에 걸쳐 금강산을 유람한 노정을 날짜별로 기록한 기행문이다. 여기에는 장안사(長安寺)에서부터 내·외금강의 명소들을 돌아본 후 개잔령[779m, 일명 구령(狗嶺)]을 넘고 백천교를 지나 고성의 삼일포(三日浦)와 용천의 총석정(叢石亭)에 이르기까지의 긴 탐승노정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

  그는 이 글에서 금강산 명소들의 절경을 원숙한 필치로 묘사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내금강 만폭동의 골짜기와 외금강의 기묘한 봉우리들의 특징을 재치 있게 그렸다. 그는 만폭동 입구의 너럭바위 위에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쓴 글씨 ‘봉래풍악원화동천(蓮萊楓嶽元化洞天 : 봉래풍악은 으뜸가는 별천지를 이뤘다)’에 대해 “용이 잡아채는 듯 사자가 할퀴는 듯 글씨가 풍악의 기세와 더불어 웅대함을 다투고 있다.”고 하면서 “만폭동은 온통 반석으로 되었는데 돌 빛이 모두 하얘서 백옥 같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외금강의 우뚝우뚝 솟아있는 봉우리에 대해서는 “첩첩한 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마치 난공불락의 성벽과 성첩(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거듭거듭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처럼 김창협의 『동유기』는 비교적 긴 탐승노정을 취급하면서도 명소들의 탐승로와 절경을 구체적이며 생동감 있게 소개한 것이어서, 17세기는 물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금강산탐승기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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